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기억하고 있다 - 삶창시선 82

몸이 기억하고 있다 - 삶창시선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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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한주

저자:이한주
1966년서울에서태어났다.
1992년윤상원문학상과1993년임수경통일문학상을수상하면서작품활동시작했다.
시집『평화시장』『비로소웃다』,시산문집『너희들키만큼내마음도자랐을까』를펴냈다.
‘내림’동인과‘일과시’동인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시인의말4

1부

1호선전동열차차장·13
화서역·14
우공이산·16
광운대행열차·18
1호선·20
관악역에서·21
몸이기억하고있다·22
천안·24
오산역·25
오병이어·26
존중·28
명퇴·29
끝·30
고맙습니다·31
한국철도랩터스·32
일과시1·34

2부

안부·39
어버이날·40
그중의하나·42
손절·44
이력서·46
아내의손·48
꼼꼼바느질·49
김밥천국·50
아버지도이러셨겠구나·51
사회생활·52
조암동서·54
아따참말로시상재미지네·56
내자리·57
일과시2·58

3부

몸·63
가지않은길·64
출판기념회·66
금서·68
퇴고·70
겉멋·72
Best댓글·74
전성기·76
욕심·77
코로나19·78
네편·79
내가기억하마·80
돌아오지않는봄·81
포수미트·82
일과시3·83

4부

봄비·87
눈·88
내몸만모른다·89
에베레스트세르파,아파·90
하이테크·91
설날기차표예매·92
금의환향·93
인구주택총조사·94
거울·96
열여덟딸에게·97
한지붕두가족·98
저잘있습니다·100

발문

선한싸움을마친노동자시인에게바치는
헌사(조호진)·101

출판사 서평

‘뒷것’시인이한주

얼마전어느한방송에의해‘뒷것’이라는말이회자되었다.너도나도‘뒷것’이되어야겠다고말을해댔다.하지만‘뒷것’은아무나되는게아니다.아무래도그런말을들으려면천성도천성이지만묵묵한열정을살지않고는불가능한것이다.이한주시인의이번시집에는시인자신도모르게‘뒷것’의태도가배어있다.이한주시인에게는“손내밀면/언제든네편이라고해야겠다”(「네편」)는마음자세가있는것이다.

직장인야구25년차후보포수
밤샘근무마치고온동료의공을
놓치지않고잘잡아주고싶어서
집에데려와
왁스밥든든히먹여놓았다
_「포수미트」부분

“직장인야구25년차후보포수”이지만“동료의공을/놓치지않고잘잡아주고싶어서”언제나포수미트에왁스를먹여놓는다.그런데이것이한인간의선량함만을의미하는것일까?그것은그렇지않다.이한주시인에게는“말로때운것들이깨지고/생각으로지은것들이흔들릴때/저멀리/햇빛그을린”(「조암동서」)‘무엇’이있다.어쩌면시쓰기란“저멀리”에서빛나는“햇빛그을린”그것을꿈꾸고간직하고연마하는일인지모른다.만일시쓰기의본질에그런것이있다면이에해당하는시인이바로이한주시인이다.
이한주시인은31년동안철도노동자로일하면서철도파업에도열심히참여한시인이다.시인자신은“대규모사업장파업출정식에/내시가호외처럼뿌려지는꿈”(「가지않은길」)을꾸기도했지만그일이벌어지기에는아무래도‘뒷것’의마음이더강했던것같다.그래서그런꿈을누구에게말도하지못한것이다.그래서시인의눈길은언제나자신의내면을투명하게응시하고있거니와단지추상적인성찰이아니라자신의‘몸’을통째로바라보고있는것이다.그런데‘통째로바라봄’은결국어디에닿는가.그것은“내詩인들내것이겠는가”(「몸」)에서보이듯어떤무욕의경지이다.그리고그것을이한주시인은‘몸이기억하고있다’고한다.몸이기억한다는말은,단순하게‘신체기억’을말하는것이아니라몸이자신과함께살아온존재들에게개방되어있음을가리키며,그래서다른존재들이시인의몸을자유롭게지나가고또들어오고나간다는뜻이다.이것을단지인간적인선량함으로해석하면안된다.

존재의뒷면

몸이타자를향해개방되어있다는말은그것자체로‘좋음’은아니다.왜냐하면자본주의사회에실존하는것들은끊임없이자연(self-so)으로서의몸을괴롭히고훼손하기때문이다.특히나임금노동자로산다는것은바로자신의몸을자본주의사회에내주어야생존할수있음을의미한다.물론사람은‘일’을해야삶에필요한물질을얻을수있고동시에정신의건강도유지할수있다.하지만자본주의임금노동은삶을건강하게하는‘일’이아니라생존을담보로한노역에지나지않는다.이한주의시에등장하는화자들도마찬가지다.

고객님의건강이가정의행복이라는
안내방송을
하루세끼꼬박꼬박챙기면서도
정작내몸만모른다
25,000V전차선아래
대롱대롱매달려있는
만성피로위궤양
_「내몸만모른다」부분

현실은이런“만성피로위궤양”을‘산업재해’라고부르지만,그것은또하나의관리언어이지삶(몸)자체의언어는아니다.‘산업재해’라는말은임금노동에뒤따라오는자연스러운결과임을가리키면서그훼손된몸을다시의료산업에맡기면된다는암묵적전제가있기때문이다.사실시는이런관리언어와도그본질을달리하는것아닐까.그래서이한주시인은점점떨어지는시력을두고도이렇게말하는것이다.“그전처럼보이는대로/또렷또렷말할자신이없어/한발더가까이가서/깊숙이본다”(「눈」).즉이제는잘보이지않는눈을병원에가서고치거나완화하는게아니라반대로깊숙이보려고한발더가까이가는것이다.‘한발더가까이감’은결국자신의몸을다른존재들에게바투당기는일이며이런행위자체가몸을다른존재에게개방하는것에다름아니다.그럴때무슨일이벌어지는가?

먹고살기위해
내몸무게만큼
저들의일용할양식을지고오르는
눈덮인출근길
눈물글썽아내의배웅을받으며
잠든아이가따라밟을까
_「에베레스트세르파,아파」부분

그것은어떤존재의뒷면이보이기시작하는것인데따지고보면그것은임금노동을해야생존이가능한시인자신의뒷면이기도하다.이렇게아픈뒷면을공유해야만“뻔하고숨막히는작업장/촛불처럼/온몸으로외칠수”(「내가기억하마」)있게된다.이번시집에서는전면적으로드러나지는않았지만,이한주시인이꿈꾸는것은“그깟된장쪼깐퍼준것뿐인디고거시발이달렸는가요것댔다조것댔다”(「아따참말로시상재미지네」)하는세상이다.
이시집은그것을단지외치지만않을뿐이지시인이뒷것으로물러나있는방식으로꿈꾸는내밀한고백록인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