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시간의 지층을 공간의 지평으로 옮긴 시편들
김수열 시인의 8번째 시집 『날혼』은 그동안 김수열 시인이 천착해온 제주도의 역사와 삶에 더욱더 착근된 모습을 보여준다. 김수열 시인의 시는 지금껏 제주4ㆍ3의 상흔을 드러내면서 그것의 치유를 위해 복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시집에서도 제주4ㆍ3의 상처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조명은 살아 있으며, 나아가 국제적인 연대의 감정을 담아 제주4ㆍ3의 세계사적 의미를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제주4ㆍ3이 여타의 제노사이드에 비해 더 참혹했다거나 그 무게가 더 나간다는 우월성(?)을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치지 않는 비극의 반복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작품들이 「데칼로코마니 2」, 「심장 없는 시인, 켓 띠」, 「난징 국수」 등이다. 다음은 「난징 국수」의 부분이다.
전쟁이 필요한 자들은 손바닥 뒤집듯
그 빌미를 만든다 그 결과 수만에서 수백만의
선한 사람들은 총과 칼 때로는 물과 불의 제물이 된다
어린아이였고 노약자였고 주로 여자였다
80년 전 오키나와를 출발한 97식 폭격기가
난징의 모든 것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회항길에 잠시 머물던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_「난징 국수」 부분
위 시는 ‘난징대학살’이 제주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을 들어 보여준다. 그것은 제주도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됨과 동시에 ‘난징대학살’이라는 희대의 사건에 이용당함으로써이다. 다시 말하면, 김수열 시인의 역사를 보는 시적 직관은 시간의 층위를 관통해 공간적 동질성을 확보하는 데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직관은 역사적 사건을 시화(詩化)하는 데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릴 적 기억을 불러낼 때도 어김없이 잃어버린 제주도의 공동체 문화가 딸려 나오는데 단지 과거의 어느 한때를 회고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도리어 현재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공동체 문화가 훼손된 사실에 대한 비판적 관점도 드러난다. 무엇보다 제주도의 음식이나 제사문화, 굿 등 풍속을 재현할 때 김수열 시인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필요에 따라서는 제주도 지방의 옛노래를 차용하기도 한다. 다음은 납일(臘日)의 일부다.
어른들은 제 지내러 향사에 가고
어린것들은 어머니가 정지에서 엿 고는 걸
늬치름 질질 콧물 줄줄 흘리며 지켜본다
흐린좁쌀밥 보따리에 싸 물 섞어 문대기면
노리끼리 좁쌀 물 우러나오고 거기에 보리골 섞어
가마솥에 넣어 나무 주걱으로 살살 저어 끓이면
특별한 날 제상에 올라가는 감주가 되고
그걸 밤새낭 끓여주면 끈적끈적 엿이 된다
닭 넣으면 닭엿
꿩 넣으면 꿩엿
_납일(臘日) 부분
굿시를 통해 제주도의 근대를 치유하다!
이번 시집 『날혼』의 백미는 5부에 실린 일종의 굿시들이다. 마당극 운동을 했던 시인의 경험과 역량이 동원된 굿시들은 물론 제주도에서 있었던 행사들을 위해 써졌지만 장쾌한 호흡과 가락에 제주도의 설화와 과거, 그리고 현실, 공통의 역사의 개별자의 삶이 짜임으로써 오늘날 시인 개인의 자아 중심으로 축소된 현대시의 흐름에 파열을 내고 있다. 특히 「십시일반(十匙一飯)」과 「할마님아 설문대할마님아」에서는 제주 제2공항 등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에코사이드를 고발하는 시지만, 어디까지나 제주도 특유의 공동체 문화와 설화를 복원하려는 시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서안나 시인은 해설인 「제노사이드의 비극성과 ‘장소의 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때 시에서 ‘나’가 ‘장소의 혼’에 주목함으로써, 영혼 들을 인식하는 역할의 위계 설정이 독특하다. ‘나’가 굿판과 조농사에 초대한 4·3 혼령에게 원하는 역할은, 농사 시작과 마무리 그리고 술로 발효시켜 이듬해 4·3 행사에 제주(祭酒)로 진설하는 전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주기를 염원하고 있다.
_「제노사이드의 비극성과 ‘장소의 혼’」 부분
김수열 시인의 이런 작업이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 전통적인 굿 문화가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그것을 보존하는 기획 속에서 시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제주도는 굿 문화가 근대문명의 엄습으로 거의 사라져버린 데다가, 그 위에 에코사이드가 서슴없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어쩌면 이런 현실은 비단 제주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는 뭍과 동떨어져 있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그것의 보존 기획이나마 성공할 수 있는 특이한 장소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하늘과 땅과 바다가 구체적으로 삶 속에 스며 있던 시절은 가고 학살과 공항과 군함이 대신 들어선 꼴이다. 시인이 의식했건 안 했건 이미 어릴 적에 경험한 다음과 같은 사건은 제주도의 넋 대신 찾아온 외래 손님 아닐까. 어떤 가치 판단 이전에 말이다.
제상을 지키던 아버지는
잔부름씨하다 꼬닥꼬닥 조는 어린 것을 깨우고는
‘밖에 나강 보라, 북두성 꼴랭이가 어디 시니?’
마당에 나온 어린 것은 덜 깬 눈으로 하늘을 보다가
‘예, 동펜이 울담 먹구슬낭에 거러졌수다’
아버지는 헛기침으로 주변을 깨우고는
정지에 대고 낮고 길게 한 마디 하셨다
‘어어이’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났을까
‘아무개 조합장 기증’ 불알시계가 떡 하니 걸려
또깍또깍 꺼떡꺼떡하면서부터
어린것에겐 별 볼 일 대신 다른 볼 일이 생겼는데
새벽 밭 나서기 전, 아버지는 잠결에 대고 한 말씀 하셨다
‘시계 밥 주는 거 잊어불지 말라’
_「불알시계」 부분
이제 소년의 “볼 일”이 바뀐 것이다. 시간의 성질이 바뀐다는 것은 삶에 근본적인 변화가 왔다는 뜻 아닐까.
이렇듯 김수열 시인의 8번째 시집 『날혼』은 제주도라는 특정 장소를 통해 우리가 사는 현대의 실상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아마도 제주도가 피워낸 문학 중에 이번 시집은 낮지 않은 봉우리가 될 것이다.
전쟁이 필요한 자들은 손바닥 뒤집듯
그 빌미를 만든다 그 결과 수만에서 수백만의
선한 사람들은 총과 칼 때로는 물과 불의 제물이 된다
어린아이였고 노약자였고 주로 여자였다
80년 전 오키나와를 출발한 97식 폭격기가
난징의 모든 것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회항길에 잠시 머물던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_「난징 국수」 부분
위 시는 ‘난징대학살’이 제주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을 들어 보여준다. 그것은 제주도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됨과 동시에 ‘난징대학살’이라는 희대의 사건에 이용당함으로써이다. 다시 말하면, 김수열 시인의 역사를 보는 시적 직관은 시간의 층위를 관통해 공간적 동질성을 확보하는 데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직관은 역사적 사건을 시화(詩化)하는 데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릴 적 기억을 불러낼 때도 어김없이 잃어버린 제주도의 공동체 문화가 딸려 나오는데 단지 과거의 어느 한때를 회고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도리어 현재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공동체 문화가 훼손된 사실에 대한 비판적 관점도 드러난다. 무엇보다 제주도의 음식이나 제사문화, 굿 등 풍속을 재현할 때 김수열 시인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필요에 따라서는 제주도 지방의 옛노래를 차용하기도 한다. 다음은 납일(臘日)의 일부다.
어른들은 제 지내러 향사에 가고
어린것들은 어머니가 정지에서 엿 고는 걸
늬치름 질질 콧물 줄줄 흘리며 지켜본다
흐린좁쌀밥 보따리에 싸 물 섞어 문대기면
노리끼리 좁쌀 물 우러나오고 거기에 보리골 섞어
가마솥에 넣어 나무 주걱으로 살살 저어 끓이면
특별한 날 제상에 올라가는 감주가 되고
그걸 밤새낭 끓여주면 끈적끈적 엿이 된다
닭 넣으면 닭엿
꿩 넣으면 꿩엿
_납일(臘日) 부분
굿시를 통해 제주도의 근대를 치유하다!
이번 시집 『날혼』의 백미는 5부에 실린 일종의 굿시들이다. 마당극 운동을 했던 시인의 경험과 역량이 동원된 굿시들은 물론 제주도에서 있었던 행사들을 위해 써졌지만 장쾌한 호흡과 가락에 제주도의 설화와 과거, 그리고 현실, 공통의 역사의 개별자의 삶이 짜임으로써 오늘날 시인 개인의 자아 중심으로 축소된 현대시의 흐름에 파열을 내고 있다. 특히 「십시일반(十匙一飯)」과 「할마님아 설문대할마님아」에서는 제주 제2공항 등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에코사이드를 고발하는 시지만, 어디까지나 제주도 특유의 공동체 문화와 설화를 복원하려는 시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서안나 시인은 해설인 「제노사이드의 비극성과 ‘장소의 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때 시에서 ‘나’가 ‘장소의 혼’에 주목함으로써, 영혼 들을 인식하는 역할의 위계 설정이 독특하다. ‘나’가 굿판과 조농사에 초대한 4·3 혼령에게 원하는 역할은, 농사 시작과 마무리 그리고 술로 발효시켜 이듬해 4·3 행사에 제주(祭酒)로 진설하는 전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주기를 염원하고 있다.
_「제노사이드의 비극성과 ‘장소의 혼’」 부분
김수열 시인의 이런 작업이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 전통적인 굿 문화가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그것을 보존하는 기획 속에서 시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제주도는 굿 문화가 근대문명의 엄습으로 거의 사라져버린 데다가, 그 위에 에코사이드가 서슴없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어쩌면 이런 현실은 비단 제주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는 뭍과 동떨어져 있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그것의 보존 기획이나마 성공할 수 있는 특이한 장소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하늘과 땅과 바다가 구체적으로 삶 속에 스며 있던 시절은 가고 학살과 공항과 군함이 대신 들어선 꼴이다. 시인이 의식했건 안 했건 이미 어릴 적에 경험한 다음과 같은 사건은 제주도의 넋 대신 찾아온 외래 손님 아닐까. 어떤 가치 판단 이전에 말이다.
제상을 지키던 아버지는
잔부름씨하다 꼬닥꼬닥 조는 어린 것을 깨우고는
‘밖에 나강 보라, 북두성 꼴랭이가 어디 시니?’
마당에 나온 어린 것은 덜 깬 눈으로 하늘을 보다가
‘예, 동펜이 울담 먹구슬낭에 거러졌수다’
아버지는 헛기침으로 주변을 깨우고는
정지에 대고 낮고 길게 한 마디 하셨다
‘어어이’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났을까
‘아무개 조합장 기증’ 불알시계가 떡 하니 걸려
또깍또깍 꺼떡꺼떡하면서부터
어린것에겐 별 볼 일 대신 다른 볼 일이 생겼는데
새벽 밭 나서기 전, 아버지는 잠결에 대고 한 말씀 하셨다
‘시계 밥 주는 거 잊어불지 말라’
_「불알시계」 부분
이제 소년의 “볼 일”이 바뀐 것이다. 시간의 성질이 바뀐다는 것은 삶에 근본적인 변화가 왔다는 뜻 아닐까.
이렇듯 김수열 시인의 8번째 시집 『날혼』은 제주도라는 특정 장소를 통해 우리가 사는 현대의 실상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아마도 제주도가 피워낸 문학 중에 이번 시집은 낮지 않은 봉우리가 될 것이다.
날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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