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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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어둠 속에서 걸어나온 실학자 이덕리를 추적하다!
한 학자의 고문서 발굴에 얽힌 10여 년간의 추적담이자 고문서 저자 이덕리(1725~1797)의 파란만장한 인생사와 학자적 면모를 밝히는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 그동안 연구자들은 하나같이 《동다기東茶記》와 《상두지桑土志》의 집필자는 ‘다산 정약용’이라고 말해왔다. 저자는 두 책을 쓴 주인공을 무덤 속에서 불러내 그 이름값을 되찾아주자고 결심했고, 발굴에서 집필까지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 이 책을 통해 조선 후기 실학의 한 귀퉁이를 새롭게 복원해내는 실적을 이루었다.

길디긴 발굴 과정이었지만, 이덕리는 뛰어난 실학자적 면모로 인해 충분히 양지에 드러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상두지》가 국방 관련 제안서라면 《동다기》는 차 전문서로서의 차에 관한 세부 내용은 물론이고 국방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재원이 될 만한 방책을 내놓기도 한다. 이 두 저술로 인해 이덕리는 18세기 지성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저자

정민

한양대국문과교수.
박지원의산문을꼼꼼히읽어『비슷한것은가짜다』와『고전문장론과연암박지원』을펴냈다.18세기지식인에관한연구로는『18세기조선지식인의발견』과『다산선생지식경영법』『다산의제자교육법』『다산증언첩』『18세기한중지식인의문예공화국』『미쳐야미친다』『삶을바꾼만남』등이있다.또청언소품淸言小品에관심을가져『일침』『조심』『옛사람이건넨네글자』『마음을비우는지혜』『내가사랑하는삶』『한서이불과논어병풍』『돌위에새긴생각』『다산어록청상』『성대중처세어록』『죽비소리』등을펴냈다.이밖에옛글속선인들의내면을그린『책읽는소리』『스승의옥편』등의수필집과한시속신선세계의환상을분석한『초월의상상』,문학과회화속에표상된새의의미를찾은『새문화사전』,조선후기차문화의모든것을담아낸『새로쓰는조선의차문화』,백운동별서정원의문화적잠재가치를담아낸『강진백운동별서정원』등을썼다.아울러한시의아름다움을탐구한『한시미학산책』과『우리한시삼백수』,사계절에담긴한시의시정을정리한『꽃들의웃음판』,어린이들을위한한시입문서『정민선생님이들려주는한시이야기』도펴냈다.

목차

서문:알수없는일
프롤로그:어둠속에서걸어나온실학자,이덕리

제1부이덕리를찾아서
1.세명의이덕리와만나다
2.나를돌려다오,제기하나로남은무덤
3.이덕사와이덕리형제
4.끔찍했던날의기억
5.유배지의나날과아무도기억하지않는죽음

제2부이덕리의저작과실학정신
1.국방의경륜을담은대표저술,『상두지』
2.이덕리의시문집『강심』과『강심만록』
3.강력한금연책시행을건의한「기연다」

제3부이덕리,차와만나다
1.이덕리와차에얽힌인연
2.표류선이깨운미각

제4부『동다기』(「기다」)이본검토
1.명칭논란과3종이본-『동다기』인가「기다」인가?
2.법진본『다경(합)』에대하여
3.법진본「기다」의내용과구성
4.백운동본「기다」의내용과구성
5.의암본「기다」의내용과구성

제5부『동다기』(「기다」)원전교감및주해

「다설茶說」5조
1.황량한들판의평범한초목
2.중국차의역사와북방오랑캐
3.차에무지한조선과차무역제안
4.제물을버는방법
5.차무역정책건의

「다사茶事」14조
1.우전차와우후차
2.일창일기
3.고구사와만감후
4.떡차와엽차
5.차맛과가미
6.우리차의효능
7.차의여러효능
8.냉차의해독
9.차는잠을적게한다
10.대숲차의효험
11.8말의작설을달여고약을만든동복현감
12.차를따는시기
13.차의이익
14.황차와아차
소결

「다조茶條」7조
1.보고와준비
2.인력동원과채취및보상방법
3.차의가격과예상수익
4.차무역이기회가되는이유
5.차시의운영방법
6.수익금의활용방안
7.잠을적게하는차의효능
백운동본필사자후기

에필로그_끝나지않은이야기
부록

출판사 서평

어둠속에서걸어나온실학자이덕리
『동다기』와『상두지』의행간속에서
몸집큰거인의면모가점점윤곽을갖춘다

이덕리를추적한지10여년……
역사에서흔적이모조리지워진한패망한가문의후손
그의저술은다산의이름으로바뀌어후대에전해졌고
그의자취를쫓던이들은제때이름을돌려주지못했다
무려200여년만에밝혀진저간의사정과실체
손에땀을쥐게하는숨가쁜고증추적기!

10여년간의발굴담,이덕리를추적하다

『잊혀진실학자이덕리와동다기』는한학자의고문서발굴에얽힌10여년간의추적담이자고문서저자이덕리李德履(1725~1797)의파란만장한인생사와학자적면모를밝히는책이다.문서발굴의기회는우연과운명이라는외투를걸친채저자에게찾아온다.그건뜻밖의횡재라고할수도있겠지만,한편어리석은실수를일으키고다시만회할기회까지안겨주는스펙터클의현장사이기도하다.그래서이책은발굴에서집필까지10년이상의세월이걸렸고,이로써조선후기실학의한귀퉁이를새롭게복원해내는실적도이뤘다.부수적인것이지만,그안에얽힌감정을들여다보자면흥분과죄책감,의무감,감탄,미안함과고마움이서려있었다.
때는2006년으로거슬러올라간다.저자정민교수는『다산선생지식경영법』을탈고하는과정에서다산의기운을전해받고자강진에내려간다.내심떡차에관한다산간찰의실물도봤으면하는소망을품고.이처럼공부하는학자의의욕을헤아려주면참좋겠지만,간찰소장자는뜻밖에도자료일체를공개하려들지않았다.여러시간을달려간길이라그대로접을순없었다.중간에다리를놔줄인물이마침강진에있어저자는어렵사리소장자노인의방안에몇뼘간격을두고마주앉게된다.그리고이첫만남은두사람이생각지도못했던엄청난실학저술의발굴로이어진다.바로『동다기東茶記』와『상두지桑土志』다.
그동안연구자들은하나같이두저술의집필자는‘다산정약용’이라고말해왔다.그오인의역사는길다.글맨끝에약간의힌트만남긴채거의익명으로전해진데다저술의중량감과존재감이커일제강점기를거쳐현대까지도다산의저술이라는것에한치의의심도제기되지않았다.이에저자정민교수는이책의주인공을무덤속에서불러내그이름값을되찾아주자고결심하게된다.220년간어둠속에묻혀있던원저자의한도달래주리라생각하며.
자료를접하고,수소문하고,해독하고,글쓴이에관한정보를뒤적거리면서들뜨긴했으나신중히접근하려했다.그럼에도저자는중간에커다란실수를저지르고만다.애초에‘전의리全義李’라고적힌책의집필자가‘이덕리’라는것까지는여러터널을통과하면서밝혀냈지만,『동다기』와『상두지』를쓴이덕리보다세살연하인,1728년생의동명이인이덕리가저술의주인공이라며논문으로발표했던것이다.이일은1725년생인이덕리입장에서보면통탄할만한것이었다.지난220년간세상의빛을한번도받지못했고후손들역시자기선조의발자취를전혀모르던와중인데,논문에서중대한실수를저지른것이다.죄스런마음을감추기힘들었다.(전의이씨23세청강공파‘덕德’자항렬계보에는비슷한시기에세명의서로다른이덕리가존재했다.게다가어찌된셈인지세사람모두족보상에서이덕리가아닌다른이름으로기재되었다.)
하지만발굴자의잘못이라고만할수도없었던게,이덕리는그형이대역죄인인까닭에연좌되어유배지에서20여년을살다가생을마감했다.그자신세상에절대드러나지않는방법으로글을썼고,책말미에희미한흔적만남겼다.집안후손들도미처몰랐던사실인데다,후대학자들역시그덫에걸려헤매고,오해하고,다시바로잡는해프닝까지벌어진것이다.
길디긴발굴과정이었지만,이덕리는뛰어난실학자적면모로인해충분히양지에드러날만한가치가있었다.『상두지』가국방관련제안서라면『동다기』는차전문서로서의차에관한세부내용은물론이고국방정책을추진하는데재원이될만한방책을내놓기도한다.이두저술로인해이덕리는18세기지성사의한귀퉁이를차지하게될것이다.

어둠속에서걸어나온이덕리는누구인가

『동다기』의실제집필자를추적하는실마리의첫발은우연한기회에떼어졌다.저자는초의의『동다송』을읽던중제37~40구아래에달린주석에서‘『동다기』에이르기를’이란구절에시선이붙들렸다.“이상하다.이구절은얼마전강진에서이효천노인이보여주었던『강심江心』이란책에실린「기다記茶」의내용과같은데…….”마침노인에게서자료를빌려온터라곧장대조를해보니「기다」가곧『동다기』였다.둘은한글자의오차도없이내용이똑같았다.가슴이두근거리고온몸에전율이일었다.‘다산의또다른자료가세상빛을보게되는것인가.’당시의상식으로『동다기』의집필자는다산이었기때문이다.하지만시간을갖고자료를정리하던중정민교수는전혀뜻밖의인물,문중에서조차그존재를몰랐던이덕리란인물이이책의실제저자임을알게된다.

“『강심』의「기다」끝에필사자인이시헌은저자인이덕리李德履가‘옥주적중沃州謫中’에서이책을저술했다고썼다.이덕리가죄를지어진도에유배와있으면서지었다는것이다.죄인신분이었으므로이덕리는자신의저서에이름대신본관만밝혔고,이것이필사되어유통되면서‘전의리全義李저著’란해괴한이름으로세상에알려졌다.이시헌이『강심』에서무심코한줄의추기를남겨놓지않았다면우리는저자를끝내확인할수없었을것이다.”(본문에서)

이덕리는철저히왜잊히려했고잊힐수밖에없었을까.저술은버젓이남아전하는데,왜책표지에자기이름새기기를거부했을까.발단은그의형이덕사李德師(1721~1776)에게서비롯되었다.정조는즉위일에윤음을내렸는데,그내용은해석하기에따라아버지사도세자를예우하겠다는뜻으로도읽혔고,정반대로사도세자추숭논의를하면가만두지않겠다는엄포로도읽혔다.이덕사는사도세자를예우한다는쪽으로해석해사도세자추숭을건의하는방향으로승부수를띄웠다.이것은엄청난광풍을일으켰다.노론의동향을예의주시하고있던정조는이덕사의상소문이올라오자격노했고,곧장체포해이튿날능지처참에처했다.그의가문은멸문지화를입어당시52세였던동생이덕리역시진도로귀양가게되었다.이들형제는명문의후예로문명이높아당대의선집에이름을올렸던문인이었지만하루아침에나락으로떨어졌다.
20년의세월,이덕리는71세가되기까지유배지의민가골방에틀어박혀이름을숨긴채『강심』과『상두지』집필에몰두했다.이후다시영암으로이배되었다가73세의나이로이름도자취도없이세상을떴다.
저자가자료를발굴하면서새롭게확인한이덕리는그저『동다기』의집필자로만기억될인물이아니었다.변방의둔전경영과축성및도로와수로운영,각종화포와수레제도의적용을꼼꼼히정리한것이『상두지』라면,농한기유휴인력을활용한차생산과국가전매를통해엄청난국부를창출하자고외친것이「기다」다.게다가「기연다記烟茶」에서는국가적인금연정책을실시할것을주장했다.담배가국가경제에미치는악영향을우려하고,담배로인한실생활의폐해를고발하는내용으로되어있다.나아가그는국가정책으로확고하고단호하게금연령을시행하여,이를통해창출되는경제효과만으로도1년에1260만냥을절약할수있다며시행의구체적인방법까지단계별로제시했다.
이들저술로18세기의잊힌실학자한사람은깊고오랜어둠속에서밝은빛속으로뚜벅뚜벅걸어나오고있었다.사실상다산은『경세유표』『대동수경』『민보의』에서한차례씩『상두지』를인용하면서이덕리의실명을밝힌바있다.그런데도그만중간에서오도돼1974년에발간된『여유당전서보유』에서도『상두지』가다산의저술로실려있었다.
자세히보면『상두지』서문끝에는작은글씨로“공이야인에이름을가탁코자하여권도權道로이서문을지어스스로를감추었다”라는필사자의추기가있다.
이덕리가『상두지』를쓴것은조정에서미처헤아리지못하는장래의근심을논하기위해서였다.나라에전란이없은지200년이되어장마에대한대비를하지않고,그저끼리끼리어울려놀기만하는벼슬아치들의안일에빠진태도를경계했다.여기서말하는‘음우지비陰雨之備’에서책제목인‘상두桑斗’의의미를끄집어냈다.상토로읽지않고상두로읽는것은고사가있다.‘상두’란말은『시경』「빈풍」‘치효??’에서“장맛비가오기전에저뽕나무뿌리를가져다가둥지를얽었거늘?天之未陰雨,徹彼桑土,綢繆?戶”이라한데서나왔다.상두桑土는뽕나무뿌리다.올빼미가지혜로워큰비가오기전에뽕나무뿌리를물어다가미리둥지의새는곳을막는다는뜻으로,환난을미연에방지한다는의미로많이쓰인다.『상두지』의내용은크게는변방의둔전경영과이에따른제반의기반시설및축성에관한내용부분과,북방오랑캐와의전쟁시각종대포와무기류의재원및활용법설명,그리고『형주무편荊州武編』과『후감록後鑑錄』『만사합지蠻司合誌』등중국군사및병학서에나오는구체적인성공략법과무기생산을위한제철과제련에관한내용을초록해서정리한세부분으로대별된다.『상두지』를읽게된다산은그의꼼꼼한주장에상당히감복했던듯자신의저술에서세차례나인용해세상에그와이책의존재를처음으로알렸다.

새로쓰는차문화사,기다

「기다記茶」는『상두지』의자매편저술이었다.요컨대이덕리는『상두지』에서제안한국가안보시스템에관한자신의구상을현실화하는데소요되는막대한재원을차무역을통해힘들이지않고마련할수있다고주장했다.이책『잊혀진실학자이덕리와동다기』는애초에「기다」의전체내용을교주해서소개하는차전문서로기획되었다.하지만글쓴이의몸집이거인과같은면모로밝혀지면서실학자로서의이덕리를자리매김하는데상당부분을할애했다.이와나란히본문에서는『동다기』를교감하며그내용을상세히소개하고있다.
우리나라의차이론서는손에꼽을만한게없을정도로빈약하다.원래그랬던건아니다.신라와고려때은성했지만조선에들어와서는내리막길로치달았다.차나무는땔감으로나쓰는천덕꾸러기신세였다.중국인은저리도차를즐기는데우리는왜안마시는지모르겠다며세종은의문을표한바있다.임진왜란때중국장수이여송또한선조에게무슨까닭에귀한차나무로차만들생각은않고방치하는가를물었지만임금은신통한대답을내놓지못했다.조선사람들은숭늉이면충분하다여겼고차보다막걸리를더즐겨마셨다.조선은차에관한한불모지나다름없었다.
조선전기에이목이「다부茶賦」를지었지만생활속에체화된차문화를논한것은아니었다.그러다가200년의세월이훌쩍지나18세기에이르러운해의『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가구체적인제법을논했고,다시50년후「기다」가나오며그40년뒤초의가『동다송』을지었다.
하지만초의의『동다송』이사실상차관련문헌여러가지를재인용한데그친반면,이덕리의「기다」는차에대한정확한식견과이해를갖춰국부창출의근원으로차무역의필요성을공격적으로제안한독창적저술이었다.이저술은「다설茶說」5조,「다사茶事」14조,「다조茶條」7조를번역과그에대한상세한해설을제공하고있다.이덕리의저술처럼차의생산부터판매까지,그것도국제무역을통한국부창출의구체적매뉴얼로만들어제시한경우는앞에도없었고,그뒤로도없었던단한번의일이다.그의목소리는힘이있고,그의로드맵은단계별로매우분명하고실현가능한것이었다.
하지만이덕리가그구체적인방법과절차까지제안했어도,그의『동다기』는아무도귀기울이지않은채강진백운동골짝의다락방안에서200년가까운세월을묵혀있었다.

***
이덕리는열아홉살에처음차와인연을맺게되었다.당대의골동품수장가로이름을날렸던상고당김광수를방문했다가중국차를맛보게된것이다.이것이발단이되어차에관한한문외한이었던그는저술까지남기게되었다.이책의저자정민선생도십수년전에는차에관한한문외한이었지만,문서를발굴하고이를해독하는과정에서차전문서에교감작업까지하게되었다.이덕리의「기다」는현재『강심』의필사본인『강심만록江心漫錄』이라는타이틀안에깨끗이필사되어전한다.이책에서는『강심만록』전체와『강심』중「기다」,『다경』중「기다」부분의자료를부록으로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