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의 두 얼굴 (조선의 권력자들이 전하는 예와 도의 헤게모니 전략)

문화유산의 두 얼굴 (조선의 권력자들이 전하는 예와 도의 헤게모니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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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문화유산은 어떻게 조선을 통치하고 지배했는가?
오늘날 우리가 문화유산이라 부르는 조선시대의 왕릉과 궁궐, 읍치와 성곽, 성균관과 향교, 서원 등의 건축물에 관해 권력기술자들이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통치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문화유산의 두 얼굴』. 권력 재현의 매개체로서 건축물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특히 조선시대 권력기술자들이 어떻게 당시 백성들의 감정과 사고를 통제하고 행위를 이끌어냈는지에 주목한다.

정치가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에 주목해 지배이념, 통치 강령, 지배체제 윤리를 건축물에 표상하고 이를 확산하려 했다. 건축물은 권력자가 원하는 정치 담론을 형성하고 상징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조선의 기념비적 건축물을 보면 그 외양과 구조를 살펴 당대의 미의식과 건축학적 문화양식을 가늠할 수 있으며, 건립을 추진한 배경과 사연을 짚어보고 거기에 스며든 시대 정서와 선대의 정신을 헤아릴 수 있다. 이 책은 왕릉과 궁궐, 성곽, 서원 등의 건축과 문화유산을 통해 조선의 권력자들이 예와 도의 헤게모니 전략을 어떻게 구사하고 펼쳤는지 살펴본다.
저자

조윤민

20년동안방송다큐멘터리작가로활동하다2013년『성城과왕국』을출간하며역사저술작업에뛰어들었다.이후지배와저항이라는인식틀로조선사회를천착해『두얼굴의조선사』『모멸의조선사』『조선에반反하다』를잇따라펴냈다.지식과권력의관계,이데올로기와지배전략,지배의양식과저항이라는개념을중심으로역사탐구와저술작업에힘쓰고있다.
그동안역사와문화,교육에서의학과휴먼,시사까지다양한분야의방송다큐멘터리를기획하고글을쓰면서사회의음지와양지를두루접했다.다큐멘터리제작을통해차별화된인간관계와위계화된사회계층이라는숨겨진실상을경험하며지금의역사탐구와저술을해나갈밑바탕을다졌다.
빼앗긴자,밀려난이,억눌린사람에대한관심을거두지않고앞으로도이들의숨결과목소리를담아내는저술작업을이어갈계획이다.

목차

책머리에|왕조의유산을안으며-유적,그리고권력의지배전략

1부능은살아있다|왕릉
|에피소드|무덤과권력-샤를대제와체게바라에서조선왕릉까지

1장죽은자의광휘,산자들을위한왕릉
2장왕의장례,그화려함과엄숙함의그늘
3장명당을확보하라-왕가와사대부가문의묘역다툼
4장능에감도는평화는거짓이다-왕릉너머의암투
5장왕릉과묘,혹은왕과백성

2부권력적인너무나권력적인|궁궐
|에피소드|궁궐경영-프랑스샤를5세,일제,그리고조선

6장백성의피와땀위에세운궁궐
7장궁궐의빛과그늘-궁궐을꾸린사람들
8장세종이경복궁을중건한까닭
9장누구를위한의례이고예치인가-
10장전쟁의폐허에지존을세워라
11장궁궐에권력을표상하라
12장권력의향방과궁궐의운명

3부조선성城의다섯가지비밀|성곽과읍치
|에피소드|유럽의성과치소治所에서조선의성과읍치까지

13장조선읍치는왜평지로내려왔는가-
14장읍치에왕조의존엄과권위를표상하라
15장굴욕의성,혹은충절의성
16장성곽,권력행사의보루가되다
17장서울성곽의안과밖은다른세상이었다

4부앎이권력이다|성균관·향교·서원·사찰
|에피소드|지식과정치권력-파리대학과일본의서당데라코야

18장왕과성균관유상,견제하고협력하다
19장향촌장악의거점,서원과향교
20장사찰에서서원으로
21장교화하고의례를수행하라-조선지배층의헤게모니전략

글을맺으며|당신들과이들,혹은빛과그늘을품다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지배와저항으로보는조선사4부작’을완성하는제4권『문화유산의두얼굴』이출간되었다.시리즈의제1권『두얼굴의조선사』와제2권『모멸의조선사』는문체부세종도서교양부문에선정되었다.제3권『조선에반反하다』에서는조선백성의저항과항쟁을본격적으로다뤘다.이번에나온제4권『문화유산의두얼굴』에서는왕릉과궁궐,성곽,서원등의건축과문화유산을통해조선의권력자들이예와도의헤게모니전략을어떻게구사하고펼쳤는지살펴본다.

“건축이란벽돌과모르타르로만들어진정치다.”-울리히벡

건축물에는이념이나사회윤리등추상적가치를물질적으로재현할수있는속성이있다.정치가들은동서양을막론하고이에주목해지배이념,통치강령,지배체제윤리를건축물에표상하고이를확산하려했다.건축물은권력자가원하는정치담론을형성하고상징화하는데사용되었다.거대한규모와엄숙한공간,엄정한외관과체계적인구성을가진건축물은피치자에게권력자의신성함과위력을각인시키기에충분하다.

『문화유산의두얼굴』은오늘날우리가문화유산이라부르는조선시대의왕릉과궁궐,읍치와성곽,성균관과향교,서원등의건축물에관해권력기술자들이자신들의권력유지와통치수단으로활용했다는관점으로이야기한다.조선의기념비적건축물을보면그외양과구조를살펴당대의미의식과건축학적문화양식을가늠할수있으며,건립을추진한배경과사연을짚어보고거기에스며든시대정서와선대의정신을헤아릴수있다.공사에동원된백성의고단한사연도보듬어안을수있음은물론이다.

지배와저항으로보는조선사시리즈총4권완간!

감동시키고흥분시킬것!
때로는우러러보고두려워하게할것
문화유산이조선을통치하고지배한방식

왕권정당화와권력승계의영속화를위한상징적기제-왕릉
권력에권위를심어주는위세와존엄을담다-궁궐
지배세력과하층민의주거지역구별,차별과배제로이어지다-성곽과읍치
교육기관이자지배질서유지와계급재생산을위한유교화작업의전진기지-성균관,향교와서원

이책에서는권력유지와통치의수단으로활용된건축물이란틀로,지금은문화유산이라부르는조선시대의왕릉과궁궐,읍치와성곽,성균관과향교,서원과사찰에다가가고자한다.이들건축물또한권력의권위를확보하고지배질서를정당화하며통치의효율을높이는장치이자도구로쓰였다.소통과교류의구심점으로지배층을결집하고계급재생산을꾀하던체제유지의보루였다.정책입안을두고난상토론이벌어지던정치의제일선이자더강한위세를휘두르기위해정치세력간다툼이끊이지않던권력투쟁의한복판이기도했다.선현을받드는사당을지어제례를올리며신분우위와특권행사의근거를마련하던지배전략의진지였다.그곳은감화시키고가르쳐순응하는충실한백성을길러내던교화의마당이었으며,통치와지배에대한동조나인정을끌어내던헤게모니hegemony전략의본거지였다.유럽과일본등다른나라의사례와함께이러한역사사실을반추하면서,건축물을짓고유지한인부이자그재원을생산하는인력이었던백성에게도잠시시선을둔것이이책의의도다.
지금까지의흐름은문화유산을둘러싼역사적사실을기술하거나그것의건축미나문화적가치,기능의우수성을논하는담론이대부분이었다는점에서헤게모니전략의본거지로서조선시대건축물의정치적기능과사회적배경을살펴본이책의존재가치는크다.

유교문화의정수vs.후대왕의권력의지
산자를위한죽은자의왕릉

한반도에는고대이래지속적으로왕릉이조성됐다.조선시대에조영된왕과왕비의능만11기에이른다.그중북한지역에있는2기의능과임금자리에서쫓겨난연산군과광해군의묘를제외한40기가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등재됐다.주변자연경관을유지한채장례전통과유교문화의정수를간직하고있다는것이그등재사유였다.풍수지리사상이어우러진건축미와엄숙한제례가유지되는왕릉너머에는무엇이있을까-저자는왕릉이죽은권력자의안식을위한의례공간이라기보다되레산자들의의지와열정,음모와조작,땀과눈물이배인치열한삶의장소라본다.
권력이동,당파싸움등정계의파고에따라최고권력자의무덤은파헤쳐지기도했고,후세의의지에의해이전(천릉)이이뤄지기도했다.집권한왕에게선대의왕릉은왕권정당화와권력승계의영속화를위한상징적기제로서역할을했다.반면신하들은추존등의문제나왕릉의위치등의사안을두고왕권을견제하는카드로사용했다.실제로중종은왕권을강화하기위해폐위된왕후의복위와천릉을기회로삼아자신에게유리하게정계를재편하고정치적기반을확대했다.한편송시열을위시한신하세력은효종영릉을두고왕과면대하면서갑론을박을펼쳤고,왕릉을둘러싼문제는정쟁의주요사안이되어정치세력간에싸움이벌어지기도했다.

“능이들어선여주의위치도눈여겨봐야한다.영릉은“도성10리밖에서100리안에조성해야한다”는경국대전의기준을어기고100리가넘는먼곳에위치해있다.국법을어기고,게다가거리가멀어능행과관리가어려울수밖에없는여주로굳이능을옮기려했던이유가온전히풍수지리때문이었을까-권세가가자신의영향력확대를위해새왕릉을조성할자리를여주로밀어붙인것은아닐까-”(64쪽)

자연으로부터부여받은왕권의상징vs.민초들의피땀어린건축물
권력의,권력에의한,권력을위한궁궐

조선초기,세종은개국이념을담아왕조의법궁으로삼기위해경복궁을중건한다.명당자리에경복궁을지어왕실안정및왕가존속의토대를마련하려는정치공간으로삼고자했다.시간이지나임진왜란시불탄경복궁을중건할때도비슷한논리가등장한다.서양의‘왕권신수설’과유사하게도성한복판에산을등지고풍수지리에따라지어진궁궐은왕가의존엄과왕의권위를드러내기에충분했다.일반백성들의출입을엄격히통제하고,왕과왕족의생활공간이자관료들의정치공간인궁궐은그야말로권력의중심이었다.왕은신권견제를위해궁궐중건을추진하기도했고,궁궐의례를통해왕권의정통성과지배이데올로기를각인시키려했다.그과정에서왕과신하의대립이일어나기도했다.
그고래싸움에터져나가는새우등은백성이었다.궁궐은그규모와상징성으로인해건립및보수하는데거대한자본과노동력이요구되었다.이를충당하기위해조세및직접적인백성들의부역은불가피했다.농번기를제외하고밤낮없이차출되었고,그과정에서백성들이말그대로죽어나가는것은일상다반사였다.궁궐에서행하는국가의례나궁궐에서의삶이가능하도록갖은노동력을제공하는1000여명의궁녀나수백명의환관등이들역시백성이었다.장엄하게지어지고엄정하게꾸려진궁궐은지배자의권위를드높이고왕조의번영을꿈꾸게하는상징이었지만,그그늘에는항상민초의땀과한숨,눈물과피가어렸다.

“궁궐과도성설계자는경복궁영역에진입할때‘궁궐-산-하늘’의일체화된경관경험을극대화하기위해경복궁으로통하는도로망을치밀하게조성하고교차지점까지전략적으로설계했다.숭례문에서경복궁으로바로통하는대로를내지않고,동북쪽으로우회도로를만들어가로로놓인종로와연결되게했다.이우회도로를따라종로에이른뒤에서쪽으로꺾어잠시걸으면육조거리앞사거리(지금의세종대로사거리)가나오고,여기서북쪽으로난길로들어서는순간경복궁이그제야외양을드러낸다.궁궐과산과하늘이일직선상에하나로묶여다가오며웅장함을연출하고,시선은금세경외감으로가득찬다.”(127~128쪽)

행정구역을나누고치안을유지vs.사는곳이곧신분이다
분리하고,차별하며,통치하라성곽과읍치

고종어진을그린외국인으로알려진아널드새비지랜도어는서울을여행하면서독특한경험을하게된다.저녁통행금지가시작될무렵한양성내로서로들어가려는인파에휩쓸려성문을겨우통과한것이다.“너무늦게도착한사람들이안으로들여보내달라고애걸하지만소리만메아리처럼울릴뿐,대문은이튿날해뜰때까지열리지않는다.(…)서울은이튿날아침까지외부세계와격리돼있었다.”성벽은그저성의안과밖을나누는경계가아니었다.성내는왕을비롯한권력층,양반,중인등이른바신분제의특권을누리는권력자들의세상이었다.성밖에는대체로임금노동자,빈농등하층민이사는곳이었다.성곽은이들을분리함과동시에차별과배제의벽이기도했다.
성곽으로둘러싸인읍치의입지와건축물배치역시통치권위를과시하는데충실했다.한양(서울)도성은‘궁궐-산-하늘’의일체화된경관경험으로통치자의권위와존엄을드러냈으며이를백성들에게내면화시키고자했다.이고도의정치기술은뒷산을배경으로풍수원리에따라조성된읍성에도반영되었다.중심부에자리한관아나동헌의위치및동서남북으로뻗어나가시야를확보한길등의모습은한양뿐만아니라낙안읍성등조선시대읍성의전형으로자리잡았다.군사행정시설이자지배권력의권위를상징하는성곽과읍치는그자체로통치수단의하나로활용되기도했다.실제로인조와정조등은성곽건설과보수사업을통해왕권을강화하고당파싸움와중에정국주도권을장악하려했다.

“읍성이향리집단과하급관속이생활하는거처로정착되면서읍치지역은권력에기대어사는향리와하층민이거주하는곳이라는인식이양반층을중심으로형성됐다.그러면서읍성지역은국왕의존엄과권위가발하는곳이면서도한편으로는양반에게경시당하고멸시받는이중적인성격을가진공간으로변모했다.”(222쪽)

배우고익히는선비의학교vs.앎이곧권력,권력자를양성하라
국가기관인성균관과향촌지역의향교,서원

조선사회의권력구조는군신공치君臣共治에서그특징이드러난다.왕과양반관료는어느한쪽이절대권력을휘두르지않고균형을통해협치를해나갔다.이특징이가장잘드러나는것중의하나가성균관제도다.문묘를지키고학업에힘쓰는것이성균관유생에게표면적으로주어진역할이었지만그이면에는국가(왕)로부터받는특권과조정대신들과의정치적공조등이놓여있었다.성균관은주류지배층을재생산하는하나의정책제도였고,유교이념을내세우는교육기관이자의례공간이면서도당파의이익을대변하거나정치싸움의연장선상에놓여있는정치적공간이었다.

“파리대학뿐아니라성균관에도특권이그냥주어지지는않았다.국왕은성균관유생이정성을다해문묘를지키고학업에힘쓰며,국왕을받들고통치에힘을보태는충신이되기를기대했다.특별과거와사은품하사는장차군주를옹호할충직한신하가되라는사전조치로,결국은왕권강화를위한정치적수완인셈이다.(…)조선전기만해도성균관유생의동맹휴학은대체로국왕과의극단의대치로치닫거나정치세력간의격한다툼으로이어지지않았다.(…)하지만붕당간의권력다툼이본격화되는17세기이후엔동맹휴학의성격이크게달라진다.여전히의리와도리등거창한명분을앞세웠지만관계진출이라는자신들을미래를담보하기위해특정당파의속내를대변하거나유생들자신의이익에급급할때가잦았다.”(297~298쪽)

사림세력은유학이념과규범에따르는조선사회를만들고자했다.이들은서원과향교를기반으로유교화작업에착수했다.율곡이이가관직에서물러나향촌교화에진력하고,각지역에기반을둔사림들이저마다서원을건립한이유가여기에있다.서원과향교에서는교화를행하고의례를치르기도했지만동시에향촌지배층의이익을담보하는착취기구이자일종의권력기관으로기능하기도했다.특히조선지배층은불교계인력과경제적기반을활용해권력의토대로삼았다.대표적인예가절터에자리한서원이다.사찰에자리잡은서원은고려에서조선으로넘어오면서사찰(불교)에서서원(유학)으로문화권력이이동했음을보여주는상징이다.또한유교가지배이데올로기가되었음을보여주면서향촌주민들에게이를주입하려는의도가담겨있다.

권력과지배의창으로본문화유산
그빛과그림자를직시하다

이책은권력재현의매개체로서건축물이라는관점을가지고,특히조선시대권력기술자들이어떻게당시백성들의감정과사고를통제하고행위를이끌어냈는지에주목한다.그렇다고해서조선시대건축의미와문화적가치,이념의본연과정신적유산까지모두거부하는것은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