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귀를 번성하다 (오철수 시집)

깨진 귀를 번성하다 (오철수 시집)

$12.00
Description
‘듣기’는 존재를 보존하는 시적 방식
오철수 시인의 새 시집 『깨진 귀를 반성하다』에는 삶을 관조하는 낮은 시선이 주조음으로 깔려 있다. 시인의 목소리는 높지 않다. 도리어 듣는 귀를 연마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대목이 인상 깊게 나타난다. 이를 일러 해설을 쓴 황규관 시인은 “존재의 음성을 듣는 시‘라고 이 시집의 특징을 요약했는데, 이는 단지 제목에 ’귀‘가 들어가서만이 아니다. 시인은 바깥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자기 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방식도 의지의 힘을 발휘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좀 더 낮추는 방식을 통해서다. 듣는 귀에 대한 몇 가지 시적 구현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그날 밤 아버지가 물었다
방에서 떨어진 동전 못 봤니?
나는 작은 목소리로 모른다고 했다
그날처럼 내 목소리가 내 안에서
크게 울린 적이 없다
_「나는 모른다고 했다」 부분

풀벌레 소리에
귀가 깨끗해진다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곳곳으로부터
또록또록 들리는 소리가
무량한 어둠의 넓이를 만든다
소리 속에 소리가 있고
그 소리 속에 또 소리가 있어
무량한 어둠의 깊이를 만든다
_「풀벌레 소리에 귀의하는 밤」 부분

「나는 모른다고 했다」에서는 어릴 적에 아버지가 흘린 동전으로 만화를 보고 크림빵을 사 먹은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그때 “내 안”의 “내 목소리”를 들었던 때를 쓰고 있고, 「풀벌레 소리에 귀의하는 밤」에서는 어느 날 밤에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무량한 어둠의 깊이”를 느끼는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인간의 인식은 보기(seeing)에 관계되어 있는데 ’듣기‘가 빠진 ‘보기’가 인식을 가능하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듣기’는 언제나 ‘보기’에 비해 그 존재론적 위치가 밀려나 있었다. 따라서 역사는 지금껏 보이는 것을 지배하려고만 했지 들리는 것에 끌려가 본 적이 없다. ‘듣기’는 한편으로는 순명(順命)이면서 존재하는 것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다. 「이순(耳順)」이라는 작품에서 “오늘 듣고 본 좋은 것들을/ 그대로 이 못난 항아리에 담고/ 잠을 청한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시는 존재하는 것들을 보존하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구체적 삶에서는 “성찬 것”을 “시든 것”에서 떼어내야 하는 선별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것은 폭력적 개입이 아니다. “성찬 것”의 존재를 지키기 위함이다.


우리는 모두 이 세계에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오철수 시인의 이 시적 ‘듣기’는 어떤 과정을 거친 것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시인의 농촌 생활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도시인이면서 한동안 농촌에 내려가 농사에 종사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시집 전체에서 농사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인데, 인상적인 것은 농사 중에도 배움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시적 자아가 농사를 짓는 것인지 어떤 체험의 장에 집중하는 것인지 모호할 때가 있다. 이는 아마도 시인이 갖는 농사와 농부에 대한 겸손 때문일 것이다. 몇몇 시편들에서 시인은 그의 농사 스승을 추켜 주지만 자신의 성과를 내세우지 않는다.

일을 배운다는 것은 일 과정을
몸의 흐름으로 만드는 것이고
여유란 그 리듬 같은 것이다
_「일 자세에 대해」 부분

70년 농사지은 농부의 말씀을 듣다가 생각해 보니
내 논밭에서 자라는 잡초는 결국
내가 심는 것이었다
불평할 것도 없이
_「밭을 위한 예절」 부분

위 두 작품은 그런 모습을 잘 보여준다. 시인은 낮은 자세로 농사를 배우면서 농사를 지었던 게 확실해 보인다. 배우는 일에는 아무래도 ‘보기’ 보다는 ‘듣기’가 적합하다. ‘보기’는 ‘대상을 향해’ 나아가지만 ‘듣기’는 ‘대상으로부터’ 자신에게로 흘러들어오는 음성이나 말씀, 나아가 기운을 내면에 쌓아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혹은 자신의 몸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보기’와 ‘듣기’를 대립시킬 필요는 없다. ‘보기’도 ‘듣기’처럼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기’가 대상을 지배하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대상이 내뿜는 기호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쪽이라면 말이다. 그럴 때 대상의 모습이나 외형에 숨어 있는 존재의 기호를 자기 몸화(化)할 수 있다.
시인이 밭에서 풀을 매는 일에 대한 “70년 농사지은 농부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 자기 “논밭에서 자라는 잡초”마저 자신의 것이라는 깨달음, 긍정의 세계가 펼쳐진다. 농부를 괴롭히는 잡초를 통해서 얻은 이 소박함은 그러나 작은 것이 아니다. 정치적 올바름에 취하면 나타나는 부정적인 심리와 문화 현상은 세상의 모든 거짓과 부조리는 다 적의 탓이라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남탓증후군’이다.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이라는 근대적 계몽주의가 수렁에 빠져 더 이상 바퀴가 굴러가지 않는 것은 “내 논밭에서 자라는 잡초는 결국/ 내가 심는 것”이라는 이 세계의 진실을 들어보지 않으려는 지배의지 때문일 것이다.
오철수 시인의 시는 그런 통속적인 원리를 훌쩍 뛰어넘은 지점에 있다.
저자

오철수

1986년『민의』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고,민족문학작가회의사무국장과이사를역임했다.이후사이버노동대학문화교육원일을하다가,6년동안농부흉내를냈다.시집으로는『독수리처럼』,『사랑은메아리같아서』등이있으며,오랫동안해온문학교실과인터넷시쓰기강좌등을엮어『시쓰기길라잡이』8권을출간했다.시를통해생의지혜를탐구하는작업으로『시로읽는니체』,『사회적엄마의사랑법』등이있다.

목차

시인의말ㆍ5

1부봄의힘

나는모른다고했다/12
봄은이미왔다/13
봄의힘/14
저녁때면민들레꽃은입을다문다/16
매화터진다/18
당신이내맘에처음들어왔을때처럼/19
무심천(無心川)/20
국수댕이/21
목단꽃/23
뭘모르는놈이세상을있게한다/24
이순(耳順)/25
꽃잎날린다/26
유래를모르는아름다움/27
오매나,저꽃들!/28
오래가는아름다움은/30
민들레씨의비행/31


2부깨진귀를반성하다

모가들어간논이되고싶다/34
어머니를잠자다/36
여린모하나가/37
개망초꽃/38
불꽃처럼살자/40
깨진귀를반성하다/41
일자세에대해/43
이상하게울고나니/44
채밀은은밀하지않다/45
옥수수알의윤기/47
한낮,우리는모두빈손이다/48
연잎예술론/50
밭을위한예절/51
왜안잊히는지몰라/52
저대로크게한다/53
목도헌책방/55


3부풀벌레소리에귀의하는밤

부처님의침묵/58
연못의사랑법/59
물에비친나무처럼/61
모루/63
많다는것은/64
매미소리/65
아,엄마/66
가을/68
은행잎지듯/69
풀벌레소리에귀의하는밤/70
지는꽃을노래함/72
하늘농사일거다/73
용돈/74
첫서리내린날/75
생활의발견/76


4부그릴수없는약도

나날은사금천같았으니/78
풍경에대해/79
공존의거리/81
첫눈오시는날,오호저맨드라미/83
쇠재두루미는히말라야를넘는다/84
착한사람들을따라간다/85
따뜻한얼굴하나를생각한다/86
색시를잘만나서/87
바보를본다/88
일머리라는것/89
빛나는길은/90
친구는말야/92
아직도바다는키가크다/93
감자들어간수제비생각/94
젖병과의이별,그웃음/96
그릴수없는약도/97



해설
존재의음성을듣는시(황규관)/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