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글쓰기 혹은 글쓰기 너머의 인간 (양장본 Hardcover)

인간의 글쓰기 혹은 글쓰기 너머의 인간 (양장본 Hardcover)

$33.36
Description
삶과 통풍이 되는 글쓰기, 잡된 글쓰기, 삶의 복잡성에 유의하는 글쓰기
무기록의 삶도 인간살이의 한 방법이지만 삶의 결핍과 어긋냄을 드러내려는 자는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자기 삶을 가루로 만들지 않기 위해 글을 쓸 것
철학자 김영민은 인문학 하는 것의 핵심으로 오랫동안 글쓰기에 천착해왔다. 인문학은 읽고 쓰는 것이되, 쓰기가 없다면 그 앎은 한 번도 수면 위에 떠오르지 못한 채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책 읽고 공부하는 이들은 쓰기를 지속하면서, 하나의 색깔로 수렴되지 않는 복잡한 삶을 어떻게 담아낼까를 고심해야 한다. 이는 학술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과학 분야 논문이 아니라면, 삶을 말끔히 도려낸 글은 있을 수 없다. 이 책은 인문학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글쓰기로 자기 삶을 어떻게 가루로 만들지 않고 결핍을 채워나가며 욕망을 증폭시킬 수 있는가를 논한다. 글쓰기는 삶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다. 그 활동은 자신을 확인하며 자신이 갇힌 타율의 굴레를 벗겨내고 삶을 구성하면서 새롭게 변화시키는 노력이다. 그러려면 글은 조그만 분량, 한 가지 논의로 정돈되기보다 복잡하고 무한한 글쓰기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곧 잡된 글쓰기인데, 이로써 글쓰기를 억압했던 현실에 대한 가장 지속적인 저항을 펼칠 수 있다.

사실 글을 쓰는 자라면 누구나 삶의 ‘깊이’와 ‘성숙’을 생각해볼 것이다. 특히 성숙은 삶에서 맞닥뜨리는 재난을 요모조모 피하면서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상수常數로 주어지며, 성숙은 재난 앞에서 무너져가는 격格, 쓰러져가는 멋에 의해 그 비범한 속내를 드러낸다. 특히 슬픔을 어떻게 다스리는가가 성숙과 미성숙을 가름하는 잣대가 될 텐데, 글로써 이를 담아 성숙을 이뤄내는 이들을 우리는 동시대의 학술 논문에서는 보기 힘들고 대개 문학에서 발견하게 된다. 정말로 논문은 삶을 담아낼 수 없는 것인가. 만약에 그렇다면 논문 쓰기의 역사를 제대로 고찰하고 뜯어고쳐야 한다. 근대 서구의 이성중심주의의 글쓰기를 절대 무기처럼 여겨온 논문 작성을 한국사회는 아무런 비판 없이 지난 수십 년간 답습해오고 있다. 사실 10명 내외로 읽는 논문의 무용성에 대해서는 지칠 정도로 여러 차례 지적이 있었다. 변명으로 전문가들끼리의 논의, 학문성의 틀을 갖춘 글쓰기를 내놓는 것은 별 설득력이 없다. 전문성이 1년에 한두 편의 논문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라면, 그들은 언제 ‘글짓기’ 수준을 벗어나 진정한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읽히지 않는 인문학의 논문이란 사실 존재의 무용성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논문 쓰기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원전중심주의다. 원전만을 깍듯이 모시는 문화는 자기 집을 제대로 못 짓고 있는 형국에 빗댈 수 있다. 구걸만 하는 학문을 학문이라 할 수 없으며, 원전 바깥의 세상도 믿을 만하고 살 만하다는 것을 학자들은 용기와 성숙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 용기와 성숙은 바로 삶과 분리되지 않는 글쓰기에서 비롯될 것이고, 삶은 이런 글쓰기로 인해 상승작용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글쓰기와 관련된 저자의 오래전 논의들을 함께 묶어 복간하면서 지금의 현실에서 이 논의들이 여전히 유효함을 펼쳐 보인다. 우리가 쉽게 목격하듯이, 인간과 세상과 학계가 개선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며, 당대에 그런 일을 보게 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절대다수의 학자는 읽히는 글을 쓰기를 거의 포기한 듯하고 그런 역량을 기르지 못한 채 학문의 생을 마감하고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삶도 학문도 다 제것으로 만들지 못한 학자는 과연 소용 가치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그래도 어쨌든 글쓰기는 비관의 작업이 아니고, 이 책 역시 삶의 진리가 아닌 여러 일리一理들을 드러내려는 것이 목적이므로, 독자 각자가 자신의 일리를 찾아나가는 여정에서 이 두터운 책은 방향타가 되어줄 것이다.
저자

김영민

철학자.『서양철학사의구조와과학』(1991),『동무론』(2010~)3부작,『집중과영혼』(2017)등을썼다.천안과서울등지에서인문학학교‘장숙藏孰’(http://jehhs.co.kr/)을열어후학들을가르치고있다.

목차

서문

1부기지촌의지식인:탈식민성과글쓰기

1.논문중심주의와우리인문학의글쓰기
2.원전중심주의와우리인문학의글쓰기
3.기지촌의지식인들-탈식민성과우리학문의자생성
기지촌가는길|건축·사혹은건·축사|기지촌의학문과인용I|마이신과허위의식|제도,학문성,선생|기지촌의학문과인용II|보건증·식민증·학위증|식민지의지식인들,혹은대리전의경비견들|기지촌의언어|기지촌을떠나며
4.집짓기,글쓰기,마음쓰기-탈식민성의걸음걸음
5.글쓰기,복잡성,일리-『하얀전쟁』과『이방인』
글쓰기와상상력|구체와추상,혹은‘붙어있음’과‘떼어냄’|『이방인』과『하얀전쟁』|단순함과복잡함:글쓰기와‘복잡성의철학’|일리의해석학을향하여
6.복잡성과잡된글쓰기-글쓰기의골과마루
삶의복잡성,그전후좌우와안팎,켜켜와층층과면면을일일이어루만져주는글쓰기|개성적글쓰기|구체성의글쓰기|글쓰기의임상성|글쓰기의골과마루
7.복잡성,콘텍스트,글쓰기
삶의모습에알맞은글쓰기|복잡성과친숙성|복잡성,콘텍스트성그리고단순화의병증|잡된글쓰기와우리인문학의미래
8.콘텍스트의해석학
인문학의글쓰기:원리와사례의피드백|갈릴레오의성공|아아,우리의심청이|무릎과무릎사이|인감됨의콘텍스트·콘텍스트의인간됨

2부손가락으로,손가락에서

9.부재를찾아떠나는무늬-글쓰기로서의문학과탈자본제적삶의씨앗
글쓰기,부재를향한무늬|글쓰기의주술,자본주의의그늘에서|글쓰기로,손가락으로,탈자본주의의씨앗으로|소설의지혜|검은고목,저만치있는
10.수난과열정의뫼비우스-김승희의글쓰기
글쓰기의밀교,원초경으로의야합|자살미수의한계에서부활미수의조건으로,정신의질긴힘으로써혹은피로써|절박한순정에서정신의질긴힘으로|늑대를타고달아난여인,그리고망치를든철학자|사이코토끼,혹은차라투스트라|한계의벽에서조건의창으로|열정과수난의뫼비우스
11.시작詩作과시작始作-문화文禍시대의글쓰기
꼬리,그우습과아름다운것|끝없이다시시작하는것,그것뿐|날지못하는것은운명이지만,날지않으려하는것은타락이다|복제,감성,시작詩作|그유혹의시작始作일뿐,수음과강간도아닌
12.슬픔,종교,성숙,글쓰기-박완서의글쓰기
역량,감성의역사를이뤄|슬픔에겨워글을쓰고,슬픔을견디며글을쓰고|손가락으로,무의식보다더낮은자세로|어머니,아들을잡아먹은근대를탓하며|성숙의체감,운명과신의神意사이의배회|자조自嘲의경건,자조自助의불경건|도구·해결에서존재·성숙으로|다시삶으로,다시글쓰기로
13.글자와그림의경계에서-채근하는미학,망설이는해석학
14.글쓰기의물리학,심리학,철학
재료·글쓰기·자료|인식·표현·정서|글쓰(읽)기라는방어기제|자살미수의글쓰기|필연성의글쓰기|고삐풀린말言|존재와글자|순수의아둔함,혹은탈식민성의글쓰기|배회·일리·성숙의글쓰기|가시성,혹은유혹의글쓰기|글쓰기(와)철학
15.글쓰기로,스타일로,성숙으로
글쓰기의경지론|심인의체로거른열가지글쓰기|맥리脈理의생태계:해석과성숙|성숙과해방,그리고탈논문중심주의|손으로부터나오는혁명|읽힐수있음可讀性과인문학|전문성:개방적보편성인가,폐쇄적정합성인가|글쓰기의통풍|번역의식민성과원전중심주의|글쓰기로,스타일로,성숙으로
16.1996년11월하순-글쓰기,그운명의전략
17.지금,글쓰기란무엇인가

3부글쓰기의묵시록

18.글쓰기의징후,혹은징조의글쓰기
‘쉬운’비난|논문의유래가망각된것이논문의개념이다|연대,혹은고립이아닌독립|글쓰기의징후,혹은징조의글쓰기|‘대안’이라는스캔들|이치는단박에깨치나버릇은오래간다|중성성의신화,‘인식’과‘인정’의사이|시간과글쓰기
19.글쓰기의묵시록:총체와비약
20.미안하다,비평은논문이아니다

출판사 서평

삶을위한앎과삶을깔아뭉개고있는앎:복잡성의글쓰기를지향하며

우리의앎과글쓰기의바탕엔교육이있다.하지만경험해서알듯이,학교교육은시험을치르는데집중되고,시험을잘치르려면잡색의현실을외면한채단색의교과서에만코를박고있어야한다.삶을위한앎이어야할텐데,묘한구조를타고있는앎이힘을얻어오히려삶을깔아뭉개고있다.
이는우리사회의공부하는이들이무엇에집중하는가그양상을보면알수있다.제나라말로변변한논쟁을이끌훈련도안돼있으면서논문을쓰고,한글로편지한장쓰길변비난놈인상쓰듯하면서‘팝스잉글리시’니뭐니꼭두새벽부터법석을떠는것이나,귀가하면한치빗나감이없는봉건적가부장이집을나서서는포스트모더니즘을입에거품물고이야기하며,달동네철거한답시고깡패동원해서대책없이폭력만휘두르게한인간들이채반도분양안될게뻔한아파트짓느라날이면날마다‘혼을담은시공’으로난개발을일삼고있는것이나다마찬가지다.
저자는말한다.“단언하건대줏대를세우기전에는세계화란어불성설일뿐이다.간단히말하자면세계화란집을나선다는뜻인데,집을나서는놈이제자신부터명확히해두지못하고서야어떻게남을만나서제집의역사와전통을제대로드러낼수있단말인가.”이런이들은오히려자신의세계에위협을가하는차이들이나예상치못한복잡성앞에서쉽사리당황하고잘게곱씹은흔적없는반응을내비쳐미성숙을부지불식간에노출한다.이미성숙한반응이역사의참학한살상들을낳았다는것은우리가목격해온바그대로다.
삶은원천적으로복잡하고애매하다.이두가지를참아나가는성숙의여명은바로인문학의보상이다.우리가겪는사태들이생각보다복잡하다는사실에눈을뜨면삶을몇문장으로쌈박하게정리하려는욕심은접을수밖에없다.오히려복잡성의성격과그구조를간파한글은대체로길고,잡된글쓰기일수밖에없다.그리하여저자는인문학의한방법으로잡된글쓰기를내세우지만,이것이목적도정처도없이무한정미끄러지기만하는배회의글쓰기는아니다.어쨌거나역사와터와이름과책임이있는일리를설계도로삼아집을짓는글쓰기는이미하나의거대한중심을포기한셈이므로‘원칙상’무한정한분량의글쓰기를지향한다.
이런작업은쉽지않다.그리하여글쓰기를시도하는자들은비관으로흐르며,허무에빠져든다.하지만글쓰기를비관하는자는제스스로나태한줄모르는나태한자다.글쓰기에무능한혹자들은자신의나태를권태라고부르면서허무를입에올리곤한다.저자는이에맞서며글쓰기란낙관의영역에속함을암시한다.“글쓰기의낙관이란글의틈을비집고들어오는하염없는비관을바로그비관의무게로써이겨낸결과임을잊지말아야한다.”

삶을도외시한앎,논문중심주의

학자들이자기존재를입증하고자1년에한두편씩쓰는논문을열명안팎의사람만읽는다는것은전혀새삼스러운사실이아니다.연중행사처럼학계라는제사상에논문을진상하는이들은이땅에서‘학자’라는매우애매하고위협적인마스크를쓴채가쁜숨을몰아쉬며연명하고있다.이들은주말이나휴일엔절대연구실을찾지않으면서도오후5시만되면어김없이연구실을빠져나오는존재로,일년에한두편짜깁기조차엉성한논문을학계에바치고는그뒤에꼭꼭숨어있다.저자는말한다.그들은마치“‘자신의몸을숨기지않는글쓰기는점잖지못할뿐아니라심지어학문성마저실추시킬위험이있다’고속삭인다.그들은나긋나긋하고정중하게속삭이고,숨어서베끼고베끼다가자신의일생을학자로마감할것이다.”
국내의학자들은삶을도외시한앎,그것도백인들로부터수입한앎만을위한논문중심주의의글쓰기에매진하고있다.저자는자신이살고있는동네의집들이허물어지고곧바로새건물이올라가는것을반복적으로지켜보면서형식성과과학성에수세강박적으로매몰된학자들의글쓰기가이모습과비할데없이유사하다고여긴다.“집이되지못하는건물,글이되지못하는논문그리고마음이되지못하는이성은한통속이다.건물과논문과이성은모두넓은의미에서계몽과진보의가능성으로섣불리들뜬근대성의표현이며,설명가능성의이념아래척척풀려나가는과학적세계상의대표이사들이다.”
집이되지못한건물은콘크리트덩어리일뿐이고,글이되지못한논문은우리삶의복잡성과관계없는강박의덩어리일뿐이며,마음의깊이와넓이를헤아리지못하는이성은다윈이나프로이트같은큰이름들이펼친경지는커녕,봄감방의창틀에찾아든쑥한포기에시심을띄우는이들조차이해못할테크닉에지나지않는다.기실논문은공시적구조나틀이아니며,따라서기호론적관계로환원될수있는것이아니다.저자는말한다.“논문은오히려슬픔이며아픔이거나,허위이며휩쓸려들어감이다.글은,그리고학문은많은경우창의이기이전에관습이며,천재이기이전에모방이고,상상이기이전에전통에지나지않는다.”
글쓰기에도마음이라는게있을텐데,우리학자들의글쓰기에서굳이심리를발견하자면,그것은아예‘글쓰기심리’라는게없다는사실을특징으로삼는심리일뿐이다.그들은‘내용이중요할뿐이지글쓰기의스타일이란저절로따라오는부수적인것에지나지않는다’는‘심리의부재’와도같은심리속에휘말려있다.서구학계에서관용어로쓰이는‘쓰든지죽든지Publishorperish!’는국내학자들에게서‘쓰면죽는다Publishandperish!’혹은‘읽히면죽는다’로바뀌어있다.그들은도무지읽히는글을쓰려하지않는다.

원전바깥도믿을만하고살만하다면

소위몇몇원전을논의의출발점이자귀결점으로삼는논문류의글쓰기와그심리를저자는‘원전중심주의’라고부른다.이때의원전이란2차참고문헌에대비되는1차문헌만가리키진않는다.여기서원전이라함은형식적인의미의교과서가아니라말하자면‘학인들의글쓰기를실질적으로지배하는귀소의식의출처’를뜻한다.그러므로고전이니걸작이니하는책들이낱낱의작품을지시하는고유명사라기보다는언중의언어적상상력을지배하는힘이라는점은여기서다루는원전의의미를밝혀주는잣대가될것이다.
어쨌든원전과비원전을구별하는명료한잣대가있는것도아닌데,논문을쓰면서자기입지를다지는적잖은수의학자는글쓰기의권위적전거가될만한원전을손쉽게알아낸다.‘알아서긴다’는말처럼,논문을써서먹고사는이들은모셔야할원전이무엇인지진작눈치챘다.이런일이순수한학문적동기에서이뤄진다면그저줄서기쯤으로이해할수도있을것이다.저자는“그러나원전을들먹이는짓은이제글의내실을견고히하여학문성을높이려는본래의목적에서점차멀어지고있다는느낌을지우기어렵다.더러는이를사견에치우친비판이라고역공하겠지만,역공이셀수록기득권층이두터움을보여줄뿐이고,그층이두터울수록원전을오용하고남용한역사가깊음을보여줄뿐이다”라고지적한다.
원전중심주의의글쓰기풍토와직접연관되는학인들의정신적악덕은일종의포장과광고심리에비견할수있다.즉실제보다부풀려보이게하는것은특별히자본주의사회에서보편화된심리다.글쓰기마저이런조짐을보이는것은이시대의배움이봉착한근원적화근이다.자신의속내에자부심을느끼며이를담백하고교치巧緻없는자기말로표현할자신이있다면포장이나광고에마음을빼앗길이유가없다.
매우부정적인심리방어기제중하나로‘고착’이란게있다.이는그유용성이소실되어부적절하게돼버린행동양식을계속고집하는행태를말한다.그러므로행동양식이오랫동안고착되거나,비록표현형은바뀌어도유아기의행동패턴을그대로반복한다면참된성숙을기대할수없다.마찬가지로자발성과창의성을무익한것으로만드는원전에기대어서정답의출처인교과서에코를박고살아왔던숱한세월이경직된학습의패턴을낳았고,마침내이패턴은대학원생이상의논문쓰기를업으로삼는학자들의행동양식을철저히지배하게되는것이다.
“사실이땅에서쓰이는논문의대다수는자신에게직간접적으로영향을미치는힘들에대한소극적이며미약한반응양식의결과물에지나지않는듯하다.”물론그반응양식의주된모습은‘눈치보기’다.그리고논문이란눈치보는글쓰기의전형이며,글쓰기에서눈치보기의전형이바로원전중심주의이다.그러므로원전중심주의라는고착이치유되기위해서는원전바깥도믿을만하고살만하다는사실을체득하는수밖에없다.이것은곧용기와성숙의문제임을저자는다시한번강조한다.

읽히지않는인문학이존재가치가있을까

인문학은전처럼텍스트속의자율적인논리에안주하지도못하고,콘텍스트속으로방산放散되지도못하는어중간한머뭇거림의몸짓을계속하고있다.그리고혹자들은이주저함을성숙의징표라고자위하며잠시쉬어가려고앉았던자리에서비석까지다듬고있는실정이다.저자는이머뭇거림속에서학문적인정당성을찾아보려는시도하는데,곧일리와패턴의철학이다.무리의비산飛散도우리일상인의삶의자리가아니고,진리의좌정도더이상우리를위로하거나보호할수없는현실에서인문학과철학이열어야할제3의지평은무엇인가.
아인슈타인의상대성이론이처음발표되었을때,이를제대로이해하는사람은전세계에열명미만일것이라는소문이있었다.그러나설혹채열명이이해하지못하더라도그현실적적용력은실제로세상을바꾸었다.이와달리,인문학의성과들은독자한사람한사람에게이해받지못하면이해받지못하는바로그만큼무용지물이되고만다.
‘내책은읽히지않아도상관없다’고깡탈을부리는이들이있지만,‘그러나인문학은읽혀야만산다.’읽히는것은인문학의이념인성숙의문제이기이전에생존의문제다.그렇다면이해받기위해쉽게쓰여야만할까.얼핏들으면평범하고지당한요청같다.쉽게쓰여야읽히고,읽혀야이해되고,이해되어야변화될것아닌가.그러나막상‘쉬운글’이무엇인지따지자면거기엔수많은쟁점이실타래처럼얽혀있어논의는황당할정도로복잡해질것이다.
독자와의거리를좁혀서가독성을높이고,이로써인문학의터를확보하는방식,특히그기술적인방식으로는여러가지를생각해볼수있다.그러나저자는읽히는글이어떤것인지,또어떻게써야하는지조목조목명시하려는전략에앞서야할것이있다고강조한다.그것은글쓰기의임상성,구체성의글쓰기,개성적글쓰기,그리고삶의복잡성에자연스럽게연결될수있는‘잡된글쓰기’의정신을익히는일이다.그리고이정신과공조해서논문중심주의,원전중심주의,글쓰기의허위의식을하나씩실제적으로공략해가는일이다.독자를외면하지않으면서도전문성의깊이와멋을잃지않는글쓰기,아울러글쓰기스타일이곧장자신의성숙으로이어지는글쓰기는이런노력의끝에조금씩가능해질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