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 골목을 물고

골목이 골목을 물고

$10.00
Description
시의 골목에서 피어난 들꽃 같은 시!
최종천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골목이 골목을 물고』는 인천시 송림동의 골목이라는 특정 장소에 대한 집요한 시적 기록이다. 정확하게는 ‘부동산에 미친’ 대한민국 인천시 송림동에서 벌어진 재개발 때문에 이미 떠났거나 미처 떠나지 못했거나 또는 그 와중에 부서진 존재들과 시인이 나눈 교감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시집에 실린 작품들에 불려 나온 존재들을 일별해봐도 그것은 선명하다. “포클레인의 이빨이 아삭아삭 식감도 좋은지/ 게걸스럽게 처먹고 있”(「6년이나 살았는데」)는 송림동 골목에 서서 시인은 그동안 함께 살아왔던 존재들을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쓸쓸하게 때로는 독설을 뱉으며 자신의 시로 불러들였다. 교회, 고양이, 이웃집 할머니, 미장원, 화분, 자그마한 공터, 꼬마들, 가파른 계단, 냉장고와 싱크대 등등, 사람이건 사물이건, 공간이건 이야기이건 송림동에서 함께 부대껴 살았던 존재들과 사건들이 집중적으로 담겨 있는 것이다. 시인이 느낀 존재들은 저마다 삶을 꾸려가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송림동 골목 자체가 살아 꿈틀대는 장소이기에 그렇다.

저자

최종천

저자:최종천
1986년『세계의문학』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눈물은푸르다』『나의밥그릇이빛난다』『고양이의마술』『인생은짧고기계는영원하다』『그리운네안데르탈인』이있고산문집으로『노동과예술』이있다.제20회신동엽창작상,제5회오장환문학상을받았다.

목차


시인의말/4

1부

6년이나살았는데/12
송림동91의87·1/14
송림동91의87·2/16
쉬고있는자전거/18
전도관/20
지게차특급/22
흥미헤어라인/24
고양이들!/26
고양이홀로남아/28
골목들/30
송림성결교회1/32
송림성결교회2/34
송림동전도관/36
이사가는고양이/38
사라지는화분/40

2부

바른재개발과송림주택조합/42
가스메타/44
떠난집/46
유성철물설비/48
이런개같은경우가/50
전도관이야기/52
자그마한공터/54
까치온날/55
풀들,우거지다/56
현금청산자/58
경진네바느질/60
제물포교회/62
장로회제물포교회/64
짭짤한부수입/66
버려진가구들/68

3부

송림동의슈퍼가전부망한이유/72
가난한자는복이있나니/74
쓰레기봉투앞에서/76
이번감기에게/78
나은이네집계단/80
공손한밥그릇/82
쌈지공원은행나무/85
갓난아기/86
고양이식사/88
영화촬영집대문/90
참,이쁜화분하나/92
골목이골목을물고/94
가지고추상추화분들/96
시간의역사/98
무단투기감시카메라/100

4부

부동산에미친나라/104
주담대/106
개집/108
사이를살다/110
송림동재개발현황/112
이발관대미장원/114
창조주위에건물주/116
개발을하더라도/118
쓰레기수거거부/120
이사비용을받다/122
보유세/124
부동산에미친국민/126
계단들/128
도원피아노/130
경고문/132

해설
공간이시를불러말하길,(정우영)/135

출판사 서평

송림동의골목은특이한점이있다.
막다른골목이많고,돌아오면바로그골목
골목이골목을물고놓아주지않는
미로보다더미로같은골목은
서로의그림자처럼곁에서서
같이걸어주고서로어깨를걸고있다.
덩치작은못난집끼리서로
눈짓을주고받으며
지금막들어선이사람어딜갈까?
알아맞히기라도하는눈치다.
이많은골목들과정이들려면
어슬렁어슬렁걷는강아지의
꽁무니라도따라다닐까보다
_「골목이골목을물고」부분

표제작인「골목이골목을물고」는송림동이라는동네에존재하던사람과사물들이어째서살아숨쉬듯펄떡이는지잘설명해주고있다.이미골목차제가“골목이골목을물고놓아주지않는”공간이기때문이다.심지어“미로같은”골목들은서로어깨도걸기도하며,골목을이루고있는“덩치작은못난집끼리서로/눈짓을주고받으며”산다.그래서낯선누군가가골목에들어서면“이사람어딜갈까?”서로“알아맞히기라도하는눈치다.”골목자체가살아있는생물이니당연히송림동골목에서존재했던존재들이모두살아있는듯꿈틀거리는것이다.
하지만이골목에도찾아오는필멸의그림자가있으니“세월은할일이없어늙어가고/할머니할아버지들은심심해서늙는다.”그런데이필멸은자연스러운게아니라자본주의가강요하는필멸이다.왜냐면송림동골목은“가난한동네”(이상「골목이골목을물고」)이기때문이다.즉도시에서생산된가치와부는송림동골목으로되먹임되지않고송림동골목을집어삼켰다.

감상도연민도없이골목이되다

‘부동산에미친나라’대한민국은살아숨쉬는송림동골목을포클레인의먹성을앞세워해체해버렸다.그래서너도나도떠날수밖에없었는데이짧지않았던해체의과정을최종천시인이세밀하게포착한것이다.그리고이과정속에서벌어진일들을다큐멘터리식으로하지만단지고발이아니라생명력을복원하는방식으로기록한것이다.

무너지고있는담으로둘러싸인
측백나무에덩굴이얽혀있는
햇빛이잘들이치는이곳
엄마아빠에게야단맞은아이가
조용히훌쩍이기좋은곳이다.
부부싸움에박살난것같은
그릇조각들이햇빛에눈을부릅뜨고는
나를뻔히쳐다보고있다.
_「자그마한공터」부분

이작품의마지막은이렇게끝난다.“돌아가는바람이참싱그럽다./가난한동네에아이들이많다고하던데,/이곳송림동은가난한동네는아닌듯하다.”아이들이많아서가난한동네가아니라는이진술은역설(paradoxa)이다.사실“아이가/조용히훌쩍이기좋은곳”이지만지금은“돌아가는바람이참싱그”러울뿐이다.아이들이없다는뜻이다.
한편으로최종천시인은재개발이진행되면서드러나는남루들을숨기지않는다.남루마저삶의단면이기에그럴것인데,늙어감만있고아이들은없는가난한동네이기에그남루는너무도쉽게눈에띄게마련이다.하지만최종천시인은섣부른감상에빠지지도않고연민을통해자기우월을과시하지도않는다.왜냐면그자신이송림동골목의일원이었기때문이다.

그러면내가떼어팔아준주인할머니보일러도
결국에는도둑질이었다는것.
나는그보일러떼어팔아주고주인할머니
7만원내가3만원을챙겼다.
유성철물설비집에서몽키와스패너를빌려썼다.
_「유성철물설비」부분

재개발과정에서버려지다시피한물건을떼어다가팔아먹은사실을천연덕스럽게고백하면서,그도둑질에‘유성철물설비’도어차피공범이라는유머는시적화자가송림동골목에사는다른존재들과“서로어깨를걸고”(「골목이골목을물고」)살아왔기때문에가능한너스레다.
최종천시인의이번시집은‘부동산에미친’천민적인대한민국자본주의에대한직격이면서도시인이먼저분개하거나시인자신을순결한영역에두지않으려는솔직하고담백한태도가이룬드문성취이다.시인은‘시인의말’에서이렇게말한다.“시는생황에복무할때가장좋다.”

추천사

최종천은고리타분하지않다.마음들키는걸두려워하지도않는다.게다가그는,한세계가내게로와익숙해질때까지기다릴줄도안다.송림동으로보면최적의시인을만난것이다.현대에밀려송림동의근대는저물어가지만,최종천의시들이있어완전히바래진않을것같다.당장나만해도익숙한듯낯선이공간에서오랜시간흥겹게머물렀다.공간의필법이공감이라는뜻한바를이루었다고감히말할수있겠다.
―정우영,해설「공간이시를불러말하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