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조 (홍명진 장편소설)

미스 조 (홍명진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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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소설을 쓰면서 여러 번 손을 놓았었다. 제대로 된 글이 될까 망설이는 동안 조의 행방을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조는 그 어디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페이스북 같은 에스앤에스(SNS) 계정도 보이지 않았다. 한 사람만 알면 열 사람과 연결되고, 열 사람과 연결되면 백 사람과 연결되고, 마침내 떠오르고 만다는 이 세계 어디에서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조는 조 딱 한 사람뿐이었다. 나는 조의 가족이나 친구를 만난 적도 없고 조 역시 나에 관한 한 그러했다. 시간이 갈수록 정말 조라는 인물이 실재했던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다시 조를 복원해내는 일에 열중할 수 있었던 건 더 이상은 조를 찾을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후였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조는 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조의 신분증을 본 일도 없고, 조가 본래 성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말이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조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내가 만났던 수많은 ‘미스 조’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부디 안녕하기를 기원하며!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

홍명진

2001년전태일문학상을수상하고,2008년『경인일보』신춘문예에당선된후본격적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숨비소리』『우주비행』『타임캡슐1985』『앨리스의소보로빵』,소설집『터틀넥스웨터』『당신의비밀』,산문집『엄마가먹었던음식을내가먹네』,공저『세븐틴세븐틴』『조용한식탁』『벌레들』『콤플렉스의밀도』등이있다.사계절문학상,백신애문학상,우현예술상,김용익소설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서울의끝…7
또다른세상…38
개같은날들…69
구름동의밤…128
파국…186
세상에없는시간…237

작가의말…268

출판사 서평

있어도없는존재에관한이야기

홍명진소설가의새장편소설『미스조』는삶의격랑속에서방향을잃어버린청춘에대한위로의메시지이다.작가스스로‘작가의말’에서밝혔듯이이소설의주인공‘미스조’는작가의경험속에서살아숨쉬는존재이지만,작가자신이“만난사람중에미스조”가있었다는사실을넘어보편적인캐릭터로거듭나게한것이다.“미스조”와“오군”같은인물은작가가살아온지난시절에는그렇게낯선유형이아니다.가난과가정폭력,그리고도시로의이산은차라리역사적의미마저갖는다.여기에“미스조”의오빠는‘군의문사’라는사건으로희생된존재다.

하지만문경은오빠가왜그런일을벌였는지,그동기가무엇인지알지못했다.그건그녀의부모도마찬가지였다.문경은화장터에서보았던몇몇군인들을떠올렸다.그들은입을꾹다문채한곳에부동자세로서있었다.그들중의누군가가엄마에게다가와말했다.조일병은생래적으로성격에결함이있는군인이었고그로인해원만한군생활을해내지못했다고.조일병은선임들에게자주기합을받거나상관에게불려갔다고했다.사건이일어나기몇달전에는근무지를이탈해탈영을기도한사실도있었다고했다.(31)

문경이아르바이트중만나서동거생활을하는“오군”은공장노동자이며문경은가짜족보를파는일을하면서생계를이어가고있으니,이소설은80년대에바치는비가일수도있다.하지만80년대하면떠오르는영웅적투쟁과정치적신념을통과하지않은밑바닥존재를불러낸점에서도리어현재성을획득한다.왜냐면시대만다르지“미스조”와“오군”같은존재는오늘날에도즐비하기때문이다.다만이둘같은존재는언제나사회로부터배제되며,있어도없는존재로취급받는다.그렇다고해서작가가이런사회적현실에분개하거나작중인물들이대자적존재로낳아가는상투성을보여주지않는다.이들은비틀거리면서도자기짐을메고말없이살아가는데,이소설에나오는존재들거개가그렇다.
그렇다고해서‘잘살고’있다고는말하지않는다.그사실또한작가는어떤감상적눈길도주지않은채담담히그려내고있다.이점이이소설의가장미더운점이다.주인공과주인공주변의인물들은싸우거나미워하고,또때로는자잘한도움을주고받으면서살지만거기에서희망을말하거나,아슬아슬하지만그렇다고해서비관에만젖는것도아니다.
이는문경이다니는한영통상이가짜족보로사기를치는곳임에도불구하고문경이그곳을쉬벗어나지못하는것에서도여실히나타난다.문경은한달만한달만하면서도어쩔수없이호구지책을택하는데,그것은양심에앞서는생존문제가걸려있기때문이다.결국“오군”이문경옆을떠나는것도“오군”자신의흔들리는삶을지키기위한불가피한방편이기때문이다.이미“오군”의삶은가정폭력과힘겨운공장노동이라는거미줄에걸려있다.상대적으로“오군”의삶은문경의눈에비친대상으로그려지지만“오군”또한문경과크게다르지않은삶을사는존재인것이다.

“구름동으로돌아가고싶니?”
침묵을밀어내며그가물었다.
입속에말이고이지않아문경은대답할수없었다.
“네가원한다면가고싶은대로가.”
그는늘그런식이었다.자기상처를내보이는대신원하지도않는말을내뱉었다.간절히원하는걸부정적으로말하는건그가선택의기로에놓였을때대처하는방식이었다.하지만지금은뭔가를선택해야할시간이아니었다.그녀야말로오군에게되묻고싶었다.
“자기야말로어디로가고싶은데?”
그는대답하지않았다.(139~140)

결국“오군”은문경곁을떠나지만그의떠남은역설적으로문경이한영통상의일을그만두는결정적계기로작용한다.떠난“오군”을문경이기다리는것은사실이지만,그것은현실적으로일어나는자연스러운반응이다.“오군”이떠나는과정과문경과함께일하는“미스백”이돌연일을그만두고사라지는것은거의동시에일어나는사태인데,작가는둘의떠남을문경에게작용하는어떤계기로배치해놓은듯하다.하지만둘의떠남은문경이원하거나문경때문에벌어진일은아니다.“오군”은생활속동행인이라면“미스백”은노동현장의동료라는사실인데,그둘의떠남은문경에게실존적결단을촉구하는외부적요인임을암시한다.

우리는지금어디로가야하는걸까요?

하지만문경과“오군”사이,문경과“미스백”사이가아름다웠던것은아니다.“오군”과동거하는사이라지만,“오군”은문경이의지하고살아가기에는불안하기만한존재였다.마찬가지로“미스백”은가짜족보를파는일에능수능란하게임하지만결국“미스백”에게도그일이살아가면서피할수없는선택이었음이나중에드러난다.그렇다고해서문경이두사람에게어떤연민이나인간적동질감을갖고있는것은아니다.문경의삶에서두사람또한불가피하게인연을맺을수밖에없는존재들이었다.문경이“오군”을끝까지기다리는것은,잠시나마함께‘길’을모색할수있는상대였기때문일것이다.“오군”이같은공장에다니는“이재규”와싸우고병원에서처치를받은다음에나눈대화와그상황은그것을압축적으로보여준다.

우리는지금어디로가야하는걸까요?
문경은아무나붙들고물어보고싶었다.그들이사는시절들과아직오지않은미래와잃어버린것들과기억해야할것들에대해서.정작그들이알아야할것들은두사람만모르고세상사람들은다알고있을것같았다.(141)

떠난“오군”이영영문경과인연을끊은것은아니었다.“오군”은“오군”나름대로‘길’을찾고있었던것이다.다만둘이함께갈수있는길이부재하다는사실을문경이쉬받아들이지않았을뿐이다.소설이주인공의깨달음을시적으로제출하는것이아니라그여정을낱낱이보여주는것이라면이런문경의지지부진한상태는도리어리얼리틱하다.마지막으로문경에게온“오군”의편지에감정이배제된것은이둘의삶자체가감상적으로되돌아볼수없는것이기때문일것이다.

편지의내용은문경의예상을크게빗나가지않았다.
‘미안하다’
잘있냐는인사도없이불쑥미안하다는말로편지는시작되었다.
치악산에서며칠을보내고돌아가려했는데,움막에서함께지낼수있는산지기를만나서조금더있어보겠다는내용이짧게적혀있었다.감상적인소회따윈배제된내용이었다.언제쯤돌아온다는말도,기다리라는말도없었다.미안하다는말이편지의중간에,마지막에한번더적혀있었다.문경은답신을할수없는편지를어떻게받아들여야할지난감했다.(261)

문경이난감한것은자신의삶에아무런‘길’을제시해주지않는냉정한현실때문이다.설령“오군”과의생활이기억에남아있을지모르지만,그것은물증도없이문경자신에게상처처럼남아있는시간일뿐이다.작가는이이상의무엇을제시하지않은채소설을맺는다.단지그런시간에동참하고있다는사실만밝히는것같다.“내가만났던수많은‘미스조’들에게이글을바친다”고하지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