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끝에서 사라지다 (윤동수 장편소설)

길 끝에서 사라지다 (윤동수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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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유신독재는 어떻게 인간성을 말살했나?

한 청년이 사라졌다. 그는 유신독재 정권에 저항하자는 ‘궐기문’을 전국의 대학에 돌리고 좁혀 오는 수사망에 결국 자수를 택했지만, 중앙정보부는 그 청년에게 학생운동 내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는 프락치 활동을 강요한다. 그는 한사코 그것을 거부했으나 정보기관의 압박은 점점 더 가혹해진다. 도리어 ‘학원민주화’ 투쟁을 기획하며 시대적 상황과 맞선다. 하지만 고문을 받아 불구가 된 친구와는 다르게 고문당하지 않고 나온 전력을 앞세운 정보기관의 프락치 활동 강요는 점점 심해지기만 한다. 결국 다시 중앙정보부에 잡혀가지만 탈출해 린 것이다. 그리고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
이 소설은 유신독재 정권이 한 인간의 인간성을 어떻게 말살했는지 ‘하진무’라는 인물을 통해서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동시에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만들어낸 비굴한 지식인의 자화상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연인인 오인희가 생존 인물들의 기억을 통해 하진무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인터뷰 및 회고담을 중간중간에 삽입한 형식도 유신독재 시절이 단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하진무를 수사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공포감을 통해 어떻게 인간의 정신이 무너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저자

윤동수

1990년『사상문예운동』겨울호에중편「새벽길」을발표하며소설가의길로들어섰다.광주5월항쟁주역인윤상원의이야기『윤상원평전』(오월의입맞춤)과자동차하청공장노동자들의억울한죽음을기록한『당신은나의영혼』을썼고,소설집『바람이우리를데려다주리』를출간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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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깍두기머리가육모방망이로책상을내리친다.
“여기서똥싸지르고싶어?”
심장이멎는듯공포가몰아친다.나는두손을사타구니에숨긴다.다리가떨린다.두손으로허벅지를붙들고싶건만손이움직이지않는다.고개를숙이고가련한내다리를눈으로나마위로해준다.그러나깍두기머리와정면으로마주한내얼굴은돌처럼굳어버린다.지하실걸상에앉아똥을쌀수는없다.그래서는안된다.기죽지말자.저깍두기머리도인간이다.나처럼피와살을가진인간이다.겁먹지말자.나는스스로에게최면을건다.여기서똥을싸지른다면나는존엄한인간이아니다.깍두기머리에게지면나는인간이아니다.그럼에도자신도모르게오줌을지리고똥을싸지를까봐두렵다.깍두기머리가반들반들한육모방망이로내가쓴자술서를북북긁는다.그리고내머리에손을얹는다.오싹하다.그가내머리를어루만지며느물거린다.(139~140)

작가는강인한인물을택하지않고,정의감은넘치지만소심하고다감한인물을통해역설적으로유신독재체제가얼마나반인간적인시대였는지그려낸다.‘작가의말’에서밝혔듯이이소설에등장하는인물은유신독재시절에실제있었던여러사건과인물들을종합해만들어진존재다.저항과비겁함그리고소시민적나약함이뒤섞인하진무는,그러니까그시대의전형적인캐릭터로작가가창조해낸인물이다.하지만마치이소설의시간적배경인1973년에서1974년당시의실존인물처럼느껴지는것은,대구라는구체적인공간과예를들면DNA이중나선처럼엮여있기때문이다.

폭력앞에서나약한존재들

유신독재에저항했던하진무와그의주변인물에비해대학사회의교수들은심하게일그러진존재들이다.그들은어떻게든현실에안주하거나도리어주어진현실에서자신의이해관계에충실하려고애쓴다.그런그들을작가는비꼬듯이희화화한다.

교무과장이복창했다.그는‘유신과업완수하자’리본을손으로만지며나섰다.
“지는예,집에서도이리본을안뗀다아입니꺼.밤낮을안가리고교수로서,교무과장으로서유신만이살길임을학생들과대구시민들에게알릴라꼬불철주야애쓰고있심니더.”
거기까지말한교무과장이갑자기두팔을번쩍들고일어났다.
“박정희대통령각하만세!”
그가외치기무섭게,총장,도경국장,도지사,의대학장도재빨리두팔을들고만세삼창을해댔다.
“만세!”
“박정희대통령각하만세!”
“만세!”(198~199)

이또한유신독재가인간성을말살해놓은현장임에틀림없다.결국작가가이소설에서말하고싶은것은인간성말살을유신독재의폭압이어떻게획책했나하는것이다.고문으로하반신마비가된서인석의경우처럼저항하는사람들에게는직접적인물리적폭력을(서인석의경우)가하고,기생하는사람들에게는정신적질환을심어놓은것이다.물리적폭력과정신적질환의가운데에하진무가있는폭인데,하진무는그상황자체에저항하는모양새를취하고있다.이지점이소설을살아움직이게한다.소설에서어느쪽으로든쉽게기울지않게함으로써하진무의고통을극대화시킨것이다.따라서윤동수의장편소설『길끝에서사라지다』는단순하게유신독재에대한고발소설이아니게된다.폭압적상황에서살아꿈틀대는인간성자체에초점을맞추면서우리가잊기쉬운‘인간의길’을탐구하는작품이다.사라진연인하진무를찾아나서는오인희의행보는바로이점을의미한다고볼수있다.

사랑없이는자유도없다

소설의마지막에이르러사라진하진무는결국사라진것이아니라부활이라고부를수있지않을까.물론프락치활동을거부한명목으로경찰에붙들려가는상황을빌렸지만말이다.

깍두기머리가외치는순간하진무는허리춤을붙든사내손목을온힘을다해주먹으로내리쳤고,달렸다.철길을달렸다.기차쇠바퀴구르는소리가어느새등짝에달라붙었다.하진무는기차를등지고달렸다.기차와반대편인철교를향해서달렸다.나는개가아니다,자유로운영혼을가진인간이다!하진무는철길을달리면서가슴이터지도록외쳤다.오인희얼굴이떠올랐다.내가달려간다,오인희기다려라!사랑한다!죽도록사랑한다!쇠바퀴를울리며기차는하진무를덮칠듯맹렬하게달려오고있었다.하진무는멈추지않았다.나를구속하지마!나는안잡힌다!하진무는자유다!하진무는기차에먹히지않으려고미친듯이달렸다.(371)

소설의마지막에서어떤독자들은폭압적인정치적상황에분노를할수도있겠지만작가가말하고자하는것은바로하진무의‘자유에대한의지’이다.그리고그것은우렁찬인간정신의외침이기도하다.
소설전편에등장하는오인희는매우중요한인물임에도불구하고캐릭터가애매하다고볼수있는데,소설의마지막에이르러하진무의연인이상의존재임을눈치챌수있다.중간중간에하진무는오인희와의사랑을통해서좌절하지않기도하지만,자신의‘자유에대한의지’가결국사랑때문임을은연중에내비치고있다.그것을소설의마지막에서폭발시키고있다.즉자유는사랑을위한최대한의헌사임을!다시말해자유는막연하고추상적인것이아니라지금-여기의사랑에지극히충실한바탕위에서구현되는것임을작가는말하고싶었던것이다.
오인희의긴행보는그것을밝혀주는역할로일종의등대같은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