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 (당신과 내 삶에 대한 이야기)

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 (당신과 내 삶에 대한 이야기)

$15.00
Description
사람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는 삶을 품는다
타인은 내가 되고 나는 타인이 되는 따뜻한 기록
글항아리에서 기록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아주 보통의 글쓰기’ 시리즈의 제3권으로 『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를 펴냈다. 2002년 느닷없이 식당 주인이 된 60대 여성이 이 책의 저자다. 그녀의 나이 쉰한 살 때였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나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렇게 얇고 자그마한 에세이 한 권을 갖게 되었다. 식당이 안정을 찾고 돈도 좀 벌고 난 이후인 2016~2019년 마음먹고 인생을 돌아보며 쓴 글들이다. 전라남도 광주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틈틈이 사람들을 관찰했다. 어느 날 식당 밖을 보니 데크에서 쉬고 계신 할머니는 저자의 스무 살 시절 세상을 뜬 증조할머니와 닮아 있었고, 흰 수염이 많은 넉넉한 몸피를 지닌 할아버지는 헤밍웨이의 모습이었다. 그 외에도 누구누구를 떠올리게 하는 무수한 사람이 왔다 갔다. 그 사람들은 곧 그녀의 삶에 스며들었고, 자신의 옛 삶과 함께 노트에 적혀 내려갔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소설을 쓰고 싶었으나 쓰지 못한 한恨이 녹아들어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한두 편만 읽어봐도 이 책의 대사와 묘사가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리라.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솜씨라든지, 딴 데 쳐다보며 묵직한 어퍼컷을 먹이는 듯한 통찰도 곳곳에 녹아 있다.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품은 기억대로, 담긴 풍경대로 쓰고 있지만 3년 묵은 오모가리처럼 잘 익은 문학이다.
저자

이혜숙

전남함평에서태어났다.소설가가된후배김씨에게나도소설쓰고싶다했더니비웃었다.그래도되고싶은것은소설가였다.광주여자고등학교다닐때뭔가를쓰느라원고지가쌓인것이책상한가득이었
다.그러나이루어진것은없었다.
할머니의표현은“꼭관청의사다리처럼키는큰것이해질때왜우두커니서있냐”였다.식구들을불안불안하게했던내가결혼하고아이를다섯낳았다.나무꾼과선녀이야기를빌리자면너무많은아이를낳아묶여버린셈이다.
영특하다고여기던첫째아이를등굣길에잃고‘그늘의버섯’으로불리던무난했던삶은크게조롱받았다.여름에문을열지않아도더운줄모르던시기를겪으며늘신의공격을받을까봐불안해했다.정신적불안이회복되고나서다니던광주학생독립운동도서관에서‘글사랑독서회’라는책읽기모임을만들었다.가톨릭센터에서한문학계간지에서본김유택선생님의강의를들었고,거기서만난사람들과소설모임을만들었다.
의욕은있으나결과가지지부진할때독서회출신몇명과음식점을열었다.음식점은성공했지만내가뭘하고있는건가싶어지면서문득놓아버린글쓰기가아쉬었다.그래서틈나는시간에내가만나온사람들에대한글을썼다.컴퓨터를들여놓을생각은못했다.밥먹으러온손님들의눈에가소롭게보일까봐였고,휴대전화에자판기를연결해몰래한줄한줄써내려갔다.그렇게나마스스로를위로했던시간이었다.

목차

머리말

1부이런사람들
우리성님|서옥렬선생|동아실아짐네여시|연희야,연희야|유정할머니|방촌댁|다미아노|
세라피나의모시적삼|유딧|순조|카바레의역사

2부엄마는그런사람이었지
엄마의가출은장독대까지|아슬아슬한고부삼대|니미|할머니와어머니|소캐같은년|
네가살다온곳이어디냐|나,마늘캐야한다|내생일|병동|엄마,미안해|풀전|회충약엄마주려고|딸의후회

3부되돌아보는삶
1980년5월|5·18의한가운데를우리는수수방관자로살았다|말이라도하고싶은날,간첩|
반칙왕을고발한다|나는|고모라도왔으면했던가을|흉통의이유|의기양양막내이모|
실연|이게나라냐|추억이야!|이야기해줘요|내고향여름|토마토를애도함

4부이렇게살아요
날벌레|흰니|기도|조청|제사|구인광고|다짐은어디에두고|편하게해주는손님|
고백1|고백2|고백3|고백4|누님|어버이날|그아이|이제다른곳을봐|추석|양말

5부두고온시절
아버지기억|너나잘살어라이|그때그마을|약수터|달콤한역사|택시속의변사|
내거래처에책팔아줄게|“거그부자되면뭣하냐”|숙이에대해떠들어댔다|
시집살이딸보러온할머니와어머니|불의기억|대밭이있던사람은안다|짚시랑물조심해라|
고요한정읍,고요했던이모|1977년|세상사|맞선의추억|봄조차가려하는군요|
배봉지가된일기장|역사는흘러가고|무슨가풍을익힌다고

출판사 서평

“다른사람궁금해하지말고너나잘살아라잉.”

오지랖넓은성격과다정함,서민적마음씀씀이,관습이나정치적이념에얽매이지않는생각들,구세대특유의조마조마한마음이얽혀순간의삶들은한권의에세이로완성된다.엄마,할머니,증조할머니는물론이고옆집뒷집앞집사람들도그녀의시선을비껴가지못한다.한번주워들은이야기를절대잊지않는저자는제삶의방향을잘잡지못하는순간수시로이웃들의삶을참조해방향을조정하고면적을넓히며자기밑바탕으로삼았다.“다른사람들사는거궁금해하지말고너나잘살아라잉.”엄마가늘저자한테했던말이다.
아이다섯을낳고넷을키웠다(첫째아이는등굣길에잃어버려저자는한동안집밖으로나오지못했다).살림살면서가까이한건문학이었고,소설몇편을시도했지만등단에실패했다.한번도작가인적없고누구도주목하지않는글이었지만,그럼에도“쓰지않으면죽을거같아서”썼다.살아오면서글쓰기와책읽기모임에몸담은이유다.멤버들의지리멸렬한성과를보면서글쓰기선생은부모로부터독립하지못한이들에게말했다.“내밥은내가버는게옳다.식당에가서설거지라도해야한다.”저자도그참에멤버몇명과함께식당을차렸고,사람들은줄을서서밥을먹었으며,돈은성큼굴러들어왔다.그런데도마음엔기쁨이없었다.이러다삶이끝날것만같았다.
작은키보드를구입해휴대전화에연결하여시작한것은손님없는틈틈이글을쓰는일이었다(노트북을놓고쓰면남들의시선이신경쓰일것같았다).이때부터그의생활반경에들어온이웃들과돌아가신증조할머니,할머니,어머니고부3대의삶,아르바이트생과식당손님하나하나가한편의서사로태어난다.관념,도덕과선악,가치,이론의틀에얽매임없이생생한리얼리티를담고있는이야기들은생이의미있다고말하지않는다.그냥묘사되는삶속에서타인은내가되고나는타인이돼볼뿐이다.서로간의차이를걷어내고반짝이는깨달음의순간으로수렴되는것,어쩌면여기에일말의삶의진실이담겨있을지모른다.

5·18의한가운데를수수방관자로살았다

저자는전남함평에서태어나결혼후광주에정착해평생한곳에뿌리박고살았다.새댁이었던시절,광주민주화운동이일어났다.흉흉한소문이떠돌았으며,이웃이간첩으로몰렸고,분노와울분이뒤엉키는것을봤다.생선사다간하여볕에말리고,그늘에앉아고구마줄기껍질벗기고,누가시장에다녀오며뭐가값이싸더라하면아이업고그쪽으로가좀헐하게사오던때에자신과이웃을휩쓴억압과폭거였다.이때부터열심히노력하면보람있는훗날이있을거라는등식은흔들렸다.저자는기록한다.“정신이좀처럼차려지질않았다.어떻게살것인가,아이들을어떻게키우는게옳은가,가치관도존재감도삶의의욕도없이우리는그저했던일이니관성으로움직였다.시금치나물하나도듣고물어맛을낼노력을하던예전의아낙은세상살이가심드렁해지는몸의변화를느꼈다.”
80년광주의억압은한낱시민이었던그에게삶이모욕임을일깨워줬고,그는자기비하의기억들을마음에새기며기록으로풀어낸다.‘세탁기두고도물절약하겠다며손빨래하던나는무엇인가.’‘고무다라에물담아낮동안햇볕에데워서아기들씻긴절약은다무슨소용인가.’내가나를비웃자나자신조차스스로어떤사람이될지자신이없었다.
정부와위정자를못미더워하면서원망했지만,스스로를돌아보면역시나무력한‘수수방관자’였을뿐이어서원망은제몸으로받아도할말이없었다.자박자박걷는아이와업어키우는아이둘을돌보고있을당시그는이모네집에세들어살면서이웃의소문을들었고,분노했다.시내엔벌써시체가가득하다고했다,마구잡이로죽이니말이다.하지만그때저자가한건아이를달래면서우는것뿐이었고,고향쪽을바라보면서이일이얼른끝나기만을바랐다.
남편은어떠했던가.선생일을하고있었던남편역시도청에나가지않고집에만있는자신을비겁하다여겼다.그래서어느날부부는아이들을업고시내로나섰다.하지만그때남편의스승을길에서맞닥뜨렸고,그스승은제자부부를얼른집으로돌려보냈다.“성난시민군에편승할용기도없고,마구잡이로총검을휘두른다는진압군과마주치는것도두렵다”라는생각이들던차스승의권유는부부에게자신을보호할정당한명분을마련해주었다.저자는끝내말하지않을수없었다.“5·18의한가운데를우리는수수방관자로살았다.”농사는망치고우유집유차도못들어오던시절,차라리안보고안듣는게낫다고생각하며살았다.고장의아픔을보며울었지만,한발짝도내딛지못하는무력한아기엄마의기록은이제야한편의글이되어그시절의사회와자기자신을동시에고발한다.

엄마,가출한다면서마당뒤에숨었어?

주먹을휘두르진않았지만남편의습관적외도와정신적학대,시어머니의꼬집어비트는독설과멸시,허리한번펼날없는육체노동……이것은엄마의삶이었고저자는목격자로서이를기록한다.어느날가출을결심한엄마,그모습을본딸은기억을되짚어꺼내놓는다.날저문저녁,식구들은밥하는엄마가사라지자평소등한시와타박의대상이부재함을알아차렸다.가마솥에불지피고,참기름·간장·깨소금으로가지와풋고추를조물조물묻혀내며,철따라장아찌를담던여자였다.수많은봉제사를위한누룩이며엿기름,마른나물을준비하고그것들을연필로기록하는법없이도머리에서술술풀어내던무덤덤한얼굴의여자.그치만늘만만해호령과핀잔을한몸에받고고개한번못든채살았었다.그런여자가없어지자할머니,아버지얼굴에는불안이역력했다.엄마의존재가일천하지만은않았음이드러나는순간이었다.
어린딸은엄마의부재를조마조마해하며울었을까.아니다.해떨어졌을때툇마루에우두커니앉았다가장독옆에몸을웅크리고있는엄마를봤을때딸은하마터면“엄마를조롱할뻔했다”.집안일로바빴던엄마는딸한테그리살갑지못했고,집안의권력자할머니의손안에서큰저자는기껏장독대까지가출한엄마가무능력하다고생각했다.
하지만글을쓰는현재몸져누운엄마를옆에두고그시절을되짚어생각한다.“누구도낱알이모뚝하게살아있으면서날쌍한밥을지을수없으며,간장된장의깊은맛을내기어렵고,스물네시간군말없이빨래푸새하고,일꾼들밥하고들일까지해대는엄마를대신할수는없었다.”그숱한역사를엄마는입싼딸년처럼입으로뿜어낼줄도모르며원망도상처도되뇌지않고살아왔다.
엄마에대한기록은여러편의글로풀어져나올수밖에없었다.저자는어느날엄마의중얼거림을들은적이있다.“이집구석은뱀을독사로맨들었지.”하지만시어머니가죽던날,상을치르면서가장많이울었던건자식들이아닌욕받이엄마였다.“미안허요,엄니.이렇게돌아가시는것을바랬단말이오.엄니,미안허요.용서해주시씨오.”엄마는두손을앞에쥐고서서어린애처럼울기시작했다.더욱이초상치를일때문에음식을여러날준비해왔던엄마는무척허둥댔다.본래난리가몰아와도들썩이지않는엄마가대청으로마루로오가며뭐부터해야할지몰라당황했다.장에심부름나갈마을아재가거리제,산신제,평토제에쓸제수를물었는데엄마는사과나배를사다달라는말조차하지못했다.시어머니를향한평생의미움은며느리의마음한켠에사랑의싹을틔운건지어떤건지아무도모를것이다.

“우리는그이를성님이라불렀다”

이책의첫장은이웃들의역사쓰기로시작한다.어떤삶이특별히기억될만한가치가있을까.1부〈이런사람들〉엔저자가쓰지않고못배길것같은이들의삶이기록된다.권력과명예와돈가진자는이미그것의소유때문에낙타가바늘구멍에들어가기어려운것만큼이나저자의글감대상이되지못한다.오히려‘무명無名’의사람들이호기심을자아낸다.왜덜떨어졌을까.왜자신은식당일,여론조사,고추따기의극한직업에몸담으면서별볼일없는남자를먹여살리려할까.시어머니한테양많은나물때기얻어먹고고기반찬은동서들에게빼앗기면서도그면박이뭐가좋다고가서살림이며반찬해주고제몫은하나도못챙기는걸까.커튼일그만둔지오래됐으면서도마을사람들이찬장해달라,커튼해달라하면거절하는법없이와서달아주는이의심성은무엇일까.
이들은사회에서한번도드러난적없지만,이웃들은심심찮게그들을화젯거리로올린다.‘우리성님’에등장하는성님도그런존재다.아량이남들몇배나넓어누구에게든맛있는것을해먹이고마음을나눠주던성님은정작부부사이가좋지못했다.공무원남편이지방으로발령받아떠돌면서노름에빠졌던것이다.동네엔그집에서주말이면싸우는소리가들린다는소문이퍼졌다.어느날만난성님의머리가쑥대밭이돼있었다.“성님머리가왜그래요?”모인사람들이물었다.“애들아빠가화투쳐돈잃고나면애들볶고날더러서방질했다는말까지하지않던감.듣다못해내가가위들었네.그런짓하는년이라면머리를잘라가두는것이라고.”그러던성님은몇주후섬에있는남편을만나러간다면서들떠있었다.성님왈“에이즈가창궐하니본처가대접받네.목포여관으로가.”당시는1986~1987년경으로,국내에서최초로에이즈감염자가나온지얼마안됐을때였고남자들은몸을사렸다.성님은그런일때문에오히려본부인이대접받는다며들떠서남편을만나러달려갔던것이다.
이책엔도량좁은이들의모습도몇편기록해두었다.주변을보면못나고못된사람들이널려있다.자기가진거지키려고남의삶에생채기를내는사람은얼마나많은가.식당을하다보면몸보다는마음고생때문에이일을접어야하지않을까하는순간들이가끔찾아든다.사고는어느틈에라도비집고들어오려준비중인데,어떤손님은한순간음식으로날벌레가날아들자카메라로찍고신고하겠다며승리자와고발자의기세등등함을취하면서증거를단단히기록해갔다.식당에밥먹으러온가족간의불화를지켜보는마음도편치않다.식당일하는직원이정작전화삼매경에빠져손을놓고바깥에전화받으러들락거리면마음이신산해진다.그런심란한마음은글쓰기를재촉한다.삶이아름다울수만은없듯이,씁쓸함으로얼룩진기억들도하나씩소환되어한편의글이된다.못난삶도기록될만한가치가있는것이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