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먼저 울어버릴 때 - 삶창시선 79

가슴이 먼저 울어버릴 때 - 삶창시선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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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노식

저자:박노식

2015년『유심』에「화순장을다녀와서」외4편으로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고개숙인모든것』『시인은외톨이처럼』『마음밖의풍경』『길에서만난눈송이처럼』등을펴냈으며,2018년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수혜했다.현재화순군한천면오지에서시창작에몰두하며‘시인문병란의집’큐레이터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시인의말·5

1부

괜찮아·12
나는왜노박덩굴을사랑하는가·14
그계절의풍경속에서·16
손을모아봐·17
목련의겨울눈·18
고흐의아주사소한독백하나·20
겨울,미루나무아래에서면·22
찬물가의나무처럼·24
생존의무늬·25
섬진강·26
숯·27
새벽세시의망상·28
어떤독백·30
일생의기다림은가슴에새기는거야·3

2부

너의편지와이른저녁의눈·36
몸이계절이다·38
백자달항아리꽃·39
저녁이내릴무렵·40
창밖의초록이파리·41
다리위에서의몽상1·42
다리위에서의몽상2·43
다리위에서의몽상3·44
가슴이먼저울어버릴때·45
그봄날을잊지말아요·46
가을하늘·47
무아의경지에이른새·48
홀로핀꽃·50
너무오래그리운강가에앉아·51
누가너더러시쓰래?·52
잎·54

3부

폭설의하루·56
폭설전야·57
빛이그리울때·58
정서(情緖)·60
오월에떠난벗·63
고양이의무덤·66
외로운집·68
안경을쓰고싶은아침·70
처연한것은팔짱을끼게하고·71
봄비내리는소리·72
임하도화가조병연·74
미인은자기를놓아버리고싶을거야·76
김광석의옆얼굴·77
능주역·78

4부

그다리를건널때·84
좀살펴봐·86
그물·87
티없는하늘은설움을준다·88
잠시비그친들녘·90
나를벗고싶어질때·92
업보·94
밀걸레·96
손수레·97
눈칫밥·98
새들의안부를묻고싶어질때가있다·100
검버섯·102
눈위의새발자국·103
굽은나무·104
붉은꽃잎을보며·105
등·106
그여자·108
손님도시처럼맞이하나봐요?·110
배후·111
지난계절은·112

해설
‘속울음’의깊이가미치는감응력(고명철)·113

출판사 서평

‘몸’의서정,그러나…

가슴이먼저울어버린다는것은,모두시(詩)다!
시인이사물과함께‘울음’에동참함으로써드디어시가꽃핀다.
박노식시인이이렇게사물의‘울음’에감응하는것은어쩌면시인자신의가슴에이미울음이당도해있기때문일것이다.일단표제작에서부터그것이드러난다.

눈그친후의햇살은마른나뭇가지를분질러놓는다
때로눈부심은상처를남기고
산새는그나뭇가지에앉아지저귀거나종종거리지만
시린몸이노래가될때까지겨울나무는견딘다
하지만그가눈물을보이지않는것은가슴이먼저울어버리기때문이다
_「가슴이먼저울어버릴때」전문

박노식시인은,햇살에가지가부러진겨울나무가“노래가될때까지”견디는것은나무의“가슴이먼저울어버리기때문”이라고한다.삶에는상처가도처에그리고아무때나있다.위시에서도비바람이나폭설이상처를남기는것이아니라“눈부심”이상처를남긴다고말하고있다.여기서“눈부심”은광학적인차원의것이아니라그전에내린‘눈’까지포함하는생(生)의서사를가리킨다.박노식시인에게생은결국“눈부심”이지만그렇다고마냥‘환희’이거나달관이이루어낸무갈등의세계가아니다.도리어“시린몸”이면서그것을초월하려는몸짓이라고말하고있는것같다.그리고“울음”은그몸짓의다른이름이고,시인이가닿고싶은초월의자리는“노래”이며어떤시편들에서는“꽃”으로표현된다.
「가슴이먼저울어버릴때」다음에실린작품인「그봄날을잊지말아요」에서도‘울음’을말하고있거니와,「그봄날을잊지말아요」는다음과같이시작된다.

그봄날에울어본이는설움의극치를아는사람
어찌하여잠못드는밤에별들마저숨어버리는지
새들은소리를잃고바다는파도를잃었네
땅은검고하늘은부옇고나무들은메말라서암흑뿐,
너의다섯발가락과너의다섯손가락이지워졌네
초침이떨어져시계는온전치못하고,
누가저암울한유리벽을깨부수고
올바른우리의숨소리를바로살릴수있을까
_「그봄날을잊지말아요」부분

이시에서우리는박노식시인의“울음”이단지자기감상이아니라삶을‘몸’으로살아가야하는“설움”때문에발생한것임을명징하게확인하게된다.“설움”의순간에는별들도숨고,“새들은소리를잃고바다는파도를”잃는다.이구절이하는1연에서말한“설움의극치”가구체적으로무엇인지보여주는이미지의성좌(星座)다.하지만시인은“떠나지말자”고한다.도리어“잔잔한파도를만들고아름다운아지랑이를만들”자고한다.그런데어투가독백같다.그리고이독백투의발성이박노식시의서정을이룬다.박노식시인의시에서명령이나주장을느낄수없는것은바로이독백의서정때문이며,이독백은시인자신을향하는것이기에독자들의가슴을뒤덮는운무(雲霧)가된다.이렇게시는시인에게서나오지만그사방을휘감으며영혼의공동체를만드는것이기도하다.

몸너머의노래와꽃

서정시를단지가슴으로쓰는것이라는인식은자칫하면가슴마저‘몸’이라는진리를놓치고는한다.물론서정시는순간순간‘몸’을떠날때가있고‘몸’을초월한다른세계를펼쳐보이기도한다.박노식시인에게도그런순간들이있음을부인할수는없지만그근원과거기에이를수밖에없는여정을감안한다면그것이어떤초월의날갯짓임을느낄수있다.몸-세계에서받은상처를스스로치유하려는이러한시적상태는다른사물과감응하면서몸-세계를넘어서려는‘수동적의지’에다름아니다.예컨대,다음과같은물증(?)들을읽어보면어떨까.

번개가다녀간나의몸은이제숯이되었다

아지랑이든흰구름이든풀벌레소리든눈보라든내심장의근심들도모두숯속에있다
_「숯」부분

봄이내몸을일구며겨드랑이에씨앗을뿌리고오금에는수선화를심는다

몸이계절이다
_「몸이계절이다」부분

직접적으로“몸”이말해졌다고해서박노식시를‘몸의시’라고불러서는안된다.「섬진강」에서도‘몸’이어떤식으로든박노식시의핵심임을보여주는데,물론박노식시인은몸을몸으로밀고나가지는않는다.「섬진강」에서“적막을배우려거든”“귀를빼앗기고/온전히자기를잃는순간”을말하고있지않은가.다만시인은몸을벗어나는것이“자기를잃는”것이라고말하고있다.“자기를잃는순간”(=“무아의경지”,「무아의경지에이른새」)이곧‘노래’이고‘꽃’이라는것은두말할필요도없지만,이‘노래’와‘꽃’이결국‘몸’이없었다면꿈꿔지지않았을것이다.따라서박노식시인이염원하는초월이란‘몸’을버리는것이아니라‘몸’을철저하게서러워하면서가는길이라고부를수도있다.설령세인들이“누가너더러시쓰래?”(「누가너더러시쓰래?」)라고조롱을하더라도말이다.이조롱이어쩌면시인의시를깊어지게했는지도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