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 원정기

알렉산드로스 원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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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원전을 통해 접하는 알렉산드로스의 생생한 면면!
『알렉산드로스 원정기』는 알렉산드로스 부관의 진술을 로마 군 지휘관이 고증하여 신화적 존재로 부각되기 전 알렉산드로스의 사실적 면모를 드러낸 책이다. 이는 원정 과정에 집중하여 오랫동안 편린 상태였던 각종 자료를 수집하여 오류와 모순된 정보를 선별했고,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에 직접 참가했던 프톨레마이오스와 아리스토불루스의 진술이 가장 신뢰할 만하다는 판단 아래 그 둘의 역사서를 기초로 삼았다.

아리아노스는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존경심에도 불구하고 공정한 태도를 유지했다. 살인적 폭력을 부르는 주벽과 오만함, 자제력 부족, 신이 되려는 열망, 과도한 정복욕에 대해서 비판의 칼날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또한 무패행진을 기록한 알렉산드로스의 전투 장면에 관한 한 정확하고 타당한 전문적 지식을 보여준다. 오로지 출정 기간에 발생한 사건에 몰두하여 동행했던 지휘관이나 적장들의 이름과 직위, 군대 규모, 전투 과정, 지리와 지형 등을 세밀하게 고찰하였고, 특히 전투에 앞서 어떤 부대가 어느 위치에서 어떤 공략을 펼쳤는지, 각각의 지휘를 맡은 인물이 누구인지, 양쪽 병력의 숫자 및 싸움 뒤의 전사자와 포로의 숫자까지 상세히 밝혔다.
인류사에 헬레니즘이라는 국제화 문명의 초석을 다진 인물 알렉산드로스. 33년이라는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21세의 젊은 나이에 왕자에 올라 11년 만에 그리스와 페르시아 제국을 평정하고 광활한 아시아 대륙까지 정벌했다. 그리하여 그는 비교 불가능한 불세출의 전쟁 영웅으로 추앙돼왔고 전설적인 일화들이 세상에 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 뒤에 자책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약점 많은 인간이었다. 이 책은 패배할 줄 모르는 전쟁 영웅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내면을 좀 더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정황적 근거들을 제공한다.
저자

박우정

역자박우정은경북대학교영어영문학과를졸업했고현재전문번역가로활동하고있다.옮긴책으로『사람은무엇으로사는가』『톨스토이단편선』『태양을기다리는아이들』『남성과잉사회』『역사를이긴승부사들』『역사를수놓은발명250가지』『야성의부름』『케네디가의형제들』『퓰리처상사진』등이있다.

목차

아리아노스와고대그리스문학|약어

서문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부록1|부록2|참고문헌|출처|역자후기|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가장신뢰받는판본의알렉산드로스전기최초출간

알렉산드로스부관의진술을로마군지휘관이고증하여
신화적존재로부각되기전알렉산드로스의사실적면모를드러낸다

“그리스사상과문학,나아가서양문명과함께읽어야할책”
“영웅이아닌인간알렉산드로스를만난다”
“이책이후의알렉산드로스는신격화되었다”
“무패행진을이어간전쟁영웅의원정과정에집중한객관적원전”


아리아노스의『알렉산드로스원정기』의주요한특징은원정과정에집중하고있다는점이다.저자아리아노스는로마시대카파도키아총독과아테네집정관을지낸군사전문가로,선대역사학자의연구를철저히숙지하여만년의역작인『알렉산드로스원정기』에녹여냈다.아리아노스는오랫동안편린상태였던각종자료를수집하여터무니없는오류와모순된정보를선별했고,더욱이알렉산드로스의원정에직접참가했던프톨레마이오스와아리스토불루스의진술이가장신뢰할만하다는판단아래그둘의역사서를기초로삼았다.그래서스승이었던아리스토텔레스와의관계나애마부케팔로스에관한일화등신비주의적내용은과감히생략한채오로지출정기간에발생한사건에몰두했다.특히동행했던지휘관이나적장들의이름과직위,군대규모,전투과정,지리와지형등을세밀히고찰하고있다.두번째특징은알렉산드로스에대한무한한존경심에도불구하고공정한태도를유지했다는점이다.살인적폭력을부르는주벽과오만함,자제력부족,신이되려는열망,과도한정복욕에대해서는비판의칼날을숨기지않고있다.이러한자세로인해아리아노스는가장공정한알렉산드로스분석가라는평가를받을수있는것이다.이번에출간된『알렉산드로스원정기』는가장신뢰받는판본의알렉산드로스대왕전기의최초출간이라는데큰의의가있다.

고대원전으로알렉산드로스를만나야하는까닭
세상에널리알려진위인은그빛나는업적때문에박제화되는경우가적지않다.그대표적인인물이바로알렉산드로스대왕이다.33년이라는짧은생애에그가이룬전적은가히놀랍다.21세의젊은나이에왕좌에올라11년만에그리스와페르시아제국을평정하고광활한아시아대륙까지정벌했으며,그로인해인류사에헬레니즘이라는국제화문명의초석을다진인물이다.그리하여그는비교불가능한불세출의전쟁영웅으로추앙돼왔고,그에걸맞은전설적인일화들이세상에뿌려져있다.그러나지난수십세기동안이러한기록들이반복재생산되는과정에서알렉산드로스라는인물은점점신화적존재로화석화된측면이있다.물론알렉산드로스본인조차도자신이아킬레우스나디오니소스와같이신으로숭배되기를염원했으나,사실그는실수와잘못을저지른뒤에자책의눈물을흘리기도했던약점많은인간이었다.
그런측면에서알렉산드로스사후가장앞선시기에발표된저작물들을다시금재조명해봐야한다.이사료들은패배할줄모르는전쟁영웅이되기까지의과정과내면을좀더제대로살펴볼수있는정황적근거들을제공하기때문이다.오늘날전해지는가장앞선시기의1차사료는알렉산드로스가죽은지약300~500년뒤로마제국당시의저작들이다.플루타르코스를비롯한디오도로스,쿠르티우스,아리아노스등의저작이정통성을인정받고있는데,그중가장공정하고분석적인전기는아리아노스의『알렉산드로스원정기』로알려져있다.다소늦은감이있지만,국내최초로번역된이원전을통해알렉산드로스라는인물의생생한면면을접할수있게되었다.

아리아노스,가장공정하고분석적으로영웅을해부하다
“내이름은밝힐필요가없고,나라와가족그리고내가맡은관직을구체적으로말할필요도없다.오히려이렇게말하고싶다.내가쓴이책이나의국가,친족,관직의지위보다더중요하다.어린시절부터그러했다.실제로내게는이책이나의국가이며친족이며관직이다.”

저자아리아노스는2세기로마시대에카파도키아총독과아테네집정관을지낸행정가이자역사가이며철학자였다.원래로마의속주인비티니아에서태어난그에게『알렉산드로스원정기』는그의삶에서필생의과업이었다.그는알렉산드로스에대한무한한존경을품고있었고,군사와행정분야의전문가였으며,선대역사학자들의연구를철저히숙지한상태였고,저술경험도풍부했을뿐아니라당대유명한철학자에픽테토스의제자로서철학적기반까지갖추고있었다.그리하여그의만년의역작인『알렉산드로스원정기』에는인간사에대한예리한이해와상식,전투지형이나전략등이깊이있게녹아들어있다.
특히집필과정이원정기의품격을더하고했다.아리아노스는오랫동안편린상태로떠도는각종자료들을산더미같이쌓아놓고터무니없는오류와모순된정보들을매의눈으로선별하여취사선택하는과정을거쳤다.더욱이알렉산드로스의원정에직접참여했던프톨레마이오스와아리스토불루스의진술이가장신뢰할만하다는판단아래그둘의역사서를기초로삼았다.주로군사분야에관해서는프톨레마이오스의기록을,지리학과자연사에관한정보는아리스토불루스에근거했다.원정에동반한다른여러인물들의증언과기록중에서개연성이높은내용들도채택하되,진실이아니라고판단한부분에대해서는냉철한입장을취함으로써선정주의를피했다.
『알렉산드로스원정기』의주요한특징은원정과정에집중하고있다는점이다.페르시아원정이전의마케도니아와그리스의복잡한동맹관계,왕자시절의스승이었던아리스토텔레스와의관계나애마부케팔로스에관한일화,부왕인필리포스2세와어머니올림피아의관계나출생에얽힌신비주의적내용들은과감히생략한채오로지출정기간에발생한사건에몰두하고있다.특히동행했던지휘관이나적장들의이름과직위,군대규모,전투과정,지리와지형등을세밀히고찰하고있다.두번째특징은알렉산드로스에대한무한한존경심에도불구하고공정한태도를유지했다는점이다.살인적폭력을부르는주벽과오만함,자제력부족,신이되려는열망,과도한정복욕에대해서는비판의칼날을숨기지않는다.이러한자세로인해아리아노스는가장공정한알렉산드로스분석가라는평가를받을수있었다.

신기에가까운동방원정의배경에는‘왕의친구들’이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32년8개월을사는동안12년8개월간통치했고,그중11년간(기원전334~323)출정길에있었다.그의총원정거리는약2만7000킬로미터에달했고,오늘날의그리스,터키,이집트,레바논,이라크,이란,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지역을차지했다.맨먼저선왕인필리포스2세가죽자분열의조짐을보이는그리스동맹을제압한알렉산드로스는바로소아시아로출정하여페르시아의다리우스왕과세번에걸친싸움끝에승리를거두었다.그라니코스전투,이수스전투,가우가멜라전투가바로그것이다.그과정에서이집트땅을접수하고돌아와페르시아의수도페르세폴리스궁전을불태움으로써페르시아가지배하던소아시아땅까지접수했다.서쪽으로진군한알렉산드로스군은인더스강과히다스페스강을건너면서코끼리군단을앞세운수십만의인도군에맞서연전연승했고,연이어인도본토까지진출하고자했다.그러나오랜행군과전투에지친병사들의반발에밀려의지를꺾고회군길에올랐다.그러나마케도니아에도착하지못한채바빌론에서열병에걸려최후를맞았다.그의원정경로곳곳에건설된70여곳에신도시‘알렉산드리아’는무패의신화를증명하는깃발로남았다.
셀수없을만큼많은전투에서그가승리를빼앗기지않을수있었던것은전적으로그누구도흉내낼수없었던지략덕분이었다.그러한지략이성공할수있었던것은최고기병대병력인헤타이로이Hetairoi(왕의친구들)연대가있었기때문이고,팔랑크스phalanx(밀집대형)로공격하는페제타이로이Pezetairoi(보병친구들),가공할무기인사리사sarissa가있었기때문이다.알렉산드로스는정예된부대를기반으로전형적인전략보다는상황에따른변형을구사하여적의허를찔렀으며,경우에따라창의적으로전술을변형함으로써이후시대에시대를막론하고수많은군사전략의교본이되었다.여기에는각각의전투전개과정을세밀히묘사한아리아노스의『알렉산드로스원정기』가기여한바가적지않다.

알렉산드로스는어떻게무패행진의기록을이루었는가
전투장면에관한한아리아노스의해설은그누구보다정확하고타당하며,정확한전문적지식을보여준다.특히전투에앞서어떤부대가어느위치에서어떤공략을펼쳤는지,각각의지휘를맡은인물이누구인지,양쪽병력의숫자및싸움뒤의전사자와포로의숫자까지상세히밝히고있다.
기원전334년봄,알렉산드로스가이끄는마케도니아군은보병3만~4만3000명,기병4000~5500명을이끌고헬레스폰투스해협을건넜다.이후페르시아와의첫전투인그리니코스전투에서는강건너편에대기하고있는적군의위협적인공격에도과감히도강을결정하여승리를거두었고,이수스전투에서는고도의지략전을전개하여60만대군을이끌고총력전에나선페르시아군을패퇴시켰다.높은성벽으로둘러친티레섬을공략하는7개월간의전투에서는육지에서섬까지이르는800미터바다위에제방을쌓았다.티레군의화공선공격으로제방이불에타버리자또다시제방을쌓는데성공했고,끈질긴함선공격을물리치고공성무기로성벽을무너뜨린독보적인전략은오늘날까지유명하다.가우가멜라전투의경우페르시아군의낫전차들이돌진할때보병들의밀집형태를해체하여낫전차가그대로통과시키는전략을구사하는한편중앙을향해과감히공략함으로써다리우스왕을또다시달아나게했다.인도지역의히다스페스전투는그야말로알렉산드로스지략의백미라고할수있다.그라니코스강에서의치열한전투와마찬가지로코끼리부대를앞세운포루스왕의대군은히다스페스강에서알렉산드로스군의도강을방어하고있었다.이에알렉산드로스는병사들을강의위아래로계속움직이게하여적의감시를느슨하게한뒤은밀히강을건너는데성공했다.이후벌어진전투에서기병대를벌벌떨게하는코끼리부대를무력화시켰을뿐만아니라오히려코끼리가아군을공격하도록유도함으로써대승을이루었다.
그밖에도아리아노스는요새와성벽을공격하는전술,협곡의관문을통과하는전략을비롯하여적의사기를꺾어투항을이끌어내는다양한과정을소개하고있다.

잘못을저지른뒤후회할줄알았던고귀한품성의‘영웅’
『알렉산드로스원정기』의미덕은정복과정의세밀한기록에만있지않다.아리아노스는단순한관찰기록자로서접근하기보다는스토아학파철학자인에픽테토스의제자답게특유의통찰력을발휘하여인간알렉산드로스의장단점을파악하고있다.이러한저자의윤리적개입이있었기에오늘날우리는신화적장치에가려진영웅의약점을확인할수있는데,오히려그러한약점으로인해알렉산드로스라는존재가새삼빛나고있다.예컨대알렉산드로스가가장사랑했던동료헤파이스티온이죽었을때이집트총독에게모든악행들을눈감아줄테니친구의사당을세우라고지시한부당한요구에대해아리아노스는크게질타하고있다.
물론자신이존경하는영웅에대한찬사도빼놓지않았다.전투에임할때빛나는왕의복장을한채앞장서서죽음의위험을감수하는용맹함,사막을횡단하는과정에서지독한갈증을해갈할한줌의물을받아들었을때병사들앞에서과감히그물을쏟아버림으로써자신의의리를보여준결단력,다리우스왕을주검을고향으로보내주어왕의장례를치르게하고그가족들을정중히예우한관대함,인도군을무찌른뒤적장인포루스왕을죽이는대신오히려인도지역의총독으로임명하여친구로삼은지도력등에대해서는그어떤왕과도비교할수없는훌륭한덕목이라고칭찬하고있다.그무엇보다도아첨꾼들에둘러싸인상황에서도자신의실수와잘못을뉘우칠줄아는고귀한품성의소유자라고했다.예컨대술자리에서자신의절친클레이토스가충고하자이에분노한알렉산드로스는창을던져죽이고말았는데,친구를죽인자는살아선안된다며창의손잡이부분을벽에대해몸을창끝에밀어죽으려했던사실을전하면서그의인간적인면을부각했다.
반면페르세폴리스궁전을불태운사건에대해서는왕의잘못을지적하면서도주벽과자제심을잃은젊은왕에대한개인적연민을감추지않았다.그리고왕이스스로를신의혈통이라고주장한사실을인정하지는않았으나,디오니소스나아킬레우스처럼신의반열에오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