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

고치

$20.09
Description
소녀의 눈으로 그려낸 ‘문혁시대’의 내재적 비극
유년으로 돌아가 자신, 부모, 조부모 삼대의 삶을 다시 살아내고
새로운 체험과 생명의 깊이에 도달한 시대 성장소설

“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이야기는 나에게만 아주 중요할 뿐이다. (…) 마지막 결과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말한다면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추구와 발견의 과정이 결과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히 해두고 싶다. 본질적으로 말해서 문학의 의미는 우리로 하여금 좀더 깊은 생명의 단계에 이르게 하고, 전에 없었던 새로운 체험을 얻게 하는 것이다.” _ 후기

“타이완의 저명 문학평론가이자 직업 독자인 탕누어唐諾의 경험에 따르면 작품으로 재현해야 하는 사건과 기억들이 지나게 복잡하거나 방대하고 모호할 때, 많은 소설가가 이를 쉽게 포기하고 상상에만 의지하는 경향이 있지만 장웨란은 그렇지 않다. 그녀는 기억의 실체를 철저하게 규명하고 그 안에 담긴 진실과 상처를 껴안는다.” _ 옮긴이 후기
저자

장웨란

중국에서태어나싱가포르국립대학을졸업했다.대표저작으로단편소설집『1890년으로사라진해바라기』와『열가지사랑十愛』,장편소설『맹서의새』『물신선은이미잉어를타고가버렸네』『앵도지원櫻桃之遠』『대교소교大喬小喬』『나는불빛을따라왔네』등이있다.다수의작품이한국어,영어,일본어,독일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등으로번역되어여러나라에소개되었다.‘중국어매체문학상’최고잠재력신인상을비롯하여‘인민문학상’우수산문상,‘싱가포르대학문학상’,‘춘톈春天문학상’등을수상했으며『인민문학』지가주관하는‘미래의대가TOP20’에선정되었다.장편소설『맹서의새』가‘2006년중국소설베스트20’에오른바있으며단편소설집『열가지사랑』이‘프랜시스오코너국제단편소설상’후보에올랐다.최근작『나는불빛을따라왔네』는2018년‘제1회베이징이상국문학상’최종심후보다섯작품중하나로선정되었다.

목차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후기

옮긴이후기

출판사 서평

글항아리가소개하는중화권소설‘묘보설림’시리즈제6권으로장웨란의『고치繭』가출간되었다.1982년생으로중국산둥성지난에서태어나싱가포르국립대를졸업하고6권의장편소설과2권의단편소설집을상재하는등왕성하게집필하는작가다.장웨란의『고치』는국내에처음으로소개되는그녀의최신작으로712쪽에이르는대작이다.중국의각종문학상에노미네이트되고탕누어로부터“기억의실체를철저히규명하고그안에담긴진실과상처를껴안는작가”로평가받는그녀는문화대혁명이중국의일가족삼대에남긴상처를다룬『고치』에서자신의진면목을유감없이보여준다.
‘고치繭’는애벌레가나비로변하기전머무는집이다.스스로의몸에서뽑아낸진액으로몸을감고아무도들여다볼수없는천형의감옥에서스스로변태하여새로운생명으로거듭난다.이작품또한마찬가지다.문화대혁명을다루지만그것의범죄성을고발하거나시대의파노라마를펼치는것에는관심이없다.작가는철저히자신의삶으로걸어들어가그독을들이마신사람들의이야기를듣고그결을하나하나분별해낸다.
이작품은두가지점에서이채롭다.하나는문화대혁명당시비판투쟁중이웃에의해머리에못이박혀식물인간이된할아버지를중심으로가족들의이야기를다룬다는점이다.그할아버지의아내,자식,며느리,손자가한축을이룬다.그의머리에못을박은것으로추정되는유명한원로의사와그의아내,자식,며느리,손녀가다른축을이룬다.이야기는주로손자,손녀세대가이끌어가는데그마을의또래들이관찰한세계라는점에서익숙한유년소설의관점을취했다.또하나이채로운점은소년과소녀가번갈아가며자신의이야기를들려주는대화체라는점이다.소년은소녀에게,소녀는소년에게자신의관점에서재구성한‘우리’의이야기를속삭인다.
소녀가태어났을때‘문혁’이라는상황은이미종료된후였다.하지만메스를넣고봉합한것처럼상처는끊임없이새어나온다.주인공이마주치는어른들은그상처를쉬쉬하고,외면하거나그로부터달아나는방식으로망각의생존논리를앞세운다.그렇게‘변해버린’사람들의모습은히스테리컬하고삶의본능만남아있는모습인지라어떤점에서는괴물을닮기도했다.하지만아무리아무렇지않은척연기를해도무의식은그아픔의실체를‘중얼거린다.’소녀는그중얼거림을듣고그소리의끈을계속감아서거대한실뭉치로만들어나간다.어쩌면이게‘고치’의실체인지도모르겠다.
저자의‘후기’는왜‘고치’라는소설이나올수밖에없었는지에대한이야기가고스란히담겨있다.독자들에게먼저이후기를읽어보라고권하고싶다.여기나오는작가의자전적인스토리는기대이상으로놀라운데그이유는아버지가쓴소설을자식이다른소설로다시쓴것이기때문이다.
장웨란의아버지는1977년문화대혁명이끝나자자신이일하던양식국糧食局수송대에작별을고하고대학에들어갔다.좋은직장을때려치우고소설을배우러중문과에입학한그는이듬해『못』이라는소설을완성한다.소년시절직접목격한사건을소재로했는데,그가거주하던병원의직원아파트에서바로옆동에살던의사가비판투쟁중에누군가의의해머리에못이박혔다.점차언어와행동능력을상실한그는식물인간이되어줄곧병상에누워있어야했다.잡지사에소설을보냈고게재통보를받았으나다시게재불가통보를받았다.작품분위기가너무어둡다는것이이유였다.그는몇편의소설을더쓰고투고했으나그때마다같은이유로거절되었다.어둡다고말했지만우리는‘문혁’이금기의언어였기때문이라는걸안다.서랍에들어간『못』은그이후세상에나오지못했다.수십년이지난2010년의어느날그의딸이식탁에서아버지의이야기를자신이소설을쓰겠다고선언한다.“그게뭐소설감이나되나?”아버지가보인반응이었다.이미생활인이된아버지는과거의소설과그안의이야기를거의기억하지도못했다.작가는이런아버지를인터뷰하고병원에가서취재도한다.하지만7년이지나도록어떻게풀어나갈지알지못한채포기하고만다.
이야기가풀린것은설을맞아지난濟南의집을방문한때였다.아래그내용을요약해본다.이러한소설이쓰인,아니자신과가족의이야기,유년전체의역사를쓸수밖에없도록만든거역할수없는힘과의마주침이제시되어있다.

“설이되기전에나는지난에있는부모님댁을찾아갔다.부모님은방금이사해다시내가어렸을때살았던대학직원아파트단지에살게되었다.오랫동안가보지못한곳이었다.전에살던옛건물은이미철거되고원래의자리에고층아파트가들어서있었다.

한눈에변화가크다는걸알수있었다.하지만섣달그믐날오후에나는혼자단지안여기저기를둘러보다가나무와단층건물들,쓰레기수거장등도처에과거의흔적이남아있는것을발견했다.단지입구에서신문을파는아저씨도그자리에그대로있었고자기아빠대신과일좌판을지키던아가씨도원래의자리에그대로남아있었다.달라진거라고는이미중년의여인이되어눈이약간혼탁해졌다는것뿐이었다.

이런사물과사람들을보면서나는전혀친근감을느끼지못했다.오히려약간의두려움을느꼈다.내가떠난뒤에도그사람들은여전히원래의자리에서생활을이어가고있었다.산다는것이모두이런게아닐까?하지만그들을보는순간,뭔가거대한비밀을발견한것같아나스스로도놀라움을금할수없었다.약간불안하긴했지만내가그들을방기하고있었고,그들을원래의자리에남겨두고있었다는생각이들었다.

나는그자리에멈춰서서그익숙한사람과경물들로구성된풍경을바라봤다.뭔가가나를기다리고있는듯한느낌이들었다.바로다음순간에또다른내가화면안으로걸어들어올것만같았다.그나와이나사이에구체적으로어떤차이가있는건지분명하게말할수없을것같았다.하지만어쨌든그또다른나,한번도나를떠나지않았던내가이곳에서즐거움과고뇌를두루지닌채성장하고늙어가는것같았다.다시말해서우리가떠나온유년은닫혀있고완결된시공이아니라계속말없이운행되고있는평행의세계인것같았다.

그날오후,나는단지입구에아주오래서있었다.물론또다른내가모습을나타내길기다린건아니었다.하지만소설에는내내얼굴이흐릿한또다른주인공이등장해조금씩머릿속에서모습을드러냈다.그는아마도유년의평행한세계속에남아있는,주인공을더닮은‘또다른나’일것이다.

자정에가까워졌을무렵,하늘에연기와불꽃이피어올라칠흑같이어두운창가를비춰주었다.나는책상앞에앉아지금이소설의서두를쓰고있었다.잠시후나는그불빛이소설의서사시각을결정해주었을뿐만아니라소설의구도도확립해주었다는것을깨달았다.그전까지는오래전에일찌감치내손에쥐여진이야기를어떻게서술해나가야할지잘생각나지않았다.나는일련의조사와인터뷰를진행했고,갖가지방식으로이이야기에접근했다.하지만항상뭔가에막혀있는듯한느낌을떨칠수없었다.이날밤,나는어렸을때살던곳으로돌아가놀란눈빛으로,알고보니이야기로통하는길이내유년에있었다는사실을깨달았다.

못에관한이야기는우리아빠의유년시절에일어났지만그안으로들어가는입구는내유년에있었다.이는어쩌면나와아빠의유년이원래하나로이어져있었다는것을설명하는것인지도모른다.그일은아빠의유년에아주깊은기억의낙인을찍었고,장차필연적으로어떤방식으로든내유년에흔적을드러낼수밖에없었다.그런역사는우리가느낄수있는것이아니다.그역사를인식할수있는찰나는우리의생명속에있다.그역사는항상우리주변에있는것이다.”(703~7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