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최고의문화비평가이자전방위적학자
명예가없는세상에서명예를회복하고자부와권력으로에둘러간탐험길
명예,부,권력이라는
인간세상의세비구름중
대체어느것이땅(혹은행복)에가장가까울까?
이책은한인간으로서의선택과분별과이해에관해이야기한다
운명의판도위에서명예,부,권력이작동하는방법
★2019년타이완문학상진취金曲상수상작
★2019년타이페이국제도서전수상작
명예를향한여정은부의속성을들추는데많은시간과지면을할애하며길을에둘러가는것이었다.
주제가주제인만큼해당주제에대한애덤스미스,마르크스,토크빌,존스튜어트밀등사회과학자들의논거와통찰력을살핀다.그러면서내밀한소통을기대했던독자의기다림을배반하지않고마르케스,보르헤스,포크너,발자크등페이지마다문학대가들의빛나는구절로작은길을내고사유를유도한다.『좌전』깊이읽기를저술한저자답게고대와현대,동양과서양의고전들을교차시켜검토한다.
돈과명예를논하는이책은또한특이하게도그구체적사례로끊임없이‘책’을끌어들인다.오랫동안편집자와독자,저자로살아온탕누어는자신의경험을바탕으로오늘날의독자,저자,편집자가명예를지킬방법을알려준다.읽지않은책은우리주변에가득하고현대의인간들대부분은‘예비독자’라할수있다.독자는어떤책을통해자신의이름을실추시키지않을수있을까?그흥미로운주제에대한논의가탕누어의화법으로펼쳐진다.
벤야민에게사후명예를돌려주기위하여
발터벤야민에대한사람들의태도때문에한나아렌트는‘사후명예’라는것에대해몹시분노했다.벤야민사후수년이지나서야몰려온때늦은찬사와숭배가그의생전에는조금도주어지지않았다는말인가.그랬다면벤야민은굶주리지않았을테고,쉰살이되기도전에국경지역에서자살하는일도없었을것이다.
아렌트는벤야민을향한마음을로자룩셈부르크에게도주었는데,벤야민보다용감하고생명력강했던룩셈부르크는비참하게살해당했다.그녀역시사후에명예를얻긴했지만,그것은벤야민보다훨씬떨어지는것이었고정확하거나후련하지도않았다.
탕누어는말한다.“정확하고정당한명예에의지할때우리는비로소어떤기억할만한사람과그들의행동,작품을기억하고찾아낼수있다.”이루는늘이렇게아쉬워한다.“좀더서둘러살아생전에명예를안겨줌으로써그들이마음편하게잘살수있도록했어야만했다”고.
명예,부,권력중에서가장종잡을수없는것을꼽으라면‘명예’다.부와권력은산사람의것인반면,명예는역사의거대한강속에서결정을이루고마모되어나온눈부신빛이기때문이다.그런데이‘사후명예’라는것도이제는사라지는중이다.우리가살고있는세계에서‘역사’는정치경제에비해인기가급락했으며,명예는더이상역사에귀속되지않고매스미디어에좌우되기때문이다.
그렇다고패배나무력감에빠질수는없다.“예란,제자가선생을찾아와배우는것이지선생이가서가르치는것이아니”라는말처럼우리는좋은것이스스로우리를찾아오길바라면안된다.좋은것이먼곳에서가까스로우리쪽으로오면그것은이미변질되고,부패하고,빛을잃은상태이기쉽다.그러니우리가그것을찾아서다가가야만한다.
이책에서핵심적으로파고들명예란‘이익과무관한기본적인위치에인간을되돌려놓는것’으로,그럼으로써인간의특정한격정,편견,광기,집단적으로귀신에들린듯한부분을씻어내며권력과부를잠재우는것이다.
부를견제할만한것은이제없다
발자크의소설『고리오영감』에서‘재물’은가장중요하고도핵심적인사물의위치를차지하고있다.당시부는언뜻보면권력과명예밑에꼼짝없이깔려있는듯했다.하지만실상은정반대였다.영감의두딸은아비의돈을물쓰듯쓰면서권력과명예를쌓아올렸는데,만약돈이없었다면이것은신기루같은것이었으리라.그렇다.부야말로지진을막는하부구조이면서권력과명예보다대지에더가까웠다.이진상은훗날더명확해지고더숨길수없게되었다.부는권력과명예밑쪽에서위로떠올라사람들의주된목표가되었다.그리하여부는독립적으로존재하는가운데거꾸로권력을통제하게되었다.
사실화폐는아주오래전부터간계를써왔다.돈에쫓겼던한무제도한차례화폐의간계를쓴것으로유명하지만,비슷한시기에지구반대편유대인의성지예루살렘에서도유사한화폐의간계가사용되었다.즉사제와상인들이손을잡아성지를찾은참배객들에게봉헌하도록강제했던것이다.이로써신전은시장통처럼번화해사방에돈이굴러다녔는데,이때예수가나타나이볼썽사나운광경을보고는좌판을뒤엎고채찍을휘둘렀다.
탕누어는“분수를모르고질서도안지키며심지어충성스럽지도않은부가전지구적으로날뛰는것”에대해인류는제어할힘을상실했으며,부는훼손되거나소모될리없는존재가되었음을다층적으로묘사한다.부의전지구적지배로인해이제는어떤방식으로살아가느냐가다시핵심문제로떠오르고있다.
생존한계선아래쪽에있는이들이느끼는방식
경제문제는경제문제의모습과형식으로폭발하지않고밑바닥에깊이들어가불안요소로편재하여마치지뢰밭에있는것처럼매사가불편하고면역력이모자란인간의현실조건을구성한다.그래서약간의불똥만튀어도,약간의바이러스만침투해도사달이난다.사람들이느끼는것은경제수치로나타나는것보다훨씬더형편없으며실망,자기연민,시도때도없는울분과공격성이사회전체의기본정서가되곤한다.전형적인,실의에빠진이들의사회인것이다.즉경제문제에서패한이들은가정,일,학업,건강,연애등에서끊임없이문제에직면하고,대체로화를참지못하게된다.
이렇게실의에빠진이들이편재하는사회에서가장막아야하지만반드시일어나게마련인것은‘희생양찾기’게임이다.사회의가장저렴하면서도불공정한이러한자기치유는동시에심하게사회를망치고상처입힌다.중세의마녀사냥이나유대인박해와같은역사적경험은인간의가장추악하고잔인한모습이이게임의참여자들에게서나타난다는것을가르쳐준다.이기심,잔인함,살인충동,난무하는거짓말과집단적광기는인간의본성이야만과무지를향해뒷걸음질치도록했다.
권력의도저한동물성
권력은자신의경계밖으로벗어나지못한채횡포하거나순식간에전락한다.이점은권력의도저한동물성을보여준다.욕망은항상권력이증가하고시간을장악함에따라부단히자라나며나이든권력은꼭나이든사람처럼나태해져각양각색의향락에이끌리고자제력을잃곤한다.여기서발생하는문제는바로이것이다.즉권력과부가주도하는세계에서는인간의행위와사유,말이상당히단조롭고반복된다.권력·부가매혹하는힘이일상적으로모든사람에게미쳐알아서제한받고또알아서협조하게만들기때문이다.
이쯤에서공자의지적을새겨볼만하다.그것은바로인간의생물적인면,즉욕망의많고적음이인간의강인함과반비례를이루며인간의가능한행동,사유,말의양과도반비례를이룬다는것이다.인간의강인함은대단히중요해서처한상황이위험할수록더많이필요하다.
탕누어는타이완의한인기작가에게솔직한고백을들은적이있다.그는자신이한안좋은행동에대해다음과같이고백했다.“어쩔수없었습니다.그돈많은사람을보자마자바로무릎이풀리더군요.”이비겁한이야기를들은탕누어는곧바로에드워드사이드의말을떠올렸다.“세상에는당신이그것앞에서큰소리로진심을말할수없을정도로큰권력은없다.”물론큰권력이있기는하다.하지만그권력에무릎꿇는다면우리는그작가에대한기대를거둬들일수밖에없다.
“그런사람이어떻게,또무슨배짱으로조금이라도그럴듯한작품을써내겠는가?처음에는감히말하지못하다가점차그것이내면화되어감히생각하지못하게되고나중에는아예생각할줄모르게되어사람이텅비어서사라져버릴것이다.”동료작가에대한탕누어의평가다.
왜명예가중요한가
탕누어는이책에서끊임없이“개인적인삶의신념이나선택과무관하게나는이명예라는것을변호하고싶다”는뜻을내비친다.왜일까?“우리가옳은일을하려고노력할때명예가해줄수있는것은부분적인보완일뿐이긴하나,이것은자기성찰과반성의면모를지니고있다.이를통해우리는세상이단조로워지지않게,사람들이한꺼번에어떤관성이나생물적본능에끌려가지않게하고현실논리가지배하는이무미건조한세계에조금이라도당위적인것을남기고자노력하게된다.”
이런명예를되찾으려면기나긴시간을축적해야한다.예를들어보르헤스의『알렙』을읽을수있는사람이얼마나될까.어느시대든,어느곳에서든많을리가없다.다만그흔적은이상할정도로깊어서몇몇사람은계속그것을떠올리고깊숙한기억속에간직할것이다.
이모든것은먼미래에갑자기생겨나지않는다.그것은사람들이묵묵히주워담은결과다.벤야민의극적이고감동적인사후명예만해도결코후대인들이뜻밖에발견한게아니다.누군가세밀하고신중하게그의책과말,역사적실마리를빠짐없이그특수한시간의소로에보내주어지켜낸결과다.만약누가이시간의우호적효과를이용하려한다면지금당장팔을걷어붙여야한다.가장좋은것은생활습관을만드는것으로,권력과부의눈부신광선속에서도어렴풋하고버려진것처럼보이는것들을찾아내“소유하고보존해야”한다.보르헤스가“우리는‘또다른사람들’이될의무가있다”고말한것은바로권력과부바깥의또다른사람들을의식했기때문이다.
저자는왜명예를좇아야하는가
탕누어는명예에관한이야기를독서의세계로곧장이어간다.
만약명예에대한보상체계가현재처럼계속미비하고점점불가능해진다면세계는어떻게될까.단기적으로는괜찮을것이다.조금괴롭고쓸쓸하기는하지만,정말로훌륭하고진지한현역저자들을동요시킬것이라고보지는않는다.결국우리가시간의단계마다글쓰기의성취를가늠하는척도로사용하는것은역시최고의필력에의한성과이기때문이다.
탕누어는“저자들의인격적인부분을신뢰하는게아니다”라고말한다.그들도유혹에흔들리며버틸수있는생명력에는한계가있다.다만진정으로신뢰할만한것은글쓰기와사람의기본적인관계다.이것은글쓰기의매일반복되는시간속에서‘굴레’가됨으로써그안에원망의요소가담기긴하지만(빌어먹을!내가왜애초에이런길을택했을까)그래도충실하고흡족하며정말포기하기힘든것들이다수존재한다.이를테면글쓰기자체가인간에게주는보답인데,그것은일종의은밀하면서도뒤늦게전달되는진정한보상인동시에형언하기힘든삶의귀속감이다.이것은바로보르헤스가말한‘행복’일것이다.
즉글을쓰는이라면,막스베버가조언한것처럼,그것이자기삶의유일한마신임을인식하고온마음을집중해헌신해야한다.작가의현실적형편의좋고나쁨은기본적으로그가어느시대,어느사회에살고,어떤가정에서태어나느냐에따라결정되는운명의문제일뿐이다.따라서저자들이신경써야할다음단계는현실과의극단적인단절같은게아니라침착하고합리적인자기가치의순서를정해더잘쓰려하는것이다.
무미건조한세계에서편집자와독자가살아남는방법
오늘날책이읽히지않는것은책이힘을잃었다기보다는사람이힘을잃었기때문이다.옛날에는대학캠퍼스에키르케고르나니체의책을들고다니며적어도몇페이지는읽으려고노력했다.게다가그들은키르케고르와니체를읽는것이훌륭하다고믿었다.탕누어는그시절그사람들의바람직함을회상한다.“세상에는우러러보고경외심을품어야하는훌륭한것들이있다는것도믿음으로써그훌륭한것들이기회를가져,삶의경관이밋밋하고황량한지경에이르지는않”도록하는사람들이있었다.
오랜세월저자는편집자로지내왔다.그는자기가큰매출성과를내진못했지만,그래도돌아보면가장흥분되었던일은어떤작가,어떤책을알아보고그것을부와시장의세계에서빼내시간과명예의네트워크로돌려보낸것이라고말한다.하지만불행히도현재출판시장은그때보다훨씬더처참하게무너졌다.타이완에서는10~20년전만해도2000부를찍던책을지금은500부만찍는다.이런출판업의소멸은어떤사회적의미를가질까?
탕누어는세상의다양한업종중에서출판의특별하고눈에띄는점은바로‘최전선’에자리