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꽃 (이현조 시집)

늦은 꽃 (이현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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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오래된 ‘유정’은 확실히 독자를 현재가 아닌 다른 세계로 데려간다. 그 다른 세계에는 “낫 장수 처녀 홀로 남아 장구를 치는”(「낫 장수 처녀의 풍물 장단」) 풍경이 상징하는 우리가 지나온 삶이 있는데, 이현조 시인의 시에서는 그 지나온 시간이 현재가 된다. 이것은 분명 ‘현대’라고 부르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현대의 폭력적인 속도가 없는 평정한 세계라는 의미에서 독자에게 ‘현대’를 다시 묻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현대’는 저 다른 세계의 배 속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저자

이현조

경기용인에서나고,충남홍성에서성장했다.2010년『작가마루』로작품활동을시작했으며현재문화재활용사업기획자로일하고있다.

목차

시인의말ㆍ4

제1부
발바닥의생·14
부대찌개·16
언덕·18
핑계·20
부러진상사화·22
투병중·24
귀향·25
벽시계·26
칼바람·27
제주도막걸리·29
가풍·30
배달의기수·32
밥집에서·33
생일·35
돌팔매·37
아내·38
늦은꽃·39
삐딱구두·41
안부전화·42

제2부
농사·44
죽음에서배운삶·46
파란만장·48
식물원·50
장남·52
삼각관계·54
지훈이·56
꽃소식·57
꼬부랑할머니·59
방물장수·60
낫장수처녀의풍물장단·61
정자나무·63
억새꽃부부·65

제3부
풀깎기·68
책장·69
암탉·70
마스크·72
동쪽의집·73
낙엽·75
세대·76
발버둥·77
동백·78
몸의기억·80
삼불(三佛)·82
오카리나·83
시·84
거울보기·85
도시로간다·86
고요한마을·87
시작(詩作)·88
주소록을정리하며·89
개천절·90
다알리아·91
철·92

해설
무구한존재들이펼치는여백의미학(오홍진)·93

출판사 서평

천천히흐르는냇물같은시

이현조시인의시에는멀미나는속도가없다.아주천천히흐르는냇물처럼,여기저기해찰하면서흐르는것같은느낌을준다.이런현상은이정록시인이추천사에서말한것처럼“오래전에도착한문장을발굴”하기때문일수도있지만,시인자신을중심점으로해컴퍼스로원을그리듯주위의삶과숨결을그대로옮겨오기때문이다.그래서아무리사소한에피소드라도시인이그린원안으로들어오게되면슬픔마저도살아움직이기시작한다.이는시인의‘눈’이맑은하늘과같아서벌어지는일일게다.

오르기위해선가벼워야한다
이승의밥으로연명해온몸
며칠새피골이상접이다

(…)

사선에서그리운건얼굴뿐이다

가족과친족을넘어서지못하는일생
그걸위해발버둥치며살았다
혈서로맺어진얼굴
몸보다더디비워진다

_「투병중」부분

“새털같은꺼풀조차들어올리지못하는눈”을가진혈육의아픔을말하는이작품에서읽을수있듯이시인은단지슬픈정서를토해내지않고,도리어슬픔의무게를덜어냄으로써영혼의평정상태를유지하려한다.하지만이평정상태가정적인것은아니다.“가족과친족”을위한단순한삶이었을지언정그삶에도엄연히무게가있음을시인은아주‘간신히’말하고있기때문이다.어쩌면이영혼의평정상태에대한시인의추구가멀미나는속도를덜어내고있는지도모른다.그런데시인의이런영혼의상태는주로노인들과의관계에의해가능한것도같다.시집의전체에걸쳐시인의눈은가볍지않은역사를살아온이들에게머물러있다.그리고때로는그존재들의말을그대로옮겨적기도한다.

여흥민씨라고만했다
아버지가면서기를지내다빨갱이에게처형당했다고했다
다른집안내력은일절말하지않았다
말할게없었다
여흥민씨는무조건벼슬을준다는황후의제안도거절하고
할아버지는항일운동을했지만
면서기가된아버지는입밖에내지않았다

_「장남」부분


낮은불길처럼

이오래된‘유정’은확실히독자를현재가아닌다른세계로데려간다.그다른세계에는“낫장수처녀홀로남아장구를치는”(「낫장수처녀의풍물장단」)풍경이상징하는우리가지나온삶이있는데,이현조시인의시에서는그지나온시간이현재가된다.이것은분명‘현대’라고부르는세계와는다른세계처럼다가온다.하지만현대의폭력적인속도가없는평정한세계라는의미에서독자에게‘현대’를다시묻는데,왜냐하면우리가사는‘현대’는저다른세계의배속에서나왔기때문이다.

할매하늘이제법무겁쥬
하늘이무겁기루자식만허것어
하늘은흐렸다개기라두허지
자식놈은맨날먹구름이여

_「꼬부랑할머니」부분

바람의시간을오래견뎌야품이생긴다
오래된집이처마를펼쳐참새를품고
오래된축대가품을넓혀민들레를품었다

_「세대」부분

알고보면‘현대’는“바람의시간”을회피하려는세계이다.벽과건물을세워바람을막거나다른데로흘려버리려애쓰는시간이다.하지만‘현대’를잉태하고낳은다른세계는‘현대’를아직도업고있으며“처마를펼쳐”비바람을막아준다.아직도“참새”나“민들레”같은생명을보호하고있는것이다.“바람의시간”을지금도묵묵히견디고있는이시간을‘현대’는망각하거나지우려고하지만,“혹시나해서발버둥쳐보는”(「발버둥」)존재들이아직은여전함을이현조시인은말한다.이시집의미덕은있으면서있음을인정받지못하는세계에게온기를건네는따스한불길같은시인의서정에있다.그런데눈여겨봐야할점은,시인자신이자신을“져야할때피어난상사화”(「늦은꽃」)이라고자처하고있다는것이다.즉,아직은질수없다는나직한독백이비록거세진않지만묵묵하게타오르는불길을가능하게한다.그렇게(늦은이아니라)낮은시를쓰고있는시인이“짱이다”.(「삐딱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