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언어, 소생의 힘 (박명순 문학평론집)

애도의 언어, 소생의 힘 (박명순 문학평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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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박명순의 평론은 대상이 되는 작품을 윽박지르거나 무리하게 해체하지 않는다. 오직 작품의 결과 그 결에 웅크려 있는 작가의 숨소리를 더듬는다.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작품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비판의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작가에게 바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시종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평론의 덕목은 당연히 평자의 심미안과 그것을 풀어내는 설득력 있는 논리에 있지만, 논리를 넘어서는 이 따뜻함은 분석이 주는 날카로움을 ‘대충’ 무마해주는 게 아니라 겸손한 바람을 비판에 얹음으로써 작가의 귀를 솔깃하게 할 것 같다. 평론도 하나의 대화 장르라면 이것은 작지 않은 장점이다. 설득과 공감은 메마른 지적보다는 청자의 귀와 마음을 열게 하는 언어니까 말이다. 또 한가지 장점은, 지역에서 외롭게 문학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에게 먼저 내미는 손길에 있다. 이는 자칫하면 인정 비평으로 흐를 수 있지만, 박명순은 아슬아슬하게 긴장과 균형을 잃어버리는 법이 없다. 오늘날 ‘좋아요’에 취한 세태 때문인지 이런 비평의 태도는 더 돋보인다 할 것이다. 나는 각 지역에서 창작된 문학작품을 이렇게 꼼꼼하게 읽어주는 비평가들이 많아져야겠다는 생각을, 박명순의 이번 평론을 읽으면서 절실하게 하게 됐다. 사는 지역을 떠나 우리 모두 ‘서울문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박명순

중학교국어교사로30여년재직.공주대학교,순천향대학교에서국어교육학,현대소설등을강의했으며현재『작가마루』와『시와문화』편집위원으로활동하고있다.‘비상국어교과서’필진으로참여했으며,『채만식소설의페미니즘』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아버지나무는물이흐른다』,『영화는여행이다』,『슬픔의힘』,『안녕,개떡선생』등의저서가있다.아르코창작지원금,문학비평활동지원금과충남문화재단지원금을받았다.

목차

작가의말○4

1부
민촌이기영의『고향』을만나러갑니다○13
영원한경계인,박노갑과엄흥섭○56
역사를배반하지않는소설의진정성-조선희의『세여자』○86
박상륭소설읽기를통한‘죽음’의의미찾기○132
문학에나타난질병의얼굴들○155
연민과믿음에대한탐색-정낙추의『노을에묻다』○175

2부
봄을향한시적페이소스-이문복○197
신동엽을다시읽다○209
경계를사유하는시읽기-이명재○233
수묵화와풍속화로만나는두개의자화상-정완희와진영대○248
지상의별을노래하는‘시의길’-이은봉○267
기억,성찰,치유,그리고정체성찾기의도정-이은숙○287
대화와독백으로치유하고상생하는시인의꿈-박용주와장인무○302
애도(哀悼)의언어,소생(蘇生)의힘-박형권○319
원심력과구심력의언어미학-박설희○338

3부
시를통한연대의가능성○357
생명력있는시를위한요건○378
한국시의미래를묻다○399
애도(哀悼)의목소리들○409
실존적체험과사랑의시학○428
생태학적상상력,변방에서시를묻다○438
시로여는생존연습○462
임명희작가에게보내는글○471
사랑과바보이미지,기억의힘○477
물의상상력으로읽는유준화의시○490

출판사 서평

공명과비판이공존하는공감의언어

박명순의문학평론은공감의언어다.여기서공감이라는말에는공명의의미뿐만이아니라비판도포함되어있다.어쩌면‘공명’자체에비판이기본속성으로깔려있을지모른다.비유하자면,작품을먼저끌어안은다음에체온을충분히공유한후작품의‘얼굴’을확인한다고나할까.하지만그행위에는이미공유한체온을충분히믿지못해서확인하려는것이아니라,어쩔수없이존재하는차이마저서로긍정하자는쪽에가깝다.그래서박명순의문학평론에는날이서있지않고마치새둥지같은느낌을준다.비판은곧탄핵이라는살벌한(?)정의가고래로부터있기는하지만그것은어디까지나남성의언어이지,박명순의언어에는해당되지않는다.그래서박명순의비평언어는분석이라기보다는일종의‘말걸기’내지는‘대화’에가깝다.다음의예를보자.

『고향』에는부대끼며살아가는농민의일상이실감나게담겨있습니다.등장인물들은마름안승학이우체통에넣은엽서가집에배달되는것을신기해하는수준의촌사람들입니다.김유정소설의주인공들처럼떠돌이나극빈의인물들은아닙니다만.도긴개긴부족한인물들이굳건하게자리를지키며저마다의삶을꾸려나갑니다.
당연하지만이상적인인물이등장하지않습니다.희준과갑숙조차유혹에약한결함을지닌인물입니다.못난이아내와못난이남편이티격태격하나문제를해결해낼능력이없습니다.하지만그런환경속에서건강한생명력이넘쳐납니다.(「민촌이기영의『고향』을만나러갑니다」,31)

글이경어체로씌었다는점,그리고읽기를감행하고있는텍스트에근거하고있다는점때문에범상하게보고넘어갈수도있지만,문제는경어가단지외형적인게아니라는점과텍스트의인물들에게서“건강한생명력이넘쳐”나는점을찾아읽는것이외형상의경어체와너무나도잘맞아떨어진다는사실을간과해서는안된다.비록경어체가아니지만다음과같은구절에서도박명순의문학평론이어떻게독자로하여금공감의길을따라가게하는지잘보여준다.

독자(또는작가)는잠재적환자이자현실적치유자로서존재한다.진정한환자만이그치유의길을가장잘안내할수있으리라,우리는미루어짐작한다.이추론은대부분성공적이며따라서질병은때로는작가에게창작의욕으로작용하고직접적으로작품에깊이관여하기까지한다.이경우작품에는삶과죽음을초월한작가의세계가투영된다.권정생의『강아지똥』(길벗어린이)의탄생에옷깃을여미는이유이다.(「문학에나타난질병의얼굴들」,159~160)



지역문학에대한애정

이책에는저자가거주하는충청지역의작가,시인들에대한관심과애정이자심하다.이는다순한‘지역주의’의문제로볼것이아니라글쓴이들이자기지역의문학을알게모르게떠나‘서울’을지향하는태도부터돌아봐야할문제다.저자는이미이기영의소설을읽으면서부터이로컬리티를놓치지않고있다.“실제로이기영은농촌에살면서이작품을썼다고합니다.충남의천안사투리가정겹습니다.”(29)사실충청지역의내로라하는작가와작품만읽어도문학평론의본령을수행하는데아무런지장이없을정도이며,이는충청도뿐만의사정은아닐것이다.저자가호출한충청지역작가와시인의목록을다채롭기까지한데,비록짧은독후감이지만수필을쓰는임명희를주목하기도한다.

『공장지대』에담긴1970~1980년대변혁운동의한복판에서밀려난‘일상성’의고백과기록의서사는10대소녀의표정을노동자의시선으로담고있었습니다.이데올로기의시대를이론이아닌체험으로채웠던그녀들의삶과노동은교조적당파성의빈틈을채워,시대의실체를증언하고있습니다.경험이강제하는고통과상처에도불구하고분명작가에게는커다란축복이라고하지않을수없지요.하지만우연하게주어진이역사적인축복을알아볼수있는눈은아무에게나있는것은아니겠지요.그안에서만들어낸한글독해소모임이나바둑모임의의미를저는자생적노동운동이었다고생각합니다.(「임명희작가에게보내는글」,474~475)

이에대해추천사를쓴황규관시인은“자칫하면인정비평으로흐를수있지만,박명순은아슬아슬하게균형을잃지”않고있다고말한다.더불어자기지역에사는작가와시인을주목하는비평집이없는것은아니지만이런현상은격려할만하다는점도잊지않는다.충청지역작가들을호명할때도저자는예의그공감의언어를잃지않는다.
이책은1부에서소설비평을,2부에서시비평을,3부에는일종의주제비평을실었다.특히3부에대해서저자는“우리시대문학의흐름과관련하여‘연대’,‘생명력’,‘한국시미래’라는주제와관련하여”담아봤다면서여러시인과소설가를호명하는데그면면이치우치지않는다.여기에서저자의성실성을엿볼수있는바,이미‘작가의말’에서밝히기를,“생명이있는모든것들이존재의이유를스스로해명하지않듯이저도묵묵히글쓰기에집중할뿐”이라고한다.그러면서도작품에공감하는바가남다르다.이언주의시를읽으면서표출하는다음과같은문장에서그것은여실히드러난다.

엄격한의미에서타인의고통을내것으로하는건불가능하다.그고통을다소줄여줄수는있을것이나근본적으로해결해주는일또한인간의능력밖의일이다.하지만그들과아픔을함께하며,그들이받은고통을우리시대의질병이나인간존재의미미함으로인식하는일은귀하다.비천함과고귀함을넘어인간으로서의속됨과성스러움의실체를증명하는시편들을통해우리에게전달되는음률의강렬함을외면할수없는이유이다.(「시를통한연대의가능성」,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