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에 묻다 (정낙추 소설)

노을에 묻다 (정낙추 소설)

$14.00
Description
작가는 청년실업의 문제, 언론의 왜곡, 선거판의 타락상 등 민감한 현안을 측면적 시각에서 다룬다. 그러니까 작품의 인물들은 우리 시대 선량한 이웃들의 그늘진 자화상이다. 물론 소설의 주인공들이 긍정적인 측면만 지니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 대한 풍자와 해학의 행간에 숨겨진 넉넉한 포용 그것이 정낙추가 바라보는 연민의 이유이며 인간에 대한 믿음인 것이다. 주목할 것은 그의 인물들이 사회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끝내 존엄한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그 성과는 대중들에게 내세울 화려한 업적과는 거리가 멀다. 가까운 이웃이나 가족 정도가 알아줄 만한 소소한 것이기도 하다. 그 소소함의 사연이 소설의 흐름을 구성지게 하면서 개개인의 가슴에 스며드는 진정성이 되는 점이다.(박명순ㆍ문학평론가)
저자

정낙추

충남태안에서태어났다.1989년부터『흙빛문학』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으며시집으로『그남자의손』(애지)『미움의힘』(천년의시작),소설집『복자는울지않았다』(삶창)를출간했다.현재고향에서농사를짓고있다.

목차

노란종이배*007
노을에묻다*047
말코엄마*089
사람의결*129
유령*175
피어라돈꽃*211
피었다돈꽃*251

해설|박명순*288

작가의말*311

출판사 서평

절망에서희망으로또는과거에서미래로

정낙추의소설은현실의움직임에민감하다.하지만움직임의말초에반응하기보다는그움직임이어떤결과를일으키는지에대해더관심이많아보인다.동시에정낙추의소설은움직이는현실에판단을내리는역할을하지않고소설속인물들이어떻게해서‘현재상태’에이르렀는지에대한맥락이살아있는관점을시종유지한다.예를들면「사람의결」에서,주인공박동길로하여금“두어시간동안넋놓고”“세상강의를”듣게했던“김선생”은어느날홀연히사라졌다가촛불항쟁이한창중인“서울시청광장”에서조우하게되는데,놀랍게도그는‘태극기부대’가되어있었다.박동길은이곤혹스러운만남을통해김선생과의지난시간을되짚어보면서김선생이그렇게될수밖에없는어떤필연을감지해내고“비로소김선생의삶을어렴풋이짐작했다.”그러면서그에게연민마저느낀다.
또「노란종이배」에서는“자폐증”을앓고있는“선재”의주변이야기를차츰넓혀가면서선재가“노란종이배”를바다에띄우려하는마음의정체를찾아간다.선재는자기가만든“노란종이배”를타고형이돌아올것이라고굳게믿으며바다에종이배를띄우는데,선재의형인“명재”가“2014년4월16일,오전11시”에침몰한세월호에타고있었기때문이다.

전국민이텔레비전을지켜보는가운데천천히가라앉은여객선엔제주도수학여행에들뜬선재의형,명재도타고있었다.방송에선계속슬로모션의한장면처럼배가가라앉는모습을보여주며다급한목소리로속보를알려도선재네가족은그런일이벌어지고있는줄몰랐다.현옥은봄나물을뜯느라들판에있었다.허둥지둥달려온미호할머니은순의손에이끌려텔레비전앞에선현옥은반복해보여주는세월호침몰장면에까무러쳤다.
-「노란종이배」중

어쩌면소설로서는범상하기까지한이장면이후로선재의종이배접기의원인이작품수면위로급부상하면서작품에비극성을부여한다.그것은형을하염없이기다리는선재의행동을통해서더욱도드라진다.다른편에선재의할머니“현옥”이있는데,당연히“현옥”은바다에서사라진손주명재의현실을알기에선재의기다림마저고통스럽게겪어야하는처지에놓여있다.작품말미에서작가는노을에물들기시작하는바다로가는두인물에대해다음과같이기술하고있다.

“선재야,이제집에갈까?”
“응.할머니,내일은배가바다로나갈거야.”
현옥과선재가바다를등지고제방에올라섰다.희망과절망의동행이다.노을이두그림자를점점길게키웠다.선재가형을하염없이기다리는두번째가을이깊어갔다.
-「노란종이배」중

이작품집에서‘노을’을전면적으로등장시키는작품으로는「노란종이배」와표제작인「노을에묻다」가있다.여기서‘노을’은공히절망과희망이교차하는시간대,정확하게는절망에서희망으로넘어가는카이로스(Kairos)에대한메타포로읽힌다.‘노을’을통해주인공들이새로운인간으로거듭난다는뜻이아니다.절망을받아들인상태에서‘새로운한발’을힘겹게내딛는지점의배경을작가는노을로삼는것이다.

덧없이짧은가을해가서쪽으로기울면서하늘이노을에물들기시작했다.하루중에포구로입항하는이순간이제일한가한시간이다.나는커피를들고고물뱃전에걸터앉아바다를바라봤다.빠르게달리는배의스크루가하얀거품을토해내고그포말이사라진아득한저쪽수평선의노을이하늘과바다를붉게물들인다.육지에서바라보면지금내가탄배도노을속에있겠지.미금포해변에서바라본그날처럼….
-「노을에묻다」중


씨앗을보살피는민중으로서의여성

「노란종이배」와「노을에묻다」가다소서정적인작품이라면「말코엄마」와「사람의결」「유령」「피어라돈꽃」「피었다돈꽃」은리얼리즘의규율에충실한작품이다.그중에서도「말코엄마」는주목을요하는작품인데,오늘날거의찾기어려운품격있는인물이등장하기때문이다.현대소설이현실을반영한다면서잃어버린일종의영웅캐릭터를작가는「말코엄마」에서그리고있다.“말코엄마”는두가지사실과대비되며그품격이부각된다.한가지는“할아버지가물려준재산을평생난봉으로알뜰히탕진한”아버지의마지막여자였다는것,그리고또한가지는“여태까지아버지가섭렵한여자중가장못생긴여자였다”는것.하지만‘말코엄마’는“음식솜씨가좋고장사수완이뀌어난여자였다.”거기다가“장구장단과소리는읍내에까지소문이”퍼질정도였다.결국‘말코엄마’는“인물하나빼고는버릴게없는여자”인것으로세간에알려지게된다.하지만그녀가주인공에게보이는마음을주인공은이버지에대한미움때문에끝내거부하고만다.그런데어느날,‘말코엄마’는“삼거리주막의세간을그대로놔둔채홀연히몸만빠져”나갔다.아버지는“말코가내재산과골을다빼먹고도망쳤다고고래고래소리를질러”대면서폐인이되어갔고,“가세는급격히기울었”다.하지만나중에반전에해당되는비밀이드러난다.

사람을외모로판단해서는안된다는것이다.외모는거죽에불과한것이고심성이그사람의본모습이라면서말코는괜찮은사람이라고치켜세웠다.사람의도리를아는말코야말로아버지에게‘과분한여자’라고못박았다.나는외삼촌의그런태도가몹시궁금하여몇번묻다가포기했다.외삼촌이대답대신도덕적인장광설을늘어놓았기때문이다.궁금증은세월이한참흐른훗날에풀렸다.외삼촌은내가가정을꾸리고그런대로사는걸보고지나가는말로한마디했다.
“말코는지혜로운여자였다.느이애비에게서얼마쯤재산을빼돌려내게맡겼다.”
-「말코엄마」중

‘말코엄마’가아버지의재산을빼돌려사라진것이아니라,기우는가세의일부를“외삼촌”에게맡겨놓음으로써주인공의앞날을예비한것으로암시된다.끝내주인공은“어쩌면말코는어린시절내앞날을유일하게걱정해준엄마비슷한여자였는지모른다”라고마음을돌리게된다.이는경제적부와언론을독점한가부장들의세계에서미래의씨앗을준비한건바로여성이었다는적극적해석을가능하게한다.
「사람의결」「유령」「피어라돈꽃」「피었다돈꽃」은일종의세태소설인데,일상적인세태를다룬것이아니라대한민국의정치,사회현실을철저하게‘지역적관점’에서고찰했다는의미를가진다.급변하는현실로인한우리사회의정신적불구가지역사회의언론과정치현실에서어떻게펼쳐지는지에대한적나라한보고에해당될것이다.「사람의결」의“김선생”과는조금다르게「유령」에서“김현중”은아무실력도없이‘진보언론’을시작해놓고여러사람을실망시키다못해지역의토호들과한편이된다.「피어라돈꽃」과「피었다돈꽃」은연작소설로읽힌다.두작품에서는지역정치권이중앙정치권의구태를복제,반복하는경향을약간은풍자적으로그리고있다.풍자와조롱에서더나아가지못한감이있지만정낙추의리얼리즘이아직도진행형일것을감안할때,언젠가는한국현대사에드리워진깊은그림자를작가가드러낼것같은예감이든다.그것은박명순문학평론가가남긴작가의근황때문이기도하다.작가가지역의민중사를채록중이라면,충청도태안지역을휩쓸었던역사의수레바퀴흔적을비켜갈수없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