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기다리자

웃으면서 기다리자

$14.00
Description
선생님 시인의 낮은 이야기들

저자인 최은숙 시인은 이 책에 실린 자신의 글 “호박잎에 모이는 빗소리처럼 소탈하고 낮은 이야기”라고 불렀다. 저자는 자신이 살면서 겪어온 이야기들을 아무런 수사나 과장 혹은 은폐 없이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그렇다고 해서 일차원적인 감상이나 자기연민, 합리화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교사로서 만난 아이들과 학교 현장에 대해서도,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또 때로는 가슴 뭉클하게 드러낸다. 동시에 저자는 자신의 생활이 우리가 사는 역사적 상황 안에 놓여 있음도 놓치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세월호 참사의 비통이 배어 있는 글들에서 그것은 잘 드러난다. 저자가 교사이기도 해서 그 비극이 더 생생하게 다가갔으리라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독자로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날마다 야단을 맞는 이 아이들이 시시때때로 사람들을 울게 하는 그 아이들이었다. 가르쳐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먹었다.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법, 어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법을 가르치자. 옳지 못한 것을 거부하는 힘, 경쟁하지 않고 연대함으로써 얻어지는 훨씬 힘 있는 경쟁력에 대해 가르치자.(「바다로 등교하는 아이들」, 129)

이어서 저자는, 이 ‘가르침’이 단순하게 아이들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해둔다. “아이들을 산 채로 바다에 묻는 것이 돈과 권력의 힘이라면 아이들을 살리겠다는 학교는 그것과는 다른 힘을 배우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과는 다른 원칙이 적용되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같은 글, 129) 저자에게 가르침은 제도화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의 원칙이 있음을 함께 배워가자는 의미와 가깝다.
이는 저자 스스로 아이들과 쓰고 어울리면서, 아이들의 영혼을 섬세하게 어루만져 주는 학교에서의 일상을 다룬 「두 살 차이」라는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저만 한 딸이 있는 담임선생님을 교환 일기장 속에선 열여섯 살 먹은 여자 친구 대하듯 하는 녀석”과의 에피소드 속에서 저자는 “사춘기 소년의 맑은 심성이 상처 받지 않고 건강하고 밝게 자라도록 마음 쓰느라 가끔 속으로 쩔쩔매곤 했다.” 이런 태도와 마음씨는 학교 교육 현장을 이야기하고 있는 글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다음과 같은 ‘낮은 마음’을 보라!

그러니까 학교 안에서 내 마음이 가장 나다운 때는 그래도 교실에 있을 때일 것이다. 좋아하는 일은 힘들지 않다. 아이들과 쑥을 뜯으러 나가는 일,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일, 청소하는 일, 국어를 내 수준으로 쉽게 가르쳐주는 일, 또 이렇게 일기장을 주고받으며 편지를 나누는 일. 좋아하는 마음은 모든 일을 쉽게 해준다.(「두 살 차이」, 58)

최은숙 시인에게 학교는 그야말로 삶의 현장 그 자체일 텐데, 그렇다고 규격화된 내용의 교육을 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 없을 수 없다. 전남 순천에 있는 ‘사랑어린배움터’에 실시하고 있는 교육 내용에 대해, “그게 가능한 것은 이 학교가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교육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사람이 상하는 것쯤 눈도 끔쩍하지 않는 자본주의사회가 이들의 사랑과 실험을 간섭할 수 없기 때문이다”(131)고 진단하는 것이 그 반증일 것이다.


그러나, 나를 위해 쓴다

이 책에는 시인 최은숙이 동료 작가와 예술가를 대하는 마음도 낮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는 단순히 동류의식 때문이 아니다. 동류의식을 뛰어넘는 살아 있는 목숨붙이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시인 최은숙의 기본 마음 구조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또 시인 최은숙의 낙관적인 세계관이 어느새 참여하고 있다. 동갑나기 친구 “블루스 음악을 하는 뮤지션 김유신”에 대한 이야기인 「웃으면서 기다리자」에는 “김유신”의 삶과 음악을 통해 저자가 세상과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김유신”을 통한 한 편의 뛰어난 예술 에세이기도 한 이 글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밥은커녕 차 한 잔 마시러 오는 손님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죽 별로 없다면서도 그녀는 살 만하다고 대답한다. 최낭숙은 품이 따스하고 표정이 선량하고 눈이 맑은 사람이다. 찾아오는 이웃들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려 하고 뭐든지 손에 들려 보내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김유신네 식구들이 다 그렇다. 착하고 맑은 성품, 넉넉함, 이것은 식구들이 서로 아끼고 믿으면서 산다는 증거이다. 손님이 오거나 오지 않거나 김유신은 날마다 곡을 쓰고 연주를 하며 하루를 산다.(「웃으면서 기다리자」, 176~177)

이는 기본적으로 김유신, 최낭숙 부부의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그들의 삶을 통해서 저자의 자기 의식을 밝히는 것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왜냐면, 이러한 시각 또는 관점은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글에서 자주 확인되기 때문이다. 이 글의 제목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것은 아마 이러한 연유 때문일 것이다. ‘웃으면서 기다리자’는 자메이카의 가수 밥 말리의 말인데, 밥 말리가 자신이 처한 자메이카의 상황 속에서 ‘혁명과 웃음’을 생성했다면, 그것을 김유신이 받아들였고 다시 최은숙이 자신의 삶으로 끌어안았다고 해도 꼭 비약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길고 또 객관적인 거리를 확보한 글이 써질 리가 없다.
어쨌든 저자인 최은숙이 교사이기도 하지만, 시인이기도 하고 뛰어난 에세이스트이기도 한 사실을 감안한다면 제일 마지막에 수록된 「나를 위해 쓴다」도 독자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킬 것이다. 교사 최은숙이 학교 현실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면서 동시에 비인간적인 상황에 맞닥뜨리지만, 이러한 사건들은 ‘시의 마음’으로 해석되고 또 언어화된다.

띄엄띄엄 번갈아 켜지는 반딧불이들의 작은 호롱은 어둠을 몰아낼 만큼 눈부시지는 않지만, 어둠 속에도 막막한 어둠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신호이자 아무도 두려움 속에 혼자 있지 않다는 위로의 메시지이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나의 방법은 연필을 깎아 천천히 옮겨 적는 것이다. 어둠의 광활함에 눌리지 않고 날마다 조그만 등을 켜는 사람들, 새된 목소리로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사람들, 담담하고 묵묵한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가 사각사각 공책을 채울 때 내 삶이 다시금 가지런해지는 것 같다.(「나를 위해 쓴다」, 230~231)

역사를 말하고, 현실을 말하고, 국가와 자본을 비판하는 공적 시민으로서 발언은 의외로 힘들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을 자기 ‘영혼의 바구니’에 담아 ‘나를 위해 쓴다’고 겸허하게 말할 수 있는 이가 어쩌면 시인일 테고, ‘시의 마음’을 잃지 않은 교사만이 아이들의 편에 서서 아이들과 웃고, 싸우고,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 때만이 세상일에 간여하는 일이 곧 “내 삶이 다시금 가지런해지는 것”일 테다.
그러한 마음으로 최은숙 시인은 끝내 이렇게 자신을 다독다독하고 있다.

햇빛을 머금은 광목같이 나의 근본도 순(順)하고 박(樸)하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쓴다.(「나를 위해 쓴다」, 236)
저자

최은숙

1990년『한길문학』에시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집비운사이』,『지금이딱이야』,산문집『세상에서네가제일멋있다고말해주자』,『미안,네가천사인줄몰랐어』,『성깔있는나무들』,청소년고전『열세살내인생의첫고전노자』,『열세살내인생의첫고전장자』등이있다.
충남공주여자중학교에서국어교사로일한다.선생님들과함께20년가까이독서모임을하면서어느날동료가스승으로보일때의행복이어떤것인지깨닫는다.해마다학생들의시집을엮고학생들과같이마을공부를하면서살고있다.
엮은책으로『선생님의책꽂이』,『와!드디어밥먹는다』,『다같이돌자동네한바퀴』,『반갑습니다!청춘공주』,『닮았네닮았어』,『반짝일거야』,『한창예쁠나이』등이있다.

목차

작가의말ㆍ5

커플룩ㆍ11
꽃을켜도될까요ㆍ19
혹ㆍ24
37105ㆍ31
쥐코밥상ㆍ40
하루하루가좋은달ㆍ47
두살차이ㆍ56
바라본다ㆍ62
씨앗을뿌리는사람ㆍ68
소나무꼭대기의고양이ㆍ76
마음의탕약ㆍ81
모두다사라진것은아니다ㆍ92
어눌한이야기ㆍ97
김담비약전(略傳)ㆍ113
바다로등교하는아이들ㆍ127
‘인성’을가르치라고한다ㆍ134
별ㆍ140
글을낳는‘집’ㆍ146
웃으면서기다리자ㆍ157
‘사람의마을’을전승하는이야기꾼ㆍ180
이별꽃스콜레ㆍ197
처음있는일ㆍ208
지란재에서온편지ㆍ213
문의저편ㆍ225
나를위해쓴다ㆍ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