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육군 제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일본 제국주의의 몸통

쇼와 육군 제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일본 제국주의의 몸통

$56.65
Description
‘쇼와 연구의 일인자’ 호사카 마사야스의 쇼와 연구 결정판!
A급 전범 등 일본 군부의 주요 인사들을 독자적으로 인터뷰, 취재하고 태평양전쟁 관계자들의 증언을 기록해 일본 근대사의 실증적 연구를 이어오고 있는 호사카 마사야스는 일본제국 육군을 연구하지 않으면 왜 일본이 철저히 무모한 전쟁으로 치달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쇼와 육군의 병리적 체질이란 관점에서 그 조직과 그들의 역사에 새겨넣은 만행들을 철저히 검증해나간다.

쇼와 육군의 퇴폐적 부분을 고발하는 병사들이 많은 것은 “이 전쟁이 너무도 더러웠”기 때문이다. 고참병 중에는 ‘살인의 프로’, ‘도둑질의 프로’, ‘방화의 프로’를 자칭하는 자들까지 나타났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의 모든 결론은 그때그때의 선택지 중에서 최악의 선택을 한 결과물이었다. 이 책은 허술하게 쌓아올린 목재 더미 같은 쇼와 육군의 핵심 조직을 해부할 뿐만 아니라, 부사관과 일반 사병들의 눈빛, 손짓, 목소리 하나하나까지 담아내고 있다.
저자

호사카마사야스

저자호사카마사야스保阪正康는A급전범등일본군부의주요인사4000여명을독자적으로취재하고150여권의책을저술했으며,다치바나다카시,사노신이치와함께일본을대표하는논픽션저널리스트로꼽힌?다.일본근대사,특히쇼와사昭和史의실증적연구에뜻을두고,각종사건에관계된이들을취재하면서역사속에묻힌사건과인물에관한르포르타주를썼다.1939년홋카이도삿포로시에서태어나도시샤대문학부사회학과를졸업했다.편집자로일하다가33세때논픽션작가로홀로서기를시도해그의출세작이된『도조히데키와천황의시대』가나오기까지6년간방송작가,카피라이터등여러직업을전전했다.‘자성自省사관’이란표현에서도드러나듯,그의저작은일본사회의치부를정면으로파고들어간다.거의해마다되풀이되는우익세력의군국주의적인망언이나올때면이를역사적사실에근거해철저히비판하는그의코멘트가유력언론에소개되는등,그는일본현대사연구의최고권위자로꼽힌다.개인잡지『쇼와사강좌』를중심으로한일련의쇼와사연구로기쿠치간상을수상했다.주요저작으로『도조히데키와천황의시대』『지치부노미야』『요시다시게루라는역설』『쇼와사의일곱가지수수께끼』『쇼와:전쟁과천황과미시마유키오』『저전쟁은무엇이었는가』『정치가와회상록』등이있다.

목차

목차
머리말
제1부쇼와육군의전사:건군에서다이쇼말기까지
제2부쇼와육군의흥망
제1장장쭤린폭살사건과관동군의음모
제2장관동군참모이시와라간지와만주사변
제3장만주국건국과육군의착오
제4장황도파와통제파:2·26사건의두얼굴
제5장2·26사건판결은어떻게유도되었는가
제6장중국국민당의눈으로본‘항일전쟁’
제7장팔로군에가담한일본병사의중일전쟁
제8장일본병사는왜만행으로치달았는가
제9장장고봉사건과일본인포로의인생
제10장노몬한사건,어처구니없는군사행동
제11장트라우트만공작의놀라운이면
제12장왕자오밍추대공작과그배경
제13장일독이추축체제를향한무모한길
제14장위험한도박,남부프랑스령인도차이나진주
제15장미일수뇌회담은왜결렬되었는가
제16장「헐노트」가도착한날의육군성
제17장「쇼와천황독백록」에나타난도조히데키
제18장워싱턴해군주재무관의회상
제19장진주만공격은무엇을의미했는가
제20장싱가포르공략과그뒤틀린그림자
제21장어느사병이체험한전쟁의내실
제22장과달카날,병사들의통곡
제23장과달카날전투에참가한미일병사들의현재
제24장선박포병제2연대의끝나지않은비극
제25장야마모토이소로쿠의전사와육해군의대립
제26장정보없는전쟁지도의무책임체제
제27장레이센조종사들의싸움
제28장제25군적성국인억류소의나날
제29장뉴기니전선의절망과비극
제30장참모본부참모들의체질과그결함
제31장아직기록되지못한전장두곳
제32장육군대신이참모총장까지겸임하는사태
제33장사이판함락과병사들의절규
제34장임팔작전,고위급지휘관과생존병사들의분노
제35장정보가경시된필리핀결전의내막
제36장특공대원은어떻게만들어졌는가
제37장오키나와전투의결전태세와그의미
제38장본토결전과최고전쟁지도회의
제39장비밀리에진행된원자폭탄개발계획
제40장시종무관의일기가들려주는패전전후
제41장구소련의자료가말하는‘사실’의내용
제42장홋카이도점령인가,시베리아억류인가
제43장다이쇼세대예비역장교의눈에비친쇼와육군
제44장최후의육군대신이남긴수기
제3부쇼와육군이전후사회에드리운그림자
제45장패전시에지도자는어떻게처신했는가
제46장참모들의쇼와육군재건움직임
제47장스가모형무소의군사지도자들
제48장전우회라는조직과쇼와육군의체질
제49장이상한군인은급조작
제50장시베리아억류자보상요구의단면
제51장남겨진‘전후보상’문제를주시하며
후기
문고판후기
참고문헌
취재대상명단
옮긴이의말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출판사서평
쇼와연구의일인자호사카마사야스의쇼와연구결정판
500여명의증언과방대한자료로밝히는전후사연구의집대성!
어째서일본은전세계를전화戰火로몰아넣었는가?
“쇼와육군은결국허술하게쌓아올린목재더미였습니다.
그광기에이제까지일본의모든역사와제도가함께무너졌습니다.”
책소개
이책은쇼와천황이재위하던시대,즉제2차세계대전당시의일본제국육군을다루고있다.거대한‘병리현상’이라고밖에달리분석할길이없는전쟁의숱한참상은모두‘쇼와육군’이라는몸통을관통해벌어진...
쇼와연구의일인자호사카마사야스의쇼와연구결정판
500여명의증언과방대한자료로밝히는전후사연구의집대성!
어째서일본은전세계를전화戰火로몰아넣었는가?
“쇼와육군은결국허술하게쌓아올린목재더미였습니다.
그광기에이제까지일본의모든역사와제도가함께무너졌습니다.”
책소개
이책은쇼와천황이재위하던시대,즉제2차세계대전당시의일본제국육군을다루고있다.거대한‘병리현상’이라고밖에달리분석할길이없는전쟁의숱한참상은모두‘쇼와육군’이라는몸통을관통해벌어진일이다.그런만큼일본육군을연구하지않으면무슨까닭에일본이이처럼무모한전쟁으로치달았는지를이해하기힘들다.이책의저자호사카마사야스가철저히일본내부자의시각에서,그것도육군만을줄기삼아글을쓴이유다.우선건군建軍에서부터육군의전사戰史를다루면서그최상위지도부를파헤친다.이것을바탕으로세계대전에서보였던일본군의병리적현상들을구체적으로이어붙여나간다.이런역사가쓰일수있었던것은저자가일본군부의A급전범들과장교,일반병사뿐아니라중국과대만의군인,외교관,정치인들에이르기까지수많은관계자의증언과일기,기록등을찾아나섰기때문이다.이책이집필되기시작한것은1990년경.그때를전후하여수많은관계자인터뷰가이뤄졌는데,논픽션작가답게,호사카마사야스는메이지말기에서부터제2차세계대전의현장,전후쌓여온시간들,그리고1990년경일본각지에서참전병사들이남긴회한에이르기까지숱한시간격차와이질적인공간속에서전쟁의잔재를하나씩끄집어내며,그것이어떻게기억으로퇴화되지않고현재를지배하고있는가를드러낸다.참전한이들은쉬열리지않는입을열었다.인터뷰당시이미70~80세의노인이었던참전인들은전장에서저지르고당했던일만큼은또렷이기억해냈다.그리고그러한증언들이하나씩모여이책의토대가되었다.
쇼와육군의체질이라는것
청년장교로2차대전에참전했다가시베리아에서5년간포로생활,중국으로이송돼전범재판을받고푸순전범관리소에수용된바있는우노신타로.전쟁후무역회사회사원이되어처자식과한가로운생활을하고있는그는1945년3월,사사신노스케전중장휘하에서후베이성마을의주민90여명을살해하는데가담한전력이있다.이들부대는또난장현우안옌부근에서는부인,어린이,노인등20명을잔혹하게교살했다.나아가샹양성부근왕자잉촌에서는주민18명을손바닥에철사를꿰어줄줄이묶은다음판청의교회당옆에서한사람도남김없이총검으로찔러죽였다.샹양시에서도주민30여명을철사로묶은다음강으로밀어넣었다.그가운데후자오샹등5명은물에서빠져나왔지만,저우광짜오등20여명은전부익사했다.더욱이샹양시에서는부하가부인을강간하는것을방임하고심지어는윤간끝에죽임에이르게했다.1990년도쿄에서의인터뷰를하면서이런사실을털어놓은우노는당시자신이중국에서저지른것은학살이나만행이아니라‘나라를위한’행위인줄로만알았다고털어놓는다.
(저자)“일본군은왜중국대륙에서저런만행을저지른것입니까?자신의체험을바탕으로말씀해주셨으면합니다.”
(우노신타로)“하나는일본육군의제도에문제가있었다는것입니다.사관학교출신이모든것을장악했고,거기에완벽할정도로위계질서가확립되어있었습니다.이안에서한단계든두단계든계급이올라가기위해서는눈에띄는일을하지않으면안되었습니다.두번째는사관학교출신은정치교육을받지않았기때문에그들은정치와군사의관계를이해할수없었다는것입니다.세번째는,체험에입각해말하자면,신임장교가병사들앞에서겁쟁이가아니라는것을알려주기위해중국인을시험삼아베거나고문을가해군인다운게뭔지를보여줘야만했습니다.”
쇼와육군의지도부에속한고위급군인은천황에대한충성심을종종‘대선大善’과‘소선小善’으로표현했다.1882년메이지천황이군에하사한「군인칙유」만좇는것은‘소선’이며,천황을위해서라생각하고계속해서새로운군사적기정사실을만들어내는것이야말로‘대선’이라는것이었다.이처럼두서없는논리에감춰져있는독선적주관주의로지탱되었던조직이바로쇼와육군이다.그리하여부녀자와노인,소년,유아를반쯤은장난이라고밖에할수없는수단으로살해할만큼망가졌던쇼와육군지배하의병사들중자신들의퇴폐적인경험을고발하는이가많이나오는것은“이전쟁이너무나더러웠기”때문이다.
태평양전쟁당시육군지도부에속한군인들은대개메이지10년대(1877~1886)중기부터20년대후기에걸쳐태어났다.이들에겐몇가지공통점이있었다.육군유년학교,육군사관학교,육군대학교등을우수한성적으로졸업한것이다.정원이50명인육군대학의졸업생이라는것만해도이미엘리트임을인정받은것인데,그중상위10퍼센트는군지도부에들어가행정과작전계획을담당했다.문제는성적지상주의의기관들에서우등생이었던이들은실전체험이드물었다.더욱이이세대는일본육군건군이래의양성시스템,정신적규범,전략·전술지도가낳은군인이란공통점도가지고있었다.즉근대일본부국강병정책의충실한자식이었다.여기서태어난인물들은독창적인식견이나역사적인선견지명을지닌다기보다주어진틀안에서생각하고행동하는범위를벗어나지못했다.
태평양전쟁을떠맡은군사지도자의또다른공통점은친독일,반영미사상에갇혀있었다는것이다.메이지10년대에는독일육군이일본에초청되어육군대학교에서독일식군사교육과정신교육을실시했다.더욱이육군유년학교에서는독일어,러시아어등이중심이되고영어교육은철저히경시되었다.나아가,쇼와육군의군사지도자는‘인간’에대한통찰력을현저히결여하고있었다.철학적·윤리적측면에서인간을바라보지않고단지전시소모품으로만간주하는기질에서빠져나오지못했다.
“고모토군은심신이모두불가사의할정도로유연하고강인하며굴신자재屈伸自在할뿐만아니라결코꺾이거나부러지지않는다.지극히소심하면서도아주대담하며,세밀하게생각하고주도면밀하게준비하며아무렇지도않게단행한다,운운.”
이글의‘아무렇지도않게단행한다’라는표현에쇼와초년대군인의성격이응축되어있다.‘대의(천황의뜻)를내세우면무슨짓을해도관계없다는심정과패턴이야말로쇼와육군과그후를상징적으로잘보여준다.이것은병사를무기질無機質의병기로육성하는데결사적이었다는것,보급과병참사상을가볍게여기고아무런의미도없이병사들에게옥쇄玉碎(옥처럼아름답게부서진다는뜻으로,충절이라는명분아래죽음을명령했던것)를명하고,그것에대한자기반성도없이잇달아그런종류의작전을명한것도예로들수있다.
특히장교중심으로흘러간것은쇼와육군의체질을구성하는하나의요소였다.우노신타로는연대본부에설치된포로수용소의소장을겸한바있는데,그는이곳의중국인포로들이죽어나갈때특별히인간적인감정은들지않았다고한다.그는만약이러한태도를취하지않는다면자신은“영광스런일본군장교”가아니라고까지생각했다.장교에게는식사도충분히제공되었고게다가위안시설까지있었다.그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