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시간들 (김주태 시집)

사라지는 시간들 (김주태 시집)

$10.00
Description
긍정과 해학의 시학
김주태 시인의 시에는 근대문명에 의해 사라져가는 존재들에 대한 곡진한 서정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감상에 빠져 있지도 않다. 시인은 자신이 살아왔던 자리, 즉 존재의 자리가 소멸하는 현실을 해학을 통하여 보여준다. 이는 마지막 남은 존재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있는 형국과 비슷하다. 그 옷자락을 노래함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더 오래 붙드는 효과를 주고 있다. 그러는 동안 독자들로 하여금 떠나온/버려진 존재의 자리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예를 들면, 시집의 맨 앞에 실린 「상여가 간다」는 농촌 마을의 한 죽음에 대한 시인데, 시의 화자는 그 광경을 이렇게 노래한다.

모닥불 주위에 모인 사람들
수박 금 좋다고 히히덕
우물우물 문어를 씹는다
오래 잊었던 맛 씹고 또 씹는다
내년엔 수박 금이 어떨런고
해거리해야지
하느님도 해마다 복을 주시는 게 아닌 거라
솔가지 진물이 다 빠지도록
오지게 우네
상주가 저렇게 울어야지
상두꾼이 모이고
상여가 간다
집을 한 바퀴 휘돌아
거칠 것 없이 뒤돌아볼 것 없이
출렁출렁 잘도 간다

_「상여가 간다」 부분

죽음이라는 슬픔을 해학적으로 그림으로써 농촌 현실의 리얼리티를 단단히 움켜쥐고 있는 시인의 역량이 밝게 드러난다. 죽음이 준 슬픔을 “오지게 우네/ 상주가 저렇게 울어야지”라고 받아주는 마음은 그런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시인 자신의 시간에 대한 긍정 때문일 것이다. 이 점은 또 한 편의 가작인 「상여가 간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는 과거의 시간이 현재를 아직도 “버팅기고” 있다는 통찰을 통해 우뚝하다.

감나무 돌아 나올 때까지
뒤따라오던 지게 작대기
학교 늦는다고 다그치던 지게 작대기
중간고사 성적이 떨어져 춤추던 지게 작대기
나무 한 짐 지고 능선 넘다 쓰러지면
일으켜 세워주던 지게 작대기
책 몇 권 이불 하나 지고 자취방 골목 오르던 지게 작대기
객지 떠돌다 마당에 들어서니
자꾸만 기울어져가는 담벼락을
꼿꼿이 버팅기고 있네

_「지게 작대기」 부분
저자

김주태

경북봉화출생.2000년에『작가정신』과2006년에『시와사상』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시인의말ㆍ5

제1부
상여가간다·10
사라지는시간들·12
뒤집어진봄·13
곤줄박이·15
객토·17
허수아비·19
노갑씨가을이간다·20
혹시나하고산다·22
여름밤·23
참한의원·24
장날·25
가을비·26
참나무골·27
부조·28
조용한아침·29
지게작대기·31
고드름·33
가을비오는밤·34
매운가계(家計)·35

제2부
간이역·38
갈대·39
장릉고모·40
화해·41
밤일·43
팔씨름·45
고마운일·46
빚·48
사천원·49
참나무를베다·50
욕·51
파도·52
두부하는날·53
백년의자·55
이별·57
힘·59
아버지·61
즐거운이승·63
길우형·64
오늘의기도·65

제3부
출구·68
간간이벌어근근이살아간다·69
고비·71
바퀴·72
천천히·73
바닥을차고오르는셔틀콕·75
밀려나는것들·77
빨간공중전화기가있는골목·79
원달러·81
비정규직·83
진눈깨비·85
소각완료·86
압축·88
숟가락으로두루치기를먹다·90
순대골목·91
날렵한모기·92
운명·93

발문_‘흙’이키운능청과해학의리얼리즘·95

출판사 서평

서사가배어있는서정시

이시집의또하나의특징은빼어난서정적시선을들수있을것이다.김주태시인은짧은서정시에능숙한시인이다.군말이나허언없이대상의특징을순간적으로잡아채는능력이뛰어나다는것이다.이또한어릴때부터몸에각인된자연의감각이없었다면불가능했을것이다.이러한자연서정시는자칫하면정서의이완으로빠질수있는데시인은섣부른감정을내세우지않고대상의현존을부각시키거나서사를새겨넣음으로써그함정을피해가고있다.

어두운밤
가을비내리는데
마당에
감하나떨어진다

툭-

길다
끈을놓는
소리

안방에서
잠이든할머니가
끙돌아누우면
들리던소리

_「가을비오는밤」부분


시집가기전날밤
맏누이가
갓풀먹인
이불홑청에
얼굴을묻고
흐느끼는소리

_「갈대」전문

이런빼어난서정탓에김주태시인의첫시집인『사라지는시간들』은암울한현실속에서도밝게웃고있는것같다.해학과서정은이시집의가장큰장점이자특질이지만,중요한것은그것들이시인자신의울퉁불퉁한여정을통해형성된것같다는점이다.다시말하면목적의식적으로또는전략적으로취하고있는포즈가아니라는것이다.이또한이시집에서세심히읽어발굴해낼사안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