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 산문선

간이 산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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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간이 산문선』은 최립이 편찬한 원고를 바탕으로 1631년(인조 9년) 교서관에서 9권 9책의 활자본으로 처음 간행되었다. 이때 운문을 앞에 실었던 당시의 문집 구성 방식과 달리 최립의 공의(公議)를 반영해 산문을 앞에 배치한다. 당송의 문장으로부터 선진(先秦)의 고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전적을 철저히 익히고 녹여낸 그의 글은 과감한 생략과 도치, 풍부한 비유와 인용으로 글 안에 감춰진 의미를 발견하도록 하였다.
저자

최립

저자최립(1539∼1612)은본관은통천(通川),자는입지(立之),호는동고(東皐)·간이당(簡易堂)이다.아버지는최자양(崔自陽),어머니는무송윤씨(茂松尹氏)며,예안이씨(禮安李氏)와결혼해아들동망(東望)과딸하나를두었고,서자로동문(東聞)과동관(東觀)이있다.1561년(명종16년)23세때문과에장원급제한뒤,장연(長淵)·옹진(甕津)현감과재령(載寧)군수를지냈다.1577년(선조10년)종계변무(宗系辨誣)를위해질정관으로첫번째사행에나섰으며,귀국후재령군수로재차부임했는데,이때해주(海州)에은거중이던이이와교유했다.성천부사(成川府使),장례원판결사(掌隸院判決事),진주목사(晉州牧使)를거쳐,임진왜란이발발한1592년전주부윤(全州府尹)에임명되었다.이듬해원병을청하는문서를짓는데능문자(能文者)가필요하다는윤두수(尹斗壽)의추천으로승문원제조(承文院提調)에발탁되었으며,같은해주청사(奏請使)로임명되었지만직책에걸맞지않다해서부사(副使)의신분으로사행길에올랐다.이때지은글들이중국관료들로부터크게칭찬받았지만가문이미천하다는이유로끝내요직에등용되지못했다.1596년부터1602년까지간간이안변부사(安邊府使),공주목사(公州牧使),여주목사(驪州牧使)등의외직을얻어나가기도했으나주로승문원제조로서외교문서를작성하는일을전담했다.개성에우거했을때는,그의문(文)과차천로(車天輅)의시(詩),한호(韓濩)의서(書)를일컬어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고부르기도했다.62세때는평양으로옮겨간이당(簡易堂)을짓고머물렀다.문집으로《간이집》9권9책이있으며,《주역본의구결부설(周易本義口訣附說)》과《한사열전초(漢史列傳抄)》,《십가근체(十家近體)》등을편찬했다.

목차

제1부학문의길,문학의길
박수재와헤어지며남기다留別朴秀才序
평양에서판각한《맹자》대문의발문平壤刻板孟子大文跋
오수재에게주다贈吳秀才序
양현사의기문兩賢祠記
고산구곡담의기문高山九曲潭記
여장로시권의서문如長老卷序
습재권벽시집의서문權習齋詩集序
사명을받들어중국에가는박첨추를전송하는시서送朴僉樞子龍奉使赴京師詩序

제2부서화(書畵)에담긴뜻
<삼청첩>의서문三淸帖序
<낭간권>의서문琅간卷序
한경홍서첩의서문韓景洪書帖序
<산수병>의서문山水屛序
퇴계의글씨를붙여만든작은병풍에쓰다退溪書小屛識
이아계가시를써넣은산수도에쓰다李鵝溪題詩山水圖識
관동지역의승경을시와그림으로엮은책의발문關東勝賞錄跋
하대이의대나무그림에쓰다河大而화竹識
금계수가소장한산수도에쓰다錦溪守所有山水圖識
이소윤이소장한옛그림에쓰다李少尹所有古화識

제3부전쟁의상흔과관리의도리
권원수가행주에서승리한것을기리는비문權元帥幸州碑
유원외에게사례하는자문咨謝劉員外
도총섭엄상인에게준시서贈都總攝嚴上人詩序
표설豹說
호남관찰사로가는구감사를전송하는글送湖南具監司序
영남관찰사로가는허초당선생을전송하는글送許草堂先生觀察嶺南序
도체찰사의막부로가는이응교를전송하는글送李應敎赴都體察使幕府序
호서에시관으로가는정랑이자민을전송하는글送李正郞子敏湖西試官序

제4부인생의뒤안길에서
열승정의기문閱勝亭記
금강산을유람하며엮은권첩의서문遊金剛山卷序
<징영당십영>의서문澄映堂十詠序
고사리진소에부임하는송첨지를전송하는글送宋僉知赴高沙里鎭序
<춘천별어첩>의발문春川別語帖跋
고고려통헌대부추밀원직부사남공의묘표故高麗通憲大夫樞密院直副使南公墓表
절필문絶筆文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글이란무엇인가’,‘어떤글이좋은글인가’,‘글은어떻게써야하는가’를고민한조선의명문장가최립.당송문(唐宋文)만을익혔던시대,시(詩)만을문학으로취급했던시대에문단의흐름을바꾼최립의산문.《간이산문집》에최립의산문33제34편을실었다.

《간이집》은최립이편찬한원고를바탕으로1631년(인조9년)교서관에서9권9책의활자본으로처음간행되었다.이때운문을앞에실었던당시의문집구성방식과달리최립의공의(公議)를반영해산문을앞에배치한다.
고려후기에들어온성리학은정치나사회뿐만아니라사유와문화에도커다란영향을끼쳤다.학자들은어려서부터송대(宋代)의성리학서를읽고자랐고,이른바문장가라고하는이들역시당송문만익혔다.또한16세기후반까지문학하면곧시만을의미했을뿐산문의문학성에대한인식은형성되지않았다.당시에도뛰어난산문작품을남긴작가가없었던것은아니지만,산문의문학성에대한구체적논의나의식적실천이수반된것은아니었다.
이런시기에등장한최립의산문은문단에선풍적반향을불러일으켰다.당송의문장으로부터선진(先秦)의고문에이르기까지광범위한전적을철저히익히고녹여낸그의글은예전에는볼수없었던기이함과난해함,고아함으로가득차있었다.글이란모름지기이해하기쉬워야한다고생각했던이들에게는비판의대상이되기도했지만진부한문장에염증을느끼던이들에게는새로운이정표처럼여겨졌다.과감한생략과도치,풍부한비유와인용으로넘쳐난그의문장은독자로하여금그안에감춰진의미를발견하도록강요했으며,그지적유희의과정에기꺼이동참했던독자들은마치낯선세계에발은들여놓은나그네처럼긴장과희열을맛볼수있었다.
이런이유로최립의글은숙종때편찬된관찬선본인별본(別本)《동문선(東文選)》은물론서유비가편찬한《동문팔가선(東文八家選)》,송백옥(宋伯玉)의《동문집성(東文集成)》,남공철(南公轍)의《사군자문초》,홍길주(洪吉周)의《대동문준(大東文雋)》등사가(私家)의선집에도고루수록되었다.또한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안석경(安錫儆)을비롯해여러고문가들의논평대상이되기도했는데,중국의문장을주로다루어왔던당시의정황에비춰보자면상당히이례적인것이었다.
최립의글은문체나수사등형식미못지않게내용상으로도훌륭했다.전란의소용돌이속에서지은외교문서는그저하나의글이아니라국가의존망을결정지을수도있는중차대한것이었다.외교문서를전담했던최립은오해와의심,견제와반목이횡행하던정국에서민감한현안을간단명료하게전하고설득시키는데탁월한능력을발휘했다.그의글은당대의사유와가치관을정교하게반영한수준높은‘작품’이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