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요양병원

굿모닝, 요양병원

$16.00
Description
여성 주인공의 눈으로 본 민중 서사
강병철의 장편소설 『굿모닝, 요양병원』은 말년을 요양병원에 의탁한 여성이 주인공이다. 소설은 주인공의 개인사적 회고와 가족사, 그리고 한국의 근대사를 함께 직조하면서 전개된다. 동시에 화자가 존엄사에 이르는 내적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대한민국의 의료 현실이라든가 또는 그 시스템 안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개인들의 욕망은 좀처럼 화자의 존엄사를 허락하지 않는다. 작가는 화자의 요양병원 생활의 틈새에 화자의 회고를 굵직하게 끼워 넣음으로써 화자의 존엄사를 도우며 화자 개인의 죽음마저 역사와 깊이 연관돼 있음을 일깨워준다. 과연 역사의 도저한 흐름과 개인의 삶이 불리 불가능하지만, 화자의 연배를 가진 한국의 개인들은 더더욱 한국의 근대사와 독립적일 수 없음을 작가는 짧지만 디테일한 삽화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군사독재 시절의 강압 통치로 이어지는 수레바퀴를 멈췄다고 생각하는 찰나 다시 2024년 12ㆍ3 비상계엄 사태를 소설 속으로 불러들임으로써 역사가 개인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환기시킨다. 차라리 개인의 삶 자체가 역사와 깊숙이 맞물려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개인의 삶은 그렇게 역사의 흐름에 수동적이기만 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화자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던 필용 씨의 건강한 자수성가에서 보듯 개인의 삶은 은밀하게 역사의 흐름에 동참하거나 또는 역사의 능동적 주체가 되기도 한다.

피댓줄 잘 감고 기계 잘 다루고 쌀가마를 정리하는 일이 그의 체질에 딱 맞더라고 했다. 근력도 장사여서 우마차 쌀가마니도 베개 들 듯 가뿐하게 들어 올렸고 돈 대신 퍼주는 쌀의 분량도 눈치껏 조금씩 깎아주면서 인심도 얻은 것이다. 그렇게 발동기 피댓줄을 돌리면서 남아 있던 빚을 쬐끔씩 털어내는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으니 전화위복의 시초이다. 손님들과 편하게 안면을 트고 이력이 붙으면서 종업원 조필용의 얼굴을 보려고 일부러 완행버스로 찾아오는 단골까지 생겨났다.
그 와중에 열아홉 수복이와 데릴사위 둥지를 틀면서 가세가 편안해진 게 확실하다. 방앗간 취업과 동시에 야무진 색시까지 얻은 겹경사 소문이 물수제비처럼 퐁퐁 퍼진 것이다.(28쪽)

주인공인 박공희 여사처럼 필용 씨는 이름 없는 필부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때로는 방황과 일탈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묵묵히 감당해낸다. 이런 필부의 생활이 어떻게 역사의 능동적 주체가 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역사적 사건에 뛰어든 사람만 역사의 주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 소설의 배면에 깔린 문제의식이다. 주인공 박공희 여사가 자신의 이웃들과 친척들, 자식들의 삶을 하나하나 불러내는 것은 그들의 삶이 위대해서가 아니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이들의 삶을 작가가 기록한 것은 ‘역사학적 역사’에서 소외된 존재들을 문학을 통해 역사학적 역사보다 더 큰 역사로 복권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랬을 때만이, 예를 들면 오키나와 전쟁에 끌려갔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당숙’의 삶이 그 큰 역사에 오롯이 등재될 수 있다. 민중의 삶은 ‘역사학적 역사’와는 무관해 보이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 역사를 등에 짊어진 존재에 다름 아닌 것이다. 여기서 당숙이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장면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가 잔파곶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당장 총알이 몸을 관통할 거라는 직감이 명치를 푹 찔렀다. 하여, 여명 직전 초병들의 교대 틈새에 몰래 막사를 나온 게 ‘신의 한 수’이다. 그늘만 골라 찾으면서 몸을 움직였다. 곧바로 해변가 절벽으로 치달렸으니, 초병의 눈에 걸리는 즉시 사살된다. 사생결단 각오로 나뭇가지를 잡고 서쪽 벼랑을 뛰어내리다가.
‘으으흐흡.’
삭정이가 부러지면서 오른손가락 두 개가 바위에 갈리는데도 아픔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중지와 검지 두 개가 쌍둥 잘려나가면서도 오히려 신음소리를 죽이느라 입술조차 떼지 못했다. 윗도리로 손을 싸맨 채 바다가 보이는 절벽 동굴을 찾아 엉금엉금 숨는 찰나 비행기 폭격이 ‘쾅, 쾅’ 터졌다. 방금 탈출했던 막사가 불길에 활활 휩싸인 것이다. 그 절체절명을 벗어난 후에도 동굴 바깥으로는 절대로 나오지 않으면서.(78~79쪽)
저자

강병철

1983년『삶의문학』으로작품활동을시작해서,시집『유년일기』『하이에나는썩은고기를찾는다』『꽃이눈물이다』『호모중딩사피엔스』『사랑해요바보몽땅』『다시한판붙자』『격렬하고비열하게』등과청소년시집『세수안한날』,장편소설『해루질』『닭니』『토메이토와포테이토』『엄마의장롱』『꽃피는부지깽이』등,소설집『열네살종로』『초뻬이는죽었다』『비늘눈』『나팔꽃』등,산문집으로『어머니의밥상』『선생님이먼저때렸는데요』『작가의객석』『쓰뭉선생의좌충우돌기』『우리들의일그러진성적표』『선생님울지마세요』등을냈다.

목차

작가의말/5

실족/11
오키나와당숙/52
요양보호사/92
지아비/112
뇌졸중/138
친정어머니/165
여섯침대/179
개척단/198
전쟁/216
관재수두사연/227
그간병인/257
계엄/277
꿈/293

출판사 서평

깊은연민과품을가진다정한소설!

소설의후반부는자식들의삶을중심으로현대사가펼쳐진다.그전에남편이겪었던5ㆍ16쿠데타직후의모욕적인상황과필용씨와얽힌개척단노동자들을통해군사정권의야만성을보여주기는하지만어머니로서자식들이겪은고초에더무게를싣는것은어쩔수가없다.교직에있던아들들의해직사태는,주인공박공희여사에게특히힘든시절이었다.인상적인것은‘작가의말’에도언급되었지만,이에대한주인공의태도다.

도교육청장학사두명이새벽다섯시초인종으로쳐들어온것이다.그리고‘아드님이북괴의회유에놀아난거’라는해괴망측한논리를피우며.
“아들같은사람이북침설을주장한다고요.”
그말을들은나도약이바싹올라.
“북침이뭐대요?북한이침략한게북침인가요?남한이침략한게북침인가요?”
그는잠깐고민하는표정을짓더니.
“북침이니까……북한이침략한게맞겠지요.아마.”
대답을하면서도뭔가불안한표정을짓기에내가대뜸.
“그럼장학사님주장이랑뭐가다른건가요?북한이쳐들어온게북침이라메요.북침설이뭐가문제대유?”(233쪽)

얼핏주인공의재치로읽힐수도있으나1980년대상황은,주인공이전하는전쟁과이어져전쟁과분단의상처가여전했음을보여준다.중요한것은작가의주장이아니라주인공박공희여사의경험과성격을통해서소설적으로형상화해냈다는점일것이다.소설의근본이이야기라면이소설은이러한구체적인이야기를통해역사의국면들을훌륭하게드러낸다.
그러면서도코로나이후의료현장에대한생생한증언도빼놓지않는다.아무래도주인공이활동에제약이큰연로한여성이다보니의료현장에대한총체적이고객관적인보고에는못미친다.하지만주인공의경험내에서포착되는인간들의다양한성격과처지는이채롭다할것이다.‘현재’에대한주인공의관찰은요양병원내의에피소드들을소개하면서소설을풍요롭게하는데일조한다.단지돌봄노동자들의성격들을드러내서가아니라돌봄행위가제도화되면서어쩔수없이당사자는대상으로전락하는장면은어쩌면이소설이말하고자하는본뜻에가까울지도모른다.
그래서주인공은집으로돌아가서생을마감하고싶지만자식들의상투화된효도와제도화된돌봄의그물망은주인공을무기력하게하고만다.하지만존엄사에대한주인공의갈망이자신이겪은역사의파노라마를가능하게했는지도모른다.그래서『굿모닝,요양병원』은진부한‘실버소설’도아니고또남성중심의무거운‘역사소설’도아니다.이소설은한여성의수다에가까운자유로운이야기들로잘짜여진구조를가진‘진짜소설’이다.한탄조의비감이나신파가아니라,존엄사에대한갈망에비례하는깊은연민과품을가졌다는점에서매우흥미롭고다정한소설이라할수도있다.그러면서도역사와정치를놓치지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