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구혼과 처녀간택부터 첫날밤까지 국왕 혼례의 모든 것)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구혼과 처녀간택부터 첫날밤까지 국왕 혼례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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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는 의궤와 연관 자료를 통해 국왕의 혼례를 들여다본다. 책은 “구혼과 처녀간택부터 첫날밤까지 국왕 혼례의 모든 것”을 세세히 다뤄 그 과정을 하나의 다큐멘터리로 재구성하고자 한 ‘기록 의지’의 산물이다. 책의 구성은 국왕의 가례라는 게 무엇이고 조선사회에서 차지한 위상이나 성격 등이 어떠했는가를 먼저 논한 뒤 바로 국왕이 전국에 공개 구혼하는 ‘제1절차’로 포문을 연다. 한 여인이 궁궐로 들어와 왕의 부인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바로 ‘왕비’로 책봉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왕비는 왕과 ‘동급’의 지위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려야 했고 이를 위한 권위와 상징 부여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윽고 왕과 왕비가 얼굴을 마주하는 친영과 백관이 참석하는 동뢰연을 거쳐 첫날밤을 보내게 된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가면서 세부적인 절차와 거기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역할, 실제 사례에서의 돌발사태 등을 설명해나간다. 제2부에서는 ‘후궁’ 들이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후궁을 보는 기존 시각이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후궁의 간택과 육례의 모든 것을 밝히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로서 국가 가례로 치러진 숙의의 국혼을 다뤘고, 후궁을 높이기 위한 영조의 정책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저자

임민혁

저자임민혁은문학박사,한국학중앙연구원장서각전임연구원
박사과정을수료한후『가례』를번역해출간하고,관료제에눈을돌렸다가미지의무엇에홀린듯다시의례분야를기웃거렸다.그러다가우연찮게장서각에서의궤를탐독할수있는연구사업에종사하게되었고,지금도의례관련등록들을1차가공하는일을하고있다.그동안예禮의정치적성격에주안을두고조선시대왕실사람들의삶과문화를제대로깊이있게그리는작업에몰두해왔다.이번의국왕혼례를비롯해종묘와신주,국왕의상장례인국장,예의기초인용례와위의威儀,왕자녀들의삶과문화등다양한예관련주제를섭렵하여대중에게역사의새로운패러다임을선보일예정이다.
저서로는『조선의예치와왕권』『영조의정치와예』『영조어제해제2』『왕의이름,묘호』『조선시대음관연구』등이있고공저로는『조선의역사를지켜온왕실여성』『영조어제해제10』『조선의왕ㆍ왕비ㆍ왕세자로살아가기』『대한제국』『조선왕실의가례1ㆍ2』등이있다.역주서로는『주자가례에서통치이념을배우다』『주자가례』『추봉책봉의궤』등이있다.

목차

서문

제1부군자의좋은짝요조숙녀
1장아름다운모임,가례
만민을친히하는가례|군자의좋은짝요조숙녀

2장국왕이전국에공개구혼하다
국왕의공개구혼|국혼의시기와연령|처녀단자의제출|맹인동원해처녀찾기|왕실과양반의국혼에대한문화심리의차이|처녀들의첫대궐나들이|달기와포사같은여인을멀리해야|서인의‘물실국혼勿失國婚’의목표는달성되었는가
[부록]간택때처녀들의선물|화순옹주부마월성위김한신의초간택참가기|혜경궁홍씨의삼간택참가기

3장별궁생활과육례六禮준비
어의동본궁이국왕가례의별궁|옥교를타고별궁으로향하는비씨|비씨의별궁생활|길
흉을점치며육례를준비하다

4장납채에서고기까지
국왕의혼수비용|육례의거행을명하다|비씨집에서납채를받아들이다|선온잔치와그
후의납징,고기

5장왕비책봉은혼례의한절차인가
국왕은동등한지위의여성과혼인해야|왕비의권위와상징|왕비의명복,적의

6장존비가같아져서친해지다
음이양을따르는친영이자연의법칙|관소에서친영하다|동뢰연으로한몸되다|국왕과
왕비의첫날밤

7장국가의주부가조상을뵙다
왕비가시가어른들을뵙다|왕실의며느리가되려면종묘를알현해야

제2부후궁은부인인가,첩인가
8장국혼으로서의후궁간택
후궁을보는시각|후궁은왕비가될수있는존재|숙의는왕비의예비후보|숙의의왕비불가론대두|숙의가례는국혼이었다|국왕이부인으로사랑한후궁

9장중흥군주영조가후궁을높인이유
후궁의아들,영조|숙빈최씨의출신|어머니숙빈최씨를왕비로높여라

10장후궁의간택과육례
후사를넓힐목적의후궁간택|숙종12년의숙의가례|헌종13년의경빈가례|숙의와빈의차별및그의미

출판사 서평

조선팔도가들썩거린중요한가례
왕은어떻게짝을찾았고,혼례를치렀는가
조선국왕의결혼식,A부터Z까지재구성!

때론정치적고려에,때론개인적욕망에휩싸인국왕의결혼
맹인동원해처녀찾기…문벌가문초비상!

“조선의국왕이점지된짝을찾는방식은권위적이다.그는초월적인존재로서
특수한방식의정혼을요구했다.가가호호미혼양반규수들의신상에정통한중매쟁이가개입하는것이아니라,전국에광고를내후보신청을받는공개구혼이었다.왕실에서는
국왕의배필이될만한규수를구한다는사실을공론을통해조정에널리알렸다.
국왕이모든미혼여성의신랑감후보임을자처하고나선것이다.”

조선국왕혼례의눈길가는내용들

ㆍ인조이래왕비배출가문은대부분‘서인西人’
ㆍ처녀단자제출기피에는경제적인이유도
ㆍ내정된상태에서‘짜고치는고스톱’도벌어져
ㆍ신부조건을놓고빚은영조와벌열가문의갈등
ㆍ예비왕세자빈에게내려진화려한예단
ㆍ초간택,재간택,삼간택등세차례에걸쳐서피말리는선택과정
ㆍ가례도감은육조의속아문과같은지위의거대행정조직
ㆍ혼례전한달이상별궁에머물며극한의‘신부수업’

책소개

조선왕조는왕실의모든행사를기록으로남겼다.국왕의혼례로대표되는가례嘉禮부터장례로대표되는흉례凶禮까지남김없이기록화하여후세에전해주었다.조선사회와문화를이해하는데중요한창은조선왕조실록이나각종의궤다.그중국왕의혼례는늘관심의대상이어서이를다룬책을선보이기도했다.『66세의영조,15세신부를맞이하다』와같은책이그것이다.이번에출간된『조선국왕장가보내기』역시의궤와연관자료를통해국왕의혼례를들여다본다.기왕의책들이특정국왕의특정혼례를다루거나이를통해정치ㆍ문화적논의를펼쳤다면,『조선국왕장가보내기』는부제가말해주듯“구혼과처녀간택부터첫날밤까지국왕혼례의모든것”을세세히다뤄그과정을하나의다큐멘터리로재구성하고자한‘기록의지’의산물이다.
책의구성은국왕의가례라는게무엇이고조선사회에서차지한위상이나성격등이어떠했는가를먼저논한뒤바로국왕이전국에공개구혼하는‘제1절차’로포문을연다.지난한처녀간택과정이지나가고낙점을받은‘비씨’는별궁생활을시작하는데,궁궐에들어와서온갖낯선절차와뭇사람의시선을받아내야했던그들의생활을재구성했다.이어본격적인혼례준비에들어가는궁궐은납채와고기등신랑과신부가주고받아야했던물품및잔치에들어갈돈과물품까지챙기는등정신없이돌아가기시작한다.
한여인이궁궐로들어와왕의부인이된다는것은생각보다단순하지않다.바로‘왕비’로책봉되는일이기때문이다.그러기위해왕비는왕과‘동급’의지위라는것을만천하에알려야했고이를위한권위와상징부여가다양한방식으로이뤄졌다.이윽고왕과왕비가얼굴을마주하는친영과백관이참석하는동뢰연을거쳐첫날밤을보내게된다.
이책은이러한과정을하나하나밟아가면서세부적인절차와거기에관여하는사람들의역할,실제사례에서의돌발사태등을설명해나간다.
지금까지가제1부의얼개라면제2부에서는‘후궁’들이기의모든것을다루고있다.역대조선국왕은대부분후궁을두었는데,그들은‘첩’이기보다는‘왕비가될수있는존재’이자예비주자로서그에걸맞은절차를거쳐야했다.이책은후궁을보는기존시각이갖는문제점을지적하며후궁의간택과육례의모든것을밝히고있다.구체적인사례로서국가가례로치러진숙의의국혼을다뤘고,후궁을높이기위한영조의정책을예로들어설명했다.

책속으로추가

ㆍ삼엄으로엄격히통제되는예식
각종행사에서국왕의거둥은미리정한시각에맞춰이뤄졌다.국왕의거둥은가장존엄한존재의행차였으므로삼엄한경계속에서북소리의신호에따라엄숙하고차분하게진행되었다.이것이소위‘엄嚴’이며,초엄ㆍ이엄ㆍ삼엄의세단계로나뉘었다.군대의신호체계에서연원한이삼엄은국왕과참석자의동작및정렬이완결되기까지의점진성을나타냈다.삼엄은행사전날시간을미리정해국왕의재가를받아서조보朝報를내모든관서에통지했다._4장납채에서고기까지

ㆍ창졸간에‘하급관리’에서‘영감’이된기러기배달자
기러기를궁궐에서비씨집으로들고가는역할은충찬위가담당했다.충찬위는아들을많이낳고풍채가좋으며복이있는사람으로선발했다.명복을담은함을지고가는사람도마찬가지였다.숙명공주길례때차출된두명은서울남부와서부에사는이들로서,각각5남1녀와3남1녀를두었다.화순옹주때에는아들여섯을낳은80세의김시감과아들넷을낳은63세의정효달이선발되었다.창졸간에영감이된충찬위는당상관의풍모를갖추도록겉치레를했다.장인에게기러기를드리는신랑이임금이므로그기러기를들고가는사람은그위신에맞는고위직이어야했다.그리하여생안충찬위는흑단령을입고가슴에는당상관의흉배를달아국왕사신으로서의위엄을과시했다._4장납채에서고기까지

ㆍ국왕은동등한지위의여성과혼인해야
요즈음의결혼식은옛날로치면동뢰연同牢宴이다.동뢰연을행하려면신부를초청해야하는데,그전에행해야할일로일찍이두가지문제가제기되었다.하나는최고통치권자인국왕의혼인상대가되려면당사자인여성은어떠한지위여야하는가의문제다.다른하나는국왕이친영해야하느냐의여부였다.전자는『예기』「혼의」에서그단서를찾을수있다.임금이지존으로대적할사람이없다고하지만종묘를섬기고후세를잇는것에서는부부가일체이니,임금이대적할만한사람으로신부를그와동등한지위로올려놓아야한다는것이다._5장왕비책봉은혼례의한절차인가

ㆍ화려한국왕의친영,400명의군사가호위하다
면복을갖춘국왕은홍화문을거쳐궁궐밖으로나와장엄한행렬을펼쳤다.영조가정순왕후를맞을때국왕이탄연을시위하는군인은포수와살수60명이었다.이들은훈련도감장관이거느리고좌우에서시위했다.앞뒤에는사대射隊가배치되는데,훈련도감군병400명이동원되어각장관이200명씩을거느렸다.전사대의장관과군사는한성부앞길에좌우로나누어진을치고,후사대의장관과군사는의정부대문밖에좌우로나뉘어일렬로서서문門을만들었다._6장존비가같아져서친해지다

ㆍ왜왕의결혼식엔음악과춤이없었을까
이동뢰연에는축하세리머니가없는것이특징이다.길례인제사에도음악과춤이있는데혼례에음악과춤이없다니왠지낯선느낌이다.육례의행사장에는헌가軒架와고취가진설되기는했지만음악을연주하진않았다.왜란과호란을겪은후에는대소의거둥에악부樂部를폐지하여설치하지않았다고해서인조때에는아예이를진설하지말도록한적이있었다.그러다가인현왕후가례때에와서오례의대로진이부작陳而不作,곧악기들을진설해놓되연주하지말도록했다.대례를중시하여그일을엄숙히하고자음악을사용하지않은것이다._6장존비가같아져서친해지다

ㆍ첫날밤에‘한이불’은현실적으로무리
악차로들어간국왕은그자리에서바로왕비와첫날밤을보냈을까?오전중이나이른오후에동뢰연을행했으니,소위첫날밤을보내기에는무리였을것으로짐작된다.(…)남녀의성性을금기시하다시피한유교문화에서존엄한국왕의성을위한준비와절차는차마언급할수조차없어기록으로남기지않았다._6장존비가같아져서친해지다

ㆍ조현례에글을아는의녀240명을차출하다
조현례는왕비가대왕대비등왕실의웃어른들을차례로알현하는의례다.이의례에는많은의녀가동원되었다.여의女醫는글을알기때문이었다.임시로뽑혀온가의녀假醫女는세자빈조현례의경우그필요인원이240명이었다.가의녀들은공공기관에소속된여종들중에서차출되었다.육조와사학,봉상시등에소속된여종이이미다차출되고한명도남아있지않아서달리충당할길이없는경우도있었다.그때에는궁여지책으로서울에사는현수絃首를차출하기도했다.현수는거문고나가야금을전문으로연주하는기생혹은무당을따라다니면서악기를연주하는무녀였다.가의녀는진설되는의장을들고있는역할을주로담당했다.의장을최소화해서산선?扇만을진설하여현수무녀의차출을중지하기도했다._7장국가의주부가조상을뵙다

ㆍ후궁가례가중요한이유는후궁이왕비가되기때문
후궁가례는조선전시기에걸쳐여러차례행해진의례였다.그런데도그동안후궁이될여자가국왕과혼사를치렀다는사실자체에별관심을두지않았으며,알고있었다하더라도의아한표정을감추지못했을것이다.조선건국직후의불안정한시기를거쳐세종10년에내명부제도를갖춘이래정조이전까지후궁간택의대상은숙의淑儀였다.숙의간택은왕실의후사확장을명분으로삼았지만,왕비의자리를승계한실례가성종ㆍ중종연간에보여그의미가클수밖에없다._8장국혼으로서의후궁간택

ㆍ숙의,조선후궁제도의획기적제도
조선의후궁제도에서획기적인사실은처인왕비외에공식적인혼례절차를거쳐국왕의부인이요왕실가족의일원이된숙의의실체그자체다.숙의는국왕의제2의처이면서종2품내관이다.이러한시각은국왕소유여성의혈연적ㆍ계급적이중구조를보여준다.국왕에게도물론일부일처제의원칙에어긋나는다처를허용하지않았다.그럼에도제2의처인숙의가존재하는모순은국왕의지위상의특수성으로이해할수있다._8장국혼으로서의후궁간택

ㆍ어머니숙빈최씨를왕비로높여라
영조가출신의한계를극복하기위한방법으로무엇이있었을까?그중하나가숙빈최씨의지위를높여주는추숭사업이다.당시사람들은왕에게존호와시호,묘호등을올리는것처럼지위를이름으로나타냈다.효도는어버이를높이는것보다더큰것이없고,시호로써이름을바꾸어야한다고했다.영조도“육상궁께시호를더올려서낳고길러주신은혜에조금이나마보답하고자한다”고했다.따라서이름올리기혹은이름바꾸기易名는효의실천이며,이름을명분으로종법질서의체계를바로잡고왕실의정통성과질서및안정을도모할수있었다._9장중흥군주영조가후궁을높인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