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나서서말하지못했던여성의섹슈얼리티에대하여
여자라면한번쯤경험하고의문을품었을내몸의이야기
“내경험을있는그대로쓰는지금이행위가곧투쟁이라는걸안다”
삐뚤빼뚤하고울퉁불퉁하고흐물흐물한것들을사랑한다고자신을소개하는홍승희는바닷가근처에살면서글쓰고그림그리고퍼포먼스를하는젊은예술가다.한겨레에오피니언칼럼을연재하고있고,오마이뉴스에여자교도소르포를썼다.작업실을겸하는집에서그림을그리고,강아지커리와바닷가에나가서뛰어놀고,가끔은거리로나가예술행동을한다.일대일독점연애에서벗어나비독점적다자연애를꿈꾸는폴리아모리를지향하는비혼주의자인그녀는마음맞는사람들과‘비혼예술퀴어공동체’를이루어산다.그런그녀가자신의이야기를담은첫책을펴냈다.
『붉은선:나의섹슈얼리티기록』은대한민국에서살아가는한여자의섹슈얼리티에대한거의모든이야기다.임신중절경험에대한증언을시작으로,데이트폭력,데이트강간,첫경험,첫자위,첫오르가슴,성폭력,성추행,성노동,폴리아모리,비혼,비출산등사적인것으로탈락되어온이야기를쓰고또썼다.지극히사적인것으로보이는경험이발화되어야하는이유는각개인이갖고있는‘붉은선’을인식하게해주고,이를넘어설용기를주기때문이다.이책의제목이기도한‘붉은선’은사회가,그리고우리자신이만들어놓은여성의섹슈얼리티에대한금기·억압·낙인이자임신테스트기의붉은선두줄이다.임신중절수술후잠수를타버린애인,그녀의과거를까발리겠다고협박하는전애인들……그녀는그녀를억압하는붉은선앞에주저앉았다.그러나다시일어나그동안참아왔던‘몸’의이야기를써내려가기시작했다.여성인저자가임신중절수술부터성노동경험까지섹슈얼리티를드러내는것은붉은선을넘는일이었다.
그녀의글은투쟁적이고뾰족하다.다른한편거기서는차분하고내재된슬픔이묻어난다.이는스스로를독방에가둬야했던,그어두웠던창고에서나온자만이가질수있는힘이아닐까싶다.이책이그녀와같은일을겪고있을10대들에게는네잘못이아니라고이야기해주는언니와같은,현재를함께살아가는젊은여성들에게는계속해서같이나아갈힘을주는,모든‘엄마들’에게는여성으로서지나온섹슈얼리티를돌아보게하고‘막’살기를응원하는그런역할을했으면한다.
그들의포르노그래피에너를가두지마
그녀라고해서독방을부수고나오는일이처음부터쉬웠던것은아니다.성을바라보는사회적시선이어느정도자유로워졌다고해도여자가자신의성에대한이야기를A부터Z까지말하기에우리사회는여전히보수적이기때문이다.여자의성은늘숨겨야하는것,드러내서는안되고닳아없어지는보물로취급되어왔다.성교육시간에는“안돼요!”만을가르치고,즐겁고안전하게섹스를즐기는방법이나오르가슴을느끼는법,올바른피임법을이야기해주지않는다.남자들의자위이야기만무성한사회에서여자의욕망은배제된다.
여성의몸은‘보물’이라고순결주의를주입하는학교와집에서그녀는순결한섹스를상상하며자랐다.그러나열다섯살때겪은데이트강간과도같은첫경험과‘삽입오르가슴’이중심이되는섹스를경험하면서그녀는여성의몸은닳아버리는보물이아니라욕망하고,실수하고,성장하는‘인간’임을알게되었다.처음한자위에서오르가슴을알게된그녀는클리토리스오르가슴의세상을꿈꾼다.남성이중심이되어‘정복하고,이기고,지배하고굴복시켜서느끼는’권력의쾌락이아니라‘마주치고,문지르고,쓰다듬고,연결되는고요하고뜨거운쾌락의세상’,저자는이를‘클리토리스감수성’이라고이름붙인다.만약열다섯의저자가페미니즘을만났다면조금덜힘들었을지모른다.첫키스,첫경험,순결이데올로기의실체를알았다면.
남자/여자의역할극,활용되는여성성
‘여성’이라는섹슈얼리티는어디에서든제멋대로작동했다.처음홍승희의이름이언론에오르내리고,사람들의주목을받게된건일본군위안부소녀상앞에서한대한민국효녀연합퍼포먼스때문이었다.당시사람들은이런대담한일을하는‘여자’를눈여겨봤고,‘예쁜’여자가정치에관심을갖고나서서이런일을한다는것에놀라워했다.효녀연합을지켜준다는오빠연합까지생기는등사람들의관심은지대했다.이를통해많은사람이위안부문제에관심을갖게되고,온라인상에서자신을지지하고응원해주는이가많아졌다.그러나피켓시위를하거나퍼포먼스를할때,늘작업내용이아니라‘정치에관심있는여성’이라는의외성만이부각됐다.여성성은끝도없이활용되고이용되었다.
다른한편혁명가일때의그녀는여자의옷을벗어야만했다.촛불집회에하이힐을신고미니스커트를입고오자“너는집회에데이트하러왔니?”라는말을들었고,함께혁명을외치는자리에서짧은바지를입거나화장을하면운동의진정성을의심받았다.그녀는몰래숨어서화장을하고,그들의기준에맞춰몸에맞지않는갑옷을입어야했다.혁명에서조차여성의역할을정해져있었다.때로는여자,때로는어머니,그리고명예남자의갑옷.같은동지로만난남자와의연애에서도마찬가지였다.그는여성을경멸하는만큼어머니혁명가를추앙했고,섹스를경멸하면서도엄숙한것으로신비화했다.그앞에서공적인혁명과사적인섹스는구분되어야했고,욕망은거세되어야했다.
여성의몫으로남겨지는이야기들:피임,강간,임신중절,성노동
그녀의이야기를읽다보면군데군데믿고싶지않은순간들과만난다.섹스는함께하지만온전히여자의몫이되어버리는피임,존경해오던선배,교수,작가에게당한강간,원치않은임신으로인한임신중절수술……그어느것도그녀가자발적으로원한게아니었는데,뒤에남은책임과수치심은오로지여자의몫이었다.
강간하는사람들은절대강압적이지않다.네몸이예뻐서,네가섹시해서라며남자를유혹한여자에게화살을돌린다.권력을가진그들에게그일은사소한섹스에피소드로남는다.‘그들은그래도되니까그렇게한다.’그녀는그들의말도안되는요구와강압에도그와의관계를망칠까봐두려워했다.모든것이내잘못이라고느꼈다.그것이성폭행이었다는걸인정하기까지오랜시간이걸렸다.그녀를포함해서점점많은여성이용기내어성폭력경험을증언하고자신의언어로목소리를내고있는지금,이과정자체가매우중요한투쟁이다.
폴리아모리를지향하며함께살던애인과의사이에서원치않는임신을했고,그녀는작년임신중절수술을했다.고통을분담하겠다던그는수술후잠수를타버렸고,페미니스트였던그의어머니는이일을그녀가공개하지못하도록성노동을아웃팅하겠다며협박해왔다.임신중절,성노동,섹스라는여자에게불리한낙인앞에서그녀는절망했다.그러나다시아픈몸을추스르고그동안꾸역꾸역참아왔던‘몸’의이야기를쓰기시작했다.임신중절경험을증언하는것을시작으로몸이겪은,몸이기억하는일들을쓰고또썼다.거기에는성노동경험도포함되어있었다.그러나그런이야기를선뜻받아주는곳은드물었다.여성주의를지향하는언론과소위진보적이라는언론에서도마찬가지였다.성노동자체가여성인권을후퇴시키는것이며,굳이커밍아웃을할필요는없다는게이유였다.지금까지낙태나데이트폭력등여러‘불법’에대해서글을써왔지만이런제지를받기는처음이었다.성노동자에게유독뿌리깊은혐오와낙인이부당하고비합리적이라느낀그녀는그녀스스로부터자유로워지기위해서포기하지않고계속해서글을쓴다.수많은성노동자에게가닿기위해서묵묵히써내려간다.
그럼에도,나는나를양보하지않는다
더러운년.창녀.걸레.열다섯첫경험이후,아니그이전부터‘더러운존재’라는낙인은계속나를따라다녔다.침묵은내생존수단이었다.그런데내가입을떼자그들이두려워하고있다.나를가둔눅눅한독방에빛이들어왔다.단지나는내가있던방에대해이야기했을뿐인데.나를협박한그들이인권과민주주의따위를말하는인간이라는게화나고답답해서라도,낙인찍히고금기된내몸을더뻔뻔하게드러내기로했다.그래,나더럽다.어쩔래.(6쪽)
저자는이렇게외친다.그래,나더럽다.어쩔래!그녀의작지만강단있는목소리가오늘날중요한이유는독자로하여금각자에게내면화되어있는‘붉은선’을인식하게하기때문이다.그녀의목소리는우리사회에서쉽게들을수없는것이다.동시에그럼에도,아니그래서꼭필요한목소리다.어떤이들은이렇게이야기할수도있을것이다.“개인의특별한경험을‘여자’들의문제라고극단적으로일반화해버리는것아니냐,너무충격적이다,여자가처신을똑바로못한거아니야?”이책에대한추천사를쓴홍승은의말처럼,그런생각이든다면이책은그역할을다한것이다.그녀는계속해서써나갈것이다.그녀는더이상자신이수치스럽지않지만,열다섯에그녀가겪었듯지금누군가는같은일을겪고똑같이수치심에떨고있을테니까.또다른‘나’들에게,그녀들에게가닿기위해,네몸을섹스할때마다닳아버리는보물이아니라살아움직이는주체로서의‘비체’라는걸이야기해주기위해서말이다.또한애도되지못하고소리없이사라져간수많은그녀들의이야기가바로그녀의이야기이기도하기때문이다.수치와공포에떨었을그녀들의이야기를발화하고연대하는것이그녀들을위해할수있는유일한애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