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보다 먼 곳 (김수열 산문집)

달보다 먼 곳 (김수열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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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는 내 언어를 교과서에서 배웠다. 모르는 언어가 눈에 띄면 표준이 되는 언어만 실려 있는 국어사전에 기댔다. 그러나 어머니는 당신의 언어를 삶에서 체득했다. 바닷물에 절고 바람에 씻겨 오로지 알갱이만 남은 언어로 어머니는 울고 웃고 사랑하고 또 싸웠다. 한때 나는 그런 어머니가 싫었고 미웠다. 부끄러웠다. 문학에 뜻을 두고 제주의 속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어머니의 언어가 귀에 들어왔다.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 언어의 소중함을 알았다. 더불어 내가 배운 언어에는 감정도 느낌도 진정한 분노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언어로는 어머니가 온몸으로 살아온 삶을 제대로 담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새벽별을 보며 밭에 나갔다가 허리 한번 펼 틈도 없이 다시 바당밭으로 나가야 하는 고단한 삶을, 교과서에서 배운 언어로는, 더군다나 표준만을 강요하는 국어사전에 실린 언어로는 도무지 그 깊이와 너비를 헤아릴 수도 담아낼 수도 없었다.

_「본문」 중에서
저자

김수열

제주에서태어나고『실천문학』을통해문단에나왔다.시집으로『어디에선들어떠랴』『신호등쓰러진길위에서』『바람의목례』『생각을훔치다』『빙의』『물에서온편지』『호모마스크스』『꽃진자리』(4·3시선집)등이있고,산문집으로『김수열의책읽기』『섯마파람부는날이면』이있다.제4회오장환문학상과제3회신석정문학상을받았다.

목차

작가의말…4


1부
내문학은거기서시작되었다ㆍ12
내가두고온그때ㆍ18
어느할머니의거룩한생애ㆍ23
돌아갈수없어서그리운것들ㆍ29
멀리있는건언제나그립다ㆍ35
내숨결이바람이며내몸이곧섬이다ㆍ44
언어와역사로읽는제주의삶,제주의문학ㆍ52

2부
바다에스민기억들ㆍ60
추억속의무근성을만나다ㆍ71
무언가아슴하게보이는날들을위하여ㆍ85
섬에서시인으로살아간다는일ㆍ95
심방정공철을말하다ㆍ108
‘제주마당극의회고와전망’을대신하여ㆍ119
더불어곶자왈과함께사는법ㆍ132
‘존재’와‘인식’의경계에서ㆍ148
이내먹먹해져서눈물이그렁그렁해져서ㆍ158
제주를닮은섬,모리셔스를가다ㆍ171
한반도의대척점,콜롬비아를보다ㆍ183
『탐라기행』을기행하다ㆍ195
바다에서길을잃다ㆍ210
양제해를다시생각한다ㆍ226

3부
문학으로재기억되는젊은4·3ㆍ242
4·3이평화라면강정은희망입니다ㆍ264
시를쓰지않으면죽을것같다는어느시인을생각한다ㆍ285

4부
4·3의아픔,시어와시어로잇다ㆍ310
제주작가회의20년을회고하며ㆍ320

출판사 서평

제주의‘아픈진실’과시

김수열시인의세번째산문집『달보다먼곳』은시인개인의내면이라기보다제주의내면에가깝다.몇몇의글에서는개인의과거를돌이보기도하지만,과거에경험했던일자체가제주라는구체적장소에서벌어진일이다보니결국다시제주로오롯이귀환한다.물론아주처음부터어떤신념을가지고고향에머물기로한것은아니다.시인의고백대로“지긋지긋한가난에서벗어나는길은고등학교만마치면섬을벗어나야한다는생각뿐이었”지만“육지에있는대학진학에실패하고고향에있는대학을다니게”된것이다.(「무언가아슴하게보이는날들을위하여」)그런데이‘어쩔수없음’이시인에게다른길을가르쳐준시작점이된다.시인의이야기는이렇다.

술기운이차올랐는데도이상하게그말이잊히지않았다.‘내가제일값싸게대학을다니고있다면그나머지는누가대신내고있는건아닐까?그게혹시이섬사람들은아닐까?’이런생각들이꼬리를물면서호주머니에돈이생길때마다시외버스를타고무작정섬의구석구석을찾아다니게되었다.고등학교때까지시내를벗어날일이별로없었던나로서는내앞의펼쳐진섬의풍광에매료될수밖에없었다.(…)그런데유독어느지점에가면이야기를하다말고입을꾹다물어버리곤했다.알필요없다고손사래치면서먼산바라기만하다가말꼬리를다른데로돌리는것이었다.그지점에4·3이있다는것을아는데는그리오랜시간이걸리지않았다.
-「무언가아슴하게보이는날들을위하여」중

위진술이중요한것은,시인이제주의‘아픈진실’과마주하게되는결정적계기를고해하고있다는점에서그렇다.“어느지점에가면이야기를하다말고입을꾹”다무는촌로를만나지못했다면현기영의「순이삼촌」이그렇게깊이파고들어오지않았을가능성도있다.제주의‘아픈진실’을알고있는이름없는촌로들과의만남이시인의내면에새로운토양이되었다는점은어떤공부나사실의습득에앞서는중요한사건이다.T.S.엘리엇이“인간은너무많은진실은감당하지못한다”고했다지만,어떤진실이되었건그것과떨어져서는성립하지못하는것이바로‘시’이기도하다.따라서마당극을통해제주지역에서문화운동을하던김수열이결국시를쓰게된것은김수열개인의의지일수도있지만제주의‘아픈진실’이강제한것일지도모른다.
이번산문집에실린글들중에서그증거는차고넘친다.어떻게보면이번산문집에서시인은왜시를쓸수밖에없는지스스로실토하고있는것만같다.시인이자신의시를곳곳에인용하고있는것도,사실은자신의시를쓰게한외부의힘이무엇인지밝히고있는셈이다.그것은자신의고향아름다운제주,그것도70여년전에있었던4·3이었던것이다.

지금제주도는세계적으로주목을받고있는관광지이다.그러나그속살을들여다보면거기에는아직도학살의흔적이고스란히암매장되어있다.성산일출봉이그렇고표선백사장이그렇고모슬포송악산이그렇고서귀포정방폭포가그렇다.무엇보다제주의바다관문인제주항도어김없이무고한양민을수장한학살터였다는것이다.
-「섬에서시인으로살아간다는일」중

이절규에가까운발언이후에시인은“그러나아들아/나보다훨씬굽어버린내아들아/젊은아비그리는눈물일랑그만접어라/네가슴억누르는천만근돌덩이/이제그만내려놓아라”(「물에서온편지」)는자신의시를인용한다.

제주시인이말하는제주의내면과속살

하지만김수열의4·3은현재진행형이다.국가의사과와‘제주4·3특별법’이만들어지고또미비한부분이개정되었지만,그것으로4·3이종료된것은아니다.또서귀포시강정마을에들어선해군기지는4·3의기억을되살아나게하는악몽이다.그점을시인은명확히인식하고있거니와특별히‘작가의말’에서“그때그글을쓸수밖에없을때의제주가이글을쓰고있는지금의제주와하나도달라지지않았다는것이고오히려더망가진채황량해지고있다는생각을지울수없었기때문이다.강정해군기지가그렇고,성산제2공항이그렇고,대정송악산개발이그렇고,선흘동물테마파크가그렇고…”라고언급한것도그렇지만「섬에서시인으로살아간다는일」,「4·3이평화라면강정은희망입니다」,「시를쓰지않으면죽을것같다는어느시인을생각한다」에서는집중적으로강정을말하고있다.4·3이특별법제정으로종료된게아니듯이,강정마을에해군기지가‘이미’들어섰다고강정의희망이끝난것도아니다.
한편시인이한때몸담았던제주마당극운동에대한소중한증언을남겨놓음으로써제주지역의문화운동에대한기록자의역할도마다하지않고있다.특히「‘제주마당극의회고와전망망’을대신하여」같은글이그에해당된다.또먼저가버린친구정공철에대한「심방정공철을말하다」나최정완을기리며쓴「멀리있는건언제나그립다」는함께읽어볼만한글이다.

그때,그렇게해서선술집‘이산저산’에서만났지.기억나는건정말오랜만에그자리에서광주강희를본거야.너무반갑더라고.아프다는소식만듣고있었는데그렇게얼굴을보게될줄은정말몰랐지.강희는술잔을받아들고한쪽구석에앉아,야윈얼굴로가만엿듣고만있었지.내기억으론어떻게하면민족극한마당을생산적으로운영할수있을까를안주삼아얘기하지않았나싶다.
-「멀리있는것언제나그립다」중

이밖에도김수열시인이발언한제주에대한이야기는제주를입체적으로이해하는데큰도움을준다.시인이술회하는어릴적기억을통해제주사람들의삶과풍속도접할수있지만,곶자왈을훼손하려는움직임에맞선지역민들의투쟁이야기라든가,시바료타로의『탐라기행』,장한철의『표해록』,이강희의『탐라직방설』등의독서를통해제주의뿌리를더듬어가는노력도보여준다.
이책의제목은시인이쓴시의제목이기도한데,이시에서시인은‘재일조선일’시인김시종이그동안조국과맺어온관계를네편의에피소드를통해전해주면서,김시종시인에게고향인제주는‘달보다먼곳’이었다고시인은말하고있다.4·3항쟁당시한라산무장대의연락책으로참여했다가죽임을피해일본으로밀항한김시종시인이“돌아가신지40년”된양친의무덤에서“송아지처럼”울어야만했던일을담담히묘사하고있다.어쩌면김시종시인의경우를들어김수열시인에게4·3은아직‘달보다먼곳’일지도모르며,시인자신이바라는평화와희망이가득한시간도그만큼멀다는무의식을내비치고있는지도모른다.
하지만김수열시인에게는고향제주라는존재의근거혹은토대가있다.비록‘아픈진실’은식지않았고,그‘아픈진실’과‘평화와희망’사이의거리가달보다멀수도있지만말이다.모어(母語)를아직가지고있다는것은근대사에비추면아픈일이기도하지만지복이기도한게틀림없다.

문학에뜻을두고제주의속살에관심을갖기시작하면서조금씩어머니의언어가귀에들어왔다.어머니의삶을이해하기시작하면서그언어의소중함을알았다.더불어내가배운언어에는감정도느낌도진정한분노도없다는것을알았다.그언어로는어머니가온몸으로살아온삶을제대로담을수없다는것도알게되었다.
-「섬에서시인으로살아간다는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