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의 낡고 녹슨 철조망 (강민영 산문집)

우리 사이의 낡고 녹슨 철조망 (강민영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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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인문의 힘!
강민영 시인의 산문은 독서와 예술작품에 대한 이해로 잘 닦여진 소양으로 써졌다.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인문적인 소로(小路)를 걷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하지만 설익은 개념어나 추상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저자 자신의 삶의 경험으로 받아들인 것만을 진실하게 진술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히기도 했다.

책, 영화, 그림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다룬 수필의 특성상, 작품을 통해 내 의식을 드러내는 데 의미를 두었다. 대부분은 작품의 요점을 말하기도 했지만 인용을 위해 작품의 주된 골자를 배제하거나 필요에 따라 조금 다른 서술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다. 머리로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사물의 사실보다는 진실을 따뜻하게 보려고 했다. 앞으로 내 가치관이 크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지금보다 더 단단해지거나 조금은 더 넉넉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몇 년 뒤에는 그런 나를 확인할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수록된 글의 제목만 일별해 봐도 일상적인 것과 살면서 겪는 것, 그리고 만나는 것들을 저자가 얼마나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수필 등에서 종종 발견되는 감정의 노출이나 감상적인 관점은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것들을 절제하는 내면의 힘이 있다. 이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찾아나서는 것도 제법 괜찮은 독서 방법이리라. 예컨대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자.

섣불리 ‘용서했다’는 말로 타인과 자신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 기만은 자신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어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과를 받아들이지만 용서할 수 없다면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단계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남을 용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에게 용서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기에 잘못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해도 서둘러 사과하고, 사과받으면 너그럽게 용서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용서하는 일」

‘용서’에 대한 어떠한 감상적이고 도덕적인 관점을 배제할 줄 아는 이러한 저자의 입장이야 말로 우리가 거의 습관처럼 말하는 ‘인문의 힘’이다. ‘인문’이라는 것은 한 개인이 자신의 내면을 사람의 무늬로 수놓는 것이다. 이 무늬가 아름다운 사람일수록 타인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고, 이것은 전체 사회와 보다 큰 관계를 ‘살 만하게’ 만드는 초석이 되기도 한다. 그러한 실례가 바로 강민영 시인의 이 산문집에 묶인 글들이다. 피상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아름다움 말이다.
저자

강민영

서울종로구에서태어났다.인사동‘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개인전과그룹전,‘예술의전당디자인미술관’에서그룹전,그외인사동에서다수의전시회를하며조형예술작가로활동하다가2007년에수필신인상을,2015년에『내일을여는작가』에서시신인상을수상하면서수필가,시인이되었다.저서로는서간집『아들이군대갔다』와시집『아무도달이계속자란다고생각안하지』가있다.다음출간할네권의책을집필중이며현재한국작가회의회원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프롤로그ㆍ4


1부
커피와함께하는여백의시간ㆍ12
가르침은희망을이야기하는것ㆍ17
다양한형태의가족과그에대한사회적고찰ㆍ24
삶과죽음을엮는강렬한힘ㆍ29
죽음,따스한입맞춤의순간ㆍ33
유효기간이지나간사랑ㆍ38
사랑은그후어떻게되었는가ㆍ44
사랑의민낯ㆍ48
원망만큼컸던그리움ㆍ53
자식이기는부모없다며ㆍ59
내가책을읽는이유ㆍ67
문학이내게준선물ㆍ75
용서하는일ㆍ81
누드,본능과순수의생명력을스케치하며ㆍ90
르네마그리트의〈연인〉ㆍ94
즈지스와프벡신스키의사랑과고독ㆍ98
이문열의『금시조』에서만난예술혼ㆍ103
내삶에배경으로깔리는음악과댄스ㆍ108
황혼무렵에들리는종소리ㆍ115
남성우월감과성차별ㆍ121
경계를넘어간사람들ㆍ130
노년의뻔뻔함ㆍ140

2부
콜미바이유어네임ㆍ148
“가요!”,사랑의또다른말ㆍ156
실수한다면,그게바로탱고죠ㆍ162
아름다움이도달하는지점ㆍ170
무지에대한경계와면책권ㆍ175
부모에게살해당하는아이들ㆍ180
세상의끝ㆍ186
소년의선택ㆍ191
쓸쓸함은줄어들지않는다ㆍ198
길을비켜가다ㆍ204
내삶보다죽음이더가치있기를ㆍ209
삭제된메시지입니다ㆍ213
왜그런질문을하는거야ㆍ219
다섯째아이,벤ㆍ227
살면서배우는거지ㆍ234
유인원의그림과롤리타ㆍ241
이편에서저편으로ㆍ249
그곳이바로천국이었다ㆍ253
나는에로스의노예가되었습니다ㆍ259
종은우리를위하여울리는것이다ㆍ266
이기나긴노력끝에ㆍ275
결핍의도시ㆍ279
우리사이의낡고녹슨철조망ㆍ286

에필로그ㆍ292

해설|예술의힘으로커진사람은인간으로도큰사람이된다ㆍ297이병일(시인)

출판사 서평

작품을말하면서나를말하기

책의1부는대체로저자의일상적인경험을저자스스로확인하고,해석하고,내면에아로새기는작업들로채워져있다면,2부는시인으로서또조형예술가로서인류의정신적,미적유산들을작가나예술가의삶과함께읽는글들로구성되어있다.독자들은2부에이르러서야이산문집을‘예술과삶의에세이’로받아들여질것이다.2부에실린글들에서저자는자신의다양한작품읽기경험을우리에게들려준다.이는난삽한평론가적눈이아니라친절한가이드의역할을하지만단지거기에만머물지도않는다.작품읽기가자신에게내면화되는과정즉‘읽기’가‘익기’가되는정서의떨림이배어있다.

우리는때때로절망한다.사람때문에절망하고사람때문에절실하다.한편의영화,한권의책,그리고한페이지의글,혹은몇줄의짧은문장이여러갈래의길앞에서갈등하는우리를곧바로요점에이르게한다.글과영화에녹아있던작가의의식덕분에그와동시대를살아보고싶은갈망을갖기도한다.이영화를통해인간이절대적이라며추구해왔던삶의목표와방식이근본적으로는우리를구원해주지못한다는것과,치열하게살아오면서놓쳤거나외면했던가치는역시인간에게서나오는향기라는것을다시확인한다.(「실수한다면,그게바로탱고죠」)

저자의이러한반성적통찰은글편편마다에서만날수있다.하지만이통찰에는포즈가없다는것을독자도어렵지않게알게될것이다.어쩌면이것이강민영시인의장점이고이책의특징일것이다.이것은보기드물게산문집에해설을쓴이병일시인의짚어주기에도잘드러난다.이병일시인이말하는강민영산문의특징을옮겨보겠다.

그는나를말하면서작품을말하고,작품을말하면서현실을말한다.그현실의진술속에서대상과나,주체와현실을순환하면서직관적으로감지되는‘삶의태도’를읽어낸다.이와같이그는지금여기의눈으로작품을이해한다.그러하기에“지금살아있는노인이얼마나더럽고추레하든그는결코하찮은사람이아니다.어떤형태로든그는그나이까지살아남아자기생명에대한책임을고스란히이행했기때문”이라고말한다.(해설,「예술의힘으로커진사람은인간으로도큰사람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