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보고 싶은 날의 하늘은 무슨 색일까 (해방글터 동인시집)

살아 보고 싶은 날의 하늘은 무슨 색일까 (해방글터 동인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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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삶의 현장에서 피어난 시들!
노동자 창작집단 해방글터의 다섯 번째 동인집에는 시와 산문, 그림일기, 노래 등이 다양하게 모아져 있다.
해방글터 동인들이 현장에서 힘써 연대하며 쓴 시들과 생활의 섬세한 결이 담긴 산문과 노래 악보와 가사 등을 모아 낸 이번 동인집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발간사’에서 해방글터 동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해방글터는 현장에서 골병든 몸들이 토해낸 고통과 10년 가까이 불법파견과 싸워왔던 비정규직 노동자들 곁에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에서 탈락될까 걱정인 친구에게 전태일 열사 옛집 수리 일을 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실제로 이 책에 실린 작품들 중에도 현장에서 씌어진 게 다수다. 해방글터 동인들의 작품이 지식인의 ‘선언’과 다른 점은 여기에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들이 현장의 사람들이며 문학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과 같은 시가 그 예에 해당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공장 회식할 때면 술이 약한 그녀는 자주 운다
힘들다고……
남정네 일하는 만큼 잘하는 그녀
공장 일도 집안 살림도 세상살이도
많이 지치고 힘들었나 보다
200도 기계 열에 익은 그녀의 빨개진 얼굴이
질기고 질긴 여름 같다
_배순덕, 「여름을 닮은 그녀」 부분

이 시는 시인이 일하는 공장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또 다른 굴레에 대한 시각이 이채로운 것은 마지막 행인 “질기고 질긴 여름”이라는 데서 잘 드러난다. 이 땅에서 여성이면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이 쉬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리얼리티가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질기고 질긴”에서 어떤 강인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시인들에게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한다. 조선남 시인은 동학농민혁명군의 지도자 김개남의 넋을 부르며 이렇게 말한다. “개남장, 그를 기억함으로/ 여전히도 높은 신분의 벽만큼 높은/ 빈부의 높은 벽,/ 신분 세습의 장벽 높은 부의 세습/ 가난의 대물림/ 차별과, 불평등 장벽을 허물고자 하는 것이다”.(조선남, 「다시 혁명의 깃발을 올려라」 부분)
저자

배순덕,조선남,조성웅,신경현,이규동,전상순,차헌호,우창수

저자:배순덕
1963년강원도동해에서태어났다.해방글터동인으로활동하며부산정관공단자동차부품공장에서일하고있다.

저자:조선남
1966년대구에서태어났다.『노동해방문학』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희망수첩』『눈물도때로는희망』『겨울나무로우는바람의소리』가있다.대구지역마을목수로활동하고있다.

저자:조성웅
1969년강원도강릉에서태어났다.시집『절망하기에도지친시간속에길이있다』『물으면서전진한다』『식물성투쟁의지』『중심은비어있었다』가있다.

저자:신경현
1973년경북안동에서태어났다.시집『그노래를들어라』『따뜻한밥』『당부』가있다.공공운수노조대경본부에서조직국장으로활동하고있다.

저자:이규동
1973년충북제천에서태어났다.전북남원지리산자락에서농사를지으며초등학교학생들과생활하고있다.

저자:전상순
1963년대구에서태어났다.충북영동에서30년째농사를지으며『작은책』에달력그림과수필을기고하고있다.

저자:차헌호
1973년상주에서태어났다.금속노조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장으로활동하고있다.저서아사히글라스조합원들과함께한『들꽃공단에피다』,구미금강화섬점거투쟁을기록한『공장은노동자의것이다』가있다.

저자:우창수
1967년경기도여주에서태어났다.현재우포늪가마을에살고있다.가수겸작곡가.노래집『빵과서커스』『우리개똥이하는말』,동시·동요집『우포늪엔맨발로오세요』,무위당20주기기념음반『나는미처몰랐네그대가나였음』을세상에내놓았다.해방글터시노래음반『환하게』제작에참여하였다.시와노래는한몸이었고,노래도가사문학이라는생각을가지고있다.

목차

발간사5

1부시

배순덕
골병/16
기본은지킵시다1/18
기본은지킵시다2/19
공장잘돌아간다/20
여름을닮은그녀/21
할미꽃/23

조선남
오래된기억/26
연민/28
미싱두대/30
다시혁명의깃발을올려라/32
십년,아직끝나지않은투쟁/36
냉이꽃/39
아빠의소원/40
온전한인간/43
엄마생일선물상품권/46
광대나물풀은앞다투어꽃피었다/48

조성웅
맨발에새겨진흙의감각/52
사려깊은배려로꽉채워진삶/55
순둥순둥거리의성자/56
베인자리가아무는것같아/59
덜꽃농장/61
씨앗들의봉기/65
모든강령은지상으로내려와야한다/68
해밀/72
비어있는곳을채우며강물은흐른다/76
칠요(七曜)/79

신경현
분자씨/84
긍지를배신하지않는다/85
농성장에서쓰는편지/86
밥/87
이폐허를응시하라/88
바다/89
안전운임제쟁취/90
요단강/91
강령/92
최저임금/93

이규동
흙밥/96
품다/97
밥상/98
스스로선것들은푸르다약속/99
마음이오가는길/102
풀/103
입춘(立春)/104
귀신/106
움트다/107

2부그림/산문

전상순
여수새끼/112
아버지와장롱/116
곰같은여편네/119
오살나게더움/122
담배한대짜리휴식/126

차헌호
아사히투쟁의의미/130
아사히공장정문에꽃이…/133

3부시와노래

우창수
절망그만큼의희망/138
참좋은사람참좋은동지/144
봄날/151
산책/152
노래나무/153

출판사 서평

자기삶을기록하다

시는기본적으로시인자신의삶과타자의삶이만나서발생하는공통적인언어로이루어진다.그렇다면시인자신의삶이시에서드러날수밖에없고자신의삶에대한돌아봄혹은깊이봄이서정시의근간이되겠다.타자의삶에공감하고공명하려면어쨌든이과정을거쳐야하는것이다,시는인식만으로쓰는게아니기때문이다.“가난의대물림”이우리가사는현실의진실이고,그것에대해목소리를낸다는것은그러한삶에도긍지가있어야한다는긍정이있기에가능할것이다.그런면에서신경현시인의시를읽어볼수있다.

정기적고정적으로파고드는슬픔과눈물을이겨내기위해
혼자가아닌이름들,
흔들리는촛불처럼
끝끝내
긍지를배신하지않는다
_신경현,「긍지를배신하지않는다」부분

노동자의삶이단지경제적불평등때문에존중받아야하는것은아니다.경제적불평등을가능하게한것은노동자의삶을값싼비용으로보려는,즉삶에대한긍지를제거하려는의도에있다.노동자가긍지를갖는한노동자의삶을노동력으로치환이불가능하기때문이다.신경현시인은이점을꿰뚫어보면서노동자들은“긍지를배신하지않는다”고말하고있다.결국시가시인자신의삶을노래하면서타자의삶에깊이공명하는것이라면“긍지를배신하지않는다”는말은시인자신에게하는말일수도있다.

해방글터동인들의다섯번째동인집『살아보고싶은날의하늘은무슨색일까』에는이외에도디테일한생활을기록한그림일기가실려있고,음악의노랫말과악보도실려있는앤솔러지다.동인각자가자신의자리에서살면서배우고투쟁한기록들인셈이다.실제로차헌호는구미아사히글라스에서비정규직노조를만들었다는이유로해고되어아주긴시간을싸운당사자이기도하다.

책속에서

새벽서너시불켜지는공장
도급노동자들출근해서기계돌리고
5시반장출근해서기계돌리고
8시시작되는정시출근
오후엔도급이퇴근하고
5시일거리없는사람퇴근하고
8시잔업했던사람
밤10시외국인노동자퇴근하고
밤낮으로불켜진공장
기계는잘돌아가는데
납품줄어든공정서너명,
일거리없다고무급으로며칠쉬어야하는동료입에서
“공장잘돌아간다.”
_「공장잘돌아간다」(배순덕)전문

이십년전
혹은삼십년전
거기에서멈춰버린오래된기억
이미사라진골목길을더듬는것처럼
아무것도남아있지않다
꽃이피었다진다고해도
해마다꽃은피고
단풍으로붉어진추억이지나간다해도
해마다가을은오는것을

닭이우는새벽
비산동좁은골목길을뛰고있었다
노동자의희망을말하는정치신문을돌렸던오래된기억
거기에서멈춰버린기억은사유의거미줄을친다
잊혀가는것들에대한미련을버리지못하고

해마다붉은꽃이피듯이
기억은지나간사유가아니라
해마다피고지는살아있는꽃이다
오래된고목에도꽃은피듯이
살아있는모든순간이꽃이다

기억은지나간죽음의무덤이아니라
무덤위에핀꽃이다
생명이다
내가너를기억하는그모든순간이혁명이다
-「오래된기억」(조선남)전문

여기는온통설경입니다

아침설경을보고있노라면
차갑고서늘하나
너무맑아눈물이날것같은
순백의따뜻함을느낄때가있습니다

사려깊은배려로꽉채워진,아주정갈한박창이었습니다

언삶,호호입김불어주던그대체온을기억하겠습니다
_「사려깊은배려로꽉채워진삶」(조성웅)전문

무슨잘못을했다고길거리로쫓겨났을까우리는
먹고는살아야할것아니냐
바람막이하나없이맞는찬바람에
들어줄이하나없는중얼거림이쓸쓸해그만둔다
국립대병원주차관리비정규직해고노동자
우리이야기좀들어보라고
흔들리는촛불하나들고집회를하지만
흔들리지않는병원은말이없다
별설명이없어도이제는너무흔한이름
별별설명을해도이해할수없는이름
정기적고정적으로파고드는슬픔과눈물을이겨내기위해
혼자가아닌이름들,
흔들리는촛불처럼
끝끝내
긍지를배신하지않는다
_「긍지를배신하지않는다」(신경현)전문

논에는귀신이산다
땅속에서눈감고있다
어떻게알았을까
논두렁바르고물채우는순간
비집고나와밤마다
꽥꽥꽥꽥
꾸괴괴

말못하고있던것한이된듯
논을살려내라
집짓지말고농사져라
봄밤요란스레채우다가
농사꾼기침소리에
얌전해지는

논에는섬겨야할사람을
틀림없이구별해내는
귀신들이잔뜩산다
_「귀신」(이규동)전문

올해로결혼32년째,장롱을매일열고닫고지냈는데집수리명목과함께오래된그장롱도문밖으로나갔다.문밖이란대문밖이란말이다.자석도떨어져나가문이제대로닫기지도않아문짝앞에뭘공가놔야했었다.그러나막상문밖에나가자기분이안좋다.아직도수거해가지않아삽짝앞에버티고있는데홀로계신아버지생각도나고지난여름황망히떠나신엄마도생각나고고만나는일기쓰면서흑,흑,흑목젖이아프게울고있네.
_「아버지와장롱」(전상순)중


투쟁하는만큼달라진다.투쟁하는만큼쟁취한다.해고자로9년간여러투쟁에연대한만큼우리의투쟁은확대되었다.하나의투쟁은하나로끝나지않는다.모두연결되어있기때문이다.우리의투쟁은동지들의투쟁과연결되어있다.하나의승리가모두의승리가되어야한다.아사히투쟁의승리를많은분들이환호하고기뻐해줘서울컥울컥할때가많다.

우여곡절끝에승리한아사히투쟁은우리모두가함께만든승리다.
_「아사히투쟁의의미」(차헌호)중


불빛하나외로운골목길
빈소주에잠이든어깨하나
바닥을쳤으면일어나야지
절망도꿈이있더라

햇볕한줌꿈꾸던겨울날
울먹이며내미는빈손하나
가난한이웃이주저앉으며
희망은있나묻더라

나와당신의이야기
빈손하나내밀어도좋을

나와당신의이야기
온기하나나누어도좋을

절망그만큼의희망
절망그만큼의희망
_「절망그만큼의희망」(우창수)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