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어린 시절 국민하교 때는 농가라서 형님 두 분, 누나, 남아우가 있어 비교적 자유분방하게 내 할 일만 하면서 누구의 간섭 없이 자라면서 초등학교에 다녔으며, 이 당시 소박한 꿈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을에 형님께서 교직에 있으면서 형제들과 우애 있게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이 나름 부러웠기 때문이었다.
성당에 다니며 가정적으로 안정감 있게 교직에 종사하면서 경제적으로도 평균의 가정 모습이 내가 어린 시절에는 부러웠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때론 높은 창공을 높게 날아오르는 종달새를 보면서 비행을 하고 싶은 꿈을 꾸기도 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해군 장교가 되고자 생각도 했으며, 실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해병대 사관생도가 되고자 몸과 정신을 단련했고 시험에 응시도 하였다. 결과는 2차까지 합격했지만 가정 사정상 꿈을 성취하진 못했다.
그 후 우리 마을 형님처럼 교사의 꿈을 가지고 있던 중에 교원 연수를 받았으며 그분의 생활 모습이 내가 교직에 삶의 이정표가 되었다. 이 길이 내가 미래의 삶의 길이라 인지했고 굳건하게 교직으로 직업을 선택하게 된 동기로 작용했다.
누구에게 내 인생을 말해 보라 한다면, 오로지 40여년을 교직에 근무하면서 학생, 학교, 교육자로 한눈 팔지 아니하고 천직으로 살았다.
교육 목표를 건강한 사람, 자신이 우대, 존중 받기 위해서는 상대방도 우대, 존중해야 하며,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탐구하면서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진취적인 인성을 신장하는 교육에 중점을 두어 교육을 실천했다.
처음 학생들을 대할 때는 가슴이 떨리고 두려움도 있었지만, 창의적이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해야 된다고 다짐해 좋은 성과도 보았다.
삶에서 배움은 끝이 없다. 삶을 생각해보고 추억을 기록한다는 일 행복하며 지혜로운 일임도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걸어온 교직자로서 사명에 여러 조각들을 이 원고지에 소담하게 담았다. 감성과 이성으로 절제된 표현의 글이 독자들에게 도움 글이 되길 희망한다. 마음에 잔잔히 흐르는 감동으로 음악처럼 느껴지는 글이 되길 바라면서, 쟁반에 담긴 장미꽃의 소망을 담아 드린다.
2024년 어느 날
장금섭
성당에 다니며 가정적으로 안정감 있게 교직에 종사하면서 경제적으로도 평균의 가정 모습이 내가 어린 시절에는 부러웠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때론 높은 창공을 높게 날아오르는 종달새를 보면서 비행을 하고 싶은 꿈을 꾸기도 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해군 장교가 되고자 생각도 했으며, 실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해병대 사관생도가 되고자 몸과 정신을 단련했고 시험에 응시도 하였다. 결과는 2차까지 합격했지만 가정 사정상 꿈을 성취하진 못했다.
그 후 우리 마을 형님처럼 교사의 꿈을 가지고 있던 중에 교원 연수를 받았으며 그분의 생활 모습이 내가 교직에 삶의 이정표가 되었다. 이 길이 내가 미래의 삶의 길이라 인지했고 굳건하게 교직으로 직업을 선택하게 된 동기로 작용했다.
누구에게 내 인생을 말해 보라 한다면, 오로지 40여년을 교직에 근무하면서 학생, 학교, 교육자로 한눈 팔지 아니하고 천직으로 살았다.
교육 목표를 건강한 사람, 자신이 우대, 존중 받기 위해서는 상대방도 우대, 존중해야 하며,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탐구하면서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진취적인 인성을 신장하는 교육에 중점을 두어 교육을 실천했다.
처음 학생들을 대할 때는 가슴이 떨리고 두려움도 있었지만, 창의적이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해야 된다고 다짐해 좋은 성과도 보았다.
삶에서 배움은 끝이 없다. 삶을 생각해보고 추억을 기록한다는 일 행복하며 지혜로운 일임도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걸어온 교직자로서 사명에 여러 조각들을 이 원고지에 소담하게 담았다. 감성과 이성으로 절제된 표현의 글이 독자들에게 도움 글이 되길 희망한다. 마음에 잔잔히 흐르는 감동으로 음악처럼 느껴지는 글이 되길 바라면서, 쟁반에 담긴 장미꽃의 소망을 담아 드린다.
2024년 어느 날
장금섭
희망의 편지 (장금섭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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