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500년 조선의 역사가 담긴 창덕궁의 다양한 면모를 살피다!
국립고궁박물관의「왕실문화 기획 총서」제3권『창덕궁 깊이 읽기』. 각계 11명의 전문가가 2011년 국립고궁박물관의 ‘왕실문화 심층탐구’ 교양강좌에서 강의한 내용을 담아낸 책이다. 파란만장한 창덕궁의 역사부터 건축과 조경, 회화와 공예, 그리고 음악과 춤, 궁궐의 풍수와 나무들의 식생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창덕궁의 역사와 실존을 읽어냈다. 본문은 총 1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왕조 5백 년의 건축기법을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창덕궁의 건축적 특성과 아름답고 그윽한 정취로 비원이라 불리는 창덕궁의 후원을 구조적으로 살펴본다. 또한 풍수를 통해 창덕궁을 새로운 차원에서 조명함으로써 우리 선조들이 궁궐에 담아놓은 자연의식을 읽어낸다. 마지막 장에서는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모습을 간직했던 창덕궁의 근대시기 모습을 영친왕과 덕혜옹주라는 창을 통해 되돌아본다. 조선왕조의 혼이 담긴 창덕궁의 다양한 면모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조선왕조 궁궐이 지녔던 조선 최고의 문화와 예술의 특성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저자

국립고궁박물관 (엮음) , 김동욱, 유홍준, 박정혜, 황정연

저자 김동욱은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저서 『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 『영건의궤-의궤에 기록된 조선시대 건축』, 『한국건축의 역사』, 『실학정신으로 세운 조선의 신도시 수원화성』 외 다수.

목차

왕실문화 기획총서를 펴내며
책머리에 l 조선왕조 최고의 문화와 예술의 전당, 창덕궁

창덕궁에 스며든 오백 년 세월, 그 어긋남의 미학
건축적 아름다움은 어떻게 완성되는가_김동욱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붓끝에서 살아난 창덕궁
그림으로 살펴본 궁궐의 이모저모_박정혜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예술학부 교수

비운의 왕, 뛰어난 문예취미
낙선재에서 이뤄진 헌종의 서화 수장_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왕의 얼굴을 화폭에 담다
창덕궁 선원전과 조선 왕들의 어진 제작_황정연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오백 년 왕의 숨결과 함께한 창덕궁의 꽃과 나무
「동궐도」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살펴본 궁궐의 식물_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그 넓은 후원을 가꾼 이들의 마음을 엿보다
창덕궁 후원 구조적으로 읽기_최종희 배재대 생명환경디자인학부 교수

동궐을 꽃피운 예술의 절정
잔치와 의식을 빛낸 조선의 춤과 음악_김영운 한양대 국악과 교수

조선의 서울 자리를 겨루다
풍수로 창덕궁 읽기_권선정 전 서원대 지리교육과 교수

대한제국 최후의 정전正殿, 인정전
한인무용韓人無用의 개조_양정석 수원대 사학과 교수

조선 왕실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다
근대 조선 왕실의 장식화와 창덕궁 벽화 읽기_박수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모습
영친왕과 덕혜옹주_서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양학과 교수

주註 / 참고문헌 및 더 읽어볼 책들 / 지은이

출판사 서평

창덕궁, 조선왕조 문화의 화려한 꽃
오백 년 세월이 만들어낸 그 어긋남의 미학
정치, 건축, 그림, 조경에서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까지
열 한명의 전문가가 그 장엄하고 미려한 역사와 실존을 읽어내다

『창덕궁 깊이 읽기』 기획의도


국립고궁박물관의 왕실문화 기획총서 제3권으로 『창덕궁 깊이 읽기』가 출간되었다. 김동욱, 유홍준, 박정혜, 황정연, 박상진, 최종희, 권선정, 김영운, 양정석, 박수희, 서영희 등 각계의 11명 전문가가 2011년 국립고공박물관의 ‘왕실문화 심층탐구’ 교양강좌를 바탕으로 전면 재집필한 이번 책은 조선을 대표하는 궁궐인 창덕궁을 그야말로 심층적으로 들여다본 본격 궁궐연구서이다. 파란만장한 창덕궁의 역사부터 시작하여, 아름답고 신비로운 건축과 조경, 어마어마한 회화와 공예, 그리고 조선 최고의 음악과 춤, 마지막으로 궁궐의 전통 풍수와 나무들의 식생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창덕궁을 제대로 파악하고자 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은 조선왕조의 5대 궁궐 가운데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룬 독특한 공간 구성을 지닌 아름다운 궁궐이다. 또한 가장 오랫동안 왕의 사랑을 받았던 궁궐이자 조선왕조 최고의 문화가 집결된 장소이기도 하다.
임금이 사는 도성을 수선首善이라고 했듯이 왕조 시대에 임금은 모든 사람의 으뜸이면서 본보기로 여겨졌다. 최고 수준의 학자들이 궁궐에 모이고 가장 모범적인 사람들이 관리가 되어 궁궐에서 일하고 가장 뛰어난 기량을 갖춘 장인들이 궁궐을 위해 봉사했다. 궁궐은 당대 모든 제도와 사상과 문화의 최고봉을 장식하는 곳이었던 셈이다. 조선 전기까지 궁궐을 대표하는 곳은 정궁으로 지은 경복궁이었고 창덕궁은 이궁에 지나지 않았지만 17세기에 들어오면서 그 위상은 달라졌다. 임진왜란으로 도성의 궁궐들이 소실된 뒤 경복궁은 복구되지 못하고 260여 년을 비워진 채로 지냈다. 대신 임금이 거처하는 법궁法宮의 자리를 이어받은 곳이 창덕궁이었다. 최고 수준의 건축과 조경이 여기에 담기고 최고의 회화작품이 이곳을 그려냈으며 가장 세련된 음식과 복식,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이곳에서 발현되었다. 장엄함의 절정에 도달한 음악이 연주되고 화려함의 극치를 다한 춤이 이곳에서 피로되었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가장 철저하게 유린되고 파괴된 곳이 궁궐이었다. 장대한 전각들이 철거당한 것은 물론이고 화려함을 자랑하던 모든 궁궐의 문화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식민지 시대에 궁궐은 문화유적의 보존 대상에서도 철저히 외면되었다. 조선총독부는 1934년부터 중요 유물들이 보물이나 고적 등으로 지정하기 시작해 1943년까지 보물 419점, 고적 145점, 천연기념물 133점, 고적 및 명승 4점이 지정ㆍ고시되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궁궐은 단 한 점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1960년에 와서 비로소 경복궁이 사적으로 지정된 일을 꼽을 수 있으며 1962년에 와서 창덕궁과 창경궁, 덕수궁이 사적에 포함되었다.
궁궐이 이처럼 홀대되었으니 학자들의 관심이 멀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 사이에 소중한 유물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없어졌다. 다행스럽게도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나라에서도 궁궐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에 따라 연구자들의 관심도 모아지기 시작했다. 궁궐의 각종 행사를 기록한 의궤의 중요성이 연구자들에게 인식되어 연구 성과가 서서히 나왔다. 음악이나 공연 분야가 이 일에 앞장을 섰다. 또 음식과 복식이 그 뒤를 이었다. 과천에 서울대공원이 개장되어 창경원의 동물들이 과천으로 이사하면서 창경궁이 본래의 모습을 조금 되찾았다. 이어서 창덕궁에 대한 정비도 이루어졌다. 궁궐 복구와 정비는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조선총독부청사를 철거하고 경복궁에 대한 전면적인 복원 작업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궁궐을 연구하는 이들도 늘어났으며 분야도 크게 다양해졌다. 회화에서부터 공예, 음식, 공연은 물론 궁궐 역사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논저가 나오고 건축이나 조경에 대한 연구 성과도 쌓였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하여 창덕궁의 건축과 조경, 회화, 공예, 음악과 춤, 풍수, 그리고 근대기에 있었던 소중한 기억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았다.

『창덕궁 깊이 읽기』의 구성과 내용

이 책은 총 11개의 장으로 나눠서 창덕궁을 다루고 있다. 조선왕조 5백년의 건축기법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창덕궁의 건축적 아름다움을 먼저 다루고, 조선시대에 그려진 궁궐도를 통해 창덕궁의 전체적인 모습과 이모저모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왕의 얼굴을 화폭에 담는 어진 제작의 현장이었던 창덕궁 선원전의 설치와 운영의 실태를 들여다보는가 하면, 그 넓고 아름답고 그윽한 정취로 인하여 비원秘苑으로 불리는 창덕궁의 후원을 구조적으로 뜯어보기도 했다. 창덕궁은 조선시대에 가장 화려한 잔치가 열린 현장이었다. 그 잔치를 빛낸 궁중음악과 춤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탐구했다. 또한 풍수를 통해 창덕궁을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조명함으로써 우리의 선조들이 궁궐에 담아놓은 자연의식을 읽어냈으며, 1만5000그루가 넘는 창덕궁의 나무들을 통해 각 나무들이 품고 있는 역사적 기억과 풍광을 겹쳐서 읽어내기도 했다. 비운의 군주 헌종의 서화수장 취미가 펼쳐졌던 창덕궁 낙선재의 기억을 보듬어보았으며, 대한제국 최후의 정전인 인정전의 건축사를 시대별로 살펴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창덕궁의 벽화를 하나하나 선별해 깊이 읽기를 시도했으며,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모습을 간직하기도 했던 창덕궁의 근대시기 모습을 영친왕과 덕혜옹주라는 창을 통해 되새김해보았다.

우리는 창덕궁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주요 장별로 보는 창덕궁의 이모저모


1장은 창덕궁의 건축을 다룬다. 경복궁은 주요 전각을 남북에 일렬로 배치해, 왕이 남쪽을 향해 앉아서 관청이나 백성들의 살림집을 내려다보도록 함으로써 통치자의 위상을 드러낸 점이 돋보인다. 이에 비해 창덕궁은 언덕과 골짜기가 발달한 아늑한 지형에 건물을 맞춰 동서 방향으로 자유스럽게 배치하여 편안하게 거처하도록 한 의도가 잘 드러났다. 이처럼 창덕궁의 건물 배치가 보이는 특징은 세월이 흘러 조선왕조의 정궁 역할을 하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그 모습을 간직했다.
이렇듯 창덕궁은 굴곡이 많은 지형 조건 속에서 편안히 머물 곳을 마련함과 동시에 궁궐의 의례와 행사를 치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는데, 김동욱 교수는 그것을 세 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첫째는 연속해서 꺾이는 진입이 가져오는 시선 변화의 풍부함이다. 둘째는 크고 작은 비대칭 공간이 이어지면서 나타나는 율동감이다. 셋째는 좌우 방향으로 전개되는 건물배치가 주는 편의성이다.
창덕궁의 전각 중 석조물은 15세기까지 건립 연대가 올라가고 목조 건물도 17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다양한 시기의 것들이 남아 있다. 시기를 넘나드는 건물들이 한곳에 모여 있지만 기본적인 배치는 달라지지 않았고 형태도 서로 간의 균형과 조화를 잃지 않아서 전체적으로는 시대를 뛰어넘는 통일성과 통합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 창덕궁은 1405년에 처음 세워지고 20세기에 와서 순종 황제가 숨을 거둘 때까지 500년 넘는 기간 동안 궁으로 활용되었다. 그 사이에 많은 건물이 지어졌다 사라지기를 되풀이했으며 그중 몇 안 되는 건축물이 처음의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가장 이른 것으로는 처음 지었을 때 만들었던 금천교가 있고, 17세기 이후에는 목조건물 중 일부가 각 시대를 대표해서 잘 남아 있다. 조선시대 건축은 500년 긴 시간을 거치면서 부단히 변화하고 달라졌다. 초기의 건축은 왕조 초기의 진취적인 기상이 반영된 듯 힘차고 씩씩한 외관이 드러나며 16세기에는 조금씩 유연한 변화를 보이다가 17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자재를 아끼면서 조금씩 장식 효과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19세기에 이르면 생활의 편의가 강조되며 치장이 한층 과도해지는 변화를 보인다.

2장은 붓끝에서 살아난 창덕궁을 만나는 공간이다. 우리의 기대만큼 궁중기록화에 창덕궁의 모습이 많이 등장하는 편은 아니다. 그러한 아쉬움을 19세기의 진하도陳賀圖 병풍들이 모두 상쇄시켜준다. 19세기에 들어서 궁중기록화에 나타나는 커다란 특징 중의 하나가 문무백관이 궁궐의 정전에 모여 진하를 올리는 광경을 그린 진하도가 관청의 기념화로서 매우 유행하였다는 점이다. 그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인 1844년(헌종 11) 헌종이 계비를 맞아들인 것을 칭경하는 진하례를 그린 「헌종가례진하도병憲宗嘉禮陳賀圖屛」은 왼편에서 사선으로 부감하는 평행 사선구도를 사용하여 인정전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전각을 파노라마식으로 포치하였으므로 상당히 장엄한 궁궐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시각의 범위는 서쪽 금호문金虎門에서 희정당熙政堂까지 외전 중심인데, 모든 건물을 다 그리지 않고 주요 건물 위주로 선별적인 묘사를 하였다.
「서총대친림사연도」는 1560년(명종 15) 9월 19일 신하들에게 내린 곡연曲宴(궁중에서 왕이 베풀던 비공식적인 작은 연향)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임진왜란 이전의 서총대 모습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화면에는 곡연 장면이 그려졌지만 사실 곡연을 베풀기 전에 문신은 시를 지어 올리고 무신은 짝지어 활쏘기를 행했던 순서가 있었다. 중종대에 철거된 서총대는 야트막한 대臺로 바뀌었으며 그 주변은 너른 공간임을 말해주듯 아무런 묘사가 없다. 좀 더 구체적인 서총대 주변의 모습은 윤두서尹斗緖(1668~1715)가 후대에 모사한 「서총대친림사연도」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주변의 바위와 나무, 개울의 포치는 실제의 경관이 많이 가미된 듯 현장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서총대에 오르기 위한 계단이 마치 정전正殿의 월대와 같은 형식으로 그려진 점은 1564년에 완성된 원작과 대비된다. 원작의 서총대는 그저 낮고 단순하며 계단도 없는 대臺로만 그려졌는데 이러한 차이가 15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인지 상상이 가미된 관념적 표현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3장은 비운의 군주 헌종의 문예취미라는 창으로 보는 창덕궁이다. 수렴청정과 스물세 살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