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전쟁

언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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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언어의 평등이 단순하게 말하고 쓰는 차원에서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며, 이 평등이라는 범주는 언어를 실질적으로 작동시키는 권력관계를 은폐하기도 한다. 외형상 평등과 실질적 불평등 사이의 괴리와 간극은 국가권력과 민중 사이를 더 크게 벌려놓고, 디지털 기술 문명으로 인해 심하게 일그러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을 지경이다. 간단히 말하면 지금은 국가의 언어가 민중의 언어를 유린하고, 상품의 언어가 삶의 언어를 황폐화하며, 기술의 언어가 시의 언어를 타락시키는 차원을 넘어 언어 자체가 상품이 되어 우리의 정신과 내면을 좀먹고 있는 것만 같다. 여기에 공정과 정의의 척도마저 각자도생의 길에 접어듦으로써 개인의 영혼까지 위험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감도 든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언어 전쟁’이라고 부른다.

_‘책을 내며’ 중에서
저자

정형철

과학자유기고가,대안학교‘더불어가는배움터길’교사

목차

책을내며...4

1기술전체주의와언어의타락(정형철)...17
2부족의언어,혐오의언어(박권일)...43
3태초에행정이있었다:시의언어와행정의언어(고영직)...67
4아직없는이름,당사자(엄문희)...87
5누가말하는가,누가결정하는가(김동현)...113
6‘386세대’의정치언어와자가당착(이택광)...133
7방언의상상력(전성태)...151
8‘헐’과‘샘’의출세기(정은균)...169
9속도의언어와시적언어(황규관)...187

출판사 서평

‘언어전쟁’의시대!

이제는뉴스도못믿겠다는말들을서슴없이하게되는시대가됐다.비위가발각되어도예전같으면사과를하고일정정도책임을지는모습이라도보였는데,지금은다른‘말’들을쏟아낸다.그러다보면사후맥락이복잡해지고그복잡함때문에어느새진실은실종되고만다.한편으로는법정으로진실의문제를끌고가분탕질을친다.이런현상이반복되면서우리는진실에대해무감각해지고뒤이어윤리의식까지희미해져버린다.유명인의페이스북계정이기자들의출입처가되기도하며,그들이쏟아내는말은언론에대서특필되기까지한다.언제부터인가익숙해진이런모습은언론에대한불신감을키웠고나아가‘언어’에대한피로감을갖게했다.
이런사회적,문화적현상에때맞춰그현상의이면을파헤쳐보는책이바로『언어전쟁』이다.아홉명의필자들이각자의위치에서바라본언어의타락원인은다른듯보이지만겹치면서다채롭게우리의생각을우리가쓰는언어의세계로인도한다.기술문명의문제로보는시각도있고,자본주의문제로보는시각도있다.국가제도(행정)의문제로보는시각도있다.분명한것은우리가처한현실그자체가언어의타락과전쟁을부추기고있다는사실이다.한편으로는지금의언어현상에역사적문제가도사리고있음도지적한다.

1980년대이후의회주의라는제도는진보와보수라는재현의언어를획득했다.실제로한국에서의회는경제적이해관계에기반을두고,대통령은국민의일반의지를대변하는것으로분리되어있다.권력의행사방식에차이는있지만,과거보나파르트주의적이었던박정희체제의구도를크게벗어나지않은체제작동방식이라고할수있다.의회에서이루어지는이해조정을제왕적대통령제로간섭하는것을‘토착적민주주의’라고불렀던박정희체제의언어가여전히외피만바뀌어서되풀이되고있는셈이다.
-「‘386세대’의정치언어와자가당착」(이택광)

사실언어의변화는우리가구체적으로느끼지못하는사이에우리를찾아온다.그것은정치적,사회적변화가강제하는것이기는하다.그리고변화된언어를우리는무의식적으로사용하면서정치적,사회적강제를수용하기도한다.하지만이런변화는주로표준어에타격을가하지지역의방언은그정도가조금완화된다.그렇다하더라도결국표준어의변화는지역방언을고립시키고폐기하려는욕망을드러내기마련인데,이렇게해서지역어가갖는무궁한잠재성은위험에빠지게된다.

방언의자리도마찬가지이다.방언이얼마만큼보존되어야하는가하는문제는여러종의나무들이공존하는숲을이야기하는것과같다.다양한언어가공존할수있을만큼이면된다.이를언어의생태학이라해도좋을것이다.모국어라는큰숲이서울말일색으로바뀐다면그건소나무만무성한숲이거나아까시나무만무성한숲이기쉽다.그것을두고풍성하고안정된숲이라고말하기는곤란하다.
-「방언의상상력」(전성태)

나쁜언어와좋은언어

지금같은언어현상을넘어서우리가회복해야할것은무엇인가.조금은추상적이기는하지만우리는그문제에대해서(잠정적이기는하지만)어떤답을내놓아야할필요가있다.아무래도문학은언어에대해민감할수밖에없는데,문학평론가고영직과시인황규관은‘시의언어’를꼽고있다.고영직은자신이겪은관료주의의예를들면서구체적인시작품을끌어들인다.고영직은“나쁜언어를바꾸는힘은결국살아있는시의언어라고생각한다.”하지만오늘날시의언어도무력해지고있음을놓치지않고있다.

그러나우리사는세상에서시의힘이랄까,말의힘은갈수록무력(無力)해지는양상을보인다.그자리를대신한것은행정의언어라고확언할수있다.오늘날행정의언어는우리사회에서무력(武力)의힘을발휘한다고보아도지나치지않다.그점을단적으로확인할수있는말이‘수혜자’라는표현이다.한때나도공공기관에서몸을담고일한적이있지만,행정에서는정책대상이되는사람을취급할때‘사람’이라는말대신에‘수혜자’라는말을너무나선호한다.그러나정책대상의‘수요자=수혜자’라는등식은전혀성립되지않는다.
-「태초에행정이있었다」(고영직)

고영직은우리가사용하는언어가달라져야한다고말한다.왜냐하면언어가달라지면생각이달라지고그렇게되면행동이달라진다는것이니까.박권일의“해야할일은언어를바꾸는게아니다.세계를더낫게바꾸는것이다”는결론과상충되는것처럼보이지만결국문제는우리의현실을바꾸는것이며,현실을바꾸는움직임과언어를바꾸는움직임은동시에밀고나갈문제이지다른것이아니다.
황규관은좀더노골적으로우리에게필요한것은기술과자본의언어가아니라시의언어라고말한다.언어라는것은구체적인장소그러니까실질적인생활에지배받는속성을가진다면서현대기술문명의폐단을정형철과동일한문제의식속에서비판한다.황규관은소셜미디어와언론이이미인공지능을통해운영되고있는점을지적하며우리의생각도인공지능에지배받고있는것은아닌지묻는다.만약여기에일말의진실이있다면우리가할일은속도의언어를버리고시적언어를회복해야한다는주장이다.황규관이생각하는‘시적언어’는다음과같은것이다.

‘시적언어’라는것은테크놀로지의꽁무니를따라다니는것을거부하는언어다.일반화되고납작해진언어를벗어던진언어이고,상투적인유행어를신경질적으로배격하는언어이다.그것은정파적입장이나정치이념의언어가아니라구체적인사물을각자의몸에새긴언어이며,그래서시야를뿌옇게가리는미디어의언어를걷어내고삶의심장이펄떡대는소리에귀기울이는언어이다.
-「속도의언어와시적언어」

좋은언어를시의언어로규정하는것이얼마나현실적인신뢰를주는지는알수없으나시의언어가우리에게언어에대한다른상상력을품게하는것은사실이다.지역의방언또한시의언어와가깝다고볼수있는데,국가와자본은이둘을자꾸없애려고한다.
『언어전쟁』은그에맞서자는책이기도하다.

〉〉〉여는글

제아무리이미지와영상의시대라고해도우리에게그것들은언어로번역,이해되기에도리어언어의중요성은부각된다고말할수있다.과거에는언어자체에대해고민하고투쟁하면될일을이제는이미지와영상이생산,수용되는전과정을언어적맥락에서인식해야하기때문이다.예를들면즉각적으로영상이미지로접해지는유튜브도결국수용의최종단계에서는언어로남는다는것을봐도알수있다.유튜브도어쩔수없이언어를기반으로하고있다는점은명확하다.그렇다면앞으로우리에게주어진과제는언어의퇴행과끊임없이긴장하고투쟁하는일일것이다.이제이것은문학만의문제가아니게되었다.혹자들의말처럼이것은시의문제일지도모르지만,그런궁극적인차원의문제는그것대로놔두고일상의차원에서인식하고실천하는문제또한깊이고민해야할것이다.조지오웰의말대로“생각이언어를타락시킨다면언어도생각을타락시킬수있다”는것이다.그런데생각의타락이곧바로현실의타락을촉진하는환경에서우리가살고있다는데문제의심각성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