당신의 비밀 (홍명진 소설집)

당신의 비밀 (홍명진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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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당신의 비밀』은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의 작가 홍명진의 면모를 잘 엿볼 수 있는 작품집이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 살면서 겪은 경험들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여하튼 홍명진 소설을 읽고나면 ‘나’라는 존재(being)가 다른 존재가 되는(becoming) 작은 변신술을 경험하는 것만 같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사람은 나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며 살아온 것이 아닐까.

(…) 가난, 질병, 외로움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이 관계의 빈곤ㅇ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글쓰기를 수행하는 작가 홍명진의 소설이 하루하루의 일상을 회의하고 좌절하되 쓰러지지 않는 사람들이 값싼 감상과 가짜 위로에 기꺼워하는 것이 아니라, 끝내 화엄의 바다를 연출하는 소설이 되기를 바란다. 나의 이러한 생각은 순전히 기우일지 모른다. 홍명진은 이 지상의 폐허를 응시할 줄 아는 작가니까(해설, 「상처 입은 치유자의 글쓰기」 중에서).
저자

홍명진

저자홍명진은2001년전태일문학상을받고그후7년동안직장생활을하면서다시습작의시절을보냈다.2008년[경인일보]신춘문예를통해본격적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
제10회사계절문학상대상,우현예술상,제5회백신애문학상을받았다.장편소설『숨비소리』,『우주비행』,『타임캡슐1985』,『앨리스의소보로빵』과소설집『터틀넥스웨터』가있으며『벌레들』,『콤플렉스의밀도』등함께쓴책이다수있다.

목차

작가의말/5

사소한밤들/9
아무도기억하지않는시간/33
조용한생/87
당신의비밀/111
마순희/137
해피크리닝/165
너무멀리가지마/193

해설-상처입은치유자의글쓰기(고영직)/220

출판사 서평

버려지는사람들
소설가홍명진의두번째소설집이나왔다.이번소설집에는7편의중단편이수록돼있는데,등장인물들이변방의소수자들이다.이런소수자들에게작가는무슨말을건네고싶었던것일까.문학평론가고영직은‘해설’에서작가를‘상처입은치유자’라고부른다.즉작가자신의경험과상처를통해서“서로의내면을연결하는안내자의역할”을한다는것이다.
「사소한밤들」의주인공은‘희망의전화’라는상담센터에서심야에전화봉사를한다.대체로심야에전화를걸어오는사람들은자신의고독을하소연하는데,주인공은단지전화기너머로전해오는익명적인존재의고독만을마주하지는않는다.또직장동료P를통해그고독의근원에어쩌면경제적상황이있을지모른다고생각한다.하지만현실은그러한고독을누구도감싸주지않는다.

“어쩌겠어.계약직이파리목숨인걸.어디진정할데있으면해봐.”
책상을정리하고있는그녀에게위로랍시고동료들이해준말도그게전부였다.
_「사소한밤들」15쪽

여기서작가가발견한것은일종의자기치유의윤리학이다.물론사회가강제한구조적문제를자기치유라는방식으로감당할수있겠는가하는문제는남는다.하지만「사소한밤들」에서는김인순할머니의‘노래’가어떤촉매역할을한다.그러면서주인공은읊조린다.“그러게요,할머니.그날이그날같아도분명히다른날이겠죠.이어둠이저것과는다른어둠이듯이,이밤이지난것들과는다른밤이듯이.”

삶은살아가는과정의이름
「아무도기억하지않는시간」에서는친구재섭의부고를받고조문을가던중학동창생들이목적지를코앞에두고차가고장나어둠에갇혀버린상황에빠지고만다.이작품은시종일관삶이답답하고우울한존재들의한숨(?)으로실내가뿌연분위기를연출한다.한때“선명했던무엇인가가있었”던삶들이지만,대체적으로좌절한캐릭터들이다.사고로갑자기죽은재섭도시를쓰며건강한삶을꾸려가려고했지만,사랑에도실패하고갑자기죽은경우이다.오도가도못하는어둠속에갇힌상태에서구원같은불빛이갑자기주어질리없다.

재섭의생과는상관없이우리는그시간을살뿐이다.모든것은어제와같고,내일도크게다르지않을것이다.우리는어제와같은오늘과,오늘과다르지않은내일사이에또몇몇죽음을맞이했고,우리가자랐던그곳으로부터점점더멀어졌다.나는이오류같은시간을믿지못하면서도또한믿을수밖에없다.보잘것없지만,아무도기억해주지않겠지만그시간속에우리가지나온길이있다는것또한부정할수없듯이.
_「아무도기억하지않는시간」85쪽

어쩌면지금작가는‘전망부재’의터널속에있는지도모르겠는데,그래도건강한삶을놓치지않으려는안간힘이오늘날에는가장윤리적인태도인지도모른다.마치‘희망없이사랑하라’를선택이라도한듯이말이다.
그렇다고해서이번작품집에암울한인물들과사건들만펼쳐지는것은아니다.「마순희」는기옥의시선으로청각장애인인마순희의삶을조망하고있는작품인데,마순희는섹스할때이상한소리를낸다고이혼을당한모욕을견디며한걸음씩한걸음씩살아가는인물이다.그런마순희의활기는기옥에게도어떤움직임을경험하게한다.처음에는마순희의적극적인접근에당황하지만말이다.왜냐면“기옥은통속적인세상의눈이두려웠다.값싼동정의위로가언젠가는그녀를비난하는부메랑이되어돌아올수있는두려움”이있었기때문이다.몸테라피강좌를받는동안“마순희는한번도결석이나지각을하지않은우등생”일정도로열심이었는데,9회차강좌가끝나고옥자아줌마,기옥,마순희만참가한뒤풀이에서기옥은“술을못배웠어요.술까지마시면정말로병신이육갑한다고그럴까봐”라는마순희의말에“왜그런말을해.누가순희씨더러병신이라고그래”라고버럭소리를지른다.기옥이마순희정동에공명하는순간이다.
이소설은다음과같이끝을맺는데,사소하고상투적인것처럼보이지만묵직한감동을전한다.삶이사소하고상투적인것이기에그것을이기고나온작은움은더큰울림을준다.

기옥이전동차안에서만난두여자는기옥을오해했다.기옥은수화로격렬하게이야기를주고받던그녀들을부럽고놀라운눈으로쳐다보고있었다.그녀들이뿜어내는신기한열기와활력에기옥이매료되었다는걸알수없었을테니까.기옥이본그녀들은거리낌이없었고,한편으론더없이비밀스러운자기들만의기쁨을나누고있는것처럼느껴졌다.마순희를처음만났을때기옥이느꼈던부담스러움과거리감,한사코그녀와거리를가지려했던것이어쩌면기옥이도저히흉내낼수없는마순희만이가진낯선활기때문이었는지도모른다.
_「마순희」162쪽

삶과삶,삶과죽음사이의거리
해설을쓴문학평론가고영직은이번홍명진의작품집을일러‘상처입은치유자의글쓰기’라고했는데,『당신의비밀』에실린대부분의작품들에서,상처입은자들을치유하는것은다른상처입은자들이라는것이명확히드러난다.이점은홍명진의소설이아직도,변함없이낮은자리에서있다는것을의미한다.거창한구호나이데올로기가아니라,삶의상처는다른삶의상처와만날때만이조금씩치유된다.또는상처와상처사이의적절한거리에의해서만삶은지탱될수있다.
암병동에서죽어가는남편을간호하는작중화자의술회로짜여진「너무멀리가지마」는그시적예로알맞을듯싶다.작품안에서환자는언제나작중화자에게‘멀리가지마’라고말하는데,그언표는표면적으로는죽음을목전에둔환자의나약함에서발화되는것처럼읽힌다.하지만문제는작중화자의해석이다.죽음쪽으로다가가는환자의‘멀리가지마’는죽음과삶의거리에대한환유이며,죽음이삶을밑받침하고있다는인식기호이기도하다.한편으로는삶의결정적상처인죽음과의거리를가늠해보려는작가의의도일지도모른다.
다음과같은단락을읽어보면그점은조금더명확해진다.

너무나고요하고맑은아침이었다.한쪽으로치운눈은얼어서빠닥빠닥빛이났다.지그재그로설치된통나무계단을올라병원건물을빠져나오자답답하던호흡이툭터졌다.듬성듬성서있는키큰활엽수들이내장을다드러낸듯헐벗은채눈을안고있었다.외딴화장실건물을향해걸음을떼면서어쩌면그가창가에붙어서서내뒷모습을보고있을지도모른다는생각에불현듯뒤를돌아보았다.(…)비행기가항로를달려갈때천천히돌아가고있는지구역시그러하겠지.편서풍이니하는바람의영향이없더라도어디에도오차는존재하고,삶과죽음은바로그오차의간극이라고,나는문득생각했다.

홍명진의두번째소설집인『당신의비밀』은독자들에게,아주구체적인삶의결을아로새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