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에서‘입멸’까지
그렇다면김형로시인이상상하는“느것나것없는좋은시상”이나“피와땀과숨이어우러진대동세상”의구체적인이미지는무엇일까.시가추상적이고큰언어만뱉고말면그만이아닌것은이제누구나하는사실이다.그렇다고시인에게구체적인현실의모습을그려달라고할수있는것도아니다.도리어김형로시인이그리는그‘세상’의모습은비탄과죽임의순간에도숨쉬고있었다.
자식잃은에미가
팽목항에서서울까지도보행진나설때
칼바람뼛속까지몰아치는날
모르는사람이목도리를에미목에둘러준다
제것을벗어아무말없이,슬쩍
_「슬쩍」부분
“자식잃은에미”가참담한심정으로그원인을밝혀달라고“팽목항에서서울까지도보행진나설때”누군가칼바람을덜어줄목도리를둘러주는그짧은순간.거창하지도않고그렇다고문제를곧장해결해주는것도아니지만고통을덜어주는작은행동들의연합또는겹침을김형로시인은꿈꾸고있다.시인은거짓선지자의적일수밖에없다.큰것을상상해도시의언어는언제나풀잎처럼생생해야하기때문이다.김형로시인도그것을너무도잘알고있다.삶을삶답게해주는것은이런‘슬쩍의윤리’(김동현)의지속인것임을.그작은것들또는짧은순간들의힘이역사의무게를지탱하게해주는하부가된다는것을.
한그릇국밥
알아주는이에게목숨버리겠다는듯
후룩크읍쩝험험후루크윽
제무덤속으로주저없이몸을던진다
_「국밥한그릇」부분
이시는“한그릇국밥”이주체인데,국밥은자신을“알아주는이에게목숨”을버린다.“주저없이몸을”던져다른몸이되는것이다.따라서“제무덤”은죽음이아니라부활이된다.「국밥한그릇」이제주4?3과광주5?18을회피하지않은목숨들을상징하는것은아니겠지만,김형로시인이『숨비기그늘』전체를통해말하고싶었던것은그역사적참극이단지참극으로끝나지않았다는‘진실’이다.그런데이진실을이해하는것을넘어진실과한몸이되는일은또여간한일이아니다.그것은우리의삶이“법조문침바르는잔챙이”나“계산만해대는조무래기”가되지않고“풍찬노숙천둥소리”(「어디없나」)가되어야가능한일이기때문이다.
시가삶의도(道)와덕(德)을떠나자율적으로존재한다는근대시의오랜병폐에서김형로시인의시는훌쩍벗어나있다.그렇다고해서추상적이고관념적인읊조림에머무는것도아니다.삶의도(道)와덕(德)을훼손시키려는역사의진행에맞서다온삶이참극이되어버린존재들을능동적으로받아들여시인스스로새로운삶의도(道)와덕(德)을묻고있을뿐이다.굴비의생을통해불가해한역사의시간을회피하지않고도리어그것을긍정하면서통과해야만입멸에이를수있다고말할때,시인김형로가품고있는새로운삶의도(道)와덕(德)이구체적으로드러난다.
엮걸이에달리며저굴비의아가미엔짠소금이구름처럼왔을것이고
짠바다에서더짠소금속에들어가는몰입을배웠을것이고
속을버리고자세만남은몸으로하나의몸짓,하나의표정이되어아직끝나지않은길에서마르고있는것이고
그것이입멸이란것이고
_「굴비」부분
추천사
김형로의시집은자기해방을위한결단의시로가득차있다.이전시집이“총체적이고다면적인존재의본질을깨우치게하여,무의미하고무료한존재성을깨뜨려주게하는복음”(문학평론가김경복)으로다가왔다면,이번신작시집은이른바‘국가폭력’에의해희생된사람들과그넋을위무하는데초점이맞춰져있다.제주4·3인민항쟁,광주5·18민중항쟁을집중조명함은물론,
4·16세월호와10·29이태원대참사등에대한끈덕진탐구를통해김형로시인은참혹한역사현장,무도한정치현장속에서희생된영혼들에게새로운생명을부여하고있다.예컨대「슬쩍」,「북향비탈의세한도」,「보리밭에서푸른하늘을」,「내새끼를왜이러냐고」,「부끄러움은힘이세다」,「그바다그골목의아이히만」등의시편은일상적삶이역사의이면으로떠오르는순간을절묘하게포착해내고있는절창이다.말하자면그는역사의그늘에감추어진사람들의신음소리를새롭게발굴해냄으로써이즈음한국시가잃어버린‘서사’를복원하고있다.일상의,역사의거친파도를헤쳐나가기위한김형로의시적깃발은결코‘시대정신’을놓지않는다.우리들에게전면적인해방의행동세계로나아갈것을촉구하고있는것이다.(이승철,시인?한국문학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