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문명을이해하는열쇠이자
우회할수없는나루터『상서尙書』
■법학자인저자가『상서』를텍스트로삼아펼친본격적인‘고전인문학’
■신화이미지와칭송이데올로기를벗겨그안의정치적투쟁을세밀히독해함
■조선시대퇴계,다산등에도큰영향을미친『상서』의고전적지위재발굴
『서경書經』으로익숙한『상서尙書』는동양에서가장오래된고전이다.『시경』『예기』『춘추』『주역』과더불어오경五經에속하는데,이중에서도『상서』가시기적으로는가장오래된고전이라고할수있다.공자가편집한제1판이후『상서』는동아시아역사의장구한물줄기를따라줄곧전해내려왔다.공자는『상서』를교재로삼아그의삼천제자를길러냈다.한대이후『상서』는권위있는교과서가되어존숭되었으며수천년동안동아시아정신세계와문화에서핵심경전의지위를누렸다.
『상서』는왕실문서가운데선별된것들이다.시간상으로전설속의요에서시작해춘추시대의진목공秦穆公에이르며,주로그시기의대표적인군신君臣의말과논의를반영하고,이따금그들의행적도기록하고있다.군신사이의언행이라는것이주제도넓고내용도풍부하나몇개의공통된주제로집약할수있는데,그것은바로정치政治이며,더세분화하면‘정政의도道’와‘치治의술術’이다.
중국의주목받는법학자위중교수가쓴『상서깊이읽기:동양의정치적상상력』(원제바람과풀風與草)은『상서』를‘정政의도道’와‘치治의술術’로읽어낸책이다.이책의부제“동양의정치적상상력”에서도알수있듯,『상서』에는동아시아초기문명에서정치제도가만들어지는과정이담겨있다.이책엔훈고訓?·교감校勘·전주箋注가없을뿐만아니라,복승伏勝의『금문상서今文尙書』와매색梅?의『고문상서古文尙書』를구분하지않았으며,원문의정확한번역에대한적극적인의지도없기때문이다.정확한번역이때로는진정한근본적의리義理의핵심을정확히찌르지못할때도있다는점을하이데거는여러번강조한바있다.저자는이책이“전문연구서”가아니며“상서를통한인문학적실천”임을공공연히밝히고있다.“『상서』에관한소소한이해를적은것은절대성인의말씀을대신하려고한것이아니다.더욱이옛성인의끊어진학문을계승하는것도감히바라지않는다.단지이런방식을통해『상서』에묘사된광활한세계로들어가서,그속에서동아시아문명의유년기와태생지를돌아보며초창기의그림자속에서어떤문명질서를상상해보기를바랄뿐이다.”(자서自序)저자는현대에통용되는청대淸代십삼경주소본十三經注疏本을텍스트로삼아한편을다읽을때마다생각과감상을기록했다.『상서』는모두50편이며,그가운데4편은상·중·하로나뉘어있어모두합하면58편이된다.세월이지나『상서』를완독하게되었고‘독서기’도50편이쌓였다.이책은그런독서기의모음인셈이다.
위중교수의독서기는사료의빈틈을날카롭게파고든다.『상서』의기록은때로는싱거울정도로간단하고때로는배면에무언가를숨기고있다.국내의한고구려사연구자에게“남아있는사료가거의없어서연구하기가참힘들것같다”고말을건넸더니“글자하나,유물한조각이얼마나많은것을말해주는지모른다.그것이고대사연구의재미다”라는대답이돌아왔다는것처럼,저자의『상서』읽기도그러한재미를독자들에게선사한다.
아래에서는『상서』라는고대의텍스트가감추고있는역사적진실이무엇이며그것이우리에게시사하는것은무엇인지살펴보도록하자.
‘제례작약’창시자는주공이아니라순임금
『상서』제5편「익직」본문에서순임금은제도확립에대한적극적인희망을표출하고있는데,그가운데가장주목해야할것은두가지다.첫째,순은서로다른복식服飾을제작해명분名分을구체적으로실현함으로써상하존비上下尊卑관계를사람들의복식으로가늠할수있기를바랐다.복식제작에있어적용되는서로다른도안과채색,양식등은모두특정한정치적함의를지녀,실질적으로모든사람이하나의부호와표식을부착함으로써생존방식의부호성符號性을강화하게된다.둘째,순은여러음악을분변하기를희망했는데,그서로다른선율속에도각각의정치적함의가들어있기때문이었다.음악의분별을통해인심의향배와정치의성패를세밀히살피고,음악이면에있는대중의희망·요구·바람을들을수있기를바랐다.따라서음악을들을수있는능력은바로일종의정치적역량이자집정執政의능력이었으며,음악에대한민감함은바로정치적민감함으로이어질수있었다.비록순의이러한견해가신비롭게보이긴하지만그속에는중요한독창적의의가숨어있다.바로음악과정치의연계를통해음악의정치적기능을강조한것이다.순의이두가지이론은후대의‘제례작악制禮作樂’을개창하게된다.일반적으로제도로서의‘제례작악’을세운인물은서주西周초기의주공周公으로알려져있지만,「익직」을통해보면순이복식으로등급을나누고음률로치란治亂을분별했으므로실제로는이미당시에예악문명의모델을묘사하고있음을알수있다.따라서동아시아초기예악문명의과정은우순시대에그맹아가싹터주공에이르러완성되었다가공자시대에이르면쇠퇴한다.순은예악문명의잉태자이자동아시아초기문명에서가장중요한공헌을한인물이라평할수있다.
순임금에게쓴소리하며교육시키는우임금
우리는요·순·우·탕堯舜禹湯으로이어지는성인의연대기에익숙하다.역사인지신화인지모를그시대에요는순에게순은우에게제위를평화롭게물려줬다는것이우리의기존인상이다.하지만저자는그신화-역사의이미지를순식간에첨예한정치현실로뒤바꿔놓는다.「익직」편에서순과우의대화가그것을말해준다.순은천자라는지존至尊의지위를누렸지만,우가도리어천자인순에게조심하고근신할것을요구하며,어떻게해야천하의호응을얻을수있는지,어떻게해야상천의지지를획득할수있는지등에대해반복해서경계시키고있다.우의이러한권고에대해순은동의의뜻을표한다.그들대화의어투를보면,두사람은어떤지위나연령의존비가없는평등한관계인것처럼보인다.이렇게평등관계를만들수있었던것은바로우가치수사업에서공적이탁월하고,정치적업적이뛰어나실질적으로이미천자인순과동등한권위를누리고있었기때문이었다.
천자의정치적지배력은어떻게상상됐는가
구주九州의개념과구획은우로부터시작된것은아니지만,우는정치지도자로서는처음으로구주를순회했고,모든구주의범위안에자신의흔적을남겼다.구주의확립과확정은천하를충만하고접촉가능한정치공간으로만든다.천자는천하의주재자가되어구주라는현실정치공간안에서정책을구현하고발휘하게된다.만약천하를구주로확정하지않는다면,천하는하나의불확정적인개념이되고만다.그러나구주의구획과확정은근본적으로그런상태를바꾸어놓았다.추상적인천하개념을직접적이고선명하며,산과물이존재하는구주로변화시킨것이다.
이러한목표는「우공」의첫문장에암시되어있다.“우부토禹敷土,수산간목隨山?木,전고산대천奠高山大川.”이짧은12글자는이미「우공」의의도를시사하고있는데,그의미는“우는구주의범위내에서수토를정비하고,산림을따라나무를베어길을내고,각지의높은산과큰강을존비尊卑의등급을매겨서로다른예의禮儀에따라제사를올린다”이다.우의이러한수고는본질적으로는강토개척에해당된다.이는스페인·포르투갈·영국등의전성기시대탐험가들의‘신대륙발견’과유사한정치적효과를냈다.
그러나구주의구획만으로는여전히부족한점이있었는데,구주의구획은일종의정적靜的인안배에지나지않았기때문이다.구주를‘동적動的’으로만들고,그러한구획에지속적인정치생명력을불어넣기위해서는구주안의사람들을모두동원해야만했다.그런목표를달성하기위해서우는공부제도를완성해천자가구주를지배하는제도적장치를마련하게된다.이러한공부는각주에서천자에게물산을바치는것임과동시에천자에대한정치적충성과정치적복종을표시하는것이었다.
「우공」의뒷부분은‘오복’이라는정식제도를확립하고있다.표면적으로오복은구주체계바깥에별도로설치된지리적구획이지만,실제의미는바로정치적구획이라고할수있다.오복제도를살펴보면,서로다른지리구역은또한서로다른정치적지위를갖는다.우선천자의영지는국도國都를중심으로반경500리까지이며,이범위안의구역은바로천자의영지로서가장존귀한정치구역이된다.그다음은전복甸服인데,천자의영지를빙두른또하나의고리모양의구역으로너비가500리다.전복바깥에차례대로후복侯服·수복綏服·요복要服·황복荒服이있다.그것들은모두전복과같이천자의영지를중심으로한고리모양의구역으로한고리에한고리를덧붙여나가며,그너비는모두500리씩이다.다시말해서오복은천자의영지를중심으로5개의동심원을형성한다.오복안의주어진‘복’은서로다른의무를나누어담당한것이다.서로다른의무는또한지리적인원근遠近을의미하기도하고,정치적인원근을의미하기도한다.중앙과가까운구역일수록중앙의통제력이더욱강해진다는뜻이다.반대로바깥으로갈수록중앙의통제력은점점약해진다.가장먼황복의바깥에이르면중앙의지배력이거의미치지않게된다.이런통제력의쇠락은바로천자권력의경계를의미한다.오복의구역은당시동아시아인들이상상할수있는최대한의공간이었을것이다.그공간은바로지리적으로가까운곳에서먼곳을,정치적으로높은곳에서낮은곳을,문화적으로문화에서야만을,정감적으로친함에서소원함을나타내는정치모델이다.
구주의구획과그공부제도의확립,그리고오복의구분과그등급모델의확정은상대적으로성숙된정치형태와문명질서가이미표출되었음을나타내는표식이기도하다.이러한공적들이「우공」편에들어있기때문에모두우의머리로부터나온것으로생각되지만,우한사람이완성할수는없었을것이다.그제도가요堯의옛제도이며,우는단지그런제도를회복시키거나다시세운것에불과하다고여기는것도억측일것이다.이두제도는동아시아초창기의정치에대한관념을표현한것으로,초기동아시아인의이상적인정치질서와문명질서에대한상상과기대의표현이라고할수있을것이다.
계와유호씨의투쟁
『상서』에는‘~서誓’라는편명이많은데,「감서甘誓」는그런서誓가붙는첫째편이다.전문은111자로매우짧다.편명에보이는‘감甘’은지명으로,유호씨有扈氏가관할하는지역의국도國都남쪽교외지역이다.‘서’는왕이장수들을훈계하는문체가운데하나다.「감서」의주인공은하夏나라의천자계啓다.계는제후인유호씨가자신의제위계승에불복하자출병하여정벌했는데,전쟁터가유호씨국도의앞마당이었다.따라서이편은계가유호씨를정벌하면서발표한전쟁에임하기전의격문檄文을기록하고있다.
그런데계는왜제후인유호씨를정벌해야만했을까?『사기史記』「하본기夏本紀」에그배경이실려있다.우가천자가되어동쪽순수를하다가회계會稽에서붕어하자정권은신하인백익에게넘어간다.백익은고요의아들이자순이임명한산택山澤담당관리로서,순·우시대의중요한관료였다.게다가부친인고요의명망이더해져백익이최고의직위를물려받는데도이상할것은없었다.그러나3년후백익은우의아들계에게정권을양보한다.전하는바에따르면,계는매우현명했기때문에제후들의지지를얻어제위를계승할수있었다고한다.그러나유호씨가불복했다.사실유호씨는외부인이아닌계의동성同姓형兄이었다.그가동생의계위를반대한이유는다음과같다.예전의요가순에게제위를전하고순이우에게제위를전한것은모두천자의지위를어질고덕있는사람에게선양?槿한것인데,계가제위를잇게되면우는천자의지위를자신의아들에게주는것이된다는것이다.
다시계에대해서살펴보자.『사기』「하본기」와『상서』「우서」가제공하는실마리에따르면,일찍이순시기에고요와백익부자의정치적명망은대단했다.그당시백익은중량감있는정치인이었던반면,계는아직등장하지도않는다.고요만하더라도당시최고의사상가로서,실질적인영향력에있어군주의자리를누리고있던우에못지않았다.따라서당시의정치전통에비춰보면,우사후에백익이군주의자리를물려받는것은당연히최선의정치적선택이었을것이다.실제로우사후에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