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가야산 연구 20년 - 발굴의 결실과 남겨진 과제
지난 20여 년 동안 가야산을 직접 오르내리며 현장을 살피고, 고문헌을 검토하며, 지역 사회에 전승된 기억을 수집해 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확인된 여러 기록과 유물은 오늘날 가야산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사료임을 보여준다.
1787년에 간행된 《송자대전(宋子大全)》에는 덕산현감 최세경이 신축한 동헌 축민당에 관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최세경은 송시열의 제자로서, 병오년(丙午, 1666년) 덕산현감으로 부임해 동헌 축민당(祝民堂)을 새로이 건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남겨진 기록은 조선 후기 지방 관아 건축과 행정 운영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18세기 중반 윤봉오가 남긴 덕산현 축민당 「중건기(重建記)」는 지방 행정과 재건 과정을 구체적으로 전하는 문헌으로, 18세기 덕산현과 가야산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사료임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시대 범죄 수사와 심문 절차를 정리한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과 『포도청등록(捕盜廳謄錄)』은 이인좌의 난을 비롯한 사회 사건을 배경으로, 가야산 일대 세력의 규모와 참여 양상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덕산현이 점차 쇠락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러한 기록은 본 총서의 집필 과정에서도 중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되었다.
1865년의 《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 역시 주목할 만하다. 1845년 남연군묘가 가야산으로 이장된 이후, 1865년에는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대규모 토목 사업이 가야동에서 전개되었으나 이를 전하는 문헌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 일기는 중앙 왕실의 경복궁 중건 사업과 함께 덕산현의 명덕사(明德祠)와 보덕사(報德寺)가 동시에 추진된 사실을 보여주며, 자재와 인력 동원의 구체적 실상을 전한다.
근대기로 넘어오면, 1865년 해미현감 김응집의 일기, 대통회전 수묘군 관련 자료, 1868년 오페르트 사건 당시 수원 총리영 소속 병력 이동 기록은 조선이 서구 세력의 침투에 대응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료다. 이 기록은 수원에서 덕산에 이르는 행로와 각 고을의 대응 및 지원 상황을 상세히 전한다.
1870년 가야산 포수들이 무과 향시에 선발된 사실은 왕실과 가야동의 관계를 드러내는 사례이며, 1887년 덕산군수 이명우의 기록은 대한제국 성립 직전 지방 행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특히 그의 문집 ≪묵오유고≫는 근대 교육과 행정 개혁의 단초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온전한 번역과 소개가 요구된다. 또한 1896년 조중서 군수가 편찬한 《덕산현읍지(德山縣邑誌)》는 내포 지역의 지리·민속·행정을 집대성한 문헌이나 아직 번역되지 않아 대중적 접근에 제약이 있다는 점이 아쉽다. 현대사와 연속된 맥락에서는, 가야산 일대에서 전개된 빨치산 활동을 이해하기 위해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과 같은 연구 성과도 반드시 참고해야 한다.
개별 문집 또한 가야산 연구에서 핵심적 의미를 지닌다. 조극선의 일기, 윤봉구, 김진규, 이의숙, 오원, 안세광, 임방, 송인, 이철환(≪상산삼매≫), 이동윤, 김윤식 등의 문집은 문학적 성취를 넘어, 가야산을 중심으로 한 인문 지형과 교유 관계망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들은 단순한 문학 텍스트가 아니라 지역과 시대를 연결하는 사회사적 기록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공백이 존재한다. 발굴되지 않은 자료, 혹은 이미 소실된 기록들이 적지 않다. 세월과 전란, 후손의 관리 소홀로 인해 사라진 기록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자료는 언젠가 다시 드러나 연구의 빛을 더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 발간하는 《가야산 역사문화총서》 제4권은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정리한 하나의 단계라 할 수 있다. 앞으로 5권, 6권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는 확언하기 어렵지만, 새로운 자료가 발굴될 때마다 가야산의 역사는 더욱 세밀한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야산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을 넘어, 오랜 세월 사람과 사상, 문화가 교차해 온 역사 무대임을 다시금 보여줄 것이다.
지난 20년간의 연구 과정을 돌아보며, 앞으로는 후학들이 이 과제를 이어가기를 기대한다. 이 지역의 역사가 더 넓은 시각과 새로운 자료를 바탕으로 한층 깊이 있게 연구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 이 기 웅
가야산역사문화연구소
1787년에 간행된 《송자대전(宋子大全)》에는 덕산현감 최세경이 신축한 동헌 축민당에 관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최세경은 송시열의 제자로서, 병오년(丙午, 1666년) 덕산현감으로 부임해 동헌 축민당(祝民堂)을 새로이 건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남겨진 기록은 조선 후기 지방 관아 건축과 행정 운영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18세기 중반 윤봉오가 남긴 덕산현 축민당 「중건기(重建記)」는 지방 행정과 재건 과정을 구체적으로 전하는 문헌으로, 18세기 덕산현과 가야산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사료임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시대 범죄 수사와 심문 절차를 정리한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과 『포도청등록(捕盜廳謄錄)』은 이인좌의 난을 비롯한 사회 사건을 배경으로, 가야산 일대 세력의 규모와 참여 양상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덕산현이 점차 쇠락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러한 기록은 본 총서의 집필 과정에서도 중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되었다.
1865년의 《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 역시 주목할 만하다. 1845년 남연군묘가 가야산으로 이장된 이후, 1865년에는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대규모 토목 사업이 가야동에서 전개되었으나 이를 전하는 문헌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 일기는 중앙 왕실의 경복궁 중건 사업과 함께 덕산현의 명덕사(明德祠)와 보덕사(報德寺)가 동시에 추진된 사실을 보여주며, 자재와 인력 동원의 구체적 실상을 전한다.
근대기로 넘어오면, 1865년 해미현감 김응집의 일기, 대통회전 수묘군 관련 자료, 1868년 오페르트 사건 당시 수원 총리영 소속 병력 이동 기록은 조선이 서구 세력의 침투에 대응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료다. 이 기록은 수원에서 덕산에 이르는 행로와 각 고을의 대응 및 지원 상황을 상세히 전한다.
1870년 가야산 포수들이 무과 향시에 선발된 사실은 왕실과 가야동의 관계를 드러내는 사례이며, 1887년 덕산군수 이명우의 기록은 대한제국 성립 직전 지방 행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특히 그의 문집 ≪묵오유고≫는 근대 교육과 행정 개혁의 단초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온전한 번역과 소개가 요구된다. 또한 1896년 조중서 군수가 편찬한 《덕산현읍지(德山縣邑誌)》는 내포 지역의 지리·민속·행정을 집대성한 문헌이나 아직 번역되지 않아 대중적 접근에 제약이 있다는 점이 아쉽다. 현대사와 연속된 맥락에서는, 가야산 일대에서 전개된 빨치산 활동을 이해하기 위해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과 같은 연구 성과도 반드시 참고해야 한다.
개별 문집 또한 가야산 연구에서 핵심적 의미를 지닌다. 조극선의 일기, 윤봉구, 김진규, 이의숙, 오원, 안세광, 임방, 송인, 이철환(≪상산삼매≫), 이동윤, 김윤식 등의 문집은 문학적 성취를 넘어, 가야산을 중심으로 한 인문 지형과 교유 관계망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들은 단순한 문학 텍스트가 아니라 지역과 시대를 연결하는 사회사적 기록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공백이 존재한다. 발굴되지 않은 자료, 혹은 이미 소실된 기록들이 적지 않다. 세월과 전란, 후손의 관리 소홀로 인해 사라진 기록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자료는 언젠가 다시 드러나 연구의 빛을 더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 발간하는 《가야산 역사문화총서》 제4권은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정리한 하나의 단계라 할 수 있다. 앞으로 5권, 6권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는 확언하기 어렵지만, 새로운 자료가 발굴될 때마다 가야산의 역사는 더욱 세밀한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야산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을 넘어, 오랜 세월 사람과 사상, 문화가 교차해 온 역사 무대임을 다시금 보여줄 것이다.
지난 20년간의 연구 과정을 돌아보며, 앞으로는 후학들이 이 과제를 이어가기를 기대한다. 이 지역의 역사가 더 넓은 시각과 새로운 자료를 바탕으로 한층 깊이 있게 연구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 이 기 웅
가야산역사문화연구소
이기웅의 내포실록: 가야산을 걷고 쓰다
$3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