킵차크 칸국 (중세 러시아를 강타한 몽골의 충격)

킵차크 칸국 (중세 러시아를 강타한 몽골의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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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중세 러시아를 지배한 몽골의 킵차크 칸국
그들은 그 광활한 영토에 무엇을 남겼는가
몽골의 부정적 측면만 부각시킨 사료의 행간을 읽어내
역사의 진실을 추구한 역작!

13세기 초, 몽골 초원에서 칭기즈칸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하여 몽골 제국을 세웠다. 이 제국은 짧은 시간 동안 광범한 유라시아 대륙을 군사적으로 정복했고, 몽골의 정복 이후 세계사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당시 고도로 발전한 정주 문명이었던 중국과 페르시아의 경우에는 생태 환경부터 전혀 다른 유목민들의 침입으로 인해, 또한 그들의 통치를 받으면서 상당한 역사적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이러한 변혁을 일으킨 몽골 제국에 주목하게 되었고, 몽골의 유산遺産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저자

찰스핼퍼린

CharlesJ.Halperin
1946년7월뉴욕브루클린에서태어났다.뉴욕시립대브루클린칼리지에서역사학을전공했으며컬럼비아대마이클체르니압스키교수의논문지도를받아박사학위를받았다.『킵차크칸국:중세러시아를강타한몽골의충격RussiaandtheGoldenHorde:TheMongolImpactonMedievalRussianHistory』(1985),『타타르의멍에:중세러시아에서의몽골의이미지TheTatarYoke:TheImageoftheMongolsinMedievalRussia』(개정판,2009)등의저서를썼다.「중세에서근대초기러시아에서의슬라브족과스텝지대SlavsandtheSteppeinMedievalandEarlyModernRussia」등30여학술지에90편이상의논문을발표했다.1996년부터독립된학자로서활동해오고있으며현재미국인디애나주블루밍턴에서살고있다.

목차

서문
감사의말
1장중세의민족-종교적접경
2장키예프공국과초원
3장몽골제국과킵차크칸국
4장몽골의러시아통치
5장러시아정치에서몽골의역할
6장몽골의지배에대한러시아의‘이론’
7장경제와인구에끼친영향
8장몽골족과모스크바공국의전제정치
9장몽골족과러시아사회
10장문화생활
11장결론

주/참고문헌/옮긴이의말/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몽골이중세러시아지배한시기본격소개

그노력으로인해중국의몽골정권인원나라,페르시아의몽골정권인일칸국에대해서다양한역사적사실들이밝혀질수있었다.하지만러시아의경우에는그렇지못했다.중국이나페르시아와는달리러시아에서몽골족은상주常住하면서통치를하지않았기때문이다.직접몽골의통치를받았던중국·페르시아관료들이몽골과관련된직접적인자료를남길수있었던반면,러시아연대기들은‘침묵의이데올로기’에의존하면서역사적사실을왜곡하여기록했다.이로인해역사가들은러시아에대한몽골의지배가상세하게서술되어있지않은기록들속에서우연히드러난틈을어렵게찾아내야만하는상황에놓이게되었다.그러나그틈을찾아낸역사가들은그리많지않았고대부분은몽골의러시아지배를부정적인방향으로만바라보았다.‘타타르의멍에TatarYoke’라고하는유명한용어가상징하는바는러시아역사에전형적인고정관념으로자리를잡았던것이다.
그런점에서찰스핼퍼린의『킵차크칸국:중세러시아를강타한몽골의충격』의출간의의는척박한땅에내린한줄기시원한소나기에비유될만하다.컬럼비아대에서중세러시아와몽골의관계를연구해박사학위를받은저자는이분야에서여러저술과90편에달하는논문을발표한보기드문전문가다.이책에서저자는‘침묵의이데올로기’에빠진러시아의기록들을비판적거리를두고바라봤으며,민족-종교적접경지대의특징을염두에두면서양자의관계가항상적대적인것은아니었고그보다훨씬복잡하고다면적인모습을보였다는점을강조하고있다.

유럽과아시아사이에끼어있었던중세러시아

저자에따르면몽골시기에중세러시아는두개의광범하면서도조화되지않는세계사이에끼어있었다.서구의입장에서생각해보면,러시아는유럽기독교세계에서멀리떨어진가장자리에놓여있었고접경에서도가장먼거리에있었다.동방의입장에서관찰해보면,러시아는중국해中國海로부터모든방향으로뻗어있는거대한몽골제국의영역에서가장서쪽으로떨어져있는곳이었다.이두영역의일부분이면서도아직은완전히소속되지않았다는점이중세러시아가직면한수수께끼중의하나였다.문화적으로는비잔티움및서구와연결되어있고,정치적으로는이교도와훗날의무슬림이거주하는동방과연계되어있던킵차크칸국치하의러시아는동방과서구의관점에서보면변칙적인존재였다.
게다가중세러시아는종종눈에보이지도않는정복자들에의해정복된땅이었다.흑해와카스피해초원의거대한목초지는러시아와충분히가까운곳에있는대규모의유목민군대를먹여살릴수있었고,그래서몽골족은직접적인점령이불필요하다는것을알았다.그결과는러시아의역사그리고러시아의역사저술측면에서현저하게나타났다.
이와는달리,유럽과중동의기독교-무슬림정복사회들과몽골의영역에서는정복자들이소수의귀족계급이되어피정복민들에에워싸인채거주했다.정복한땅에거주하는군주들은이윽고자신들이지배하는사람들의문화적특성의일부를받아들이는경향이있었다.예를들면,중국원나라의몽골족은서예를배웠고,중국의시를이해했지만킵차크칸국의몽골족대부분은여전히말안장에서낮을보냈고텐트에서밤을지새웠다.그결과러시아는여전히치명적인기병이었던몽골족에장기적으로예속되었고,문화적차용이일어났을때에는몽골족이영향을받은것이아니라오히려러시아인들이정복자인몽골영향을받았다.

정복당하고도정복당했다고쓰길거부한역사

킵차크칸국에서러시아의지위가가진또다른영향은곧바로명백하게드러나지는않았다.정복전쟁으로인해철저하게황폐화되고,토벌과기분전환을목적으로하는침략에의해약탈을당하기도했고,과중한세금을납부하면서혹사를당하기도했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러시아는스스로의지혜를어느정도남겨두었다.이는침묵의이데올로기라는독특한변형을만들어낼수있게했다.이미러시아는중세의민족-종교적접경에광범하게퍼진지적전통영역의일부분이었고,이속에서이교도와의이로운협조라는현실이종교적이데올로기를침해해서는안되었다.키예프시기의또다른유산중의하나는종주권의변화를결코드러내지않으면서도초원민족들과의교류를묘사하는단어였다.그래서러시아가몽골제국에합병된뒤에몽골족이대부분철수했을때,러시아문인들은그들의패배라는끔찍한이념적문제와의직면을회피할절호의기회를잡게되었다.사회의종교적토대가위험에처했을때현실을무시해버리는것에이미익숙해진러시아작가들은어떠한실질적인변화가발생했음을은연중에부정하는언어를쓰면서그들이예속되었던역사를기록했다.실제로극소수의몽골족만이러시아삼림지대에살고있었기때문에러시아문인들은러시아가독립을유지하고있다는허구를계속주장할수있었던것이다.
이책을통해저자는두가지이유로러시아지식인들이진실을마주하기를꺼려했음을강조했다.첫째,침묵의이데올로기다.이것은상당히흥미를끄는역사적현상이고,그자체적으로도연구의가치가있다.둘째,특히침묵의이데올로기가가장기이한발전을이룩했다고말할수있는러시아에서는역사기록에끼치는영향이막대했다.이는러시아와킵차크칸국의역사에서흥미를끄는측면그이상이다.이렇게독특한지적인태도를분석하여염두에두는것은사실몽골지배시기러시아에대한우리의중요한정보출처로남아있는중세러시아문헌들을의미있게읽어내기위한절대적인필수조건이다.

몽골은러시아에문화적,경제적침체를가져오지않았다

역사적기록의성격과관련된상황들과몇세기동안지속된선입견들은많은역사가가몽골시기에러시아사회가생기를잃은상태에놓이고혹은문화적,경제적침체에빠졌다고결론을내리게만들었다.이러한지적풍토는거의전반적으로러시아중심의관점을가지고있을뿐만아니라아주기만적인증거들을무비판적으로받아들이는데에특히공헌하고있다.
킵차크칸국의일부분으로서러시아의존재에대한좀처럼바뀌지않는이미지는여전히남아있고,이는중세러시아지식인들이기독교이데올로기-혹독한억압과격렬한저항이라고하는단순한관점-와조화시킬수있었던것이었다.게다가러시아의문헌들을액면그대로받아들이면서이에과도하게의존하는것은필연적으로역사가들이거의러시아의동기와능력의관점으로만몽골시기의사건들을해석하게만들었다.이러한접근은킵차크칸국의다양한세력과동기들을무시해버리는실수를저지르게한다.킵차크칸국관료제의발전,대외정책그리고내부정치는모두러시아에엄청나게중대한영향을끼쳤고,이시대를바라보는분명한관점의일부분이되어야한다.

러시아와몽골의혼인,공동전투참전등교류상황철저히파헤쳐

몽골시기러시아인들삶의더욱정확한모습을찾아내고,종종적대적이었지만결코항상그렇지는않았던두민족사이의복잡하고다면적이면서장기적으로지속된관계를고려하는것이이책의목표였다.러시아공작들은대부분헛된영웅담에빠져들지않고충분한용기를보여줬다.그래서타타르족에저항하는데에있어서도러시아공국들은단합되지못했다.그대신에나타나는것은상황이순조로운것같으면타타르족에대해반항하고그렇지않으면협력을선택하는다양한공작들로이루어진‘유동적인모자이크’였다.각각의공국들은지속적으로대립하고있는러시아의서로다른정체政體들을연결시키는끊임없이변화하는연맹체계의중심이었고,그연결은아마도킵차크칸국혹은칸국내의파벌로까지이어졌을것이라고저자는지적한다.
러시아와몽골의관계에서드러나는다른양상들도똑같이복잡했고,모두기독교정교회의요구와는마찰을빚었다.비록러시아의문인들은방법론적으로이를숨겨보려고했지만별로성공하지도못했고,다양한평화적교류가일상적으로이루어졌다.러시아와몽골전사들은종종함께전투에임했고,러시아공작들은타타르족부인을본국으로데려왔으며규모가큰교역집단이사라이와러시아삼림지대를여행하는등의일이있었다.게다가정확히측량을하기는어렵지만,러시아의발전에끼친킵차크칸국의영향은분명히매우컸다.정복으로인한파괴는예상의범주를넘어서는것이지만,킵차크칸국에의해신중하게육성되어훗날에나타난풍부한교역의중요성도측정의범주를넘어서는것이다.몽골의후원아래에서러시아정교회는재산,영향력의측면에서거대하게성장했다.
모스크바의흥기와러시아의통일에있어킵차크칸국의정확한역할을평가하기는어렵지만,모스크바공국이권력을강화하면서훗날팽창하는과정에타타르의수많은제도를활용했다는점은명백하다.간단히말해서중세러시아에끼친몽골의영향은다양하고복잡하면서도강력했다.
이러한퍼즐의조각들을발견하기는쉽지않고,조합하는것은더더욱어렵다.예를들면,바스카크제도를생각해보자.바스카크는러시아인들의삶에서분명히대단한중요성을가지고있었고,틀림없이이방인의지배를상기시키는가장짜증나면서도지속적이었던제도중의하나였다.그러나우리는부족하면서도종종숨어있는암시를통해바스카크행정의모습을복원해야한다.그암시는마치러시아연대기들에우연히몰래들어가있는것같아서여기에는이름이나오고,저기에는사악한행위들이나오는식이다.실제로,이책에서동시대의사료로부터얻은정보의대부분은중세러시아문인들이있었기때문에수집된것이아니라,그들이그런기록을남겨놓았음에도불구하고찾아낸것이었다.이러한종류의증거는행간行間을읽어내고,시종일관말하고있지않는내용에주목하면서얻어진것이다.또한,문인들이조심스럽게만들어놓은은폐의벽에남아있는틈과자신도모르게드러낸몇개의설화,일화혹은문서들을찾으면서얻어진것이기도하다.아마도삶의현실과사회의이념적토대사이에존재하는모순을기록하지않는문인들의타고난지적습관은때때로그들을신중하지못하게만들었던것같
다.모순을무시하는것에익숙해진문인들은중요한사건들을기록하기위한열정속에서때때로그모순을인식하지못했거나조사를하면그의미가아주달갑지않을수도있는증거를남기기도했다.
그래서타타르족부인을둔러시아공작의이야기,타타르족과모스크바공국사이에맺어진연합에대한맹세,킵차크칸국을왕복했던교역집단에대한기록등조그만빛이새어나왔던것이다.이들로부터러시아-타타르관계의진정한이미지를재구성할수있는것이다.
전쟁은물론이고평화적인측면에서,정부와상업에서,사회와경제에서중세러시아인의모든계층의삶에끼친타타르의영향이가진깊이와복합성을재평가하는작업이필요한것이다.이책은이러한작업의일부이고,러시아의공작들이킵차크칸국의칸들에게무릎을꿇었던시대의장막을걷어올리기위한시도이기도하다.

금장한국,킵차크칸국등용어문제부터논의해야

저자가관점의변화를통해몽골의러시아지배역사를새롭게서술한것은매우큰의미가있다.그러나아직도극복해야할것이많이남아있다.러시아를지배한몽골국가의이름이그예다.일부기록에는몽골의러시아원정총사령관이었던바투가황금색장막을사용했다는이유로그가세운국가를금장한국金帳汗國이라고칭했고,이를받아들여영어로는‘GoldenHorde’라는용어가사용되었다.하지만이명칭은13세기당시의것이아니라훗날의사람들이만들어낸것이었다.그리고금장한국이라는단어에는바투가이국가를건설했다는의미가포함되어있지만,바투는그의아버지인주치(칭기즈칸의장남)가받은영토를물려받고이를확장했다고보는것이더욱정확하다.그래서최근일부연구자는금장한국이라는용어대신에‘주치의국가’혹은‘바투의국가’라는뜻의몽골어‘주치울루스’‘바투울루스’라는표현을사용하고있다.이미‘GoldenHorde’란명칭이일반화되어있는실정이지만,용어에대한재검토를통해몽골제국사와러시아사를다시살펴보는작업은분명중요한의의를지닌다고할수있다.
한편,우리나라에서는금장한국보다는‘킵차크칸국’이라는명칭이널리사용되고있는것같다.하지만킵차크칸국이라는명칭에도문제는존재한다.이는킵차크초원을중심에둔국가라는의미밖에는전달하지못하고있기때문이다.또한,몽골제국이정복한민족의이름인킵차크가몽골국가의명칭으로사용된다는것도사실너무어색하다.그럼에도이용어를그대로사용할수밖에없다는점은몽골의러시아지배가잘알려지지않았고,정확하게정의되지않은부분이아직도많음을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