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눈, 벌레의 눈 (김해자 시평에세이)

시의 눈, 벌레의 눈 (김해자 시평에세이)

$17.00
Description
『시의 눈, 벌레의 눈』은 많은 시인들을 불러내, 오늘날 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책의 구성 양식으로는 16명의 시인과 1명의 가객으로 보이지만, ‘칠곡 할매들’이 있기 때문에 그보다 많은 복수의 시인을 발견한 셈이다. 김민기는 통념적으로 불리는 ‘시인’은 아니지만, 저자는 김민기에게서 ‘시인됨’을 찾아낸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룬 시인‘들’을 통해 새로운 문명에 대한 사유를 펼치고 있다.
저자

김해자

저자김해자는고려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고
조립공,시다,미싱사,학습지배달,학원강사등을
전전하며노동자들과시를쓰다
1998년『내일을여는작가』로등단했다.
시집『무화과는없다』『축제』『집에가자』,
산문집『민중열전』『내가만난사람은모두다이상했다』
등이있으며,전태일문학상과백석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책을내며-5

제1부
백무산:시간을혁명하다-15
육봉수:희망없음을희망있음으로-41
황규관:어둠에보내는찬사-59
김정환:세계의시신을떠메고나아가는시-81
송경동:삶은부활해야한다-109
박영근:행려의시,결핍의시,흰빛의시-130

제2부
칠곡할매들:시안쓰는시인들-161
권선희:고통과죽음을넘어서는축제와제의로서의말-188
이명희:모호성과단순성의공존으로서의사랑-214
이민숙:타인의얼굴과생명,그소소한그물-239
이섬:아줌마들의시인공화국을꿈꾸다-263

제3부
정희성:죽은시인의사회에서모두시인되기-289
이정록:눈에넣어도아프지않을목록들이전부시였다-317
이시영:과거의거울에비추어보아-346
안상학:처음인양재생되는오래된사랑-371
도종환:다시길위에서-390
김민기:우리시대의가객,김민기의노래에부쳐-413

출판사 서평

시인은하늘에서내려준사람이라고생각합니다.김해자는그런제가처음만난시인이었습니다.‘시집한권을읽는다는게하나의우주를펼쳐보는것같’다는김해자시인은이책에서갓난아기에게밥알을씹어미음을만들어먹이는어머니처럼열일곱분의우주를꼭꼭읽어주었습니다.한술한술받아마시다보니가슴이채워지고마음이부릅니다.누가무슨말을해도험한소리,아픈말하지않고다받아주는바다같은성품은이름에‘해’자가들어갔기때문인지잘모르겠습니다.김해자시인은술취해들어간새벽에도딸을위해된장찌개를끓여놓는어머니이자땅을일구다지렁이가나오면얼른흙을덮어주는인간입니다.암요,시가머물만한시인이지요.

_‘추천사’중에서

시인의자격은시인을발견하는것

김수영은“시인을발견하는것은시인이다.시인의자격은시인을발견하는데있다”라고말한적이있다.이말의뜻은단순히‘새로운’시인을발굴하는일에만국한되지는않는다.그것은사회적이름으로불리는‘시인’말고그안에숨어있는‘시인됨’을읽어내는역량을말하기도한다.시인이뛰어난비평가일수있는것은시인의눈으로‘시인됨’을찾아낼수있기때문이다.이책,『시의눈,벌레의눈』은“시인을발견하는데”에바쳐졌다.
김해자시인은이책에서많은시인들을불러내,오늘날시가무엇이어야하는지묻고있다.책의구성양식으로는16명의시인과1명의가객으로보이지만,‘칠곡할매들’이있기때문에그보다많은복수의시인을발견한셈이다.김민기는통념적으로불리는‘시인’은아니지만,저자는김민기에게서‘시인됨’을찾아낸다.
책의맨처음에백무산을배치한것에서부터저자가강조하고싶은‘시인됨’의모습을눈치챌수있다.저자는백무산의시에대해서이렇게말한다.

시인은지금까지걸어왔던길이길밖에존재하는살아있는길들을부정하는것이었음을발견한다.유용성의몫만큼도려내고그나머지를배제하는죽은사유요뼈만남은언어라는거다.그것은“죽은관념의덫에걸려사는”시간이었다.백무산은과거의길에대한부정으로‘살아있는길’을찾는다.길의탐색은자신의몸과기억,그리고인간에대한근원적인질문과성찰을통해서나타난다.그길은존엄하게살다존엄하게죽어야할인간만이아니라,이세상의모든생명과무기물조차아우르는길이다.(18)

저자는이책에서다룬시인‘들’을통해새로운문명에대한사유를펼치고있는것이다.김해자시인이강조하는것은바로몸에새겨진기억이다.그것은물질의세계이면서또한영혼의문제이기도한것이다.그리고그것은동시에시간의문제이다.백무산시인에게서‘발견’한것은“살아있는시간”이고황규관시인에게서는선형적인구조가깨진“오고있는시간”이다.그런데이시간은몸을통해서오고,몸을통해서다시살아나는시간이다.

벌레의눈!

고인이된육봉수시인과송경동시인에게는끝나지않은노동착취와억압을읽어내고있다.육봉수시인의시세계에대해말하면서저자는과연우리가사는현실이과거와얼마나달라졌느냐고묻는다.다른말로하면자본주의경제체제가존재하는한과연노동자의현실이달라질수있겠느냐는것이다.

일상의삶조차누리지못한채,착취당하고억압당하는노동자들이넘쳐나는시대에,자기몫을받고노동자들이자기가치를실현하고자하는행위가어찌지난시대관념일수있느냐고.자기시대고통의심연으로부터흘러나오는삶을건져올리고,소외된자의해방과이해를위해봉사하고자하는의지와노력이과연낡을수있느냐고.이어시간을착취하는것이존재를소멸시키는일이라는걸육봉수시인은‘교대근무’를통해처참하게보여줍니다.(46)

자본주의경제체제가착취하는것도바로“시간”이다.삶의시간을노동의시간으로전환시킨다음에야착취가가능한것이니자본주의는노동자의노동력으로외화된삶의시간을착취하는꼴이다.
저자가송경동시인의시집『꿀잠』에대한글제목으로‘삶은부활해야한다’로했을때도아마이삶의시간을염두에두었기때문일것이다.“정규직과비정규직으로양극화된사회,계약직과파견직등으로몸값차이가제도적으로정당화된작금의사회에서,노동자는언제어떻게될지모르는존재의불안을안고살아간다.삶이치욕이고매순간이벼랑이다.”시가삶의시간을노래하는것이곧‘시의눈’이고세상을하늘위에서조감하는게아니라땅에서바라볼때‘벌레의눈’이된다.저자는‘벌레의눈’이라는개념을『녹색평론』발행인김종철에게서얻었다고고백하고있지만이미저자의존재가새가아니라벌레였을것이다.삶을초월의시각으로보지않고대지적관점에서바라보자는것이저자의한결같은주장인데이럴때만이시는벌레의것이된다.
‘칠곡할매들’의시를말하면서그주장이더더욱확실하게내면화된것임을읽을수있다.

흙과만물을먹여살리는지상의존재들과가난한농부들이권력과기업과유전자조작과생명복제의실험실에갇힌과학자의눈에어떻게비치고있을까상상해보려면,지금우리가딛고있는땅과이웃들의주름진얼굴을지그시바라보는일로부터시작해야겠습니다.(182)

시읽기와상상하기

이러한문명비판적관점은이시영시인의시를읽으면서도여실히드러난다.‘과거의거울에비추어’본다는것은그런의미이다.저자는이시영시인의시에서“자본의위력과개발앞에서다수의평화는사라지고”있는현상을본다.시는“사라져가는사람냄새와얼굴을기록하는”일이라고하면서“가난했어도,못배웠어도,고생스러웠어도함께일하고목욕하고웃던농촌공동체가살아있던세계”를떠올린다.물론저자근대이전의시간을맹목적으로추구하는것은아니다.도리어폭력적인근대자본주의를비판하는맥락에서이같은주장을이해할필요가있다.“농촌이근대화되고(아니파괴되고)도시에값싼노동력을대주는처지로전락했을때정님이와후꾸도같은사람들은도시에나가루핑집을짓거나천막을치고살면서날품팔이가되었습니다.그들은펜대와도장을쥔머리들에게살과뼈와근육과손발을대주었습니다”라는문장은그증거이다.
시를읽는일은저자에게일종의‘해방’이라는사건이다.저자가말하는‘해방’은그러나소극적으로읽힐수있다.이런대목때문이다.“그냥그들이있는자리에그냥내버려두기만해도그들은이미평화이고사랑입니다.”하지만“그냥그들이있는자리에그냥내버려두기만”하는것은많은투쟁을필요로한다.왜냐면“서로의목에총칼을겨누는전쟁에끌어들이거나,이래라저래라간섭하거나억울하게끌고가거나,억지로배제하지만않“아야하는가능한일이니까.
여기서저자의비판적인식은상당히급진적인것임을알게된다.급진적정치의식을시를읽으면서펼치는사례는그리많지않다.또어지러운이론과학문을통해논리를전개시키는것도아니다.이책에수록된시인들의시를읽으면서,우리의일상이얼마나폭력과배제,그리고억압과수탈로뒤덮여있는가를말해주고있기때문이다.그렇다고해서시를자신의정치적급진성을위해동원하고있는것은당연히아니다.난해한김정환시인의시를읽으면서남긴아래와같은문장은김해자시인의시읽기가그야말로얼마나시적인지알려준다.

시와음악은시간을공간화하고풍경을시간화하고,“생의전면화인무의식과생각보다더많이관계하는의식”이공조해만들어가는협주곡.죽음과삶사이,진폭이큰상념과사유사이,어딘가에닿을지모르는곳으로흘러가는시인의노래를‘리퀴드(Liquid)시’라부르겠다.(84)

[책을내며]

과거독재정권하의국민교육헌장처럼강제로외우는대신,실체도모른채우리를붙드는이미지가명멸하는광고처럼,옴짝달싹못하게하는각자도생의국민교육헌장으로우리의미래인청년들이구금되고닦달당하고있습니다.물신과우월함을조장하는신흥종교의우산아래내던져지는동안,땅과대기와바다가몸부림치고일상의모든부문에서그끝의징후를드러내고있는독생대인류세(獨生代人類世)를우리는통과하고있습니다.외따로떨어져점으로존재하는고독한인간들의군상과,스스로멸절을택하는(강요당한)사람들과날마다멸종되고있는생명체들이마지막으로두드리는절박한요청앞에서,저는아무것도할수없는무능하고무용하기까지한하찮은시가과연무엇인지질문합니다.호모사피엔스는언어와뒷담화때문에강력해지고지구를지배하는무소불위의독불장군이되었지만,바로그것때문에스스로를죽이고이행성을파괴하고멸종시키는주범이되어왔던것은아닌가,새삼언어의의미와의무를떠올리게됩니다.
시는언어의에센스라고들말합니다.저자가따로없던역사이전시대에,시는공동으로창조하고같이향유하는둥근원의노래였습니다.오랫동안시는상처를받고기진맥진해서일어설힘조차없는사람들을일으켜세우는위로와치유의소리였으며,염원과발원의기도이자응답이었습니다.발화하며나오는소리가공기를통과하고모든원자를춤추게하며세상끝까지도달하는사라지지않는음악이었습니다.사람들은심장처럼박동하는시구속리듬에귀를기울이며우주와미물과나와내옆의사람들과통했습니다.이미지의범람으로실감과생물의펄떡거리는감각이실종된이너무나도문명화된세상에서시는과연무엇을줄수있을까요

[책속으로추가]

이반일리치는강자의흥망성쇠를주로기록한,거의전쟁사가되어버린역사서술대신,일상의세밀한세속사가진정으로기록되기를바란다고말합니다.강자가되어보지못한관점에서역사를기록하는자들또한노예와농민,소수자,소외계층의저항과폭동,반란의역사를주로기술합니다.더근래에와서는프롤레타리아의계급투쟁이나성차별에맞서는여성의싸움을기록하고있습니다.하지만이새로운역사도전쟁과투쟁에초점을맞추는경향이있으며,“약자가자신을지켜내기위해상대와충돌하는모습을통해약자를그리는것”일뿐,저항의이야기를나열하면서과거의평화에대해서는넌지시서술할뿐입니다.「정님이」나「후꾸도」나「일만이형」같은시를읽게되면,이모든인류사에서민중이란구제와구원의대상이아닐뿐더러,교화하거나계몽하거나부추겨,무슨무슨전선에동원할대상이전혀아님을다시금확인하게됩니다.
-「이시영:과거의거울에비추어보아」(358쪽)

도종환시인은초월을꿈꾸지않는다.나쁜것과미움의위험성이자신에게있다는걸아는자만이그것을잊거나없앨수있는완전한세계로떠나고픈충동을느낀다.어쩌다힘들어서잠깐들어갔더라도그는다시저잣거리로,지금바로그의처지로돌아온다.어느시대나악한것은강한욕망을낳고그욕망은권세를갖는다.그래서무욕의선한인간이권좌를차지하는일은역사에는없다고보아도좋다.그런세상에염증을내어그런꿈조차도폐기하고싶어지지만,그래서어느정도나이가들면‘나도역사를짝사랑할만큼했어’,하고돌아서지만,시인은무용(無用)의꿈을앓는다.그것은꿈이권력의폭력적질서를없앨수는없지만,적어도줄일수는있으리라는믿음때문이겠다.꿈이그를사랑하고있기에,상처만남길지언정그꿈이저와같은인간의몸을빌어육화시키고자하기에.
-「도종환:다시길위에서」(403쪽)

한시대의희생자요피해자였지만,피해의식도없이엄청난강도의노동과생활을묵묵히견디는그들이야말로말없는영웅들이었는지모릅니다.그뒤오랫동안전미싱사였습니다.때로굽힐수도펼수도없는허리를비틀며미싱앞에서내가아는사람들의얼굴을그리고때로시를끄적대기도했죠.임금체불에이어위장폐업하게된공장에서몇달간물미역과오이짠지로점심한끼얻어먹으며일을하는기숙사친구들과호박과감자와밀가루를가져다부침개와수제비를해먹으며공장을지키고노동청을걸어다녔어요.그런제게특별히<공장의불빛>을들을때면먹먹해집니다.수없이들어도소름끼치는“돈벌어돈만벌어”를들을때나(이노래는꼭젓가락으로술상을두드리면서불러서더겁이났습니다),“두어라가자몹쓸세상”을들을때저는바다밑으로잠겨부서진공장잔해사이를헤엄칩니다.김민기는아래서(under)함께서있었던(stand)게분명합니다.그래서이해(understand)한거죠.가난과날마다계속되는노동과“밤바람찬새벽에교대”하러가는여공들의무섬증과피로와병들어가는몸을.
-「김민기:우리시대의가객,김민기의노래에부쳐」(4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