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하워드
저자마이클하워드SirMichaelE.Howard는1922년영국출생.옥스퍼드대근대사분야명예교수.‘전쟁과사회’라는관점으로계속해서전쟁사를연구해온세계적으로가장존경받는전쟁사학자중한명이다.런던킹스칼리지전쟁연구담당교수,옥스퍼드대치첼리전쟁사담당교수,예일대군사및해군사담당교수로재직했다.대표저서로는더프쿠퍼상을받은『보불전쟁』(1961),『제2차세계대전시기영국사』중제4권으로집필되어울프슨재단역사상을받은『대전략』(1971),『역사의교훈』(1991)등이있다.은퇴후현재까지도자신이설립한‘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평생고문으로왕성한강연및저술활동을펼치고있다.
목차초판서문2009년판서문제1장기사들의전쟁제2장용병들의전쟁제3장상인들의전쟁제4장전문가들의전쟁제5장혁명의전쟁제6장국민들의전쟁제7장기술자들의전쟁에필로그/유럽시대의종언더읽을거리옮긴이해제/전쟁과사회:마이클하워드의전쟁사연구와평화의발명옮긴이의말주찾아보기
출판사서평산맥을관찰하는독수리의시선같은책,유럽사속의전쟁전쟁으로1000년의유럽사를묘파한마이클하워드의역작“해당사회의문화를공부해야만한사회가무엇을위해싸웠으며,왜그러한방식으로싸웠는지를이해할수있다.”『유럽사속의전쟁』을포함한하워드의전쟁사연구는전쟁의발발과과정그리고영향에대한단순한기술이나분석이아니다.이는칸트의역사철학과클라우제비츠의전쟁이론에뿌리를두고있는인문학으로서,폭력의역사속에서인류의도덕적진보를찾아내고자하는야심찬시도다....산맥을관찰하는독수리의시선같은책,유럽사속의전쟁전쟁으로1000년의유럽사를묘파한마이클하워드의역작“해당사회의문화를공부해야만한사회가무엇을위해싸웠으며,왜그러한방식으로싸웠는지를이해할수있다.”『유럽사속의전쟁』을포함한하워드의전쟁사연구는전쟁의발발과과정그리고영향에대한단순한기술이나분석이아니다.이는칸트의역사철학과클라우제비츠의전쟁이론에뿌리를두고있는인문학으로서,폭력의역사속에서인류의도덕적진보를찾아내고자하는야심찬시도다.곧하워드의‘전쟁과사회’라는테제의기저에는무엇보다“어떠한일이벌어져도‘계몽의씨앗’만은언제나살아남아주기를바라는”염원이굳건히놓여있다고하겠다._옮긴이해제이책의저자마이클하워드는우리나라에는아직잘알려져있지않지만,세계적으로가장존경받는전쟁사학자가운데한사람이다.1975년에처음출간되어2009년개정된이책은마이클하워드가‘전쟁과사회’라는관점으로1000년에이르는유럽전쟁사를연구해온결과물로,단순한‘군사사militaryhistory’가아니라전쟁을전쟁이치러진사회·문화·정치·경제적배경의관점에서살핀명저이다.노르만족침략에서부터21세기‘테러와의전쟁’에이르기까지유럽에서치러진전쟁의변화를훌륭히써내려간개론서이며,유럽사회전체의발전에대한간결하면서도계몽적인개관이다.전쟁은인간경험의총체성의한부분이다인간이모여사는곳에전쟁은어느시기에나늘존재했다.특히유럽은끊임없이전쟁을치러온사회다.한편으로미래에일어날지모르는전쟁을위한불변의원칙을발견하고자전쟁에대한분석적연구는필요하다.그러나전쟁은단순히‘싸우는’문제,즉‘군사작전의역사’이기에앞서전쟁이치러진사회,문화,정치,경제의모든측면과관련이있다.사람들이어떤무기를들고싸우는지,누가전쟁에나가는지,그들이왜전쟁에참여할수밖에없었는지,어떤이유로전쟁을하는지와같은것들은전쟁을구성하는중요한부분이다.이렇듯전쟁은한사회의성격을바꾸어버리기도하고,반대로사회가전쟁의성격을결정짓기도한다.저자마이클하워드는“전쟁을전쟁이치러진사회·문화·정치·경제적배경으로부터분리해서따로생각하는것은전쟁을이해하는데있어본질적인측면을간과하는것”이라며좁은의미의전쟁사에서벗어나‘전쟁과사회’라는관점으로1000년의유럽전쟁사를연구했다.처음유럽에서의전쟁발전에대한간략한소개서를작성하는일에서시작된이글은곧유럽사회전체의발전을그려내는중요한일이되었다.이책의초점은전쟁의승패를분석하는일이나시대별전쟁을구체적으로기술하는것에맞춰져있지않으며,유럽이라는공간에서일어난‘전쟁과사회’의복합적상호영향관계를입체적으로드러내는데집중한다.한마디로하워드의전쟁사연구는“전쟁을사회현상의하나로다루는인문학적인연구”다.이러한관점으로볼때하워드는군사전문가라기보다는‘전쟁이사회일반에미치는영향을연구하는전문역사가’라고할수있을것이다.하워드의전쟁사연구는과거는물론오늘날의국제정치를이해하고여러난제를푸는데도그열쇠를제공한다.이전까지군사사는없었다‘전쟁과사회’라는테제로요약되는하워드전쟁사연구의출발점은무엇보다자신의연구를비롯한전쟁사분야자체의역사화에있다.하워드는해당사회와는분리된채군사행동에만착목하는좁은의미의전쟁사로서‘군사사’의탄생을18세기로추적해내려간다.하워드는오늘날우리가이해하는형태의군사사는18세기이전에는존재하지않았다고강조한다.그이유인즉유럽은줄곧전사들의사회였기때문이다.중세기독교유럽에서귀족의지위는기사의지위와맞먹었고,이시기기독교는평화의종교라기보다전쟁의종교에가까웠다.18세기까지유럽에서‘전쟁과사회’는분리되어존재하지않았으며,따라서별개로생각되지도않았다.이에마이클하워드는“전문연구분야로서‘군사사’는특별나게평화로운사회에서만누릴수있는사치중하나다”라고단언한다.다시말해,독립적인연구분야로서전쟁사의등장은16세기중반이래유럽전역을무대로했던종교전쟁(1560~1648)의종식이후국내적인평화와안정의확립과궤를같이했다.따라서오늘날의군사사는유럽대륙전체를포괄하는일종의내란의성격을띠었던종교전쟁이1648년‘웨스트팔리아평화조약’에의해종결되고,‘주권국가의원칙’에입각한국가들의체제가정립되면서탄생한대단히근대적인연구분야라할수있다.혁명을거쳐총력전의시대로구체적으로영국의경우를들여다보면,‘군사사’는스튜어트왕조에맞선한세기에걸친내전이1688년의명예혁명GloriousRevolution으로일단락된후,9년전쟁(1688~1697)과곧이어스페인왕위계승전쟁(1702~1713)의일환으로말버러Malborough,JohnChurchill경의영국군이유럽대륙에서루이14세의프랑스군과대적하여치른전투에대한기술로처음등장하기시작했다.이후1815년웰링턴경이이끈영국군이워털루전투에서나폴레옹의대군을격파했을때그틀을잡았다고볼수있다.그럼에도19세기중반까지군사사는영국육군이나해군이치른전투의기록에그치며,19세기후반모든역사학분야의급속한성장에도불구하고주제,저자,독자모든측면에서‘군대’라는극히한정된공간에머물러있었다.경제발전이나정치변동이전쟁의형태에미치는영향은일반사가들에게분석은커녕관심의대상조차되지못했다.전쟁의사회적여파역시마찬가지였다.영국은섬이라는지리적위치로인해프랑스혁명전쟁(1792~1802)과잇따른나폴레옹전쟁의폭풍을피할수있었기에,역설적으로프러시아를비롯한유럽대륙국가들과는달리군사문제전반에걸친획기적인인식의전환을맛볼기회를갖지못했다.19세기영국제국의산업경제력과전지구적차원의군사력의상징으로서대영해군의눈부신활약에도불구하고군사문제는여전히전체사회와분리되어논의되었다.이를바로양차대전이완전히뒤바꿔놓았으며,바로그중심에하워드의선구자적인연구가자리하고있다.제1차세계대전을겪은뒤에야영국의군인과관료,학자들은서서히전쟁의승패뿐만아니라군사전략,심지어는세부작전까지도다양한요인?정치,경제,기술,행정,사회,문화?에의해결정된다는사실을깨닫기시작했다.19세기산업혁명은사회의모든분야가승리를위해철저히동원되는‘총력전totalwar’의시대를열었으며,제2차세계대전은제1차세계대전의경험과교훈을다시한번뼈저리게확인시켰다.이와동시에양차대전으로인한영국사회의대변동은‘전쟁과사회’라는테제의중요성을한층더부각시켜놓았다.이렇게볼때,하워드의전쟁사연구는18세기말그모습을드러내고,양차대전을통해급기야는영국까지도집어삼킨‘국민전’의지적산물이라고할수있다.하워드의관점으로보는오늘날의전쟁뿐만아니라하워드의전쟁사연구는오늘날국제정치상황을이해하고여러난제를푸는데있어서도사려깊은조언을제공한다.특히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