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혼

날혼

$11.20
Type: 현대시
SKU: 9788966551873
Description
시간의 지층을 공간의 지평으로 옮긴 시편들
김수열 시인의 8번째 시집 『날혼』은 그동안 김수열 시인이 천착해온 제주도의 역사와 삶에 더욱더 착근된 모습을 보여준다. 김수열 시인의 시는 지금껏 제주4ㆍ3의 상흔을 드러내면서 그것의 치유를 위해 복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시집에서도 제주4ㆍ3의 상처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조명은 살아 있으며, 나아가 국제적인 연대의 감정을 담아 제주4ㆍ3의 세계사적 의미를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제주4ㆍ3이 여타의 제노사이드에 비해 더 참혹했다거나 그 무게가 더 나간다는 우월성(?)을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치지 않는 비극의 반복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작품들이 「데칼로코마니 2」, 「심장 없는 시인, 켓 띠」, 「난징 국수」 등이다. 다음은 「난징 국수」의 부분이다.

전쟁이 필요한 자들은 손바닥 뒤집듯
그 빌미를 만든다 그 결과 수만에서 수백만의
선한 사람들은 총과 칼 때로는 물과 불의 제물이 된다
어린아이였고 노약자였고 주로 여자였다

80년 전 오키나와를 출발한 97식 폭격기가
난징의 모든 것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회항길에 잠시 머물던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_「난징 국수」 부분

위 시는 ‘난징대학살’이 제주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을 들어 보여준다. 그것은 제주도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됨과 동시에 ‘난징대학살’이라는 희대의 사건에 이용당함으로써이다. 다시 말하면, 김수열 시인의 역사를 보는 시적 직관은 시간의 층위를 관통해 공간적 동질성을 확보하는 데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직관은 역사적 사건을 시화(詩化)하는 데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릴 적 기억을 불러낼 때도 어김없이 잃어버린 제주도의 공동체 문화가 딸려 나오는데 단지 과거의 어느 한때를 회고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도리어 현재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공동체 문화가 훼손된 사실에 대한 비판적 관점도 드러난다. 무엇보다 제주도의 음식이나 제사문화, 굿 등 풍속을 재현할 때 김수열 시인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필요에 따라서는 제주도 지방의 옛노래를 차용하기도 한다. 다음은 납일(臘日)의 일부다.
어른들은 제 지내러 향사에 가고
어린것들은 어머니가 정지에서 엿 고는 걸
늬치름 질질 콧물 줄줄 흘리며 지켜본다
흐린좁쌀밥 보따리에 싸 물 섞어 문대기면
노리끼리 좁쌀 물 우러나오고 거기에 보리골 섞어
가마솥에 넣어 나무 주걱으로 살살 저어 끓이면
특별한 날 제상에 올라가는 감주가 되고
그걸 밤새낭 끓여주면 끈적끈적 엿이 된다
닭 넣으면 닭엿
꿩 넣으면 꿩엿
_납일(臘日) 부분


굿시를 통해 제주도의 근대를 치유하다!

이번 시집 『날혼』의 백미는 5부에 실린 일종의 굿시들이다. 마당극 운동을 했던 시인의 경험과 역량이 동원된 굿시들은 물론 제주도에서 있었던 행사들을 위해 써졌지만 장쾌한 호흡과 가락에 제주도의 설화와 과거, 그리고 현실, 공통의 역사의 개별자의 삶이 짜임으로써 오늘날 시인 개인의 자아 중심으로 축소된 현대시의 흐름에 파열을 내고 있다. 특히 「십시일반(十匙一飯)」과 「할마님아 설문대할마님아」에서는 제주 제2공항 등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에코사이드를 고발하는 시지만, 어디까지나 제주도 특유의 공동체 문화와 설화를 복원하려는 시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서안나 시인은 해설인 「제노사이드의 비극성과 ‘장소의 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때 시에서 ‘나’가 ‘장소의 혼’에 주목함으로써, 영혼 들을 인식하는 역할의 위계 설정이 독특하다. ‘나’가 굿판과 조농사에 초대한 4·3 혼령에게 원하는 역할은, 농사 시작과 마무리 그리고 술로 발효시켜 이듬해 4·3 행사에 제주(祭酒)로 진설하는 전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주기를 염원하고 있다.
_「제노사이드의 비극성과 ‘장소의 혼’」 부분

김수열 시인의 이런 작업이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 전통적인 굿 문화가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그것을 보존하는 기획 속에서 시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제주도는 굿 문화가 근대문명의 엄습으로 거의 사라져버린 데다가, 그 위에 에코사이드가 서슴없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어쩌면 이런 현실은 비단 제주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는 뭍과 동떨어져 있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그것의 보존 기획이나마 성공할 수 있는 특이한 장소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하늘과 땅과 바다가 구체적으로 삶 속에 스며 있던 시절은 가고 학살과 공항과 군함이 대신 들어선 꼴이다. 시인이 의식했건 안 했건 이미 어릴 적에 경험한 다음과 같은 사건은 제주도의 넋 대신 찾아온 외래 손님 아닐까. 어떤 가치 판단 이전에 말이다.

제상을 지키던 아버지는
잔부름씨하다 꼬닥꼬닥 조는 어린 것을 깨우고는
‘밖에 나강 보라, 북두성 꼴랭이가 어디 시니?’
마당에 나온 어린 것은 덜 깬 눈으로 하늘을 보다가
‘예, 동펜이 울담 먹구슬낭에 거러졌수다’
아버지는 헛기침으로 주변을 깨우고는
정지에 대고 낮고 길게 한 마디 하셨다
‘어어이’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났을까
‘아무개 조합장 기증’ 불알시계가 떡 하니 걸려
또깍또깍 꺼떡꺼떡하면서부터
어린것에겐 별 볼 일 대신 다른 볼 일이 생겼는데
새벽 밭 나서기 전, 아버지는 잠결에 대고 한 말씀 하셨다
‘시계 밥 주는 거 잊어불지 말라’
_「불알시계」 부분

이제 소년의 “볼 일”이 바뀐 것이다. 시간의 성질이 바뀐다는 것은 삶에 근본적인 변화가 왔다는 뜻 아닐까.
이렇듯 김수열 시인의 8번째 시집 『날혼』은 제주도라는 특정 장소를 통해 우리가 사는 현대의 실상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아마도 제주도가 피워낸 문학 중에 이번 시집은 낮지 않은 봉우리가 될 것이다.
저자

김수열

저자:김수열
제주에서나고자랐다.
시집『어디에선들어떠랴』『신호등쓰러진길위에서』『바람의목례』『생각을훔치다』『빙의』『물에서온편지』『호모마스크스』,4·3시선집『꽃진자리』등이있다.산문집으로는『김수열의책읽기』『섯마파람부는날이면』『달보다먼곳』등이있다.오장환문학상,신석정문학상수상.

목차

시인의말5

1부

대련(對聯)/12
오늘하루/13
버섯을애도함/14
운봉에서/16
술안부/17
모서리/18
백일몽/19
겨울,탑동/20
내게도손이있었으면/22
교동블루스/24
날혼/26
아무도묻지않는다/28
집게/30

2부

콩국/32
검등여/33
저녁노을/34
똥을꾸다/35
관(棺)/36
무근성우영팟/38
양가달/39
삼도리해녀대장/40
물꾸럭/42
기념사진/43
금능리원담/44
할망바당/46
하짓날/48

3부

세그믓에도장찍고/52
방법/54
갈칫국/56
넋들임/58
돗죽/60
밖거리/62
파제가있는풍경/63
마누라/64
불알시계/66
당일식게/68
일포(日哺)/70
납일(臘日)/72
먼물질/74
칠성골/76

4부

어머니가운다/80
‘아작’에대하여/82
폐가/83
동백의눈물/84
4·3행불인묘역에서/85
네살짜리가뭘안다고……/86
작은외삼촌/87
군문열림/88
죽은혼사/89
데칼코마니2/90
어머님전상서/92
망월동에서/95
나무한그루심고싶다/96
참척(慘慽)/98
영원한홍보부장/100
부전여전/102
레지투이혹은반레/103
심장없는시인,켓띠/104
난징국수/106

5부

춤/110
솎고돌아오는길/112
톱의마음/114
제성마을엔삼촌들이산다/116
무등이왓땅살림굿/118
무등이왓조비는소리/122
십시일반(十匙一飯)/128
할마님아설문대할마님아/134

해설

제노사이드의비극성과‘장소의혼’(서안나)/149

출판사 서평

굿시를통해제주도의근대를치유하다!

이번시집『날혼』의백미는5부에실린일종의굿시들이다.마당극운동을했던시인의경험과역량이동원된굿시들은물론제주도에서있었던행사들을위해써졌지만장쾌한호흡과가락에제주도의설화와과거,그리고현실,공통의역사의개별자의삶이짜임으로써오늘날시인개인의자아중심으로축소된현대시의흐름에파열을내고있다.특히「십시일반(十匙一飯)」과「할마님아설문대할마님아」에서는제주제2공항등제주도에서벌어지고있는에코사이드를고발하는시지만,어디까지나제주도특유의공동체문화와설화를복원하려는시도속에서이루어지고있다.이에대해서안나시인은해설인「제노사이드의비극성과‘장소의혼’」에서다음과같이말한다.

이때시에서‘나’가‘장소의혼’에주목함으로써,영혼들을인식하는역할의위계설정이독특하다.‘나’가굿판과조농사에초대한4·3혼령에게원하는역할은,농사시작과마무리그리고술로발효시켜이듬해4·3행사에제주(祭酒)로진설하는전과정을주도적으로이끌어주기를염원하고있다.
_「제노사이드의비극성과‘장소의혼’」부분

김수열시인의이런작업이앞으로얼마나이어질지는아무도모른다.사실전통적인굿문화가사라져버린상황에서그것을보존하는기획속에서시가탄생했기때문이다.다시말하면제주도는굿문화가근대문명의엄습으로거의사라져버린데다가,그위에에코사이드가서슴없이벌어지고있는형국이다.어쩌면이런현실은비단제주도만의문제는아닐것이다.하지만제주도는뭍과동떨어져있는지리적특성으로인해그것의보존기획이나마성공할수있는특이한장소다.그럼에도어쩔수없이하늘과땅과바다가구체적으로삶속에스며있던시절은가고학살과공항과군함이대신들어선꼴이다.시인이의식했건안했건이미어릴적에경험한다음과같은사건은제주도의넋대신찾아온외래손님아닐까.어떤가치판단이전에말이다.

제상을지키던아버지는
잔부름씨하다꼬닥꼬닥조는어린것을깨우고는
‘밖에나강보라,북두성꼴랭이가어디시니?’
마당에나온어린것은덜깬눈으로하늘을보다가
‘예,동펜이울담먹구슬낭에거러졌수다’
아버지는헛기침으로주변을깨우고는
정지에대고낮고길게한마디하셨다
‘어어이’

그로부터몇해가지났을까
‘아무개조합장기증’불알시계가떡하니걸려
또깍또깍꺼떡꺼떡하면서부터
어린것에겐별볼일대신다른볼일이생겼는데
새벽밭나서기전,아버지는잠결에대고한말씀하셨다
‘시계밥주는거잊어불지말라’
_「불알시계」부분

이제소년의“볼일”이바뀐것이다.시간의성질이바뀐다는것은삶에근본적인변화가왔다는뜻아닐까.
이렇듯김수열시인의8번째시집『날혼』은제주도라는특정장소를통해우리가사는현대의실상이무엇인지알려주고있다.아마도제주도가피워낸문학중에이번시집은낮지않은봉우리가될것이다.

시인의말

이순지나고희에오르는동안
어머니가시고,장인장모님도가셨다.

그리고새로가족이된
손녀리안의앞날에늘건강과웃음이함께했으면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