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괘종시계

아버지의 괘종시계

$12.00
Description
피어라, 상처!
안상학 시인은 이창윤 시인의 이번 시집을 가리키며 “삶의 어떤 간절함으로 빚어낸 피의 기록”이라고 한 것처럼 이창윤 시인은 내던져진 실존의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힘으로 시를 쓴다. 그리고 그 힘으로 역사와 다른 공간으로의 이행을 보여주는데 그 또한 안상학 시인의 말대로 하면 “간절함”이며 다르게 말하면 ‘일어서는 힘’의 시적 표현이다. 그런데 그 힘에는 어딘가 슬픔의 정서가 깊게 배어 있다. 「봄길」이라는 작품에서 “봉분 속에 누운 목숨 말고/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다시 피어라” 할 때도 여기에 기쁨과 슬픔의 정서가 팽팽한 긴장을 이루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한 시인의 시집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살고 있기 마련이어서 표면적으로는 그 공통성을 찾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시의 언어는 시인의 마음과는 결이 좀 다르게 반어나, 아이러니, 또는 역설로 등장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의 마음이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을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흙빛이 아니고, 검은빛도 아니고
왜, 붉음인가
예리하게 베인 상처에서
뚝뚝 떨어지던 핏방울의 빛깔인가
어찌하여, 마음 구덩이 멍들이며
뭉근하게 고였던 선명한 핏물의 자국인가
_「상처, 다시 꽃」 부분

피어나는 꽃이 “핏방울의 빛깔”이라는 것은 시인의 마음 바닥에 이름 모를 어둠과 상처가 웅크리고 있음을 충분히 보여 준다. 사실 이 시집 전체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시인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창윤 시인은 시를 쓰는 순간을 자기 해방과 치유의 시간으로 삼았음이 틀림없다. 시에 시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른 삶으로 넘어가게 하는 힘과 덕목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렇게만 말하고 나면 시가 시인의 외부에서 오는 것처럼 이해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시가 행하는 ‘치유와 해방’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내면에서 시작되고, 심지어 시인의 내면에 숨어 있는 상처를 들춰내면서 시는 ‘치유와 해방’의 순간을 창조한다. 이창윤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상처 앞에/ 묵묵히 서는 일”(‘시인의 말’)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시의 진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증좌일 것이다. 「상처, 다시 꽃」이 ‘시인의 말’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만 같은 것은 이 때문이다. “아팠던 흔적”으로부터 꽃은 핏빛으로 피어난다. 이 순간을 시인은 “눈물겹도록 아린 축복인가”라고 하는데, 여기서 “꽃”은 시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꽃=시’라는 단순한 비유 혹은 상징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어둠(상처)이 꽃, 시로 피어나는 기적을 이창윤 시인의 시가 보여준다는 점이다. 따라서 「봄길」에서 조금 더 개화한 꽃을 느끼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처 없이 살 수 있는 삶도 없지만 상처에만 휩싸여 사는 삶은 비참한 법이다. 그래서 시인은 말한다. “겨울 추위에/ 언제까지 얼어 있을 수만은 없었잖아”.(「봄을 저질러」) 봄을 ‘저지른다’는 뜻은 결국 시인의 의지와 일어서는 힘 아니겠는가.
저자

이창윤

서울에서출생했으며,대구에거주하고있다.한국방송통신대학교국문학과를졸업했고,학원강사및논술교사로재직했다.2002년『문예사조』로등단했으며현재대구경북작가회의회원으로활동하고있다.시집으로『놓치다가돌아서다가』(2018),산문집으로『풍경의에피소드』(2023)가있다.

목차

시인의말ㆍ5

1부존재한다는건,피는쪽에

시작(詩作)/12
상처,다시꽃/13
봄을저질러/14
봄길/16
풍속11.2m/s/17
기억을불러요/18
자작나무여인/20
휘몰아치는바람의언어/22
울음의실마리/24
소나기/26
넘실거리는시선/29
수련/30
공(空)/32
단풍나무앞에서/33
허공의미소/36


2부하지못한말과하지않은말사이

그자리에없다/40
트라우마/42
나의마트료시카/45
과몰입/46
화살나무/48
아찔한기억의호출/50
떠난사람/52
기억의파열음/54
아버지의괘종시계/56
계절의뼈/58
옛기억/60
괘종시계/62
바람구멍/65
다만/66
구두굽이닳을때/68
걷는사람/70
기원의파편들/72


3부누군가의숨결

끊긴다리위에서/76
나는찢기고타버렸습니다/80
오송,침묵의통로/82
로켓,로켓/84
미필적고의/87
진실밝히도록해주만/90
살고싶다고했다/94
이것이신의뜻인가/98
암바라와위안부수용소/102
다시,히로시마/104
산곰장어굽는골목/106
햇살한줄기믿고/108
기억을빚는법/111


4부걷던골목끝에바닷물한폭이

기울어진소나무/116
편백나무숲/118
종달항에서/120
선촌마을에서/122
매물도/125
비진도/128
열목개/130
출렁이는지휘청대는지/132
통영아리랑/134
4월서피랑/136
동피랑/138
너였던꽃/141
땅끝마을에서백두까지/144



해설
역사,개인,기억을관통하는‘길위의노래’(손진은)/147

출판사 서평

상처를긍정하면서비상(飛上)하는노래들!

우리는시인의마음깊은곳에웅크리고있는어둠과상처가봄을저지르며꽃을피우는장면들을숱하게마주하게되는데,이는꼭‘꽃’으로만은유되지않는다.그것은“자작나무”,“바람”,“소나기”등의이미지로풍성하게변주된다.「소나기」에서도“처음엔감추었던울음이터지는소리”였지만“노래”로존재의전환이일어나는눈부신장면을목도하거니와이창윤시인이소위사회참여적인다수의작품을토해낸것도어둠과상처에휩싸인자기실존의매듭짓기를이루고나서도달한지점임을이해해야한다.즉현실과역사에대한시인의묵직한발언이단순한‘정치적올바름’에서개진된게아니라는뜻이다.다시말해어둠과상처는시인자신의실존적인차원의것만이아니라보다폭넓고깊은기원을갖고있음을시인이무의식적으로깨달았다고보면된다.“존재한다는건/피는쪽에더가깝다”(「수련」)는시인의발화는그래서실존의문제에서역사의문제로넘어가는인식의결절(結節)지점인지도모른다.역사는실존에앞설뿐더러실존을규정하는존재의시간이기때문이다.“푸른강물에통증을쏟아내자/은빛물고기떼가되어흘러다녔다”(「옛기억」)는놀라운이미지도마찬가지다.이런치유와해방의살풀이가외면적으로확장되었을때3부에실린작품들이출현하기마련이다.여기에서다시시인이만나는것은깊은상처임을다시한번짚어둘필요가있다.

어머니,어머니
이나라는너무아파요
_「나는찢기고타버렸습니다」부분

그런데여기서그냥넘어갈수없는작품이하나있다.그것은바로표제작인「아버지의괘종시계」이다.이시집에는‘괘종시계’라는단어가들어간작품이두편있다.그나머지하나는「괘종시계」다.먼저「아버지의괘종시계」에서시인의어둠과상처의기원하나를유추할수있는데,그것은“꼬박꼬박밥을챙겨주었지만”제때를알려주지않는“괘종시계”가상징하는무엇이다.비교적담담하게느껴지는서정이「아버지의괘종시계」의주된것이라면「괘종시계」는그것보다직정적이다.즉시인의기억에남아있는“괘종시계”는“비춰볼가슴도없이/멈춘시간이되어벽에걸려”있는것이다.아무리애를써도어긋나던시간은현재에도마찬가지지만,「아버지의괘종시계」에서는그어긋나는시간을긍정하고있는데반해「괘종시계」의시적자아는과거에포박돼있는형국이다.
어쩌면「괘종시계」와「아버지의괘종시계」의차이가이시집에실린작품전체가보여주는진폭에다름아닐것이다.“흔적없는시간속에버려”졌다는‘상실과부재’(「괘종시계」)에서여전히어긋난시간이지만그것을담담히받아안는「아버지의괘종시계」로시인의마음과영혼이건너왔다고말할수있을것이다.하지만「괘종시계」에서이미“나를사랑했던것은결국나였고/나를버린것도나였”다는진실을알고있었다는점도잊지말아야한다.비상이전의서광없이비상은이루어지지않는법이다.이시집은이창윤시인의비상을위한몸살과아픔이고스란히배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