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책 (전쟁의 신 왕양명의 기이한 생애)

칼과 책 (전쟁의 신 왕양명의 기이한 생애)

$17.32
Description
사상과 실천에서 찬란한 업적을 쌓은 왕양명의 삶!
양명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왕양명의 삶과 사상을 한 편의 소설처럼 쉽게 풀어낸 『칼과 책』. 우리가 흔히 사상가로 알고 있는 왕양명은 사실 많은 전쟁터를 누빈 군사 전략가이자 백성의 삶을 돌보는 행정가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왕양명이라는 한 인간의 삶을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치밀하게 파헤치면서 그의 사상과 철학을 재조명한다.

양명학은 누구나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마음을 어떻게 수양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 철학이다. 그의 철학은 종교의 장벽을 넘나들며 유儒, 불佛, 도道 3교의 일치론을 낳았다. 또한 양명학은 주자학 일색이던 동아시아 사상 체계의 흐름을 바꾸고, 근현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절강성 여요에서 왕화의 아들로 태어난 왕양명은 어려서부터 기이하고 특출 났으며 열두 살에 이미 자신이 성인聖人이 되고자 공부한다고 밝히곤 했다. 열다섯의 나이에 군사 정세를 살피러 혼자 변방으로 나가 기마와 궁술을 익혔고, 당시 사상계의 주류 학문인 주자학에 몰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타고난 재능을 시기하는 이가 많았던 탓인지, 당시 관료의 자리가 꽉 차 있던 탓인지 왕양명이 과거에 급제해 정계에 진출하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여느 위인전에 나오는 장원 급제 이야기와 달리 왕양명은 과거 시험에 두 차례 이상 낙방했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는 것이었으므로 실패에 개의치 않고 실천적 자세로 학문을 탐구하는 데 열중했다. 이 책은 주자학 일색이던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학풍을 일으켜 개인적 수행과 사회적 실천을 동시에 이끌어낸 왕양명이 이러한 불합리하고 몰염치한 정치의 한복판에서 어떻게 처신해나가는지를 매우 자세하게 손에 잡힐 듯 보여준다.
저자

둥핑

저장성취저우출신으로저장대철학과교수겸학과장.저장대중국사상문화연구소장,불교문화연구센터주임등을겸하고있다.연구분야는인도철학,송명이학,중국불교철학등이다.미국하버드대옌칭연구소,캐나다요크대,파리어언동방문화학원INALCO,인도푸네대등에서연구및강의를맡았다.주요저술로『천태종연구』『중화불교학정신』『왕양명의생활세계』등이있고,중국CCTV인문학교양강좌‘백가강단’에서「명재상관중管仲」「전기傳奇왕양명」을강연했다.

목차

제1장특출했던소년
제2장유별났던청년
제3장나만의길
제4장‘호랑이’때려잡기
제5장구사일생
제6장용장龍場에서도를깨치다
제7장지행합일知行合一
제8장위기속에서의특명
제9장강서江西전투
제10장이두?頭평정
제11장영왕寧王의반란
제12장영왕생포
제13장황당무계한황제
제14장치욕속에받은사명
제15장양지설良知說
제16장새로운임무
제17장최후의전투
제18장광명정대한세상
후기
옮긴이의말
왕양명일대기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루터의종교개혁에비견되는양명학의출현!
그뒤엔참혹한전쟁과정치의경험이있었다

무장,관료,철학에서삼불후를이룬
철학자왕양명의평생사적을
둥핑교수의CCTV교양강좌백가강단의강연으로만나본다

“사상과실천,이두측면에서두루찬란한업적을쌓은인물로는
중국역사에서왕양명이유일하다.”
_두웨이밍(하버드대교수겸베이징대고등인문연구원장)

이책은양명학의창시자로알려진왕양명의삶과사상을한편의소설처럼쉽게풀어냈다.지금까지나온왕양명에관한책중에왕양명의생애에관해가장일상적이고인간적으로접근해서술했지만그내용의깊이는결코가볍지않다.우리가흔히사상가로알고있는왕양명은사실많은전쟁터를누빈군사전략가이자백성의삶을돌보는행정가이기도했다.이책에서는왕양명이라는한인간의삶을유년기부터노년기까지치밀하게파헤치면서그의사상과철학을재조명한다.

변방을누린군사전략가이자
애민정신을실천하는행정관료

중국자금성남문밖,한관리가바지까지내린채곤장을맞는장면으로이야기는시작한다.조정관리로서사람들앞에서곤장을맞는다는건엄청난치욕이자인격모독이었다.그관리는흠씬두들겨맞은뒤옥에갇힌다.다행히살아남아유배지로향하게되지만,가는길내내자객이따라붙어목숨을위협받는다.이불행한이야기의주인공인관리가바로중국역사에서위인으로손꼽히는왕양명이다.그는입바른말로당시황제의총애를받던환관유근의심기를거슬러그러한곤욕을치르게된것이다.말단관리였던왕양명은정계를어지럽히고백성의삶을고달프게하는환관의전횡과횡포를탄핵하는상소를올렸다.그러다가곤장형에처해지고감옥에갇힌후급기야귀주용장으로귀양살이까지떠나게된다.
용장으로향하는길에자객에게쫓기던왕양명은기지를발휘한다.「절명시」를짓고자살로위장해강으로뛰어든후추격을따돌린것이다.이렇게어렵사리용장에도착하긴했지만,그곳은척박한땅인데다생활여건도열악했다.그럼에도그는‘양명동굴’에기거하며학문연구를계속해나갔고,서원을지어제자들을가르쳤다.하지만왕양명은현실을등진채학문에만심취한선비는아니었다.그는애민정신을가진관료였고,백성을위하는마음으로용장에서사는소수민족주민들을돌보았다.유배생활을백성들의삶을가까운곳에서살피는기회로삼아불합리한조세제도를해결하는등불편을해소했다.그리고주거환경이나낡은풍습을개선하면서마을공동체를발전시킨다.

강서전투,이두평정,영왕반란평정……
낭병의존시스템에서민병양성시스템으로명군재편

왕양명이살았던명대중기는정치적·사회적으로불안정했다.곳곳에서재물을약탈하는도적떼가창궐했고,조정대신들의탐욕과전횡으로인해백성들의삶은피폐해져갔다.그러던중왕양명은조정으로부터도적떼와반란세력을토벌하라는임무를맡게된다.정덕10년(1515)을전후로한시기에강서·복건·광동·호광등지의경계지에서할거한도적떼의세력은크게세파로나뉜다.하나는복건성장주부?州府경내의도적떼로첨사부詹師富·온화소溫火燒가수괴였고,또하나는강서성남안부南安府·감주부?州府경내의도적떼로사지산謝志珊·남천봉藍天鳳이수괴였다.나머지하나는광동성혜주부惠州府경내의도적떼로지중용池仲容이수괴였다.이3대도적떼는각기수천명이상의방대한세력을형성했고그기세또한대단했다.조정에서왕양명을내려보낸시기는바로수차례에걸친관군의토벌이실패를맛본뒤였다.
그는호구조사제와유사한‘십가패법’을도입해민가와도적간의내통을막는고립화전략을취했다.또한기존의낭병에의존하던구조를개혁하기위해민병을양성해관군을정예화했다.원래명군은도적떼를토벌하러갈때‘토병土兵’이나‘낭병狼兵’을동원했는데모두소수민족출신병사를가리킨다.한족이아닌현지원주민출신이다.왕양명이볼때낭병동원은원거리작전수행이라적지않은폐해가나타났다.즉(1)낭병을동원하면짧게는수개월에서길게는해를넘기기도하는등시일이많이소요되어작전의순발력이떨어진다.(2)군비소모등재물의낭비가심하다.(3)전투목표가방대하여기회를놓치는경우가잦다.(4)기율이문란한낭병이지나가는마을에서의폐해가극심하여,심할때는도적떼보다더심각한경우도발생한다.이에왕양명은낭병에대한지나친의존심,전투에대한공포증을개선하려면관군의정예화가필수적이라고생각했다.
어릴때부터병법과무술에관심이많았던그는실제로전투에나서서지식과지혜를활용했다.그는오늘날정보전이라할만한전략인적을속이는작전을활용해승승장구한다.명황제가친정을나설정도로골머리를썩게하던‘영왕의반란’세력을소수의병력으로진압하기도했다.

정보전쟁개념도입해고립·봉쇄전략……
수괴는처결하되살상최소화하여민생안정화

저자는왕양명의반란진압총책임자로나선왕양명의전투전략을크게네가지로요약한다.첫째,적의동태파악이다.감주부임직후그는실지조사를통해서이미적과아군의병력규모나작전수행능력에대한실태를다파악하고있었고,정찰병을내보내적의동향까지도알아냈다.둘째,고립화전략이다.병력을배치할때산으로통하는모든길을철저하게봉쇄했다.이뿐아니라적과산아래주민이연결되는도로,적들간의연결도로도전면봉쇄하여그들의연결망을완전히차단했다.십가패법을엄격하게시행한것도적의정보탐색을원천적으로봉쇄하기위해서였다.셋째,집중포위전략이다.당시적의근거지는광범위하게분포되어있었기에관군이어느한쪽으로만공략해서는제대로효과를거둘수없었다.적은동쪽을공격하면서쪽으로,서쪽을공격하면동쪽으로달아나는형국이었다.‘장남전투’에서도그는우선광동·복건의많은병력을동원하여적을동서양방향으로포위공략했는데,과연이전략은실전에서주효했다.넷째,살상최소화전략이다.도적떼의수괴는처결하되살상은최소화하는것역시왕양명의주요한전략이었다.그가생각하기에전쟁은적의섬멸하는것뿐만아니라백성의피해를줄이는것도중요했다.원래는선량했던백성이부득이한사정으로도적떼에가담한경우가많았기때문이다.이러한네가지전략을보면왕양명의명민한합리성과승부근성,애민정신이모두녹아있다.

반란을평정한뒤닥친‘황당무계한황제’라는재앙
강빈·허태일당의‘왕양명죽이기’실태고발

하지만그의능력을시기한세력의모함으로인해그의인생은또다시난항을겪게된다.13장‘황당무계한황제’에서나타나는명조정의행보는사욕에충만한무지한황제가감언이설에놀아난최악의사례를보여준다.왕양명이다평정해놓은반란지역에내려와소위‘친정親征’이란깃발을내걸고‘군대놀이’를제대로해보겠다는황제앞에서왕양명은좌절했다.만약황제가내려온다면막전투가끝나참혹한생활이최고조에달해있던강서지역에겐대재앙이될것이분명했기에,황제가내려오는걸막는일이왕양명에겐지상과제가되었다.그는기를쓰고‘포로압송을중단하고짐의도착을기다려라!’는황명을무시하리라고작심했다.그는병든몸을이끈채강서지역의전후질서회복에주력했다.
그러나황제를따라내려온강빈·허태일당은심지어날조된‘죄명’을내세워왕양명을체포하려고까지했다.당시왕양명은강서순무부임길에있었기때문에,우선그들은길안지부로있으면서반란평정에큰공을세운오문정(반란평정후그는강서안찰사로승진했다)부터체포하여혹독한고문을가했다.장충무리의사주를받은북방병사들은왕양명을만날때마다대놓고욕설을퍼붓거나시비를걸었다.심지어일부러몸을부딪치는경우도있었다.
책은왕양명이이러한불합리하고몰염치한정치의한복판에서어떻게처신해나가는지를매우자세하게손에잡힐듯보여준다.

강학을즐겼던교육자이자
새로운사상을창시한철학자

왕양명은절강성여요에서왕화의아들로태어났다.그는어려서부터‘기이’하고‘특출’났으며열두살에이미자신이성인聖人이되고자공부한다고밝히곤했다.열다섯의나이에군사정세를살피러혼자변방으로나가기마와궁술을익혔고,당시사상계의주류학문인주자학에몰두하기도했다.하지만그의타고난재능을시기하는이가많았던탓인지,당시관료의자리가꽉차있던탓인지왕양명이과거에급제해정계에진출하는것은그리녹록치않았다.여느위인전에나오는장원급제이야기와달리왕양명은과거시험에두차례이상낙방했다.하지만그의목표는과거에급제하는것이아니라성인이되는것이었으므로실패에개의치않고실천적자세로학문을탐구하는데열중한다.
이후유학을성학聖學으로삼고이에집중하긴했지만,왕양명은학문을수양하는데도교의양생술,불교의선종사상을포괄하기도하는등그경계가없었다.과거시험에합격한후백성을돌보는관료로,전장을지휘하는장수로바쁘게지내는동안에도학문연구와강학은게을리하지않았다.그는서른네살부터제자를받아들여숨을거둘때까지성인의도를가르쳤다.유배지인용장에서왕양명은주자가이야기한격물치지설즉,사물을관찰한후지식을얻은후에야천리를깨달을수있다는관점이세상의이치와맞지않음을깨닫는다.‘용장에서도를깨쳤다’고하여이를‘용장오도龍場悟道’라한다.
용장오도이후왕양명은자신의사상체계를공고하게다져갔다.그는앎과행동이분리되어있지않으며인간본연의마음에충실해야한다고주장했다.나아가이를정리해‘심즉리心卽理’‘치양지致良知’‘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자신만의새로운학설을주창하기에이른다.여기에는골방철학자가아닌현실에두발을디딘채정치와전장을누빈그의경험이녹아있다.그의사상체계를간단히말하면‘양지良知’라고할수있는데,왕양명은‘양지에이른다’혹은‘양지를다한다’라는뜻의치양지를통해‘지’와‘행’의합일을이뤄야한다고했다.

주자학일색이던동아시아에서새로운학풍을일으켜
개인적수행과사회적실천을동시에이끌어내다

맹자는이렇게말했다.“하늘이장차어떤사람에게큰사명을주려고할때는먼저그의심지를고통스럽게하고,그힘줄과뼈를지치게하고,그육체를굶주리게하고궁핍하게만들어그가하고자하는일을어지럽힌다.이는그의마음을흔들어인내심을키움으로써지금껏할수없었던사명을감당케하려함이다.”이말은왕양명의일생에그대로투영된다.일찍이성인이되고자마음먹고,공명정대한태도로관료직을수행한그에게암울한현실정치는지옥이나다름없었다.파란만장하고고달픈인생역정은그길을의연하게걸어간그에게사상과철학의정신적동력이되었다.왕양명이고결한인품으로불세출의위업을달성하고,‘기이하고특출한’인물이될수있었던이유도이런상황과밀접하게관련되어있다.그는‘입덕立德’‘입업立業’‘입언立言’이세측면에서탁월한업적을이뤄후대에‘삼불후三不朽’라평가받았다.
이른바이치만을따지는이학으로부터벗어나인간의마음에주목하는왕양명의심학心學은많은지식인에게논쟁과공감을불러일으키면서세간으로부터주목받았다.그의학문과사상체계는하나의학문이되어한시대를풍미했고,명중엽이후로‘양명학’으로불리게된다.양명학은누구나성인聖人이될수있다는전제를깔고마음을어떻게수양할것인지에초점을맞춘철학이다.그의철학은종교의장벽을넘나들며유儒,불佛,도道3교의일치론을낳았다.또한양명학은주자학일색이던동아시아사상체계의흐름을바꾸고,근현대중국뿐만아니라일본에까지영향을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