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도시, 서울 (당신이 모르는 도시의 미궁에 대한 탐색)

착취도시, 서울 (당신이 모르는 도시의 미궁에 대한 탐색)

$13.27
Description
자본과 인간이 싸우는 미세 허파, 서울 쪽방 탐사 대기록
대도시는 어떻게 먹이사슬망이 되었나
쪽방에 들어가는 순간 생은 늪이 된다
이 책은 르포다. 기자 정신으로 잠입해 취재를 하고, 하나의 단서를 잡으면 문어발식으로 확장해 증거를 수집해나간다. 사회부 소속으로 경찰서를 출입하는 일은 ‘사망’ ‘빈곤’ ‘불법’ 등 중요한 사회 문제를 사건의 발생과 종결로만 보게끔 시야를 제한시킨다. 그래서 저자는 기획취재부로 옮겼다. 이제 기자 신분임을 숨기고 지방에서 올라온 자취생 혹은 부동산 투기꾼으로 가장해 쪽방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나간다. 그러자 서울 대도시 밑바닥층의 빈곤 문제가 하나의 비즈니스처럼 체계적인 이윤 추구 행위에 둘러싸여 있음이 드러났다.

이 책은 작은 자서전이기도 하다. 부산 출신의 저자는 서울로 진학하면서 대학 시절 내내 주거빈곤자로 불안한 생활을 했다. 기숙사, 하숙, 반지하 원룸, LH 매입임대 주택, 산동네 분리형 원룸, LH 대학생 전세자금대출이 저자가 거쳐온 주거 역사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가난한 과거사를 숨겼다. 요즘 가난은 훌륭한 서사의 자원이 되기도 하지만, 악바리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줘 불리한 약점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청년 세대들이 자신이 직면한 빈곤을 외면하자 저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오히려 자신의 주거 빈곤사와 가난의 경험을 적극 드러내게 됐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가난에 대한 한 사람의 시선이 바뀌고 넓어지는 성장담이기도 하다. 수많은 빈자, 중간 착취자, 소유주가 이 책에 등장한다. 실명을 밝히기도 하고 가명 처리한 인물도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빈곤의 실태를 이야기해준 사람들이다. 그들은 쪽방에 한번 발을 담갔다가 죽을 때까지 빠져나오지 못하는 절망에 대하여 증언했다. 바로 서울 동자동, 창신동, 사근동 주민들이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가난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제나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숨게 만들고, 고개 숙이게 한다. 저자는 가난했던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가감없이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르고 있던 '쪽방'을 통해 빈곤의 실태를 마주하고, 가난을 숨기는 게 미덕인 사회에서 병든 자본주의의 민낯을 발견했다.
저자

이혜미

대학에서중어중문학과정치외교학을공부했다.
2015년부산일보에서기자생활을시작했다.한국일보에서기획취재부등을거쳐2020년현재정치부에서일하고있다.한국여기자협회‘올해의여기자상’을비롯해한국기자협회‘이달의기자상’‘올해의데이터기반탐사보도상’‘온라인저널리즘어워드대상’등을받았다.“언론의가장중요한기능은권력에대한감시와비판이지만,동시에사회적약자들의목소리를끊임없이대변해주는것이어야한다”는고故이용마기자의말을기자로사는동안잊지않으려고한다.
쓰는행위는항상겁나고,결과물은늘부끄럽지만,그럼에도쓸때진정으로살아있음을느낀다.세상에서선택받지못하고버려진많은말을되살리는글을쓰고싶다.

목차

들어가며

1부지옥고아래쪽방

1.‘현대판쪽방’고시원사람들
2018년11월9일국일고시원화재|327호,이명도,64세|326호,홍아무개,59세

2.‘비정한도시’의최저주거전선
단돈만원에당신의비참한삶을삽니다|살아서들어가는관棺,쪽방|박씨의쪽방

3.쪽방촌의빈곤비즈니스
강씨일가|벗어날수없는쪽방의굴레|쪽방에산다는것|누가쪽방으로돈을버는가|쪽방촌생태계의축,중간관리인|‘지옥고아래쪽방’을보도하다

4.‘지옥고아래쪽방’그후
쪽방촌에배달된신문|다시만난박씨

2부대학가신쪽방촌

1.자전적‘주거난민’이야기
20대의나는‘주거난민’이었다|역행하는청년주거빈곤

2.대학가가쪽방촌이되고있다
우체통과계량기가집에대해말해주는것들|당신의원룸은‘신쪽방’입니까|도심속섬,사근동의비밀|그들이기숙사를반대한까닭|신쪽방잠입취재

3.서울,뜨내기들의욕망도시
사근동에서온답장|당신에게집은어떤의미인가요?|청춘에게더욱비정한도시|‘프로듀스101’의축소판,서울

나오며

출판사 서평

빈자들은빈자끼리서로빈정거리고멸시도한다

이책의첫페이지에등장하는인물은2018년11월9일종로구국일고시원화재생존자다.327호,64세,이명도씨는화재당시창문으로뛰어내려살아남았다.한겨울에슬리퍼만신고어슬렁거리던그는묘한적대감,빈정댐,툴툴거림으로기자와대면했다.비록고시원이지만월세를조금더내고창문달린방에살았던그는,7명의사망자와달리그3층창문을통해목숨을건질수있었다.고시원옆건물지하다방에서커피를주문한그는“다른기자들은밥한끼사주면서이야기를들려달라한다”며잿밥을바라는기색으로저자를쳐다봤다.잇속에밝은이씨는눈치빠르게상대가듣고싶어하는이야기를내놓는가운데,자신에대해서는희생자들과다르다고구분지으며‘귀한출신’임을설파하려했다.
“이래봬도젊었을때잘살았다고요.종로토박인데,가세가찌그러져서고시원에왔어요.예전에는테니스도세군데나다니고바다낚시도가고.올해는여태껏살아있는꽃게한번을못먹었네.”입맛을쩝다시다말고,그는커피를호로록마셨다.혈통자랑이라도하듯,과시하면서내뱉는화려한단어들은,손톱사이에낀검정때와대비되면서공허하게울려퍼졌다.
가난한이들이라고해서한가지색깔만갖고있는것은아니다.그들은엄연히출신이다르고계급이다름을드러내며자기보다더가난한이를멸시한다.이책에나오는고시원,쪽방촌거주자들은열심히일할수록더가난해져절망에허덕이는이들이대다수다.궁핍이같은처지의어려움을돌보게도하지만,없이사는이들의마음을더척박하게만들어기회주의적생존전략을취하게만들기도한다.
쪽방촌여성주거자들은같은계층의남성들을위협적인존재로여긴다.폭염이닥치는여름에도방문을꼭꼭잠근채열어두지못하는이유다.

돈있는자들은중간착취계층을통한다

이책을집필하는데결정적인중간역할을해준사람이있다.서울종로구창신동에있는S슈퍼의예순두살된최미자씨.그는핵심취재원이었다.
“안녕하세요.제가비타민음료비싸게살테니까주민한분만소개해주시면안될까요?”쪽방촌거주자를만나고싶었던저자는슈퍼주인에게부탁했다.구석마루에서손녀들과저녁밥을먹던최씨가급하게슬리퍼를신고나왔다.
“내가잘아는사람이있지.이거오천원인데…….”안면에웃음을가득띤채열개들이비타민음료상자를저자품에안겼다.잘보이려는마음에음료값으로1만원을냈다.횡재한표정의최씨는주저않고맞은편허름한2층건물로가예순두살의박선기씨를소개해줬다.
“안녕하세요.몇가지만여쭐게요.며칠전청계천옆에있는고시원에서불난거아시죠?그런사고접하면무슨생각이드나요?”“아휴,마음이안좋지.안그래도뉴스보면서속상했어요.여기도불나면다죽을거아니에요.20년넘게이동네에살면서불난적수두룩한데,기사한번난적이없어요.솔직히고시원은우리보다사정이훨씬나아요.돈떨어지면노숙밖에길이없는데나이드는게무섭고막막하지.”
취재를마무리하며저자는문득세입자들의월세를걷고있는‘이슈퍼주인도작은착취의수레바퀴를굴러가게하는시스템의공모자가아닌가’하는생각이들었다.그런데더깊이파고들어가자슈퍼최씨는최대수백만원의관리비를중간에서관리비명목으로취할뿐실소유주는따로있다는사실이드러났다.최씨,박씨등의이야기를엮어쪽방촌기사가보도된날,‘중간관리인’으로지목된최씨가저자에게전화를걸어왔다.“여우같은게사람들살랑살랑꼬셔서기사를써?‘꽃뱀’이다른게아니라당신같은사람이‘꽃뱀’이야!”
카랑카랑한목소리의최씨가뱉는언어는거칠고날카로웠다.듣도보도못한비속어도쏟아졌다.“네가이동네에대해서뭘안다고꼬리살랑살랑치면서이렇게기사를써?이동네사람들은다너를믿었다고!이꽃뱀같은년이.”아마도동네관리인들끼리기사를돌려보고집주인으로부터도한마디들은듯했다.
그순간증언을해준박선기씨가혹시불이익을당하지나않을까걱정됐다.박씨는저자를여러번만나자신의생애사와쪽방촌착취의생태계를들려줬다.최씨의목소리가다시들려왔다.“돈있는게죄야?있는사람들이이걸좀빌려주겠다는데,쪽방없어지면이사람들다없어지는데.네가월세라도대줄거냐고.”
본인도세입자면서최씨는철저히건물주의이익을대변하고있었다.

부자들은얼굴이없다

중간관리인말고쪽방촌건물들의실소유주를찾는게관건이었다.이과정은이후수개월에걸쳐집요하게이어진다.박선기씨가사는집의실소유주는‘정선심’.60대여성으로옆동네에살고있었다.종로46가길(창신동)을따라박씨쪽방인근건물들의주소를하나씩정리했다.그렇게인근15곳건물의등기부등본을열람하며,등본상에서확인할수있는소유권과채무관계에대한정보를채워나갔다.건물주소,현재소유주의이름,주소,등기연도와원인등.
밤샘작업이지난하게이어졌다.하지만그렇게얻은데이터는아무것도말해주지않았다.요주의인물‘정선심’은단두곳의등본에이름을올리고있을뿐이었다.정선심은박씨의쪽방바로옆집을‘강병선’이라는인물과함께소유하고있었다.S슈퍼건물의등본을다시검토했다.소유주는1960년대후반생인강병철이었다.정신이번쩍들었다.순간강병선과겹쳐졌다.
정선심과함께옆집쪽방을절반씩소유한사람의이름이‘강병선’아니었던가.이상하게도이골목에는유독‘강’씨가많았다.만약이구역건물을몽땅가지고있었던한사람이있었고,이를어느순간자녀들이나배우자에게물려줬다면……?강씨에다가이름항렬이‘병’인사람은쉽게찾을수없을것이다.형제나남매라는심증이커졌다.
박씨네쪽방건물주정선심.
박씨네쪽방기준오른쪽이웃집의건물주정선심과강병선.
박씨네쪽방을관리하는S슈퍼건물주강병철.
박씨네쪽방맞은편건물주강병식.
게다가과거에쪽방으로이용하다가최근게스트하우스로리모델링한건물소유주강병은.드러난것만해도강씨4명에정선심까지다섯명이가족인것으로추정할수있었다.작업에속도가붙었다.좀더구체적이고직관적인팩트가필요했다.우선강씨4명과정선심이등장하는주소를모두수집해정리했다.의문이드는지점마다정리하고공통점을비교하고,건축물대장이나등본을또떼어보고정리하고다시살펴보는길디긴작업이이어졌다.
서울시종로구△△동**-**.집요한추적덕일까.여러차례의검색,분류,필터링끝에나온이주소가무언가를말해주리란것을직감했다.우선강씨일가가창신동쪽방촌옆동네인이곳에주소지를올려두고있었다.또,박씨가사는쪽방왼쪽이웃집소유주‘최정자’역시주소지가같았다.최정자도강씨일가의일원일가능성이커졌다.
강병선,강병식,강병철,강병윤,강병연,강병은.1996년에건축승인을받은역세권소재지하1층,지상5층의건물.우애좋은가족이쪽방주민의고혈을빨아쌓아올린빌딩의건축물대장과등기부등본에는남매6명이‘소유주칸’에이름을한꺼번에올리고있었음이마침내밝혀졌다.그토록찾아헤맸던정보지만,눈앞에펼쳐진사실이믿기지않았다.노숙과주거의경계에놓인쪽방이라는최저주거전선에서‘가족비즈니스’형태로월세장사가이어지고있다니.그야말로고장나고병든자본주의의민낯이드러나고있었다.

나는저가난한부류와는다른사람이다

“저는제가가난하다고생각하지않아요.기분도나쁘고요.왜냐하면빈곤하다는것에엮여있는이미지가있잖아요.그래서일부러내마음은안가난하고,나는가능성이있다고정당화하는것일수도있어요.지금은내가사는곳이니까,이집에서나는나아지고있다며‘정신승리’를해야지,그렇지않으면못살아요.”
이책의2부는청년주거빈곤층에게로초점을옮겨간다.대표적인취재지는한양대근처사근동으로,초미니원룸텔이여기저기들어서있다.이곳원룸텔주거자들에게물었다.‘당신은가난합니까?당신은주거빈곤층입니까?’
지금막죽은고등어눈알처럼직설적이고노골적인질문에놀랍게도젊은이들은얼굴을찌푸리며강한부정을했다.“왜자신이처한상황이주거빈곤이아니라고생각하세요?”
한양대졸업생전동수씨는대답했다.“제원룸건축물은불법시설이지만,제가부산에서살았던아파트는그런곳이아니에요.제부모님도주거빈곤층이아니고.난한번도주거빈곤층이었던적이없고.그래서옛날을기준으로생각하는거같아요.여기는‘서울집’일뿐이지,‘내집’은아닌.그래서그개념을잘못받아들이겠어요.”
가난을숨기는게미덕이된사회에서,자신의현실을직시하게만드는질문은불편하다.이처럼내밀한고민과스스로마주하기도쉽지않다.이들은‘나는지금가난하지않으며,당장이런상황에놓인것은더나은미래를위해버티는중이기때문이다’라는생각을내면화하고있다.하지만이는현재스스로결정할수있는것이아무것도없음에도불구하고미래가능성을전제하며잔인한착취구조의작동을간과하는것이나다름없다.

저자는자신의자전적이야기도솔직히그려낸다.가난을숨기는청년들과달리저자는이책을쓰면서가난과사회에대해좀더명징한문제의식을갖게됐고,과거가난했던자신을드러내면서자유로워지고싶었다.때로가난은사람을성장시키는면도있다고.물론이것은결코가난과착취를정당화하는말이아님을분명히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