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秦始皇의제왕전제사상
진시황은바람부는대로풀대가쓰러지듯무력으로산동의여섯나라를소멸시켰으며,남으로백월百越을평정하고북으로흉노匈奴를억눌러공전의통일봉건제국을건립했다.그런데아스라이높고광대하여사람들의눈을휘둥그렇게만들었던진秦제국은불과15년을생존했을뿐민중반항의불꽃아래사라져버렸다.진왕조의대대적흥기와대대적몰락은후인들에게끝없는사유의과제를남겼다.진시황은법가사상의지도아래승리를얻은사람이다.그렇다면진의멸망또한법가에책임을물어야하는것아닌가?후대유가들은대부분이견해를고수하는데사실그렇게간단한문제가아니다.
진시황은처음사상문화적으로법가를위주로하되다른학파의사상학설을두루병용하는방법을채택했다.따라서음양가,유가,도가,종교신학모두일정한지위를갖고있었다.진시황도처음에는유가를배척하지않았다.박사관은주로유생들로충당했다.유생박사들은의정議政에참여했다.여러사상의병존은진제국의통치를유지하는데유리했을것이다.
그런데동시에진시황의극단적인전제권력욕망과모순이생길수밖에없었다.분서焚書는사상의자유에타격을주기위함이다.당시각종유파,특히유가는진시황의정치행위에사사건건쉬지않고흠집을들춰내고있었다.진시황이태워버린것은단순히책이아니라역사적으로축적되어온지식이었으며,사람들의사유의자유였다.분서로소기의목적을달성하지못했으므로이듬해에이를핑계로갱유坑儒를단행했다.
진왕조는이론적사유를질식시켜버린시대다.이론적사유에대한멸시는곧야만의횡행에빌미를제공하게된다.진왕조전체관료체계의야만화는왕조멸망의원인가운데하나다.진왕조의빠른멸망은법가가초래한악명임에틀림없다.하지만군주전제제도에대한법가의설계와이론이진왕조의멸망과더불어포기되지는않았다.한漢나라는진나라제도의실질을계승했다.이는법가의정치이론이실질적으로여전히효과가있었음을설명해준다.
한초사상가들의한제국정치에대한설계
한초정치사상은대체로한편으론통치자들이황로黃老사상을분명하게제창하면서유가의가르침으로보조를삼고암암리에법가를응용하는짜임새였다.다른한편으론도가,유가,법가가서로의잘못을들춰내어공격하고투쟁했다.
육가陸賈는12편의상주문을묶은『신어新語』를지어유방및한초의통치자들에게매우큰영향을미쳤다.반고班固는육가의『신어』,소하蕭何의‘율령律令’,한신韓信의‘군법軍法’,장창張蒼의‘장정章程’,숙손통叔孫通의‘예의禮儀’를한나라천하를결정지은5대지주로열거했다.이중넷은주로제도적결정을논한것이고『신어』만정치사상을논하고있다.사상의영역에서『신어』가한대에얼마나중요한것이었는지이로써알수있다.육가는인류역사와물질문화가모순속에서진보하며,형벌과예의도모순가운데생겨나고시대가달라짐에따라새로운발견과발명이이루어진다고보았다.육가는옛날을중시하고현재를경시하는관점을비판했다.이런관점은“보이는바에담담하고들은바에달가워하며,겉모습에현혹되어중정中情을잃는것”이라고지적한다.
정치관념으로볼때육가에게는인의와무위가기본적으로서로중첩되어있다.육가의무위론은확실히도가적기색이역력하다.그러나그가묘사하는사회적관계와사회관념은도가와또상당히거리가멀다.대체로존귀한자를존중하고가까운사람과친하며,신하는충성하고자식은효도하며,상하에차례가있으며,늙은이는편안하고어린애는보살펴지며,예의를준수하는등유가가설계한기묘한경지로볼수있겠다.그의무위는또다른형식의유위다.육가는유학,특히순자의학을제창했다.그리고도가와법가를종합하여두루취했으며역사를통찰하여현실에맞대면했다.깊이가있으면서도공허하지않았다.저자는“자신은계속정치의소용돌이속에서활동했지만,논의는오히려대범하고개방적이었다.개성이있으면서권세에아부하는말이적으니참으로대단하다”면서육가를높이평가한다.
한漢제국의정치대일통과독존유술獨尊儒術
한漢제국은몇십년의발전을거쳐중앙집권적군주전제정치체제를날로공고히했다.그런데정치에대한인식수준에선오히려이런체제에맞지않는,예컨대도가의황로黃老무위사상등과같은현상이존재하고있었다.군주전제하의통치자에게있어정치적실천은그에상응하는이론지침을필요로한다.그렇지않으면‘맹목적’이고‘혼란스러운’상태에빠지게되므로제국의정치체제에맞는이상적정치양식을찾는것이급선무일것이다.한대유학자들이제창한‘대일통大一統’사상은그렇게제왕들의마음에와닿았으며,동중서董仲舒의건의와한漢무제武帝의인가를거쳐유학은마침내일존一尊으로정해졌다.이는한대정치사상발전과정상일대사건인동시에중국고대정치사상과문화발전의이정표가되었다.이로써유가사상은차츰상승하여중국전통사상문화의주체가되었으며,그영향력과의의는지극히심원한것이었다.한대정치사상의발전으로만본다면존유尊儒는한초엽이래유가들의신흥제국에대한정치설계가궤도에들어섰음을뜻한다.그후일부쟁론과반박이있었으며‘한왕실제도’의정수가순수한유학이아니라‘패도覇道와왕도王道가뒤섞인것’이었지만,전체적으로는유학이제국의정치적지도사상이되었다.그리고한漢원제元帝의대대적인홍보를통해마침내유학은정치사상영역에서주도적지위를공고히할수있었다.
이책은『공양전』을자세히분석함으로써이시기의정치사상을다룬다.정치사상의각도에서볼때『공양전』의이론구조는명료하다.왕권‘대일통’이야말로그가운데를관통하는이론의기본선이다.등급원칙,군신관계,군통승계및화이구별은이기본선이각기다른측면을향해깊어지고발전한것인데,이론상으로국가형식,통치계급의권력점유와분배및민족관계를어떻게처리할것인가등문제를해결하여주었다.전문저자의기본사유는시종단일권력이주재하는일통천하를어떻게건립하고공고히할것인가를둘러싸고있다.이에근거하면왜『공양전』의운명이그자매편인『곡량전』과『좌전』보다우월할수있었는지,전한에서후대에이르기까지중요한정치적지위를차지했는지이해하기가어렵지않다.
한무제가유학을숭상하고오경박사를둔이래『공양전』은가장먼저정치적신분을취득한유가경전가운데하나다.다른학파도외롭지는않아서효제孝帝,선제宣帝시대에는‘곡량의『춘추』’를세웠고,평제平帝때에는“다시좌씨의『춘추』를세웠으나,”정치적영향과실제정치지위로볼때『곡량전』과『좌전』이『공양전』과필적하기는매우어려웠다.그중요한원인가운데하나는바로『공양전』의‘대일통’정치사상체계에있다.
한대공양학파의진일보한탐구와일정한사회화과정을거치면서‘대일통’사상은점차사람들의마음깊숙이자리잡아갔다.기나긴중국고대사회에서『공양전』의기본이론은각양각색의학설또는사조와서로융합하면서시종군권의일통천하를옹호하는데사상적으로주도적인작용을했다.
유가정치관념의경전화와사회의식화
한무제의유가학술만을존중하고獨尊儒術시험을치러선비를선발開科取士하는제도는사인士人대다수가유가서적을읽고벼슬길에나아가도록이끈동시에유가학술을정치의한구성요소로바꾸어놓았다.이는매우분명한두가지잘못된결과를가져왔다.하나는청淸나라사람방포方苞의말대로“유가의앞길은확트였지만그도는망했다”1는것이다.방포의말은지나친절대화이긴하지만대체로수긍이간다.대다수유생이유학을‘도’로추구하지않고벼슬길에나아가는문고리로여기게되었고,유가학술은독존적지위에놓인동시에금고禁錮를당해학술문화적독립성과초월성을잃게되었다.둘째,유술이사회와인간을규제하는이론적원칙이되었다.이원칙은지고,지성至聖한것으로사회모든분야위에드높이걸렸다.사회역사의자연스러운발전은일거에유가경전과원칙의부산물로바뀌었다.그리하여이론이실천보다높고,원칙이생활보다높은유가교조주의가전사회에가득차게되었다.유학적사유방식의형성이야말로중화민족의최대재난가운데하나라할수있다.경전을존중하여경전을읽고,성인을대신하여주장을세워수많은사람을‘경經’으로먹고사는벌레로만들었다.그러나어떻게‘먹을’것인가에대해다양한논의가생기는것또한면할수없었다.그리하여경학내에다양화,다원화운동이나타나기도했다.이는처음독존유술을실행한자들이예상하지못한바였다.사상다원화규율의변형된표현이라고해야겠다.
군권君權합법성이론과군권조절론
한漢대정치사상의기본특징가운데하나는정치이론의실제정치적가치와효력에관심을기울였다는것이다.다시말해한제국에유리하기만하면어떤학설이든통치자의주목을받았는데,이론이정치를위해봉사했으며사상가들은제왕을위한난제를해결하려한것이문제의핵심이다.한대제왕은중요한한가지문제에직면했는데,이론적으로군권의지상성과신성성을강화해야했을뿐만아니라실행가능한정치조절능력을군권에부여해야하는일이었다.그리하여한대정치사상영역에서는두가지이론사조가함께짜이는현상이나타났다.한편으로사상가와정치가들은천天,성聖,도道등정신적권위를이용하여군권의합법성을위해논증했다.천,성,도등여러신성한명예를왕관위에덧씌웠으며군권을인식론적으로다양한권위의집합체로만들어전체사회의군권에대한긍정적인식을높이려했다.다른한편으로사람들은또한천,성,도의권위를이용해군권을제약하려들었는데,일반정치원
칙과이론상의허구적권위를운용해군주가정치적으로정상적인행위를하도록보장하고자했다.이이론현상의표층을보면천,성,도,왕이통일되기도하고서로어긋나기도했으나,심층의미에서보면정반두방면에서군주정치의여러가지가능성을논증해주었으며,군권의절대성을강화하고한왕실천하의영원한치안을유지하기위한심후하고도굳건한이론기초를만들어주었다.
전한후기정치조정사조와왕망王莽의복고개제復古改制사상
전한제국은100여년간발전하다가원제元帝,성제成帝,애제哀帝,평제平帝대에이르러급속히쇠락의길을걷는다.첨예한빈부대립과통치집단내부의권력분쟁이얽히면서식자층의경각심을불러일으켰다.그들은한漢왕실을구원해지켜내야한다는입장으로모순에가득찬사회와정치현상에대해진지하게고민했으며,통치자내부및통치자와피통치자사이의일련의정치적조정이필요함을제기함으로써막다른길목에들어선제국의구원을구상했다.융성했던제국이몰락해감에따라통치자들의권력의식은‘영명永命’의추구로부터‘갱명更命’에희망을거는쪽의발전과정을거친다.갱명사조는비폭력적인권력의경질을인정하여,헤어날길이없음에도창칼을움직이고싶어하지않은전한통치자들에게한가닥살길을열어주었다.이러한사조를등에업고왕망王莽은기회를틈타한왕실을대신한신新왕조를세웠다.왕망은여론조작과권력획득음모에대단히능했으나제도개혁을통한치국방면엔몹시도평범했다.서주西周의정치양식을재현하겠다는믿음이야말로개중나은정치적선택이었다.일방적소망이었던이복고적이상주의는신왕실의단명을예정한것이었다.
후한전기참위화讖緯化한경학정치관과회의론
경학의참위화는후한전기정치사상의주류였다.광무제光武帝유수劉秀가“천하에도참圖讖을선포함”으로부터신비주의적참위경설讖緯經說은정식으로관방의인정을받아갈수록광범하게유행했다.참위학은전한前漢이래의음양오행,천인감응,천인합일사유방법이극단적으로표현된형식이다.그핵심은왕권신격화에있었다.신,자연,인간의일체화를통해논리는황당하나주장은분명한정치신화를엮어냈다.이런상황아래참위학과금고문今古文경학의충돌은피할수없는것이었고,황제의어전에서결정이남으로써참위가나중에윗자리를차지하게되더니거의경학정통의위치를점했다.황당무계한날조된정치신화가정치권력의인정을거쳐진리로바뀐것이다.천지신명과성인귀신에대한사람들의숭배와미신이온세상을뒤덮고후한사회전체를풍미하던바로그무렵왕충王充이당당히걸어나와심대한일격을가했다.그는후한말의정치적성찰과위진魏晉현학玄學의발흥을위한회의론과비판론의선구가되었다.
중국고대정치사상사에서『논형』의지위와작용은주로두가지방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