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의 탄생 (우록리 할매들의 분투하는 생애 구술사)

할매의 탄생 (우록리 할매들의 분투하는 생애 구술사)

$21.05
Description
나 살아온 거야
아주 좋지도 안 하고 나쁘지도 안 하고 그렇지예
학교예? 시간이 흘러가뿌이께네
글자 몬 익히고 몸무데기만 다 커뿌랬어예
우록리 산골짜기 할머니들의 생애 경험
그들의 삶과 언어, 기억과 해석, 보람과 상처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 정국이 이어지던 2017년 1월,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은 경상북도 대구시 우록리 산골짜기로 내려가 구술사 작업을 시작한다. 전작으로 [할배의 탄생]을 냈고 태극기 부대 노인들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 나누며, 노인 돌봄이로 생계를 이어왔던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할매, 할배들이다. 이번에 만난 이들은 농촌ㆍ젠더ㆍ노년ㆍ비문자 생활자라는 이슈가 겹겹으로 둘러싸인 분들이지만, 작가는 여기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힘을 발견한다. 한국전쟁도 비껴간 그 깊은 산골에서 할머니들은 가난과 고생으로 일군 ‘깡치’로 삶을 꾸리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우록리로 시집와 시어머니와 남편의 눈치를 보며 농사를 짓고, 식구들 밥해 먹이고, 아이를 키우면서 이제 지난 삶을 되짚어보는 그들의 말은 짙디짙다.
저자는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를 할머니들의 구부러진 손가락으로 대신하려 한다. 그들의 사투리와 정제되지 않은 말을 책에 고스란히 녹였다. 이 책은 힘겨웠던 고생의 경험과 가난의 상처를 헤집자는 것이 아니다. 할머니들의 삶을 긍휼의 시선으로 보자는 것도 아니다. 그 가난과 고생이 어떻게 그들을 더 강하고 전략적으로 만들었으며 그렇게 축적된 힘이 어떻게 할머니들에게 주체성을 가져다주었는지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누군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애 이야기를 구술하여 세상에 내놓는 것이 ‘고통의 전시’가 아니냐고 묻는다. 그러나 저자는 구술사 작업이 세상의 온갖 정상 이데올로기로 인한 자괴와 낙인을 거둬내고, 사람 안에 있는 힘과 흥을 끄집어내 한바탕 즐기기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의 힘과 흥으로 희망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우록리 할머니들의 사투리는 희망이 되어 독자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우록의 삶은 그렇게 우리 모두의 삶으로 치환된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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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현숙

구술생애사작가.저서로『할배의탄생』『막다른골목이다싶으면다시가느다란길이나왔어』『천당허고지옥이그만큼칭하가날라나』『삶을똑바로마주하고』가있고,공저로『이번생은망원시장』이있다.
천주교로인해사회운동을시작했고,민주노동당여성위원장과성소수자위원회위원장을지냈다.이후요양보호사와독거노인생활관리사로서노인돌봄노동에몸담아왔다.
노인들을만나면서구술생애사작업을본격적으로하게되었다.근간으로어머니의노년을지켜보며그생애사와죽음에이르는과정을기록한책이나올예정이다.

목차

머리말
첫번째삶:“내살은거를우예다말로합니꺼”_조순이(대촌댁),1937년생
두번째삶:“나살아온거야좋지도안하고나쁘지도안하지뭐”_유옥란(안동댁),1942년생
세번째삶:“글씨는머리로안드가고,베짜는거만머리로드가고”_이태경(각골댁),1935년생
네번째삶:“나는담배따는기계였지만이젠편케생각한다”_김효실,1954년생
다섯번째삶:“죽은사람은죽어도산사람은모를숨궈야하는거라”_곽판이(창녕댁),1928년생
여섯번째삶:“허리주저앉으면맘도주저앉는기라”_임혜순(수점댁),1942년생
부록:1.이름은붙이지않기로한그녀들의말
2.“여자일생이라는게사람사는게아니지”_김성진의우록리이야기
에필로그:기억과말을들여다보기

출판사 서평

올개는밭에별로안숭굴거라예

“내살은거는마고생한거말고없어예.모내기해가이삭올라오마,어떤해는그이쁜걸물이확쓸어가뿟고이삭이시꺼멓게썩어들어가는거라.어떤해는잘자라가대가리를숙일마해가통통하이그래이뿐데,또홍수가나가꼬꾸라지고.그래쓸어가뿌마나중에벼가말라도아무것도건질기없는거라.”(조순이할매)

자식들의탈농과성공을위해평생을노동으로일군할머니들의삶은가부장적환경에서제대로인정받지못했다.그럼에도노동이란그들에게자부심이자정체성,사회적역할을다하는것이었다.그러는한편자식을먹이고가르치는보람으로그고된노동을견디며살아온할머니들에게“정신없이씽씽변하는세상”은야속하게도상실감의원인으로자리잡았다.
사회의변화는농촌의모습을도시보다더빠르게바꾸고있다.“아아들우는소리조차듣기힘든”농촌에서노인들의평생노동은자본의힘에눌려그가치가절하되어간다.일생의결과이자자부심인땅이돈몇푼에거래되는현실과성공할수록찾아오지않는자손을기다리며그들은자의반타의반으로사회와격리된다.우울증으로잠을이루지못한다는한할머니에게저자는“자식들도다잘하는데왜아픈걸까요”하고묻는다.

“자꾸아프이께네이리살아가뭐하나싶고,살아왔는기허프고허전코그렇다카이.몸이나안아프마어디훨훨내맘대로나다녔으면싶고.넘이들으마다그러고사는걸그런거갖고그러냐카지만도,내는마사는재미가없어예.아아들잘사는건좋지만도거는마지들일이고,내랑은지네랑은다른거지예.다행은다행이지만도,그기내사는재미는아니지예.”(임혜순할매)

그럼에도할머니들은올해도“콩쪼매숭구고,들깨쪼매숭구고,상추,배치도좀숭구”며살아간다.꼬부라진허리와망가진무릎으로밭을매는할머니들의터전이자식들사회에서는별가치가없다는사실을스스로도잘알지만,세상에대한섭섭함과상실감을외면하며일상을살아가는것은농촌의마지막세대라는책임감에서비롯된다.“나죽으면이제제사도농사도끝이라카이”라는말은노인들의자조와수긍을잘드러낸다.

자고나면일하고,묵고나면일하고그기지뭐

노래가락을좋아하는대촌댁조순이할머니는우록리와가까운대구달성군대일리가친정이다.오남매중외동딸이었던그는친정아버지의귀여움을독차지하며자랐다.열한살이되던해에어머니가체증에걸려죽자,동생들을키우며살림을도맡아하다가우록리로시집을왔다.와보니손이큰시어머니와시형제일곱이그를맞이했다.갈등끝에첫아이를낳고친정으로‘내뺐다가’젖이불어서그아픔을못이기고다시우록으로돌아왔다.시어머니와의갈등은아직마음한켠에상처로남아있다.

“아놓고일주일만에모숭구러가는거럴안말긴거도글코,마빚내서남퍼주는거도글치만도젤서러분기한동네바로저있는시동상네사논집으로나가뿌신거,거거가내는제일로그캅디다.서럽고화나고우세스럽고……온동네에우세시키자는거제예,그기.‘몬된맏미누리가시오마이쪼까냈다’방붙이는거라예,그기.그카고도사람들붙들어앉혀놓고큰미누리흉을윽씨봤어예,그카니동네사람들이낼어?게보겠으예.그런다고보선속마냥모가지를화딱까뒤집어비이줄수도없고.내는지금도그게제일로서러버예.”

하지만지금은손주들이잘되는이유를‘시어머니가손이남달리커많이베푼덕’에서찾는다.“그때는모?는데내가이자시오마이가돼보이알겠더라고예.미누리때는모릅디다.”
각골댁이태경할머니는경북청도군에서시집을왔다.열다섯에어머니를잃은그는할머니손에자랐다.어머니를향한그리움과할머니에게받은애정은이태경할머니의어린시절을가득메운다.열여덟의나이에집을떠나서는없는살림에시어른,시조모까지모시며살았다.‘맏이짓’을하던남편덕에없는고생도사서한셈이다.이태경할머니는그옛날,홍역으로여섯살난딸을잃었다.그래서지금아들만다섯이다.수십년이지난지금도애지랑을떨던그‘가스나’가눈에선하다며눈시울을붉힌다.이태경할머니는다른할머니들에비해다양한노동의경험을구체적으로진술한다.여러작물을키우고,메주를쑤어사람들에게나눠주고,명주실로옷을해입는과정을상세히설명한다.이런노동이야기는농촌할머니들의주체성을가장잘드러내는부분이다.

내가어리석어가우록에서안나간거제

유옥란할머니는경북안동이고향이다.위로오빠가하나죽고,밑으로남동생셋이“문지방기넘어댕길만하이죽고죽고해서”외동딸이되었다.화병으로앓아누운어머니를살리려한굿이독이되어어머니가돌아가셨고,계모두분밑에서파란만장한유년시절을보냈다.첫남편의죽음뒤에우록리남성과재혼했는데,그에게는딸이있었다.시어머니는다시들인며느리가도망갈까겁이났던지,혼란스러워하는손녀를서울로보내버렸다.

“넘들은마달린입이라말을하겠지.(…)지도새오매밑에,계모밑에자랐으믄서전처아를쫓가냈다카마별억지가많더라.내젊어서는지랄지랄을했지만도이자는뭐괘않다.나이들어보이딱말나게생겼더라마.안글나?계모아래커놓고지도못된계모되는딱그거아니가?그래마지금은내죄구나그칸다.내그리태어난게죄고,갸어려서서울가는거안막은죄다.마우야겠노…이제는넘들말질은마아무치도않다.갸가젤불쌍코,어려서오매죽어뿐내가불쌍타.우야겠노…….”

어른이된그아이는‘계모’유옥란할머니를지금까지도받아들이지못하고있다.그래도할머니는아이가아버지의제사에라도와주기를바란다.계모들밑에서학대받으며자란당신이남편전처의아이와화해하게된다면그동안의서러움과한을모두녹일수있을것이기때문이다.
우록1리에서태어나환갑이넘도록이산골에살고있는김효실은꿋꿋한성미의소유자다.어릴적부터도시로나가살고싶었지만,같은상처를가진외지남성과결혼해결국마을을떠나지못했다.그는빨치산에게총을맞아불구가된아버지와아픈어머니를두고도저히우록을나갈수없었다고말한다.“친정서14년을꼬박하고,여와서도5,6년했지.나중에는담배따는거도기계라.다다다다닥,다다다다닥.손이뭐,기계한가지라.”스스로“담배따는기계”라부를정도로담배농사를많이지어동생들을가르쳤지만지금은그들과등돌리고산다.마지막소원이있다면모든형제가한자리에모여툭터놓고이야기를나누는것이다.우록을떠나지못했던한도,식구들에게받은상처도자연에살다보니누그러진다는김효실은이제‘담배따는기계’가아니라사람답게살고싶다고말한다.

나는제사도하지마라칸다
내죽고나가그거하믄뭐하노

창녕댁곽판이할머니는우록마을의‘큰형님’이다.올해로만91세가된그는스무살에혼인해우록리로들어왔다.이산골에서만70년을산셈이다.마을의그누구보다긴세월을살아와서곽판이할머니는죽음에초연한태도를보인다.시댁식구들과남편의제사를꼬박꼬박챙기면서도“나죽으면화장해라.제사도지내지말라”고한다.맛있는건제삿밥으로가아니라살아서먹어야한다는,죽음과가까이있으면서도여유가넘치는그의말을따라가다보면넘어설수없는대범함이느껴진다.

“‘화장해가뿌리뿌라.산에떤지뿌라.영감절에갈필오없다’내만날그칸다.죽어뿌는데영감마누라가어딨노?살아서영감마누라지,하하하.인연은살아서로끝나는거라.그라이살아서서로잘해야되는기라.(…)혼이죽으마삼혼칠백이라.사람이죽으마나무둥치라그말이다.아무소용이없고나무둥치랑한가지라그기야.내숨떨어져봐라.죽어가태우니뜨겁다카나,떤지이아푸다카나.죽으마아무것도모린다.”

수점댁임혜순할머니는우울증을앓고있다.“육이오피란때찰밥을대소쿠리하나를해가가가고,떡도쪄가가갈”정도로친정이잘살았다.그런데열여덟이되던해에우록으로시집을와보니지독히도가난한일상이그를기다리고있었다.농사도안되는산골짜기에서죽어라고일해긴세월을견뎌내며느낀보람은나이들어몸이망가지자허탈감으로바뀌었다.결혼할당시일곱살이었던남편의막내여동생도친동생처럼키워시집보냈건만,얼마전지병으로세상을떠났다.“살아온게다한심하고속에서불떡증이난다”는그는지금이라도자유롭게펄펄날아다니며살고싶다는바람을내비친다.그러나괴로운과거를더듬으며우울의요소를찾아내려는그의구술에는조금이나마상실감을해소하려는노력도엿보인다.산골할매들의공동체성이드러나는부분이기도하다.“사는게너무시장스럽고허프다”가도“경로당가마우리또래가여럿이고,나이많은할마이는팔십넘기도하고(…)두시만되마다들모이니께네.지끔내귀가근질근질하네요.보자,하마세시넘었네예.얼른가야는데”하며웃는다.그렇게그들의역사는톱니바퀴처럼함께맞물려서로가삶을견뎌낼수있도록조금씩힘을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