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파리 같은 새말 하나

이파리 같은 새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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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제3세계를 꿈꾸는 시
변홍철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제3세계/ 어디에도 없는 너를 부른다”고 적었다. 이른바 ‘제3세계’는 예전에 서구 자본주의 사회와 동구 사회주의 사회가 아닌, 남반부 나라들을 가리켰고,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서구의 식민지 시절을 겪었으며 독립 이후로는 서구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지속적인 수탈을 당한 곳이라는 것이다. 이 역사적인 언어를 변홍철 시인이 다시 들고 나온 것이 심상치가 않지만 시인이 말하는 ‘제3세계’는 시가 “우정의 도구”로 쓰이는 세계이기도 하면서 “세 칸 또는 네 칸짜리 열차가// 오 분이나 육 분 늦게 온다는 안내 방송,// 들을 때마다 마음이” 놓이는(「서경주역」) 카이로스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마음이 놓이는 순간’이 역사와 현실을 방기하는 시간이 아님은 물론이다. 시인은 슬픔마저 “잘 삼키었다가/ 빛나는 종양/ 열매로나 맺자”(「모과꽃」)고 말하면서 “오 분이나 육 분”까지 딱 맞게 굴러가는 지독하게 효율적이고 공리적인 현실의 틈에서 “출출한 불빛”(「시장통」)을 꿈꾼다. 밝고 화려한 불빛이 아니라 “출출한 불빛”을!
저자

변홍철

경남마산에서태어나대구에서살아왔다.시집으로『어린왕자,후쿠시마이후』,『사계』가있고,산문집『詩와공화국』이있다.

목차

시인의말5

1부
꽃길·12
달리아·13
이런질문·14
서경주역·16
붉은꽃이피는나무·18
모과꽃·20
시장통·21
너의말을받아적다·22
감꽃·24
다른바람이·26
간이역에서의비유·28
저녁비·30
연가·31
나무와함께비를맞다·32
꽃은활짝피었구나·34

2부
한식무렵·38
야행·39
아침예배·40
숲길·42
유월의바람·44
아직은푸른잎사귀·46
가을협주곡·48
하지않은말·50
첫눈을기다리며·51
편지·52
겨울나무를위하여·54
섣달·56
겨울등반·58

3부
법원앞에서의산책·62
다리가새로놓인마을·64
길·66
비오는날·67
식탁을위하여·68
저물녘의운산·70
멀리서온병·72
북소리·74
무구·76
개강·77
남파랑길·78
구룡종합석물·80
점두록·81
바람개비·82
달리씨네쌀배달하기·83

4부
아침놀·88
리오그란데·90
열병의역사·92
섬·93
성모당에서·94
가만히있으라·96
새벽종이울리지않아도·100
솥·103
그래도우리는·106
일몰의노래·109
제정신이라면오늘·111
시인과전쟁·113

발문
걷는자와머무는자사이에트인말하나(한지혜)·117

출판사 서평

허공같은우리의꿈속에는
아침이되어도
벌한마리날아오지않는구나

재난경보가익숙해진
낙원도이제는
방사능이있는낙원

풍요도이제는
저주받은풍요

_「너의말을받아적다」부분

이런현실에서“망명지의시인처럼”“오늘하루/제할일을하자”는시인의이런태도가결국“이파리같은새말하나틔우는것”(「꽃길」)이고바로이순간이“제3세계”인것이다.변홍철시인은의지를말하지않고희망을말하지도않는다.그렇다고의외로겉은뜨겁지만속은차가운혁명이라는언어도사용하지않는다.시인은오로지우리에게주어진일을견디듯다하면서“이파리같은새말하나”를만들고자할뿐이다.

싸움을품고시를향해나아가기

그렇다고해서변홍철시인의서정시가내면으로퇴행중인것은아니다.4부에실린작품들은역사적현장의복판에서써진작품들로채워져있지만,그싸움을품고시를향해나아갔다고보는게맞다.사실서정시라는것이역사적현실과무관한심리상태로쓰는시는아니다.서정자체가삶의조건과제약,굴곡속에서형성되는것이라면그서정으로인한서정시가다시구체적인삶으로향하는것은당연한일이다.

강물에낯을씻으며
서둘러멀어져간다

왜밤과낮이바뀌는시간에는
상처입은자가제수의를개켜야하는가

홍시같은신음,단내가퍼진다

_「아침놀」부분

현실속에서서정시를쓰는행위는설령“신음”을내더라도그“신음”을단내로바꾸는정서적행동이된다.우리에게는달관과관조를특징으로하는무수한인생-서정시들이있지만“상처입은자가제수의를”개키면서내는“신음”을“단내”로전화(轉化)하는서정시들은흔치않다.사실이런서정시를쓰는일은상당한(정신주의가아니라)정신적깊이를통해서만가능하다.그렇지않다면일종의주지주의적인함정에빠지고마는데,변홍철시인이가까운곳에존재하는것들을시에불러들이는것은이런무의식적인시적전략때문이다.

춥고배고플텐데
구름의궤적을흉내내고있다

사는것은서러워도
검불이날리듯무구한것이라고

함께,가벼이,붉은해를맞고있다

_「무구」부분

하지만여기에도함정이있을수있을것이며,이함정을어떻게건너는가,가시에서“제3세계”를만드는일일것이다.이는결코미학의문제가아니다.김수영이‘시를아는것은전체를아는것’이라고말한것은결코과장이아니었다.변홍철시인이이번시집을통해서“제3세계”를만들었는지어쨌는지판단하는일은이제독자의몫이다.다만한가지말할수있는것은,시를통해천국도민주주의도아니고“제3세계”를만들겠다고한사람은변홍철시인이아마유일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