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나팔꽃

$13.00
Description
강병철의 이번 소설집은 중편소설 세 편으로만 구성됐다. 각 작품들은 동시에 역사적 시간을 그 바탕에 두고 있다. 「나팔꽃」은 일제강점기 말기의 상황을 핍진하게 묘사하면서 등장인물들인 학생들의 의협심과 우정, 그리고 사랑을 그리고 있다. 「한머리」는 1960년대가 시간적 배경이다. 한머리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해서 가족사를 펼쳐 가는데, 여성에게 억압적이었던 시대 상황을 힘을 주지 않고 써내려 간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인물들의 성격이 살아 있는 작품이다. 마지막 작품인 「숨소리」는 2000년대가 배경이며, 여기에는 1980년대의 이야기가 잇닿아 있다. 이런 점을 보면 작가는, 요즘은 보기 쉽지 않은 중편소설 연작 형식을 차용해 서사가 있는 장편을 꾀한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부터 2000년대까지 한 편의 소설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강병철의 작가적 의식은 최근의 세태와는 다르게 지난 역사를 향해 뻗어 있으며 이것이 이번 소설집의 가장 큰 강점인 동시에 작가의 다음 작업을 기대하게 한다. (황규관, 시인)
저자

강병철

소설집『비늘눈』『엄마의장롱』『초뻬이는죽었다』성장소설『닭니』『꽃피는부지깽이』『토메이토와포테이토』발간,시집『호모중딩사피엔스』『사랑해요바보몽땅』등과산문집『선생님이먼저때렸는데요』『우리들의일그러진성적표』『작가의객석』등발간,교육산문집『난,너의바람이고싶어』『넌,아름다운나비야』『괜찮다,괜찮다,괜찮다』편집.

목차

나팔꽃/7
한머리/103
숨소리/195

작가의말/254

출판사 서평

일제강점기를살았던소년의삶

강병철의이번소설집의주인공들은소년이거나청소년이다.그래서그런지어떤천진함이세편모두에흐르고있다.소년기특유의천진함으로시대와역사를살아가는탓인지아프고슬픈시간들인데도고통만전경화되지않는다.소용돌이같은시대속에서도소년들은그들만의방식대로싸우고,사랑하고,웃으며살아간다.표제작이기도한「나팔꽃」은일제말기즉일본제국주의가일으킨태평양전쟁시절을사는조선학생의초상들이다.소설의말미는징병으로끌려간용석이탈영한와중에해방을맞는것으로끝나는데,이소설의재미는그이전이야기인일본학생들과의갈등에모아져있다.

석별이전에악수와깊은포옹으로마무리했으니청년다운결기다.별들이밤하늘에그물처럼출렁이는천변에서두개의그림자가부스스등을보였고나머지구경꾼들도몸을털며일어섰다.관전자들끼리도서로어깨를적당히두들기고반대방향으로따로따로술청을찾았다.그리고퇴학생김수복의이름이한동안용주고보에전설처럼남기도했다.용주고보의딱한명뿐인여성인서무과김수미양도눈물을글썽거렸다는소문이얼핏들렸으나,그것뿐.(32)

일본학생이든조선학생이든소년들은민족감정이전의의협심으로현실을본다.일본학생아라기의도발로조선학생들이‘후쿠로다다키’를친후과로정학내지퇴학을당하자양쪽의싸움군도요토미와김수복이‘맞짱’을끝내고헤어지는장면이다.이소설은식민주의가소년들의영혼에어떤그림자를드리우는지보여주기도하지만,궁극적으로조선소년들의눈으로본비참한자기현실이다.싸움꾼김수복도전쟁앞에서는영락없는소년의모습인데,슬프게도김수복은죽고용석은살아탈영을감행한다.탈영한용석이두만강너머의온성땅에도착하자일본이패망해해방이되지만,용석이본것은“소련군탱크부대가그릉그릉오는”장면이다.그래서작가는소설의마지막문장을이렇게끝맺는다.
“완전히끝난것은단한가지도없었다.”

소년의눈으로본1960년대의삶

그렇다면「한머리」는‘불길한해방’이후를다루는가?연작소설이아니니당연히그럴필요는없다.「한머리」는1960년대중반이시간적배경이다.여기서도아홉살소년동희의가족사와동희가사는지역의대소사를중심으로이야기가펼쳐지는데,주인공은소년인동희이다.어떻게보면성장소설에가까운것도같지만동희의눈을빌어어른들의이해할수없는세계를묘사하고있다.때가1960년대중반이니전쟁의그림자가없을리없다.작가는의도적으로1960년대가전쟁의자식이었음을곳곳에서드러낸다.‘원조백모’의경험을통해서말이다.

발디딜틈조차없는시체더미를피해고사리숲철길로올라서니억새풀사이로헤아릴수없는시체가있었다.생강밭고샅을넘었을때거기서도젊은남자의시체몇구가쓰러져있었다.힘있는젊은사람이이판사판도망가니까군인들이뒤쫓아가면서총을쏜것이다.(128)

맥아더장군의인천상륙작전과9·28서울수복이후세상이또한번바뀌었다.그후공씨는마을사람들에게자리개로두들겨맞는대가를치렀으니인과응보이다.특히백부가가장노발대발하여그의아랫도리를번쩍들더니개울에쑤셔박았다.그나마외동딸순임이하나라도낳은게신기한일이지생식능력을잃은것도그때당한멍석말이가이유라고수군수군입방아찧기도했다.(141)

앞인용구절은‘원조백모’가시집오기전경험한노근리학살에대한언급이고뒷부분은전쟁의복판에서있었던좌우갈등이야기이다.작가는소년동희의눈을통해부모세대들이여전히전쟁을앓고있음을보여주고있는것이다.만일작가의의도가여기에있다면「한머리」는「나팔꽃」의후속작이라고부를수도있다.용석이전쟁을치르고살아남아「한머리」에서여러모습으로변신하고있다고할까.
동희세대도그나름대로삶이있었다.그것을상징하는에피소드중압권은정자누나에대한성만이형의짝사랑이야기이다.

성만이가‘풍덩’자맥질하여손에잡힌피라미를검바위로집어던지면성순이와정자가동시에박수치며보조개웃음을까르르피웠다.강아지풀에꿴민물고기꾸러미비늘파편이햇살받아파닥거리는것만으로도충분히행복했다.성만이형은정자의웃음소리가끊어지지않게하기위해검바위물속으로무던히도알몸을담궜다.(149)

하지만정자누나는“살붙이”인재홍이형과정분이났고,소문은마을전체에퍼졌다.재홍이형은강원도원주로도망쳐혼자남은정자누나는재취자리를마다하고자살을하고말았다.
이런저런일들이마치파노라마처럼펼쳐지면서소설은낡은가치들과새로운가치들이충돌하는장면들을,또는암시들을여러곳에매복시켜놓는데이것이또한이소설의읽는재미를더해준다.아무튼「한머리」를통해작가는한시대의초상을박진감있게그려놓았다.시대적의미에미치지못하는한머리사람들의이야기들을통해1960년대중반,전쟁의그림자가조금씩걷혀가면서나타나는모습들을강병철은이야기꾼의눈으로포착하고있다.

성장소설이면서역사소설

그렇다면작가는왜이번소설집에실린세편의중편소설의주인공과화자들을소년으로설정했을까.‘작가의말’에서작가는그동안써온성장소설에“‘착함’의캐릭터가바리게이트되어문장들을가로막지않았나”떠올리게됐다고한다.동시에“일제강점기와6·25전쟁그후산업화시국전후의아리고시린사연들을전면에배치하고싶다”고한점을고려해보면‘착한캐릭터’를벗어나기위해‘착하지않은’시간대를택한듯싶다.‘착한’시공간에서‘착하지않은’캐릭터를창조하려면얼마간위악적이어야하지만,시대적조건이착하지않다면‘착하지않은’캐릭터는너무도자연스럽기때문이다.결과적으로강병철의이번소설집에등장하는착하지않은소년들은역설적으로‘착하지않은’역사적시간을드러내는역할을하고있는것이다.따라서강병철의새소설집『나팔꽃』은성장소설의외피를두른역사소설에가깝다.
그런데역사소설이라고하기에는전체를아우르는공통점이있다.세편공히역사적사건을배경으로해서소년들의변화가강조되기때문이다.이렇게보면이번소설집은성장소설이기도하다.역사소설이든성장소설이든한가지확실한점은이야기의재미남인데,특히나툭하면싸우고또화해하고,그러면서성장하는지극히평범한소년들의입장에작가가섰기때문에그재미는가능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