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낳는 철새들

바람을 낳는 철새들

$10.63
Description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여정
정선호 시집의 매력은 필요 이상의 복잡한 비유나 이미지 대신 진술되는 시인의 편안한 목소리에 있다. 이 특징은 이 시집에 실린 거의 전편에서 드러난다. 그런데 이는 시인이 천착하고 있는 주제의식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정선호 시인의 시가 인위적인 이미지와 ‘단축 키’가 지배적인 현대에서 약간 비켜서서 “이천 년 전”으로 또는 죽음 이후의 세계, 아니면 ‘이곳’에 잠시 찾아오는 철새들의 세계에 보다 친밀감을 갖기 때문인 듯하다. 한편으로는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오민석 교수의 명명대로 ‘유토피아의 욕망’과 결부된 탓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고대의 유물이 많이 발굴된 지역”(「시인의 말」)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생활환경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오랜 외국 생활”이 가져다 준 정서적 빈 터에 “고대의 유물”과 철새가 날아드는 주남저수지가 자리잡은 것이다.
저자

정선호

충남서천출생,2001년『경남신문』신춘문예시당선,2003년『시와상상』으로작품활동시작.한국작가회의회원,시향동인.시집『내몸속의지구』『세온도를그리다』『번함공원에서점을보다』가있다.

목차

시인의말ㆍ5

1부

벚꽃이떨어지는주말농장·12
저수지방죽을달리는남자·14
죽은미술가의그림을경매하다·16
신라불교초전지한옥마을에서·18
문자는역사의길이다·20
쑥을뜯는여인들·22
나의기쁜장례식·24
그해성산패총에가다·26
캠핑장은꿈속에서날아다니지·28
노인들의봄소풍·30
봄은쓰윽왔다가쓰윽간다·32
연꽃씨의여행·34
가야인의겨울·35
시금치밭을지나다·37

2부

바람을낳는철새들·40
그해봄날의유감·42
2월,주남저수지에서·44
지구의행진은계속된다·46
저수지의배부른철새들이란·48
바람의다른사랑방식·50
공원에개들이모였다·52
호랑이꽃·54
죽은짐승들쌓인도로를달리다·56
유행병도는날들의사랑·58
호박꽃전등·60
나무는지구의미래다·62
태양을품다·64
아파트·66

3부

육사에게묻다·70
너무아픈사랑은·72
봄꽃들이밥으로피었다·74
교도소와봄꽃들·76
4월에핀꽃들·78
자주와민주주의,인권의소중함을가슴에새기다·80
5월,다시광주에서·82
국가란무엇인가·84
마래터널에마음을새기다·86
다산초당에서편지를읽다·88
정착민들·90
당신의주름살에서꽃으로피어났다·92
희망의강들이모여바다를이루다·94
주남저수지의초가을·96

4부

페이스메이커·100
감자에싹이나서·102
2월의여자들·104
장인이별세하셨습니다·106
창원,장미공원에갔다·108
잘못든길에서두번째로죽다·110
이어달리기를바라보다·112
독서는마음의양식·114
로또복권두장을산적이있다·116
바다사진관과시인·118
그날새벽에새친구가왔다·120
그할머니의시쓰기·122
씨뿌리는젊은그이에게·124
은행나무가많은우리동네·126

해설
유토피아욕망과생태시학(오민석)·129

출판사 서평

철새들이제깃털로바람개비를만들어
저수지방죽에심어놓았다
바람개비들은철새가안고온찬바람과
남녘에서불어온바람에거세게돌았다

바람개비들은돌아전기를만들어나무에보내
철새들이날아다니는길을환히밝혔다
전깃불은마을도환하게비춰불빛에
죽은영혼들이깨어났다

영혼들은활과창을들고물고기를잡으러
저수지에갔고아침이오면
바람개비속으로들어가
지도를따라저승으로되돌아갔다

_「바람을낳는철새들」부분

이작품은,“저수지방죽”에날아든“철새들이깃털로만든”“바람개비”가“길을환히밝혔”고,그빛으로인해깨어난“죽은영혼들이”“저승으로되돌아”갔음을말하고있는데,이렇게정선호시인의시간은고대에서현대,그리고이승과저승을단절없이잇고있다.따라서시인이말하는“저승”또는죽음의세계는어둠의세계가아니라도리어다른존재가생성하는시간이기도하다.「가야인의겨울」에서보듯고대인의시간은삶과죽음,오고감이하나이고현대인의시간은“공장에서쇠로탱크나로봇을”만드는세계인데,여기는어떤간극도없다.고대와현대사이에깊은해자(垓字)를파놓지않는독특한인식은「연꽃씨의여행」에서특히도드라진다.“연꽃씨는신라시대부터오늘날까지/일어난모든일들씨안에적어놓았고/죽은이와환생한사람들이름을모두/빼곡하게적어놓았”.그러니까고대에서현대에이르는기나긴여정을말하기위해서라도정선호시인에게는이미지나비유보다는진술이더유용한것이다.

유토피아적생태주의

고대와현대를이어진시간으로보는인식에서나타나는생태적관점도따라서정치적이거나문명비판적이기보다는자연과문명이하나로뒤섞인채현존한다.도리어현대의기술문명은자연의힘을이용하는실사구시의실례에해당된다.이런시인의태도는여느생태주의시와변별점을갖기에충분하다.다르게생각하면이런시인의태도또한“오랜외국생활을마치고”와서정착한장소에서느낀자연에대한경외때문일지도모른다.다음의시를보자.

사람들은다시바람의소중함알아
사람과자연의생명과대기를해치는
땅속의석탄과석유는쓰지않고
(…)
들과바다에서바람을붙잡아
전기를만들어지구를살리고있지

_「바람의다른사랑방식」부분

정선호시인은인간의이런‘적정기술’을“바람의다른사랑방식”이라고부르거니와이런시적인식은참으로독특하다할수있다.왜냐면오늘날파국으로다가오는기후변화는곧잘우리에게묵시록적인비관을심어주는데비해시인은주남저수지에드나드는철새들을통해서아직우리에게는친밀감과유대의정서가남아있다고말하고있기때문이다.이런친밀감과유대의정서는인간과인간사이에도아직그온기가남아있다.「바다사진관과시인」에대해‘해설’을쓴오민석문학평론가는다음과같이말하는데,어쩌면이것이정선호시인이가진시심(詩心)의본래지점일것이다.“이고요한그림에서우리는자연과인간의막힘없는교류,경쟁이없는느린노동,아름다운가족공동체,인종의경계를뛰어넘는‘평화롭고도존엄한’풍경을만난다.”

자연의큰정치

어찌보면조금낙관론에기우는게아닌가싶기도하지만,3부에실린정선호시인이가진역사적,정치적현실인식의서늘함을함께읽으면간단하게말하기힘든또다른내면을소유하고있음을알수있다.3부에실린작품들에서도정치적현실의소용돌이속에서도천변만화하는자연은변함없이제할일을하고있었음을알수있다.“4월혁명때와유신시대봄에도/정치범들위해기운과향기를전해주었지요”.(「교도소와봄꽃들」)결국정선호시인의영혼에흐르는고대와현대의이어짐,죽음과삶사이에흐르는시간의지속이나자연과문명의분리불가는,다른정치적메시지를독자들에게품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