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무덤 :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학살의 역사

빨갱이 무덤 :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학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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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민간인 학살 사건을 알리기 위해 영화를 만들면 만들수록 경제림을 수반한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그럼에도 이 사건에 손을 놓지 못하는 내가 야속했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지역에서도 학살지만 보였다. 민간인 학살 사건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 깊이 무겁게 박혀버린 까닭이다.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100만 명이 학살되었다는 자국의 민간인 학살 사건에 무관심한 사회도 안타까웠다.
올해는 한국전쟁이 발생한 지 74년을 맞는다. 당시 학살을 목격했던 이들과 1세대 유족 대부분이 세상을 떠났다. 20년 세월 동안 70~80대 노인을 대상으로 학살 사건을 찾던 나도 60세에 가까워졌다. 이제 민간인 학살 사건을 소재로 한 마지막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이 영화 제작을 마치면 이제 민간인 학살 사건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더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완전히 학살 사건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책머리에’ 중에서
저자

구자환

저자:구자환
2003년3월~2019년8월까지『민중의소리』기자로일했다.
2015년에민간인학살다큐멘터리영화<레드툼>을,2018년에는민간인학살다큐멘터리영화<해원>을제작,개봉했다.
2021년4월~2022년5월사이‘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조사관으로일했으며2022년에민간인학살다큐<태안>을제작개봉했다.현재는민간인학살다큐멘터리영화<장흥1950>을제작중이다.

목차


책머리에5

1부창원지역민간인학살―이래도속고저래도속고/17
하늘도무너지고땅도꺼지던‘그해6월’/18
괭이바다―바다를떠도는영혼/76
봉인된죽음의산야/118

2부함안지역민간인학살―목잘린남편/151

3부창녕지역민간인학살―백지에찍은도장/159

4부진주지역민간인학살―아들과함께묶일걸/185

5부산청지역민간인학살―학살의대지에비가내리고/207

6부의령지역민간인학살―그사람들살려주었으면어떻겠노/229

7부사천지역민간인학살―학살이자행된섬에는뱀만이들끓었다/269

8부통영지역민간인학살―억울하게죽은사람만억울하지/277

9부거제지역민간인학살―통곡의섬거제도/299

부록―한국전쟁전후경남지역주요민간인학살지및매장지/312

출판사 서평

경남지역민간인학살의진실

영화감독구자환이,자신이만든민간인학살다큐영화에서다하지못한말을책으로펴냈다.경남지역에한한아쉬움은있지만,학살피해자의가족과목격자를만나인터뷰를하고,학살지를발굴하고,자료를뒤적여이루어낸기록이다.저자의말대로한국전쟁발발70년이넘으면서증언자가점점사라지고있는현실속에서이책의의미는남다르다할것이다.그동안두려움과상처때문에증언을꺼리던피해자가족과목격자의말을받아적고또영상으로찍으면서저자또한힘든여정을지내왔다.일단집단학살이사람들에게심어준트라우마를저자또한감당해야했기에그랬다.마지막영화를찍으면“민간인학살사건에서벗어나려고한다”는말에서도그것이느껴진다.

저자가다큐멘타리영화를찍으면서확인한학살현장및증언은어떤시대가오건,또아무리시간이지난다고해도지워져서는안되는우리역사의기록이다.아픈기억은지우고좋은기억은살리는것이역사는아니다.역사는그모든것을힘들면힘든대로좋으면좋은대로후대가받아안아서미래에넘겨줘야하는것이다.그런면에서구자환감독의이번책은역사를대하는귀감이된다.누구나아픔은망각하고싶은것이지만아픔의망각은좋은기억마저왜곡하기마련이고,그렇게되면역사는편의에따라취사선택된다.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은우리역사의아픔중에서도아주큰아픔이다.하지만이기억을맞대면하는용기가많아질수록아픔의치유는빨라지고또좋은결과를가져올것이다.

진주시사봉면대곡리이혜기할머니도당시스물한살이던남편을잃었다.남편은좌익이무엇인지우익이무엇인지몰랐다.동네사람들이한번가보자고해서갔던길에보도연맹에가입했다.그일이비극이될줄몰랐다.남편은1950년음력6월1일동네사람들과회의하러간다고나갔다가돌아오지않았다.(49쪽)

이책은역사에대한일반론적인또는교양적인내용으로이루어진것이아니라,위의인용처럼구체적인사실을기록하고있다.중요한것은이기록이바로민중들의아픔에관한것이라는점이다.주로한국전쟁전국민보도연맹원학살사건을다루고있는데,그만큼국민보도연맹학살사건이깊은응어리로남아서이기도하지만국민보도연맹자체가국가의거대한속임수였기때문이기도하다.좌익이뭔지도모르고가입하라고해서가입했다가불려나가학살당했다는증언은이책전체에걸쳐되풀이된다.지금의관점에서보면이해할수없는일이지만,한국전쟁전에는이런일들이비일비재했음을이책은고발하고있다.
학살의방법이나희생자의처리문제도충격적인데,동네주민들에게희생자들을매장하게하거나아예수장을하기도했다.심지어수장된희생자들의시체가대마도까지떠내려간경우도있었다.

한국전쟁당시마산형무소에서전차상륙함(LST)을타고괭이바다에서학살된민간인일부의시신은해류를타고일본대마도(쓰시마)로떠밀려갔다.거제도지심도인근에서수장된이들과부산형무소에서갇혀오륙도앞바다에서수장된이들일부도대마도로떠내려갔다.이보다앞서제주4·3항쟁과여순항쟁관련자로추정되는이들도시신이되어대마도해안에떠올랐다.(31~32쪽)

어쩌면독자들은반복되는학살기록때문에현기증을일으킬수도있지만학살전의사정과학살후의상황을함께꿰맞춰가다보면이승만정권의국가폭력에몸을떨것이다.학살자체도용납할수없지만그이유와사후대처에서최소한의합리성과인간에대한예의를찾아볼수없기때문이다.그래서피해자가족에게가해지는2차폭력이차라리자연스럽게(?)느껴진다.

‘빨갱이’는국가폭력의언어일뿐

한국전쟁이후의적잖은세월은희생자가족의입을막아온시간이며동시에연좌제등을통한2차가해의시간이기도했다.

어떻게해서라도자식을키워야했다.남편이죽임을당한이후로김수가는진해,부산등지를오가며안해본장사가없을정도로악착스럽게살았다.하지만억울하게남편을잃은하소연은어디에도할수없었다.악착스럽게키운큰아들과작은아들은연좌제로피해를보아야했다.큰아들은공무원에합격하지못했고,작은아들은공군사관학교시험에합격했으나신원조사이후에탈락했다.그들에겐어떻게해볼수없는세상이기다리고있었다.(128쪽)

이모든것이학살사실을은폐하기위함임은두말할필요도없다.도리어학살지는자연재해로인해소실되기까지했다.“태풍이들이닥친이후시신을묻은장소가해일에밀려사라”(302쪽)지기도했던것이다.가장의죽음으로인한생활고,그리고여기에덧대진국가의입막음과연좌제로인한추가폭력이더해졌다.이렇게되면피해자가족은체념하거나또는그런시간이다시올지모른다는깊은두려움을갖기마련이다.왜냐면우리는아직분단체제에살고있기때문이다.이말은,학살이해방이후벌어진분단때문임을가리키는동시에그것이희생자가족의뼈에새겨졌다는사실도의미한다.

잠시먼산을응시하던할머니는체념한듯우리를바라보며말을이었다.옛날에는이일을말하지도못했고,이일을묻고다니다가는잡혀갔을것이라고했다.좋은세상이왔지만,할머니는겁이난다며고개를좌우로흔들었다.무엇때문에겁이나느냐고내가물었다.
“해나(행여)또돌아올까싶어서.옛날세상돌아올까싶어서겁이나는거라.아직까지남북이안갈려있는교.갈려있는데겁이안날턱이있나.겁이나는데.”(266쪽)

민간인학살은한국전쟁전부터줄기차게일어났던바,이승만정권은남한에북한의적이존재한다는두려움과광기어린집착에휩싸여있었다.우리가아는‘빨갱이’의탄생은그런현실적맥락속에서이루어졌다.분단에반대하거나일제식민지시절의친일경찰을미워하는감정까지도빨갱이의증표로삼았던것은그동안충분히밝혀진사실이다.

저자는그래서아예이책의제목을‘빨갱이의무덤’이라고붙였는데,이것은이승만정권이차라리이념전쟁을벌였다는것을의미하는게아니라자신의권력을공고히하기위해‘빨갱이’를필요로했던감춰진진실을겨냥한것이다.하지만우리사회에서는너무오랫동안빨갱이라는말을어떤이유에서건쓰지못하게했다.사실여부를떠나그만큼강력한낙인효과를가졌기때문이다.하지만그낙인효과를제거하기위해서라도빨갱이라는이름으로학살당한이들의원혼을달래주고명예를회복시켜줘야하는게급선무다.빨갱이가아니었음을밝혀주는차원을떠나‘빨갱이’라는언어자체가이승만정권의폭력과독재를정당화시켜주었기때문이다.말하자면민간인학살피해자와그가족의복권,그리고학살의반복을피하기위해서라도수동적인방어와변명이아니라민간인학살은일방적이고비이성적인국가폭력일뿐임을폭로하는일이필요하다.저자가‘책을펴내며’에서다음과같이말하는이유가그것이다.

제목을‘빨갱이무덤’으로지은이유는“당신들이빨갱이라고죽인사람들이누구인지봐라”고항의를하기위해서다.다른하나는한국사회에만연하는레드콤플렉스를없애고싶었다.(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