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밤이 온다

오늘은 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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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상처의 힘으로 시를 쓰다
우혁의 시인의 시에서는 도시 변두리의 서정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서정은 상처에서 시작된 듯하다. 하지만 우혁 시인은 그 상처를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그 상처에 굴복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언어로 감싸고 포개서 시의 원천으로 삼는 듯하다. 우혁의 시에서 다소간 어른거리는 모호함이 있다면 그런 시적 태도 때문일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모호함이 우혁의 시를 풍요롭게 하고 단단하게 한다. 시가 어쨌든 언어 예술이라면 시의 언어를 일상의 감각으로는 느끼기 힘들다.
저자

우혁

1970년서울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인도어과졸업.
2002년『미네르바』로등단.

목차

시인의말ㆍ5

제1부오늘은밤이온다
별이떨어진다·10
비린내·12
두터운자물쇠·13
누군가지하실에내려갔다·14
몸밖-몸밖의모든것은푸르다·16
무제(霧弟)·17
구멍을위한속쓰림·19
푸른밥상·20
맨앞자리·23
잇자국·25
뜨거운것·28
안녕,용문객잔·30
물속의칼·34
발바닥·35
문신·37
오늘은밤이온다·38
不在의혀·41
바람-몸밖의모든것은푸르다·43

제2부개가있던초원
튀김집여자·46
엄마의술집,그집의술국·48
Blowup·49
등굽은사내-몸밖의모든것은푸르다·50
봄에,차가다니는산길·52
감나무집사내·54
다리위의사람들·55
오늘저녁·57
아는골목·59
더럽고탁한술잔·60
겨드랑이·64
메콩호텔·67
개가있던초원·70
아무르,걸음·72
가시·74
물속의길·77
눈을보다·80
고통·81

제3부불길한광선과기이한날갯짓
불온한몸·84
화석을만지는밤·86
그림자의변명·87
불길한광선과기이한날갯짓·89
저녁의일부·91
가르기·93
그길을·95
구멍날·97
모두를위한침묵·99
자국·100
목구멍·102
바지를추켜입다-일식·104
때·105
버릇·107
치흔설·108
꼬리가묶인붕어·112
늦은흔적·114
별빛·116

발문
심연으로통하는길/(이성혁,문학평론가)
·119

출판사 서평

집은낡았습니다.뼈없는집은가끔흔들거리다가충치를앓기도합니다.얼마전에식당을접으신어머니가누워계시고구석구석엔남은식재들이비린내를풍깁니다.햇볕맞은왼쪽얼굴은아,해보는입과는달리우합니다.그러다보니발음은이비슷하게나옵니다.내가누워있고비린내가집에가득합니다.
_「비린내」부분

집은낡았고거기다가뼈가없어“가끔흔들거리다가충치를앓기도”한다.그리고“비린내를”풍긴다.“식당을접으신어머니가누워계시”는일도마치‘낡은집’때문인것처럼보이기도한다.이렇게읽으면우혁의슬픔은숙명으로도받아들여진다.하지만시의화자는부단히말을하려고노력한다.“아”와“우”,“이”는‘낡은집’에서벗어나려는의지라기보다는그것을견디려는몸부림이다.또는슬픔을안에새겨넣으려는독특한투쟁이기도하다.그래서우혁의시는멜랑꼴리에머물지않고다른사물들/존재들과공존하려한다.

그건그렇고나는왜그렇게집에들어가려애썼는지몰라,아무것도들일것도내갈것도없는집을말야,그두터운자물쇠를겨우따고나면,이봐네가기억나는거야,그동안꽤오랜시간을나도없는빈집에서아무할일도없이있어줬잖아,딸각하고거실의스위치를올리면,기억은정전기처럼내몸을밝히곤하지,잠덜깬눈으로웃어주는,하지만내게는아직도짜릿하기만한너의얼굴이이빈집불꺼진창문위로비치곤하겠지,온몸으로불켜는기억들,안녕
_「두터운자물쇠」부분

“아무것도들일것도내갈것도없는집”에애써들어가려는이유를시의화자자신도모른다.하지만그집에도“딸깍”하며끝내켜지고마는“기억”이있다.비록그“기억은정전기처럼내몸을밝히”다가사라지겠지만우혁은그“정전기”같은기억의힘을믿는다.그런데그“정전기”는‘상처’의다른이름이기도하다.“문을열때마다늘정전기때문에고생”한삶이었던것이다.그기억/슬픔의힘을믿기에시인은이렇게말할수있다.“길이아니었다고말하지말라제맘을열고나면그때부터는몸으로길을만들어쓰는것이다”.(「몸밖-몸밖의모든것은푸르다」)우혁이정직한것은,“몸으로길을만들어쓰는것”이라고하면서도“잠시내가나임을잊고살때가도래하곤한다”고고백할줄알기때문이다.(이상「몸밖-몸밖의모든것은푸르다」)
여기서눈여겨봐야할것은시의화자가길을만들어서그것을‘쓰는것’이라고말하는지점이다.“정전기”같은기억/슬픔이자신에게시를쓰게한다는증언으로들리는것은이때문이다.실제로「문신」이라는작품에서는다음과같이말하기도한다.

손톱끝을따라따닥소리를내며
잠시빛나던것들
그것이정전기라는이름을
갖고있었다는걸알게된건
나중의일
내살위에쓰인시가
상처라는이름이있다는것을
안것도나중의일
_「문신」부분

칼은빛나고있다

시를쓰고나서벌어진일은아니겠지만우혁의이‘자기돌봄’은,앞에서말했듯이,다른존재들과의관계를사고하게한다.인식의확장이라고나해야할까.「튀김집여자」,「등굽은사내」,「감나무집사내」,「등굽은사람들」같은작품들이그것의결과아닐까.특히「등굽은사내」의부제가「몸밖」과같은부제인‘몸밖의모든것은푸르다’인점을유념할필요가있다.이작품에서“등굽은사내”는“푸른달빛속을비틀대며/달려가”면서“허공에깊은우물을”파는존재이다.그래서“겨우푸르게빛나는/한모금물”을얻는존재이다.“겨우”나“한모금”등의시어를읽으면“등굽은사내”는비루해보이지만“깊은”“푸르게빛나는”에주목하면“등굽은사내”를시인이얼마나긍정적인존재로그리고있는지드러난다.우혁의시에는이런우회로가곳곳에숨어있다.시인은그것을“소로(小路)”(「몸밖-몸밖의모든것은푸르다」라고부른다.
우혁시인의세계감(世界感)은기본적으로비극적정조이지만,그비극속에서도길을더듬는생명의예민함이살아있다.보일러수리공을불렀으나그는끝내오지않았는데,왜냐면그는죽었기때문이다.아니죽임을당했기때문이다.

척척한자리를깔고눕는다
사연은어두운방안에가득하다
함부로전기를켤수도없는방
물로못다한사연은불로오르려는가
이젠물속으로길을만들어야하리라
오늘은보일러가터진날
끝도시작도아니었다
다만물속으로길이이어지고있었다
_「물속의길」부분

보일러는고장났는데보일러를수리할사람은죽임을당한아포리아앞에서시의화자가“다만물속으로이어지고있었다”고담담하게말할수있는것은물속에서도칼은빛나고있음을기억하고있기때문이다.시인은칼을갈거나칼을휘두르지않는다.오로지칼을믿을뿐이다.

아직빛나고있길바란다
손을베고떨군칼
기억속에서는헛헛한데
그저슬픔만상처처럼선명하다
시간은날카롭고길어지는손톱처럼
먼곳으로갈수록위험한것
칼을떨구고길을떠났지
다시그잇자국을발견할때까지
나는내길의고고학자가되리라
_「물속의칼」전문

시인이믿는칼은누군가에게얻은것도아니고숙명적으로주어진것도아니다.바로자신의“손을베고떨군칼”이다.그선명한상처를버리고“길을떠났지”만,다시자신에게남은상처/잇자국을발견할때까지자신의길을가는“고고학자가”되겠다고한다.왜하필고고학자일까?우혁시인에게는과거에베인슬픈기억이꿈틀거리고있기때문이다.그런데그형태를아직알지못하기때문이다.그것이무엇인지거슬러올라가는존재가고고학자아닐까.
우혁시인은자신의상처속으로떠나면서그상처의기원을발견하겠다고한다.이만하면우혁의시가더멀리갈것임은확실해보인다.그러나그“먼곳”이위험하다는것도모르지않는다.시인이경계하는“먼곳”은상처를떠난허위의세계일것이다.이미시인은“고고학자가되리라”고함으로써‘먼곳’으로떠났다.그‘먼곳’은다름아닌상처의세계,슬픔/기억의힘이요동치는세계일것이다.어쩌면거기에“깊은우물”이있을지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