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이웃 (양혜영 소설집)

고요한 이웃 (양혜영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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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양혜영의 소설에서 소외받고 가난한 자들은 끊임없이 폭력과 모멸을 감당한다. 희망이라는 출구는 굳게 닫혀 있다. 그러나 큐브 같은 세계에서도 그들은 삶을 저주하거나 자해하지 않는다. 요컨대 그들은 죽지 않는다. 현실도 그와 비슷하다. 소설 속에 묘사된 폭력적인 풍경들은 결코 낯설지 않다. 현실은 아마도 소설보다 더한 지옥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현실 안에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수하고 곳곳에 편재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희망들은 우리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희망들이다. 여기서 텍스트의 전이가 지닌 의미가 드러난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과 상관이 없는 희망을 붙잡고 살아가는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희망이 부재하는 세계에 던져진 인물들의 고통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희망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양혜영의 소설에 그려진 희망 없는, 혹은 희망에 지친 자들의 결락(缺落)은 긍정을 강요하는 세계의 민낯을 직시하게 만든다.
저자

양혜영

2002년단편소설「틈」으로『제주작가』신인상을,2007년단편소설「오버더레인보우」가경남신문신춘문예당선되면서작품활동을시작했다.
현재한국작가회의회원으로활동중이다.

목차

작가의말/5

오버더레인보우/7
랩의제왕/31
틈/61
올드하바나/83
구두/109
고요한이웃/135
요나/165
물집/189
아웃오브아프리카/217

해설
잔혹한세계와환대의불가능성(이정현)/241

출판사 서평

폭력과차별로가득찬세계

양혜영의첫소설집『고요한이웃』에등장하는인물들은사회적,문화적약자들이다.「오버더레인보우」의‘나’는동성애자라는이유로가족들에게버림받고‘리’와동거를하지만‘리’는‘나’를사랑하는것이아니라‘나’는단지욕망의대상일뿐이다.‘리’는어느날어린아이를집으로데려와성폭력을휘두르다‘나’와다툼을벌인다.‘나’는어린아이를데리고자신의집을나와버린다.‘나’와함께어린아이는‘리’의폭력에제물이된셈이다.
「틈」에서도마찬가지이다.이작품에서도‘나’는남편에게철저하게버림받는다.한편으로는시어머니에게가난하다고해서멸시를받고,그에동참한남편은‘나’의과거까지의심하면서이중으로버림받은것이다.실어증에걸린‘나’는어머니집에와서오빠부부와불편한동거를시작하지만그전에‘나’에게서버림받은규태를통해마음의치유를받는다.말미에서결국규태와연결되지만,그사이의매개체로사람들에게버림받은고양이가등장한다.
「구두」나표제작인「고요한이웃」에서도마찬가지이다.「구두」의주인공은혼혈여성인데,아버지는어릴때호주로가서돌아오지않았다.그러다가필리핀인과인도인이대부분인공장에일을하지만다시공장장의성폭력에시달리다자신을유일하게도와준필리핀노동자인‘미구엘’과함께공장을나와동거를한다.그런데미구엘은‘N’이라는여장가수로생계를잇고‘나’는이국적인용모를이용해학원영어강사를하지만허위경력을빌미삼은학원장에게다시성폭력을일상적으로당한다.
「고요한이웃」에서는남편의폭력적인일상이이야기의배면에깔려있다.그는‘고니’에게폭력의깊은흔적을남겼다.그러던어느날자신과처지가비슷한옆집여자가찾아온다.‘고니’는그여자와남편이부재한집에서이야기를나누고음식을함께먹으며자가치유를하는데,집에서는자꾸이상한냄새가나고파리가꾄다.

폭력적인세계에맞서는약자들

양혜영의소설은대체적으로우울하고그로테스크하기까지한데아마도일상이된폭력에대한작가의내면상태를반영하는것은아닐까싶다.하지만무력하기만한것은아니다.「오버더레인보우」에서‘나’는‘리’의아동성폭력에맞서폭력으로응징을하고유일한자신의세계인집을어린아이와함께뛰쳐나와버린다.「구두」에서는더적극적이다.학원장의노골적이고상습적인성폭력에여장가수‘미구엘’을통해알게된‘킬힐’로자신의여성을조롱하고착취했던원장을가격함으로써앙갚음을한다.

나는그에게묻는다.“멘스야?”원장은아무대답이없다.괜찮다.대답을기대한건아니었다.까치발을하고나머지구두한짝을머리위로들어올렸다.더,더,더…하늘에닿을듯올라갔던
구두가성급하게떨어진다.하늘가득번져있던노을이빨갛게물든다.그선연한빛을향해다시한번구두를들어던진다.(134)

원장이생리중인데도“멘스야?피냄새가나는데….”하면서자신을폭행했던어떤때를되돌려주는장면이다.원장의이마에있는점을킬힐의뒷굽으로찍으면서원장에게복수하는것이다.원장은‘나’의동거인인여장가수‘N’즉‘미구엘’에게까지손을뻗쳐미구엘이떠나게까지한인물이다.
한편「고요한이웃」에서는남편은계속부재중이다.‘고니’와싸우고화해를미처못했는데,남편에게서퇴근시간이되면전화만올뿐끝내귀가하지않는다.아니남편이곧돌아온다는암시만가득할뿐남편은오지않고그동안‘고니’는옆집여자의폭력의흔적을감싸준다.그런데집에서자꾸이상한냄새가난다.남편은어디에있는것일까?

그러나죽지않는다

양혜영의소설에등장하는인물들이처한상황은매우복합적이다.피해자이면서가해자인경우도있고,가해가가해를연이어불러들이며중첩을이루는상황도있다.또는「랩의제왕」에서처럼폭력이또다른폭력을불러폭력의아수라장으로변한경우도있다.「물집」에서도마찬가지이다.주인공은태국여성‘미오’를착취하고도망치다시피해서귀국을했지만돌아온마을은철거직전이다.돌아갈데가사라져버린것이다.여기에수해가덮쳐잠시노숙자처럼기거하던곳도물에잠겨버린다.
양혜영의소설은어떤출구도탐색하지않는것처럼보인다.폭력에폭력으로맞대응하는파괴적인광경이펼쳐지고,집을나와거리를헤매거나,철거와자연재해에휩싸여있다.「물집」의다음장면은그것을상징적으로묘사하고있다.

남자는이마에흐르는땀을훔치고앞을바라보았다.지붕이사라진노인의집이보였다.노인의집은제대로저항도못한채물속에잠겼다.그기세에소용돌이가더크고깊어졌다.버킷안에제대로들어가지못한아이스박스가심하게흔들리며노인의집이있던쪽으로향했다.남자는서둘러등에서배낭을벗었다.배낭속에있는노인의봉투가떠올랐지만망설이지않고배낭을힘껏던졌다.남자의모든것이담긴배낭이잠시물위에서맴돌다이내사라졌다.남자는조금가벼워진아이스박스밖으로팔을내밀어물살을헤쳤다.흙탕물이얼굴을덮쳤다.버킷안으로들어가기위해남자는온몸을흔들며앞으로향했다.발바닥에새로생긴물집이터져피가흐르는게느껴졌다.열번째물집이었다.(215)

‘물집’은계속생긴다.“발바닥에새로생긴물집”이란무엇을가리킬까.그것은혹걸어온길자체가상처투성이였다는것은아닐까.‘길=상처’인위에서아무리둘러봐도“저항”은보이지않는다.
이작품집에서유일하게긍정적인모습을보이는존재는「틈」의주인공이다.‘나’는더강해지기를염원하며자신의또다른상처이기도한‘규태’를받아들인다.하지만이마저도“틈”에지나지않으며고양이의길을통해얻은은유이다.그것을통해서가까스로존재증명을하고있는셈인데,이게양혜영의솔직담백한장점이기도하다.소설은세계의끝을말하는장르가아니다.어쩌면주인공들의일차원적인대응자체가살아있음을표현하고있는지도모른다.
해설을쓴이정현은이렇게말하고있다.

지금-여기의문학텍스트들은대개어두운세계를응시한다.텍스트의암울함은독자들에게전이(轉移)된다.그래서누군가는암울한현실을다룬암울한텍스트들을의식적으로거부하기도한다.그런사람들에게는암담한현실을반복응시하는글을쓰는작가들이불가해한존재일지도모른다.양혜영의소설에서소외받고가난한자들은끊임없이폭력과모멸을감당한다.희망이라는출구는굳게닫혀있다.그러나큐브같은세계에서도그들은삶을저주하거나자해하지않는다.요컨대그들은죽지않는다.현실도그와비슷하다.소설속에묘사된폭력적인풍경들은결코낯설지않다.현실은아마도소설보다더한지옥일지도모른다.그럼에도우리는살아가고,희망을포기하지않는다.(「잔혹한세계와환대의불가능성」)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