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정성숙 소설)

호미 (정성숙 소설)

$14.00
Description
말은 맛있고 이야기들은 징하다. 요새 이런 소설을 쓰는 건 저항일까, 몽니일까? 이의 있다는 소린가? 그런 소리 말자. 농촌이 없어진 동네도 아니고 거기도 엄연히 삶이 있는 곳이다. 예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뒤도 없는 세상인 건 매한가지이고 보면 시세 따져 이야기할 이유가 없다. 대파밭에서 고추밭에서 배추밭에서 재래시장통에서 갑갑한 인생들이 견디고 사는 건 제 삶에 주인이 되고자 하는 몸부림이고,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 덕목들이 빤하다고? 그럴까? 소설은 한 치도 거들먹거리는 바 없이 생짜여서 전형적인 이야기들이 없다. 우리가 왜 숨막히는 삶을 부린 자리에서 언어의 생명력을 건져서 한숨 돌리는지, 왜 그게 문학의 소임이기도 하는지. 이 탁월하고 정직한 작가는 짱짱한 소설들로 보여준다. 여덟 편이 하나같이 진짜배기다.(전성태ㆍ소설가)
저자

정성숙

1964년진도에서태어났습니다.8년정도서울에서살다가내려와진도에서32년째농사를짓고있습니다.아들2명낳아기른것외에는벼슬한적은없습니다.내가옳다고생각하는경우가많은것으로봐서자기객관화가잘되지않는,다소편협한사고를하고사는것같습니다.

목차

호미…007
기다리는사람들…049
백조의호수…087
복숭아나무심을자리…117
아직도건네지못한이야기…147
이른봄…177
연변봉숭아꽃…207
놈…237

해설|문종필…269
작가의말…277

출판사 서평

농민이며,여성이사는삶

전남진도에서농사를지으며소설을쓰는정성숙작가의첫소설집이나왔다.정성숙작가의이소설집은그동안한국문학이‘까맣게잊고있던’농촌현실을아주본격적이면서도생생하게그리고있다.더군다나여성농부의관점으로해남지역의입말과정서를통해오늘날우리농촌과농촌에사는농민이처한현실을박진감있게이야기하고있는것이다.4차산업혁명과첨단의디지털기술이현실이된상황에서농촌과농민의언어가무슨의미와가치를갖는일일까.작가가그린농촌현실에서도이런현실은적나라하게반영돼있다.

비오는날에심심풀이로컴퓨터에서화투놀이를하면서부터미애는변하기시작했다.컴퓨터에나타난전화선너머남자와의만남을통해서농사외의다른세계를봤다고했다.
(…)
미애는없는틈을만들어서라도컴퓨터앞에앉아농사짓지않는사람들의세계를탐험했다.영락없이남편모르게연정을키우는모습이었다.그모습이창선의눈에걸려들어여지없이주먹질을당했고그일이울고싶은데뺨맞은격이되어미애는집을나가버렸다.
-「기다리는사람들」중

작중미애는고단한농사를피해‘랜선’으로농촌바깥의사람들을만나다가남편인창선에게폭행을당하고집을나가버린다.동네사람들은그런미애더러“콤피터랑연애”했다고수군거리지만미애의친구인“나”는미애가집을나간이유를정확히알고있다.“콤피터랑연애”자체가미애가감당해야하는농촌현실때문이라는것을알고있었던것이다.그것은바로“가꿔놓은농사와함께밟히기만했던지난날은놔두더라도빚더미에눌려숨이막힐것같”고,“금방이라도뒷덜미를잡혀서내동댕이쳐질것같이조마조마하기만한일상에서”미애는도망치고싶었던것이다.그런심리에도시에사는사람들,특히타자의삶에대해이러쿵저러쿵‘아는척’을하는전문가들이불을질렀다.

“정신과의사라는사람이,지금당신이하는일이당신의미래를결정한다,그런말을했닥하냐.가만히생각해보믄진짜맞는말같드라.”
“창선이그놈이또너한테주먹질하든?”
-「기다리는사람들」중

여성인미애의실존상황은피폐한농촌의현실에다가부장적폭력이더해진것인데,작가는이가부장적폭력도농촌의현실이라는,오래된사실이지만여태껏변함이없는사실을생동감있게드러낸다.이제는아예소멸을말하는농촌현실이남성이든여성이든가리지않고힘들게하지만,여성농민은이중의무게를짊어지고있다는점을놓치지않고있는것이다.이는작가스스로가여성으로서농촌에서농사를짓고있기때문에가능한것인지모른다.아울러도시와도시의문화가농촌을지배하는현실에서농민은그저예능프로그램의우스갯거리가되고있는형국이다.

버스가인천공항에도착하기전까지는자신들이촌놈들이라는것에신경쓰지않았는데버스에서내려공항에들어서자딴세상이펼쳐졌다.똥지게지고장에가면이런기분이들까싶게지나가는사람들의눈동자는커지는것같고촌놈들의몸뚱이는자꾸만졸아들고있었다.그나마스물두명이무리지어있을때는덜한데혼자서화장실에라도다녀올라치면숫제죄인처럼오금이저리기까지했다.
-「복숭아나무심을자리」중

베트남여성과국제결혼(?)을하기위해도착한인천공항에서농촌의늙은총각들이처한상황을묘파한이장면에서우리는슬픈희극을마주하게된다.이제농촌과농민의삶은‘찬란한’도시문화의웃음제공자로추락하기까지한것이다.

농토에서부동산으로!

한국사회의부동산문제는그기원과역사가복잡한사안이지만,한가지분명한것은농업의궤멸현상과도관계가있다는점이다.이제도시뿐만이아니라농촌의논밭도부동산으로추락중이다.농사의지속,대물림이끊어졌기때문이다.그래서부모에게물려받은논밭을팔거나(「호미」),농사를작파하고중간상인을하는쪽(「백조의호수」)이‘경제적’으로더나은삶의방식이다.차라리이런삶이합리적이며시대에뒤처지지않는방향이다.

-어머니는산너머쪽으로도로정비사업이진행되고있다는말들으셨소?
“시방질을맹근지도맻년안되고을마나넓고존데새질을맹글어야?”
-그길이위험하게내져서이번에새로길을낸다요.
“…?”
-그쪽땅값이날마다오르고있다는것을모르고계셨단말이요?
“그랑께에,시방,니,말은,산너머밭을….”
-어차피내앞으로된땅이고하니까내가정말필요할때요긴하게써야지농사도잘안되는땅을옆구리에끼고만있으면심이언제필것이요!
-「호미」중

한센병에걸린큰아들효준이죽기전에함께일군“산너머밭”을둘째아들이자기몫이라며팔자는이야기에“영산댁”은가슴앓이를하지만그녀가할수있는것은아리랑을부르는일밖에없다.이작품에서영산댁이밭을매며부르는아리랑은영산댁이처한상황을독자들의가슴속으로흘러들어오게한다.영산댁이마음을의탁하는존재는미운‘이웃들’이지도시인이된자식들이아닌데,이제그이웃들마저품팔이로전락하고있는현실을작가는놓치지않는다.“산너머밭”에서쓰러졌다간신히살아돌아온영산댁의눈에보이는것은양파작업을떠나는“봉고차뿐”이었다.
정성숙작가는이소설들을써야만했던어쩔수없는배경을이렇게말하고있다.

십수년전에쓴소설들입니다.변화무쌍한요즘과는시대성이맞지않는것같아서출판을포기했었습니다.그러다가가만생각해보니,농민들의삶의내용은크게달라진것이없다는판단이들었습니다.드론이나자율주행트랙터가등장했지만호미로풀을뽑아야하는원시적인고달픔은여전합니다.천한일은호미를쥔자들의몫입니다.
농촌에품앗이가없어지면서공동체의식은거의무너졌고추가비용으로외국인인력이그자리를메우는정도가달라졌습니다.
-「작가의말」중

“천한일은호미를쥔자들의몫”이라는작가의한마디가이소설집을관통하는핵심이다.첨단문명이제아무리날뛰는시대라할지라도“천한일”은사라지지않고그것을감당해야하는존재들은변함이없을것인데,그존재들은바로여성이다.그런데농촌에서도도시에서도이현상은한결같다.하지만반대로그천한일을하는“호미를쥔자들”이없다면이세계도없을것이라고고쳐읽어도무방할것이다.
한국문학은이제이최전선의삶을외면할수없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