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진보의정신이보여준것은바벨탑을쌓기위해파괴한대지의숨결,즉생명의근원이었다.존재론적한계를무시하고뻗어간욕망의로켓은드디어우주를배회하는중이다.그에반해우주가나락한알에있다는말은,교황의말을빌어말하자면,“건강한현실주의”일것이다.하지만현재는나락한알자체를경험하지못하고사유하지못하는‘병든현실주의’의세상이다.과연우리는‘희망의노래’를부를수있을것인가?그것은우리가정의를통한평화를얼마나갈망하는가,그리고그갈망의언어를어떻게나눌수있는가에달려있을것이다.당연히갈망이또다른망상을일으키지않게‘건강’을지키는일도중요한일인데,문명이일으킨먼지같은망상이출몰하는것은언제나대지를떠난상태여서였음을유념해야한다.그럼에도불구하고“진정한현실주의는세상을바꾸는것을포기하지”않는법이다.
―본문,「AI시대에꿈꾸는‘공동의집’」중에서
이제‘예술’이최전선이된것일까.
황규관시인의세번째산문집『꺾이지않는마음』에는현실에대한저자의다양한관심과참여가기록돼있다.여기서“다양한관심”은단순히다방면에대한호기심이나관여가아니라우리현실에서벌어지는현상과사건을개별적인문제로보지않고그것을가능하게한근본원인에대한집요한물음의미한다.저자가‘책을펴내며’에서이산문집에모인글들을“나름심각한실존적위기감속에서쓴것들”이라고한것은이런물음때문이다.이책의부제에서드러났듯이이산문집은주로,우리가지금겪고있는기후위기문제그리고인공지능으로상징되는첨단테크놀로지가예술에끼치는심대한문제,심각한위기상황에몰린생명의문제에시적감수성을드리우고있다.
다시말하면우리가처한제반문제의근원에는맹목적인경제성장의추구가있다는점을저자는반복적으로비판하면서,인공지능마저경제성장의맥락에서봐야한다고역설한다.경제성장주의와인공지능의현실압도가생태계와민주주의의파괴,살아있는생명체와예술의위기를초래한다고시인은말한다.예를들면다음과같은구절이그렇다.
더큰문제는“덧없는사물”의누적이가져온결과인데,우리가맞닥뜨린기후위기와팬데믹은그것의현재버전이다.지금껏자본주의는경제적가난을벗어나려면경제성장이계속필요하다고속여왔지만,경제성장은우리삶의터전을무단히파괴해왔고,맑은공기와강을더럽혀왔으며,결국이것들이집적돼오늘의사태에이르고말았다.이것은“근대사의인위적인산물”의극단이라고부를수있다.당연히경제적빈곤으로서의가난은사라지지않았다.앞에서도말했지만자본주의는경제적빈곤없이는한시도지탱할수없기때문이다.
-(「김종철과‘고르게가난한사회’」중)
근대자본주의경제성장이야기한기후와민주주의의이중위기는우리의삶을위태롭게몰아세우고마는데,저자인황규관시인은예술의역할이이지점에있다고본다.하지만예술은동시에근대자본주의가만든신화와근대과학기술이탄생시킨인공지능이라는괴물과맞닥뜨릴수밖에없다.특이한것은,저자는인공지능을근대과학기술의결과가아니라도리어근대자본주의문화자체가인공지능을탄생시킨토대라고한다는점이다.아래와같은진술이그렇다.
따지고보면인공지능의문화적,사회적기반은자본주의시대가들어서면서본격화된게아닌가도싶다.그러니까인공지능은과학기술만의문제가아니라는말이다.대중매체의양적증가와대중문화가말그대로대중의삶에서나오지않고매체산업이주도하기시작하면서빅데이터는누적되고있었다.그리고그것의재배치와조작이산업적대중문화를조성했던것이다.
-(「인공지능시대의예술」중)
다시말하면,그동안근대자본주의가경제성장을동력으로발전해오면서자립적이고공동체적인민중문화대신산업화된대중문화가자리잡으면서대중매체의증가를가져왔고그것이결국인공지능의초석인빅데이터가되지않았느냐는지적에는인공지능문제를과학기술의차원에서바라보지않는저자의독특한관점이자리잡고있다.그렇다면이것에대한대응에는무엇이있을까?황규관시인은‘고르게가난한사회’로의전환만이기후위기시대의대전환에값한다고본다.그리고그것을위해서는결국“‘예술’이최전선이된것일까”라고묻는다.이는확실히구체적인운동에대해서는무력하게느껴질수도있지만,정말그런것인지는이책을꼼꼼이읽어봐야확인할수있을것이다.
‘꺾이지않는마음’이란무엇인가
어떤독자들입장에서는주제가다소부담스러울지모르지만,이산문집은분석이나논리를앞세우는책이아니다.기후위기와인공지능시대에예술이최전선인것일까,라고묻는것처럼저자가시종의지하고있는것은바로예술이다.김수영이나백무산,신동엽등의시인은물론화가인차규선의작품에대한에세이도그실례가된다.제4부의제목이‘김종철공부’인것에서알수있듯이황규관시인이크게의지하고있는것처럼보이는고김종철『녹색평론』발행인에대해서도‘시인의큰마음’을말한다.당연히이산문집을본격적인예술비평집이라고부르기는힘들것이다.하지만예술작품을탄생시키는근원적인바탕을세심하게살피고있다는점에서예술작품이전의예술에대한비평이라고부를수있을지모른다.한강작가의노벨문학상수상소식을접하면서근대문학과예술의이면에있는역사적인‘무엇’을짚어내고‘노벨문학상의너머’를꿈꾸기도한다.
하지만미슐레의판단과는다르게콜럼버스를통한세계의발견은전혀정당하지않았다.그게근대식민지의서막이었기때문이다.어찌보면근대의문화예술에는어두운얼굴이숨겨져있다.반면에우리의문학은그어두운얼굴을직시하면서풍성해질수있었다.그런우리문학도언제부터경제성장에빚지기시작했으니역사란참으로복잡미묘하기만하다.
-(「노벨문학상의너머」중)
또이산문집에는글쓰기와책읽기에대한저자의평소생각이잔잔하게펼쳐져있기도한데,이것들도결국예술에대한황규관시인의한단면을읽는데부족함이없다.특히재밌는것은저자가드는비유중농사의이미지가심심찮게등장한다는점일것이다.이는한편으로비유의실감을위한것으로도보이고,다른한편으로는점점잃어가는사물에대한감각을되살리기위한것처럼도보인다.
우리는과거를다시살면서미래를미리사는몇가지방법을안다.책읽기가그중하나일텐데,다만그것이김매기와닮았을때만그렇다.김매기는과거를다시살지않고는할수없는일이고,‘뙤약볕아래’라는현재에서미래를바라보지않으면하기힘든노역이기도하다.그렇다고미래를현재의욕망앞에무릎꿇리는행위도아니다.오늘김매고곧바로내일거둬들이는법은없으니말이다.
-(「책읽기는김매기다」중)
그렇다면기후위기와테크놀로지가우리의삶을위협하고존재를납작하게만드는시대에어떤대응책이있을까?물론시인에게구체적인답을내놓으라고하는것은지나친요구일것이다.아무래도시적상상력이란것은구체적인대안이나정책과는좀거리가멀기때문이다.그래도혹있을지모를그런요구에대해저자는,죽을것같은고비에는이웃이나친구와함께사는수밖에없으며사회적으로는지나친물질적풍요대신검소한고르게가난함을,개별적존재자로서는자신과대화하는삶을꼽는것처럼보인다.그런데각층위의삶은결국본질적으로같은삶이며서로통한다.이것들을위한사상의토대를황규관시인은아무래도동학사상에서찾고있는것같다.수운최제우부터서로돕는‘유무상자’를권했다는주장도그러하고경제민주화의요체를‘유무상자’로보는것도그러하다.‘유무상자(有無相資)’는재산의있고없음을떠나서로돕는삶을의미한다.
이번산문집의제목이된글의「꺾이지않는마음」에서도황규관시인은동학농민혁명의꺾이지않는마음이3·1운동으로이어졌다며,역사를살아가는데에도이마음이중요하다고역설하고있다.
작가의말(개정판을내며)
이런저런생각중에얼마전가톨릭교황레오14세가발표한회칙「고귀한인류」(MAGNIFICAHUMANITAS)를읽게되었다.신자는아니지만교황의이문헌은내게큰자극이되었다.이에대한짧은글을첨부해서개정판을내자고마음먹은것은정말최근의일이다.이렇게속전속결로일을치를수있었던것은나자신이가난한출판사를운영하는사람이기에가능했을것이다.하지만이일은또출판사라는여러저자들의‘공동의집’에누를끼치는일이기도하다.그래서마냥편치않지만,글을쓰는일은타인에대한대화의시도가확실한만큼도리가없을것같다.
―2026년6월황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